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틀린 날

"사장이랑 어떻게 눈이 맞았댜?"

미자 이모가 물었다. 오후 세 시, 브레이크 타임. 이모는 상추를 씻고 성호는 마늘을 깠다. 옥주는 은행에 갔다. 옥주가 없을 때 미자 이모는 궁금한 걸 물었다. 옥주가 있을 때는 안 물었다. 이모는 예순한 해를 눈치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충청도 사람이 서울에서 홀 서빙으로 십 년을 버티려면 그 정도 눈치는 기본이라고 했다.

"밥 먹다가요."

"밥 먹다가 뭐가 됐댜."

"밥 먹다가 밥값 계산을 틀렸죠."

미자 이모는 상추를 털었다. 못 알아들은 얼굴이었다. 성호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면 길고, 길어지면 이상해지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얘기는 옥주가 십일 년 전에 정해준 대답이 따로 있었다.

밥 먹다가 그렇게 됐다고 해.

그때 옥주가 그렇게 말했다. 성호는 그 뒤로 누가 물으면 그렇게만 말했다. 형이 물어도, 어머니가 물어도, 김기사 아저씨가 소주 석 잔 마시고 물어도. 밥 먹다가요. 다들 그 뒤를 자기 멋대로 상상했고, 상상한 게 뭐든 진짜보다는 평범했을 거다.

십이 년 전이었다. 성호는 서른, 옥주는 마흔.

성호는 옆 건물 이 층 미용실 인테리어 현장에 일용직으로 나왔다. 철거하고 목공하고 도배하는 데 삼 주 걸리는 현장이었다. 점심은 골목 안 삼겹살집에서 백반을 했다. 그때는 옥이네가 점심에 백반을 팔았다. 오천 원.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 반찬 네 가지, 그리고 밥은 남는 만큼.

"많이 먹어. 남는 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옥주는 성호 밥그릇에 밥을 더 퍼줬다. 안 달라고 해도 퍼줬다. 짧은 머리에 팔뚝이 굵은 여자였다. 마흔인 줄은 나중에 알았고, 처음엔 서른 대 후반인가 했다. 혼자 했다. 홀도 주방도 카운터도. 손님이 여덟 테이블 꽉 차도 혼자 했다. 성호는 밥 먹으면서 그걸 봤다. 저 사람이 뭘 하는데 저렇게 하나도 안 흔들리나.

현장이 끝났다. 다음 현장은 없었다. 성호는 그날도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일도 없는데 오천 원짜리 백반을 먹으러 가는 게 이상하다는 건 알았다. 옥주가 밥 퍼주면서 물었다.

"일 끝났어?"

"네."

"다음은."

"없어요."

"그럼 홀 좀 봐줄래. 일당은 현장만큼은 못 줘."

"네."

그래서 성호는 앞치마를 입었다. 그게 십이 년 전 봄이었다.

옥주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키는 사람이었다. 삼 번 테이블 물. 오 번 불판. 김치 리필. 저 손님 계산. 성호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편하다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편했다. 옥주는 잘못 시키는 법이 없었다. 삼 번 테이블 물 하면 삼 번 테이블에 진짜 물이 필요했다. 성호가 자기 눈으로 보기 전에 옥주가 먼저 봤다.

성호는 눈치 보며 자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결정을 안 하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눈치를 봤고, 네 살 위 형은 그 사이에서 성호한테 눈치 보는 법을 가르쳤다. 형 기분 좋을 때, 나쁠 때, 어머니가 울 때, 아버지가 술 마실 때. 성호는 서른이 되도록 남 기분을 먼저 읽고 자기 것은 나중에 읽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런데 옥주 옆에서는 읽을 게 없었다. 옥주 기분은 옥주가 다 말해줬다. 좋으면 좋다, 짜증나면 짜증난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읽을 필요가 없으니까 성호는 생전 처음으로 자기 손발만 신경 쓰면 됐다.

그게 편했다. 편해서 무서웠다.

여름이 끝나갈 때 옥주가 마감하고 말했다.

"너 나 좋아하냐."

"……네."

"나 마흔이다."

"네."

"이혼했고, 빚 갚은 지 삼 년 됐고, 애는 없어."

"네."

"그럼 우리 결혼하자. 연애는 시간 아까워."

성호는 웃음이 났다. 웃으면서 네, 했다. 옥주는 그 웃음을 보고 코로 한 번 웃었다. 그게 그 코웃음을 처음 본 날이었다.

그해 겨울, 결혼하고 두 달째. 옥주가 성호한테 정산을 시켰다. 처음이었다. 금고 열어주고 장부 펴주고 계산기 밀어주고, 자기는 초록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폈다. 그때는 옥주가 담배를 폈다. 성호는 손이 떨렸다. 마흔 먹은 여자가 팔 년을 혼자 지킨 금고를 서른 살짜리 남편한테 처음 열어준 거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성호는 알았다.

만 원이 빌었다.

세 번 다시 셌다. 만 원. 성호는 계산기를 내려놨다. 옥주는 담배를 껐다.

"옛날 같으면 이거 종아리 맞았어."

옥주가 말했다. 농담이었다. 성호도 알았다. 그런데 입에서 나온 건 이거였다.

"종아리는 흉 남아요. 다른 데 때려요."

홀이 조용해졌다. 옥주가 성호를 봤다. 한참. 성호는 자기가 뭘 말했는지 뒤늦게 들었다. 목 뒤가 뜨거워졌다.

"다른 데 어디."

"……"

"말해봐. 어디."

