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 간판

간판이 올라간 건 월요일이었다. 길 건너, 이십 년 동안 세탁소였다가 두 달 비어 있던 자리.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 화끈고기.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삼겹살 일 인분 9,900원 오픈 이벤트.

박사장이 그날 저녁에 와서 훈수를 시작했다.

"사장님, 저기 본사가 어디냐면요. 강남이야. 매장이 전국에 백 개가 넘어. 고기는 냉동인데 양념을 잘해. 젊은 애들이 좋아하지. 사장님 여기는 뭐, 단골 장사니까 괜찮아. 괜찮은데, 요즘 젊은 애들은 단골이라는 게 없어요. 앱 보고 가지."

"박사장님 고기 식어요."

옥주가 말했다. 박사장은 고기를 먹었다. 그날 옥이네에는 손님이 네 테이블 들었다. 화끈고기 앞에는 줄이 섰다.

첫 주는 그럴 수 있었다. 오픈 이벤트니까. 둘째 주도 그럴 수 있었다. 이벤트가 연장됐으니까. 셋째 주에 옥주가 미자 이모한테 말했다.

"이모, 다음 주부터 주말만 나와."

"……그려."

미자 이모는 그려, 하고 앞치마를 벗었다. 성호는 그날 밤 정산에서 팔천 원을 틀렸다. 옥주는 앞치마 입고 와, 하지 않았다. 장부를 덮고 올라갔다. 성호는 혼자 홀에 남아 팔천 원이 어디 갔는지 찾았다. 못 찾았다.

성호는 생각을 했다. 이 집에서 생각하는 건 옥주 몫이었지만, 옥주가 안 하니까 성호가 했다.

"배달 앱 해봐요."

넷째 주 화요일, 브레이크 타임에 성호가 말했다. 옥주는 상추를 다듬고 있었다. 미자 이모 자리에서.

"우리 고기는 불판에서 먹는 고기야."

"그래도……"

"불판 떠난 삼겹살은 삼겹살 아니야. 식은 삼겹살을 누가 돈 내고 먹어."

"그럼 가격이라도……"

"안 내려."

"사장님."

"이십 년 안 내렸어. 올렸지, 내린 적은 없어. 내리면 그 다음엔 뭘 내려. 고기를 바꿔? 불판을 바꿔? 미자 이모를 내보내?"

옥주는 상추를 세게 털었다. 물이 성호 얼굴까지 튀었다. 옥주는 그걸 안 봤다. 아니, 봤는데 안 닦아줬다.

"저는 그냥……"

"니가 그냥 뭘 알아."

성호는 입을 다물었다. 옥주도 다물었다. 상추 다듬는 소리만 났다. 그날 저녁에는 손님이 세 테이블 들었다. 김기사가 왔다. 김기사는 매일 왔다. 화끈고기 줄이 길 건너에서 옥이네 유리창까지 비칠 때도 김기사는 여덟 시 정각에 왔다.

"성호 총각, 고기가 오늘 왜 이래."

"……죄송합니다."

"아니 맛있어. 근데 자네가 이상해. 소리 안 듣고 뒤집었지."

성호는 불판을 봤다. 맞았다. 소리를 안 들었다. 소리를 안 듣고 시간으로 뒤집었다. 십이 년 만에 처음이었다. 김기사는 그걸 알았다. 이십 년 단골은 그런 것까지 알았다.

그날 밤 정산에서 만 이천 원이 틀렸다.

옥주가 계산기를 세 번 두드렸다. 딱, 딱, 딱. 그리고 성호를 봤다.

"앞치마 입고 와."

성호가 갔다. 옥주가 초록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달그락. 성호가 엎드렸다. 옥주가 바지를 내렸다. 그것까진 평소 같았다.

첫 대가 떨어졌다.

셀 새가 없었다. 두 번째가 바로 왔다. 세 번째. 같은 자리에. 옥주는 같은 자리를 두 번 안 치는 사람이었다. 고기 뒤집는 것처럼 골고루 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같은 자리를 쳤다. 세 번, 네 번. 소리가 홀을 때렸다. 성호가 숨을 들이켰다.

