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란의 부엌

정란의 집은 오래된 아파트 십일 층이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정란이 아니라 그녀의 파트너 민석이었다. 오십 대 초반, 안경, 앞치마. 그는 두 사람을 부엌으로 데려가 식탁에 앉히고 물을 올렸다.

"란이 곧 와요. 차 뭐로 할래요."

"아무거나요."

"그런 거 없어요. 아무거나는 없어. 보리차, 녹차, 캐모마일."

"보리차."

"둘 다?"

"둘 다요."

정란은 오 분 뒤에 들어왔다. 머리가 짧고 어깨가 넓은 여자였다. 그녀는 태민과 수아를 한 번 보고, 민석이 내려놓은 보리차를 한 번 보고, 앉았다.

"보여줘."

수아가 티셔츠를 올렸다. 정란은 일어나서 가까이 왔다. 손가락으로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보았다. 오래. 그리고 앉았다.

"바늘 몇 개."

"다섯."

"뼈 위네. 시그널 휩?"

"네."

"감겼구나. 당기다가?"

태민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그를 봤다.

"팔 뒤로 올라간 다음에 멈추려고 했지."

"…네."

"그 전에 반 발짝 나갔지. 아니면 그 사람이 반 발짝 움직였는데 안 세웠지."

"제가 나갔어요."

정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도 실망하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백 번쯤 들은 이야기를 백한 번째 듣는 사람의 얼굴.

"민석."

민석이 싱크대에서 돌아섰다. 그녀가 손짓을 하자 그가 왼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네 번째. 두 번째 마디가 조금 바깥으로 꺾여 있었다. 아주 조금. 모르고 보면 모를 정도.

"이천구년." 정란이 말했다. "서스펜션. 손목 커프 버클을 내가 두 번 확인했어. 두 번. 세 번째는 안 했어. 그날 두 번이면 충분했어. 그 전 백 번 동안 두 번이면 충분했으니까. 근데 그 커프가 그날 처음으로 늘어난 날이었고, 나는 그걸 몰랐고, 이 사람 몸이 돌아갈 때 손이 빠지면서 손가락이 로프에 걸렸어. 소리가 났어. 아직 그 소리 기억해."

민석이 손을 거두고 다시 싱크대로 돌아갔다. 아무 말 없이. 그것이 그가 이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말해주었다.

"그 사람 아직 내 옆에서 자." 정란이 말했다. "십칠 년째. 그리고 나 아직 로프 잡아. 그러니까 두 사람이 지금 앉아 있는 그 자리에 나도 앉아 있었어. 그걸 먼저 알려주고 싶었어. 두 사람 특별하지 않아. 그게 나쁜 소식 같지? 좋은 소식이야."

그녀는 보리차를 마셨다.

"이제 태민이 얘기해. 사고 말고. 사고는 알겠어. 그 뒤에 뭐 했는지."

태민은 말했다. 방문. 테이프. 채찍. 벽. 유리. 머리카락. 정란은 끊지 않았다. 그가 다 말하고 나자 그녀는 한참 있다가 물었다.

"그거 하면서 기분 어땠어."

"…나빴어요."

"아니. 정확하게. 나쁜 거 말고. 나쁜 거 안에 뭐가 있었어."

그는 생각했다.

"조용했어요."

"그렇지." 정란이 말했다. "그게 톱 드롭이야. 이름이 있어. 너만 겪는 게 아니야. 사고 뒤에 톱은 아래로 내려가. 거기가 조용해서. 거기서는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알거든. 자기를 벌주면 돼. 그건 쉬워. 어렵지 않아. 어려운 건 그 사람 앞에 서서 '내가 뭘 해야 해?' 하고 물어보는 거야. 그건 답을 모르니까. 너는 한 달 반 동안 쉬운 걸 했어."

태민은 반박하지 않았다.

"수아."

"네."

"너는 뭐 했어."

수아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기다렸어요."

"뭘."

"저 사람이 돌아오기를."

"어디서."

"…아래에서."

"그래. 그것도 알아. 바텀은 그렇게 돼. 사고 나면 둘로 갈라져. 한 사람은 가해자, 한 사람은 피해자. 그 두 자리는 각자 할 일이 있어. 가해자는 벌 받고 피해자는 기다려. 그리고 두 사람 다 외로워. 왜냐면 그 두 자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거든. 같이 하는 게 없어."

그녀는 식탁 위에 손가락으로 선을 하나 그렸다.

"내가 하나만 물을게. 그날 밤에 두 사람, 제대로 한 게 있어?"

두 사람은 서로를 봤다.

