옥상에서

옥상에는 고무 물통이 셋 있었다. 하나는 김칫독 담그던 통, 하나는 빈 통, 하나는 옥주가 앉는 통. 옥주는 그 통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십 년 전에 끊은 담배. 어디서 났는지 성호는 묻지 않았다. 미영 슈퍼밖에 없었다. 새벽 여섯 시에 슈퍼 문 두드려서 담배 한 갑 샀을 옥주를 생각하니 성호는 조금 웃음이 났다. 웃을 자리가 아닌데 났다.

"앉아."

성호는 빈 통에 앉았다. 앉으니까 엉덩이가 아렸다. 성호는 얼굴에 안 나타내려고 했다. 옥주가 봤다.

"아프지."

"네."

"많이."

"……좀."

옥주가 담배를 길게 빨았다. 연기가 골목 위로 올라갔다. 길 건너 화끈고기 간판이 보였다. 아침 여섯 시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꺼진 간판은 그냥 빨간 판이었다.

"내가 서른둘에 여기 왔어."

옥주가 말했다. 성호는 아는 얘기였다. 그래도 들었다. 옥주가 이 얘기를 꺼내는 건 일 년에 한 번도 없었다.

"첫 남편이 경마를 했어. 팔천만 원 빚지고 없어졌어. 전주 친정 오빠가 시골 땅 잡히고 돈 빌려줬어. 이 자리 그때 김밥집이었어. 보증금 천에 월세 육십. 처음 삼 년은 하루 열여섯 시간 했어. 혼자."

"네."

"그때 뭐가 제일 무서웠는지 알아?"

"빚이요."

"아니. 틀리는 거."

옥주가 담배를 통 모서리에 톡톡 털었다.

"혼자 하니까 틀려도 아무도 몰라. 고기를 잘못 썰어도, 계산을 잘못해도, 손님한테 말을 잘못해도, 내가 틀린 걸 아무도 안 봐. 틀린 채로 그냥 가. 그게 제일 무서웠어. 그래서 장부를 썼어. 장부는 봐주니까. 숫자는 틀리면 틀렸다고 나오니까."

성호는 옥주 손에 든 담배를 봤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옥주 손은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제 거는 봐주는 거예요?"

"그래서 니 거는 봐."

옥주가 성호를 봤다.

"근데 어제는 내가 틀렸어."

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 그건 벌 아니었어. 내가 화난 거를 니 등에다 풀었어. 저 간판 보고 화난 거, 미자 이모 내보낸 거, 손님 세 테이블 든 거, 그거 다 니 엉덩이에다 풀었어. 그건 우리 규칙에 없어."

"네."

"미안하다."

옥주는 그렇게 말하고 담배를 다시 빨았다. 성호는 그 말을 십이 년 만에 처음 들었다. 옥주는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잘못하면 고치는 사람이었다. 말은 안 했다. 그런데 했다. 한 번. 성호는 그 한 번이 앞으로 두 번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잘 들었다.

"저는요."

성호가 말했다.

"어제 안 섰어요."

"봤어."

"십 년 만에 처음이에요. 사장님 무릎에서 안 선 거."

"알아."

"그게 무서웠어요. 맞는데 그냥 아픈 게. 벌이 아니고 그냥 맞는 거라는 게."

옥주가 담배를 통 모서리에 눌러 껐다. 반도 안 피웠다.

"나도 무서웠어. 니가 옥주 씨라고 해서."

성호가 웃었다. 웃을 자리가 아닌데 또 났다. 옥주도 코로 웃었다. 그 코웃음이 사흘 만이었다.

"형 얘기도요."

"응."

"형이 그랬을 때 진짜 아팠던 건요. 형이 틀려서가 아니라 맞아서요. 저 진짜 잡혀 살아요. 근데 그게 좋아요. 그걸 형한테 설명을 못 하니까 웃어야 되고. 어제 사장님이 그렇게 때릴 때, 잠깐, 아 이게 형이 말한 그거구나, 그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로 잡혀 사는 거. 형이 말하는 뜻으로."

"……"

"그래서 옥주 씨라고 했어요. 그 순간엔 사장님이 아니라서."