"하나……"

옥주가 세지 않았다. 성호가 세려 했는데 옥주가 다음 걸 쳤다. 성호는 세는 걸 그만뒀다. 옥주 손이 무거웠다. 무거운 건 늘 무거웠다. 그런데 이건 다른 무거움이었다. 성호 엉덩이를 치는 게 아니었다. 길 건너 빨간 간판을 치고 있었다. 냉동 삼겹살을 치고, 9,900원을 치고, 강남 본사를 치고, 텅 빈 세 테이블을 치고 있었다. 성호가 그 사이에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성호는 딱딱해지지 않았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십 년 동안 옥주 무릎에서 딱딱해지지 않은 날은 없었다. 세 대를 맞아도, 열 대를 맞아도. 그런데 그날은 그냥 아팠다. 아프기만 했다. 벌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맞는 거였다.

"사장님."

옥주 손이 멎지 않았다.

"사장님."

여덟 번째였나 아홉 번째였나. 같은 자리. 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옥주 씨."

손이 멎었다.

성호는 옥주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십이 년 동안. 알바 때는 사장님, 결혼하고도 사장님, 방에서는 가끔 누나. 옥주 씨는 없었다. 그 이름이 홀에 떨어졌고, 옥주 손이 성호 엉덩이 위에서 멎었다. 뜨거운 살 위에.

"오늘은 아니에요."

성호가 말했다. 옥주 몸빼에 얼굴을 묻고. 꽃무늬가 젖었다. 성호 눈에서 나온 걸로. 아파서 나온 건지 다른 데서 나온 건지 성호도 몰랐다.

옥주가 일어섰다.

성호가 무릎에서 미끄러져 장판에 떨어졌다. 바지가 무릎에 걸린 채로. 옥주는 성호를 안 봤다. 카디건을 집었다. 주방 불을 껐다. 그리고 열아홉 개 계단을 올라갔다. 한 마디도 없이.

성호는 장판에 앉아 있었다. 엉덩이가 차가운 장판에 닿아 화끈거렸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바지를 올렸다. 방석 두 장을 끌어다 깔았다. 그 위에 누웠다. 낮에 김기사 궁둥이가 앉는 방석. 올라갈 수 없었다. 올라가면 옥주 옆에 눕는 거고, 옥주 옆에 누우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지, 왜 그랬냐고 해야 하는지. 성호는 남 기분 읽는 걸 서른 해 했는데 옥주 기분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읽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옥주가 다 말해줬으니까. 그런데 오늘 옥주는 아무 말도 안 했다.

환풍기가 돌았다. 성호는 천장을 봤다. 십 년 본 천장. 처음으로 질렸다.

아침 여섯 시에 성호는 눈을 떴다. 몸빼바지 끝이 보였다. 꽃무늬. 옥주가 홀에 서 있었다. 성호를 내려다보며. 카디건을 입고, 손에는 담배 한 개비. 십 년 전에 끊은 담배.

"……옥상."

옥주가 말했다. 그리고 갔다.

성호는 방석에서 일어났다. 엉덩이가 굳어 있었다. 걸으니까 살이 쓰라렸다. 성호는 그 쓰라림이 어젯밤 것인지 확인하듯 한 손을 뒤로 대봤다. 뜨거웠다. 아직.

아홉 시에 미자 이모가 왔다. 주말만 나오라고 했는데 화요일에 왔다. 앞치마를 입으면서 홀 바닥 방석 두 장을 봤다. 성호가 미처 못 치운 것.

"왜 여기서 잤댜. 부부 싸움 했어?"

"아니요. 정산이 안 맞아서요."

미자 이모가 앞치마 끈을 묶었다. 그리고 상추를 꺼냈다.

"그게 그 소리지."

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걸레를 들었다. 장판에 기름이 배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