성호는 말을 못 했다. 옥주는 기다렸다. 그러다 기다리는 걸 그만두고 초록 의자를 홀 가운데로 끌어다 앉았다. 짧은 다리가 달그락, 했다. 그때 처음 들은 소리였다.

"그럼 내가 정할게. 이리 와."

성호는 갔다. 웃으면서 갔다. 웃는 게 안 웃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웃은 거였다. 옥주가 성호 손목을 잡아 끌었고, 성호는 균형을 잃고 옥주 무릎 위로 엎어졌다. 웃음이 아직 입에 남아 있었다.

첫 대에 웃음이 끊겼다.

바지 위였다. 소리도 별로 안 났다. 그런데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 옥주 손이 성호 엉덩이 위에 그냥 얹혀 있었다. 성호는 자기 심장이 옥주 허벅지에 대고 뛰는 게 느껴졌다. 옥주도 느꼈을 거다.

"……계속해도 돼?"

옥주가 물었다. 그 목소리가 아까랑 달랐다. 농담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네."

옥주가 바지를 내렸다. 팬티도. 성호는 얼굴을 옥주 몸빼에 묻었다. 그때도 몸빼였다. 회색이었다. 두 번째 대가 맨살에 떨어졌다. 소리가 났다. 세 번째, 네 번째. 옥주는 세지 않았다. 성호도 세지 않았다. 세지 않아서 몇 대인지 몰랐다. 엉덩이가 화끈하고, 눈이 젖고, 그리고 딱딱해졌다. 옥주 허벅지에 대고. 숨길 수가 없었다.

옥주 손이 멎었다.

"너 이거 좋아하네."

"……네. 죄송해요."

"죄송은 왜."

"……"

"나도 좋은데."

성호가 고개를 들었다. 옥주 얼굴이 붉었다. 담배 때문이 아니었다. 옥주는 성호를 자기 무릎에서 일으켜 세우고, 바지를 다시 올려주지 않고, 그 채로 손목을 잡고 이 층으로 데려갔다. 계단이 열아홉 개였다. 성호는 바지를 무릎에 걸치고 그 열아홉 개를 올라갔다.

옥탑방이었다. 옥주가 팔 년을 혼자 잔 방. 이불이 깔려 있었다.

"누워."

성호는 누웠다. 옥주는 성호 옷을 다 벗겼다. 앞치마까지. 그리고 자기 것을 벗었다. 마흔의 몸이었다. 팔뚝이 굵고 배가 나오고 허벅지에 힘줄이 섰다. 젖가슴은 무거웠다. 성호는 손을 뻗었다. 옥주가 그 손을 잡아 이불에 눌렀다.

"가만히 있어. 손도 움직이지 마."

"네."

"내가 하라고 할 때까지."

옥주는 성호 위에 올라앉았다. 성호 것을 잡고, 자기 입구에 대고, 천천히 앉았다. 뜨겁고 좁았다. 다 들어가자 옥주가 숨을 뱉었다. 성호는 손을 움직이고 싶었다. 옥주 허리를 잡고 싶었다. 못 잡았다. 잡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 못 잡는 게, 못 잡고 이불만 움켜쥐는 게, 서른 평생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느낌이었다.

편했다.

누가 정해줬다. 뭘 하고 뭘 안 할지. 그것도 자기 몸에 대해서. 성호는 눈치를 볼 게 없었다. 옥주가 좋은지 안 좋은지 읽을 필요가 없었다. 옥주가 다 말했다.

"좋아. 그대로. 움직이지 마."

옥주가 움직였다. 앞뒤로, 위아래로. 젖가슴이 성호 얼굴 위에서 흔들렸다. 옥주가 성호 손목을 놓고 그 손을 자기 젖가슴에 올려줬다.

"이제 잡아."

성호는 잡았다. 옥주가 소리를 냈다. 그때는 소리를 냈다. 십이 년 전 옥주는 소리를 내는 여자였다. 옥주 안이 조여왔고, 옥주가 성호 가슴에 손톱을 세우고, 성호는 참았다. 참으라는 말은 없었지만 참았다. 옥주가 먼저 가는 걸 보고 싶어서.

옥주가 갔다. 몸이 굳고 고개가 젖혀지고 성호 위에 무너졌다. 그러고 귀에 대고 말했다.

"싸."

성호는 쌌다. 옥주 안에서, 옥주 무게 밑에서. 몸이 다 풀렸다.

한참 뒤 옥주가 옆으로 굴러 내려왔다. 옥탑방 천장은 낮았다. 옥주가 담배를 찾아 불을 붙였다.

"이제부터 정산은 니가 해."

"……네?"

"틀리면 맞는 거고."

"네."

"근데 성호."

"네."

"이건 우리 둘만 아는 거야."

"네."

"누가 물으면 밥 먹다가 그렇게 됐다고 해."

성호는 웃었다. 옥주도 코로 웃었다. 그러고 둘은 잠들었다.

"하이고, 밥이 좋긴 좋아."

미자 이모가 상추 물을 털며 말했다. 성호는 마늘 껍질을 봉지에 모았다.

"그니까 이모도 밥 잘 챙겨 드세요."

"내가 밥 먹다가 눈 맞을 데가 어디 있댜. 우리 집 영감이랑 마주 앉으면 눈이 마주쳐도 안 맞아."

성호가 웃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옥주가 들어왔다. 은행 봉투를 들고. 성호와 미자 이모를 한 번 보고, 다시 봤다.

"뭔 얘기 했어."

"밥 얘기요."

옥주가 코로 웃었다. 그리고 카운터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