옥주는 오래 말이 없었다. 골목에서 첫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미영 슈퍼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도 났다. 일곱 시가 다 됐다.

"내가 이십 년 한 게 저 간판 하나에 흔들리는 게 무서웠어."

옥주가 말했다.

"흔들리면 나 아니라고 생각했어. 나는 안 흔들리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흔들리더라. 흔들리니까 니가 옥주 씨라고 하고."

"흔들려도 사장님이에요."

성호가 말했다.

"흔들리는 사장님이요."

옥주가 성호를 봤다. 오래. 그리고 일어섰다. 고무통이 삐걱 소리를 냈다.

"내려가."

"네."

"앞치마 입고."

"지금 일곱 시인데요."

"이모 안 와. 주말만 오라고 했잖아."

성호는 계단을 내려갔다. 열아홉 개. 옥주가 뒤에서 따라왔다. 성호는 그 발소리를 들었다. 옥주 발소리는 발뒤꿈치가 먼저 닿는 소리였다. 이십 년 서 있은 사람 발소리.

홀에는 아침 빛이 들었다. 셔터 사이로. 셔터는 어젯밤 성호가 올려두지 않아서 반쯤 내려와 있었다. 그 틈으로 길이 보이고 빛이 들었다. 방석 두 장이 바닥에 그대로 있었다.

성호는 앞치마를 입었다. 옥주가 초록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달그락. 그 소리가 아침에 들리는 건 처음이었다.

"만 이천 원. 열두 대. 어제 건 무효."

"네."

"와."

성호가 엎드렸다. 옥주 무릎에. 옥주가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멈췄다. 손이 성호 엉덩이에 얹혔다. 치는 게 아니라 얹혔다. 어제 같은 자리를 여덟 번 아홉 번 맞은 데. 성호는 옥주 손가락이 그 자리를 살살 도는 걸 느꼈다. 멍이 든 걸 확인하는 손가락.

"여기 아프지."

"네."

"그럼 여기는 안 쳐."

첫 대가 떨어졌다. 다른 자리. 아래쪽. 소리가 아침 홀에 울렸다.

"하나."

"하나."

둘은 왼쪽 위. 셋은 오른쪽. 옥주가 멈췄다.

"맞아?"

"……네?"

"이거 맞아? 벌 맞아?"

성호는 옥주 몸빼에 얼굴을 묻었다. 꽃무늬. 어젯밤 젖었던 데가 말라 있었다.

"네. 맞아요."

넷, 다섯, 여섯. 골고루. 놓치는 데 없이. 멍든 데만 빼고. 옥주는 세 대마다 멈추고 물었다. 맞아? 성호는 세 번 다 네, 했다. 세 번째 네, 할 때는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일곱, 여덟, 아홉. 성호가 딱딱해졌다. 옥주 허벅지에 대고. 옥주가 그걸 느꼈다. 손이 멈췄다.

"섰네."

"……네."

"됐다."

옥주 목소리가 놓였다. 그 목소리에서 성호는 옥주가 밤새 이걸 걱정했다는 걸 알았다. 옥주가 담배를 사러 새벽 슈퍼 문을 두드린 이유가 저 간판이 아니었다는 걸.

열, 열하나, 열둘.

"끝."

옥주는 손을 안 뗐다. 늘 하던 대로. 뜨거운 손을 뜨거운 살에 얹었다. 그러다 그 손을 아래로 밀어 성호 것을 잡았다. 성호가 소리를 냈다.

"일어나."

성호가 일어섰다. 바지가 무릎에. 앞치마 앞이 불룩했다. 옥주는 그걸 보고 자기 몸빼를 내렸다. 발목까지. 다리를 벌렸다. 아침 빛이 옥주 허벅지 안쪽까지 들었다. 성호는 그 빛에서 옥주가 젖은 걸 봤다. 반짝였다.

"무릎."

성호가 무릎을 꿇었다. 아침 장판은 밤보다 더 찼다. 옥주가 성호 뒤통수를 잡아 끌어당겼다. 성호는 혀를 냈다. 옥주 냄새. 사흘 만이었다. 성호는 갈라진 데를 위에서 아래로 핥고 아래에서 위로 핥고 위쪽의 부푼 데를 입에 넣었다. 옥주 허벅지가 성호 귀를 눌러왔다. 옥주가 소리를 냈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밤 소리보다 조금 컸다.

