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이 맞은 날

화요일은 원래 잘 되는 날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화요일은 이상하게 잘 됐다.

여섯 시에 박사장이 왔다. 골목 입구 부동산 사장. 부동산은 안 팔리고 훈수만 팔리는 사람이었다. 김치를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이 김치 배추가 올랐지? 사장님, 올해 배추는 강원도 거 쓰면 안 돼" 하는 걸로 시작해서, 불판 갈 때 "성호 씨, 불판은 두 번 뒤집기 전에 갈아야지" 했고, 성호는 "네" 하고 세 번 뒤집은 뒤에 갈았다. 박사장 고기는 세 번 뒤집어야 맛있었다. 박사장 본인은 몰랐다.

일곱 시에 미영이 왔다. 옆 슈퍼 사장. 옥주와 동갑. 자기 슈퍼 소주를 검은 봉지에 넣어 들고 와서 옥이네 불판에 고기를 구웠다. 옥주는 술 반입 안 된다고 이십 년째 말했고 미영은 이십 년째 못 들은 척했다. 성호가 보기에 그건 이미 반입이 아니라 전통이었다.

"옥주야, 성호 총각 오늘도 안 혼났어?"

"매일 혼나요."

성호가 대신 대답했다. 마흔둘인데 이 골목에서는 아직 총각이었다. 옥주 신랑이 됐을 때 서른이었고, 그때 총각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걸 아무도 안 고쳤다. 성호도 안 고쳤다. 총각이라고 불리는 게 싫지 않았다. 옥주네 총각. 그럴싸했다.

여덟 시 정각에 김기사가 왔다. 개인택시. 이십 년 단골. 삼겹살 이 인분에 소주 두 병, 하루도 안 틀렸다. 옥주는 김기사 얼굴 보기 전에 불판을 올렸다. 김기사가 앉으면 이미 고기가 지글거렸다.

"성호 총각, 자네가 굽는 고기가 왜 맛있는지 아나."

"몰라요."

"나도 몰라. 그러니까 자네가 구워."

성호는 웃으며 고기를 뒤집었다. 성호가 굽는 고기가 맛있는 건 사실이었다. 십이 년째 하루에 백 인분을 구우면 소리로 알았다. 고기가 자기 뒤집을 때를 말했다. 처음엔 지지직, 그러다 소리가 살짝 잦아들면서 기름이 튀는 박자가 바뀌는 순간. 그때였다. 눈으로 보면 늦고, 시간 재면 틀렸다. 소리였다. 성호는 그걸 옥주한테 배운 게 아니었다. 옥주는 고기를 굽지 않았다. 옥주는 썰고, 사고, 세고, 결정했다. 굽는 건 성호였다. 이 집에서 성호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거였다.

열 시 반에 마지막 손님이 갔다. 미자 이모가 앞치마를 벗고 "내일 봐" 하고 갔다. 성호는 대걸레를 들었다. 옥주는 장부를 폈다.

성호는 대걸레를 밀면서 카운터 쪽을 안 보는 척 봤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손님이 다 제때 계산했고, 카드 결제 오류도 없었고, 소주 병 수도 맞을 거고, 김기사는 딱 삼만 팔천 원을 냈다. 그러니까 오늘은.

성호는 대걸레를 좀 더 세게 밀었다.

사실 오늘 오후에 시도는 했다. 미영이 소주 봉지 들고 왔을 때 옥주 눈을 피해 천 원짜리 한 장을 왼쪽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잔돈 거슬러주고 남은 걸 금고에 안 넣고. 그러면 천 원이 빌 거고, 그러면.

"성호."

"네."

"니 왼쪽 주머니."

성호는 대걸레를 세웠다. 옥주는 장부를 안 보고 있었다. 성호를 보고 있었다.

"……."

"꺼내."

성호는 천 원짜리를 꺼냈다. 옥주가 손을 내밀었다. 성호가 갔다. 옥주가 그걸 받아 금고에 넣었다. 딸깍.

"맞았네."

옥주는 그렇게 말하고 장부를 덮었다. 딱 그 소리였다. 맞았네.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성호는 다시 대걸레를 잡았다. 밀었다. 세게. 장판 기름이 밀린 만큼 다시 나왔다.

"왜 그렇게 밀어. 장판 뚫리겄다."

"아닙니다."

"삐졌냐."

"아니요."

"맞아서 삐졌냐."

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우스운 대답이 됐다. 정산이 맞아서 삐졌다고. 마흔둘 먹은 남자가. 그런데 그게 맞았다. 하루 내내 오늘 밤을 생각했다. 고기 구우면서, 상추 씻으면서, 김기사 잔 채워주면서. 초록 의자 짧은 다리 소리를 생각했다. 그런데 계산이 맞았다.

"이리 와."

성호가 갔다. 옥주는 의자를 안 끌어왔다. 카운터 뒤에 그냥 앉아 있었다. 성호가 앞에 섰다.

"맞은 날은 상 있는 거 몰라? 십 년을 했는데."

"……알죄."

"그럼 말해."

"뭘요."

"뭘 받고 싶은지."

성호는 앞치마 끈을 만졌다. 이게 벌보다 어려운 거였다. 옥주는 알았다. 십 년을 했으면 옥주도 알았다. 성호한테 벌은 쉬웠다. 엎드리면 됐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됐다. 상은 안 그랬다. 상은 성호가 말을 해야 했다. 자기 입으로. 뭘 원하는지. 성호는 그걸 못 했다. 서른 넘어서까지 남 기분만 읽던 사람이 자기 기분을 말하는 건 대걸레로 장판 기름을 없애는 거랑 비슷했다. 밀면 밀리는 척은 하는데.