"그 사람이 왼손 폈어요." 태민이 말했다. "그리고 제가 빨강 했어요. 그리고… 지압 삼 분. 병원. 의사한테 사실대로."

"그거 다 제대로 한 거야." 정란이 말했다. "그거 알아? 이 바닥에서 사고 나고 그 다섯 개 다 제대로 하는 사람 많지 않아. 병원 안 가는 사람도 있고, 가서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고, 빨강 안 하고 계속하는 사람도 있어. 두 사람은 그날 밤에 세 개 잘못하고 다섯 개 잘했어. 그리고 한 달 반 동안 세 개만 세고 있었어."

태민이 뭔가 말하려 했다. 정란이 손을 들었다.

"사과는 그만해. 충분히 했어. 수아한테 물어봐. 충분했어?"

"충분했어요."

"그럼 이제 사과 말고 다른 걸 해. 사과는 네가 하고 끝나는 거야. 다른 건 물어봐야 하는 거야. 그게 뭐냐면."

그녀는 일어나서 서랍에서 종이 두 장과 펜 두 개를 꺼내 식탁에 놓았다.

"처음부터 다시 써. 전부."

"전부요?"

"손 잡아도 되는지부터. 웃지 마. 진짜야. 두 사람 지금 손 잡을 때 물어보고 잡아? 아니지. 삼 년 됐으니까. 근데 삼 년 동안 쌓은 게 그날 밤에 한 번에 갔어. 그럼 다시 쌓아야 해. 백지에서. 돌아가는 게 아니야. 돌아갈 데가 없어. 그 자리는 없어졌어. 새로 지어."

"…어디까지요."

"끝까지. 채찍이 다시 나오는 데까지. 근데 그건 목록 맨 끝에 있어. 지금은 보지도 마. 지금은 첫 줄만 봐. 손 잡아도 돼?"

수아가 종이를 당겼다.

"몇 개 더." 정란이 말했다. "태민. 너 세이프워드 있어?"

"…수아한테 있어요."

"너한테 물었어."

"없어요."

"그게 문제야. 톱은 안 멈춰도 된다고 생각하지. 톱이 멈추는 건 바텀이 시켜서라고. 아니야. 너도 노랑이 필요해. 그날 밤에 네가 팔을 올리면서 뭘 느꼈는지 기억해? 아마 '이상하다'였을 거야. 뭔가 안 맞는다. 그때 네가 노랑을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없었으니까 못 했어. 만들어."

태민은 종이에 뭔가를 썼다.

"그리고 손." 정란이 말했다. "그건 수아하고 상관없어. 그건 너 혼자 하는 거야. 채찍을 다시 잡으려면 수아 등이 아니라 쿠션 앞에서 먼저 잡아. 내가 쓰는 연습실 있어. 오백 번. 로그 써. 날짜, 개수, 빗나간 거. 오백 번 정확하게 던질 때까지 수아 등은 생각도 하지 마. 손은 손대로 고쳐. 관계는 관계대로 고쳐. 그거 두 개 다른 일이야. 섞으면 둘 다 안 돼."

"…네."

"수아."

"네."

"너는 기다리는 사람 아니야. 협상 테이블에 앉는 사람이야. 네 흉터가 그 테이블 위에 있어야 해. 그거 어디까지 만지게 할지, 어디까지 보게 할지, 채찍이 다시 나오면 그 근처 어디까지 오게 할지. 그건 저 사람이 정하는 거 아니야. 네가 정해. 그리고 저 사람이 너 대신 정하려 하면 화내. 오늘처럼."

수아가 웃었다. 처음이었다. 이 부엌에서.

"마지막." 정란은 보리차를 다 마셨다. "채찍 부러뜨린 거."

태민이 굳었다.

"잘 했어."

"…네?"

"그게 물건이야. 물건은 다시 사. 나도 그 커프 태웠어. 베란다에서. 민석이 말리는데도. 그건 아무래도 좋아. 그거 부러뜨려서 뭐가 나빴는지 알아? 물어보지 않은 거. 다음에 뭘 부러뜨리든 물어보고 부러뜨려. 그게 전부야."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종이 두 장이 수아의 무릎 위에 있었다. 아직 한 줄밖에 적혀 있지 않은.

집에 들어와서 그들은 침대에 누웠다. 태민은 벽을 보지 않았다. 천장도 보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누워 수아를 봤다. 수아도 옆으로 누워 그를 봤다. 한 달 반 만에 처음으로 두 사람의 얼굴이 마주 보고 있었다. 삼십 센티미터.

"손 잡아도 돼?" 그가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기 전에 조금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응."

그가 손을 뻗었다. 그녀가 잡았다. 그것이 첫 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