"거기. 거기서. 안 가."

옥주가 갈 때 발가락으로 장판을 긁었다. 성호는 그 소리를 귀 옆에서 들었다. 그리고 옥주가 성호 머리를 놓았다.

"올라와."

성호가 방석 쪽으로 가려 하자 옥주가 성호 손목을 잡았다.

"거기 아니고. 여기."

옥주가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방석에 누웠다. 성호가 아니라 옥주가. 그리고 성호를 봤다.

"오늘은 니 얼굴 보고 싶어."

성호가 올라갔다. 옥주 위에. 옥주가 성호 것을 잡아 자기 입구에 댔다. 그리고 이번엔 아직이라고 안 했다.

"들어와."

성호가 들어갔다. 끝까지. 옥주가 숨을 뱉었다. 성호도. 옥주 손이 성호 얼굴을 잡았다. 두 손으로. 뺨을.

"움직여. 니 마음대로."

"……제 마음대로요?"

"오늘은."

성호는 움직였다. 처음엔 천천히. 옥주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몸에 박혀서, 안 시켜도 천천히 했다. 그러다 옥주 눈을 봤다. 옥주가 보고 있었다. 눈을 안 피하고. 성호는 빨라졌다. 옥주 손이 성호 뺨에서 목으로, 목에서 등으로 내려갔다. 옥주 다리가 성호 허리를 감았다. 방석이 밀렸다. 아침 빛이 셔터 틈으로 들어와 둘의 옆을 지나 벽에 닿았다.

"성호."

"네."

"어제 미안해."

두 번째였다. 성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옥주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루에 두 번 했다. 성호가 움직이면서, 옥주 안에서, 옥주 밑에서.

"……저도요."

"니가 뭐."

"옥주 씨라고 해서요."

옥주가 성호를 끌어내렸다. 입을 맞췄다. 그 채로 옥주가 갔다. 성호 밑에서. 옥주 안이 조여왔고 옥주 발뒤꿈치가 성호 등을 팠고 옥주 입이 성호 입을 물었다.

"싸."

옥주가 입을 떼고 말했다.

"나 보면서."

성호가 쌌다. 옥주를 보면서. 옥주 안에. 그리고 옥주 위로 무너졌다. 옥주 팔이 성호를 감았다. 굵은 팔뚝. 사흘 동안 안 감았던 팔뚝.

환풍기는 꺼져 있었다. 대신 골목 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 미영 슈퍼 라디오, 누가 파지 끄는 소리.

"화끈고기 어떻게 할래요."

성호가 옥주 어깨에 대고 물었다.

"어떻게 하긴. 고기로 하지."

"고기로요?"

"니가 굽는 고기. 소리 듣고 굽는 고기. 그거 냉동은 못 해."

성호가 고개를 들었다. 옥주가 성호를 보고 있었다.

"저 고기 굽는 거 사장님이 본 적 있어요? 사장님은 항상 카운터에 있잖아요."

"이십 년 카운터에 있으면 고기 소리 다 들려."

옥주가 성호 뒤통수를 툭 쳤다.

"니가 뒤집을 때 소리 나. 지지직 하다가 착, 하고. 어제는 그 소리가 안 났어. 김기사가 안 그랬으면 내가 말하려고 했어."

성호는 웃었다. 옥주 어깨에 얼굴을 묻고. 옥주도 코로 웃었다. 두 사람 밑에서 분홍 꽃 방석이 반쯤 장판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올라가서 씻어. 아홉 시에……"

옥주가 말을 멈췄다.

"아, 이모 안 오지."

"안 오죠."

둘은 방석을 그대로 두고 올라갔다. 열아홉 개 계단. 두 시간 뒤 미자 이모가 주말도 아닌 화요일에 앞치마를 들고 들어와서 그 방석 두 장을 볼 거라는 걸, 그때는 둘 다 몰랐다.

셔터 틈으로 빛이 들었다. 그 틈으로 길 건너 슈퍼에서 누가 이쪽을 봤다는 것도, 그때는 둘 다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