"때려 주세요."

"그건 벌이고."

"……"

"오늘은 상이니까 딴 걸 말해."

옥주는 기다렸다. 옥주는 기다리는 걸 잘했다. 이십 년을 손님 기다렸고 팔 년을 남편 기다렸고 십이 년을 성호 기다렸다. 카운터 위 형광등이 지지직거렸다.

"사장님 안에."

"응."

"들어가고 싶어요."

"응."

"……제가 위에서요."

옥주는 코로 웃지 않았다. 그냥 일어섰다. 카디건을 의자에 걸었다. 홀로 나와 방석 두 장을 손수 깔았다. 옥주가 방석을 깔아준 건 처음이었다. 늘 성호가 깔았다. 옥주가 그 위에 누웠다. 몸빼를 내리고, 티셔츠를 벗고, 브래지어를 벗고. 형광등 밑에 쉰둘의 몸이 누웠다. 뱃살이 옆으로 흘렀다. 젖가슴이 양쪽으로 퍼졌다. 옥주는 그걸 하나도 안 가렸다.

"올라와."

성호는 앞치마를 벗으려다 멈췄다.

"앞치마는요."

"벗어. 오늘은."

성호는 벗었다. 다 벗었다. 그리고 옥주 위에 올라갔다. 무릎을 옥주 허벅지 옆에 짚고 두 손을 옥주 어깨 옆에 짚었다. 옥주 얼굴이 밑에 있었다. 이 얼굴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건 일 년에 몇 번 없었다.

옥주가 손을 뻗어 성호 것을 잡았다. 벌써 딱딱했다. 옥주가 그걸 자기 입구에 갖다 댔다.

"아직."

성호는 멈췄다. 끝만 닿은 채로.

"아직 움직이지 마. 봐. 나 봐."

성호는 봤다. 옥주 눈이 성호를 보고 있었다. 옥주는 눈을 안 피하는 사람이었다. 손님이 고기 질 따질 때도, 건물주가 월세 올린다고 할 때도, 남편이 자기 위에 올라와 있을 때도.

"들어와. 천천히."

성호가 들어갔다. 천천히. 옥주 안은 뜨겁고 젖어 있었다. 반쯤 들어갔을 때 옥주가 말했다.

"멈춰."

성호는 멈췄다. 허벅지가 떨렸다. 옥주가 손을 성호 목 뒤로 올려 잡았다. 그리고 눌렀다. 성호 얼굴이 내려왔다. 옥주가 입을 맞췄다. 길게. 그러고 놓았다.

"끝까지."

성호가 끝까지 들어갔다. 옥주가 숨을 뱉었다. 성호도 뱉었다. 둘 다 잠깐 안 움직였다.

"이제 움직여. 천천히. 내가 빨리 하라고 할 때까지 천천히."

성호가 움직였다. 천천히. 나갔다 들어오고, 나갔다 들어오고. 옥주가 그걸 보고 있었다. 성호 얼굴을. 성호는 그 시선 밑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게 미칠 것 같았다. 빨리 하고 싶었다. 못 했다. 옥주가 아직이라고 했으니까.

"좋아. 그대로. 좋아."

옥주 다리가 성호 허리를 감았다. 발뒤꿈치가 성호 등에 닿았다. 옥주 안이 조여왔다. 성호는 이를 물었다.

"더 천천히."

"……사장님."

"더."

성호가 더 천천히 했다. 거의 안 움직이는 것처럼. 옥주가 성호 목 뒤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손톱이 파고들었다.

"지금."

성호가 움직였다. 빨리. 방석이 장판 위로 밀렸다. 옥주 젖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옥주가 소리를 냈다. 십이 년 전 소리가 아니라, 지금 소리. 낮고 짧게. 성호는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어서 더 세게 했다. 옥주 발뒤꿈치가 성호 등을 팠다. 옥주가 갔다. 몸이 굳고 눈이 감기고 손톱이 성호 목에 박혔다. 성호는 그걸 위에서 봤다. 옥주가 가는 걸 위에서 보는 건 일 년에 몇 번 없었다.

"싸."

옥주가 눈을 뜨고 말했다.

"안에."

성호가 쌌다. 옥주 안에서. 몸이 옥주 위로 무너졌다. 옥주가 성호 등을 두 손으로 감았다. 그 팔뚝이 성호를 감았다. 굵고 단단한 팔뚝. 이십 년 삼겹살을 썬 팔뚝.

한참 뒤에 옥주가 말했다.

"봐라. 말하면 되잖아."

"말하기 힘들어요."

"알아. 그래서 상이야."

성호는 옥주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옥주가 성호 뒤통수를 툭 쳤다.

"무거워."

"알아요."

"근데 안 일어나네."

"네."

옥주는 밀어내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 미영이 검은 봉지를 들고 와서 앉았다. 성호가 잔돈을 거슬러주고 돌아섰다. 왼쪽 앞치마 주머니에 손이 갔다.

"성호."

카운터에서 옥주가 장부도 안 보고 말했다.

"오른쪽 주머니."

성호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 금고에 넣었다. 미영이 그걸 보고 물었다.

"뭐야, 뭔데."

"밥값이요."

옥주가 코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