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 있는 하루
아침 일곱 시. 지수는 침대 끝에 앉아서 열쇠를 돌렸다. 딸깍.
"자기야. 조건 다시 말해."
민규는 발가벗은 채로 지수 앞에 서 있었다. 한 달 넘게 잠겨 있던 것이 풀려서 아침 공기에 닿았다. 늘 그랬듯 즉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지수는 그걸 봤다. 이제는 그 반응을 보는 게 아침 커피처럼 익숙했다.
"만지지 않는다." 민규가 말했다. "화장실에서도 최소한만. 검진 끝나면 바로 집에 온다. 집에 오면 자기가 잠근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 전부 보고한다."
"잘했어."
지수는 케이지를 침대 옆 협탁에 놓았다. 링도. 그리고 남편이 브리프를 입는 걸 봤다. 한 달 만에 그 안에 스테인리스가 없는 채로 입는 브리프. 그가 앞을 내려다봤다.
"이상해."
"뭐가."
"너무 가벼워. 뭐 빠뜨린 것 같아."
지수는 웃었다. 그리고 그의 슬랙스 지퍼를 올려주고, 벨트를 채워주고, 넥타이를 매줬다. 마지막으로 그의 다리 사이를 한 번 손바닥으로 눌렀다. 옷 위로. 그가 숨을 들이켰다.
"이거 오늘 하루 자기 거야." 지수가 말했다. "근데 내 거기도 해."
"……알아."
"잘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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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가 나가고 지수는 출근 준비를 하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열쇠는 목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열쇠가 지금 아무것도 잠그고 있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지수가 이 열쇠를 만질 때마다 그 반대편에 남편의 몸이 있었다. 지금은 없었다. 그냥 열쇠였다.
지수는 회사에서 그 사실을 계속 의식했다. 회의 중에 열쇠를 만지다가 손을 멈췄다. 뭘 만지는 건지 모르겠어서.
점심에 카톡이 왔다.
[민규] 소변 검사 끝
[민규] 서서 했어
[민규] 한 달 만에
[지수] 어땠어
[민규] 감동적이었어
[지수] ㅋㅋㅋㅋㅋ
[민규] 진짜야 화장실에서 거의 울었어
[민규] 옆에 아저씨가 이상하게 봤어
[지수] 다음은
[민규] 복부 초음파
[지수] 바지 내리는 거
[민규] 응
[민규] 이거 하려고 자기가 열어준 건데
[민규] 지금 좀 후회돼
[지수] 왜
[민규] 잠겨 있는 채로 의사한테 보이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아서
[지수] 미쳤어?
[민규] 그냥 그런 기분이야
[민규] 이따 보고할게
지수는 폰을 내려놓고 오래 생각했다. 잠겨 있는 채로 의사한테 보이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지수는 알았다. 그는 이제 그게 없는 몸이 낯설어진 거다. 한 달 만에.
지수는 그게 조금 무섭고 많이 좋았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그렇게 말한 밤 이후로 지수는 이 감정을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조금 무섭고 많이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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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 카톡.
[민규] 자기야
[민규] 문제 생겼어
[지수] 뭐
[민규] 검진 끝나고 회사 들어왔는데
[민규] 김 대리가 자기 목걸이 얘기해
[지수] 김 대리가 내 목걸이를 어떻게 알아
[민규] 지난주 자기가 나 데리러 왔을 때 봤대
[민규] 열쇠 목걸이 예쁘다고
[민규] 어디서 샀냐고 여자친구 사주고 싶다고
[지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규] 웃지 마
[민규] 내가 뭐라고 해
[지수] 남편 마음의 열쇠라고 해
[민규] 자기야
[지수] 아니면 일기장 열쇠
[민규] 그거 우리 엄마랑 자기 아빠한테 이미 썼어
[지수] 그럼 진실을 말해
[민규] ……
[지수] 농담이야
[지수] "온라인에서 샀어" 하고 끝내
[민규] 알았어
[민규] 근데 자기야
[민규] 김 대리가 그 얘기 하는 동안
[민규] 나 안에서 반응했어
[민규] 지금 잠긴 게 아니라서
[민규] 사무실에서 이거 처음이야
[지수] 화장실 가
[민규] 갔어
[민규] 안 만졌어
[민규] 찬물로 손만 씻었어
[지수] 잘했어
[지수] 집에서 봐
지수는 그 대화를 끝내고 화장실에 갔다. 회사 화장실. 문을 잠그고 변기 뚜껑 위에 앉았다. 남편이 사무실 화장실에서 발기한 채로 찬물에 손을 씻으면서 자기한테 보고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수는 스커트 속으로 손을 넣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이건 처음이었다. 팬티가 젖어 있었다. 지수는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면서 남편을 생각했다. 풀려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남편. 만질 수 있는데 안 만지는 남편. 그가 지수한테 뭘 하는지 지수가 뭘 하는지 다 보고하는 남편.
지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손등을 물었다. 왔다. 회사 화장실에서. 오후 세 시 이십 분에.
지수는 손을 씻고 거울을 봤다. 얼굴이 붉었다. 목에 열쇠가 걸려 있었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잠그고 있지 않은 열쇠.
"자기야." 지수가 거울 속의 자기에게 말했다. "너 진짜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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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일곱 시. 민규가 들어왔다.
지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가 구두를 벗고, 가방을 놓고, 넥타이를 풀지도 않은 채 지수 앞으로 왔다. 그리고 소파 앞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지수는 놀랐다. 이건 규칙에 없었다. 지수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보고할게." 그가 말했다.
"……해."
"일곱 시 이십 분. 지하철에서 앉았는데 이상했어. 케이지 없으니까 다리 벌리고 앉게 되더라. 한 달 동안 안 벌렸거든. 여덟 시 사십 분. 검진센터. 소변 검사. 서서 했어. 말했지. 아홉 시 삼십 분. 초음파. 바지 내리고 누웠는데 의사가 젤 바르는데……." 그가 잠깐 멈췄다. "반응했어. 조금. 자기 생각나서. 자기가 여기 있으면 이걸 보면서 웃겠다고. 의사는 못 봤어. 아니면 못 본 척했어."
지수는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그가 이걸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회계사가 결산 보고를 하는 것처럼.
"열두 시. 점심. 부장님이 허리는 괜찮냐고 물었어. 괜찮다고 했어. 진짜 오늘 하루는 괜찮았어. 한 달 만에 의자에서 안 뒤척였어. 그런데 그게……." 그가 다시 멈췄다. "이상했어. 편한데 이상했어. 자기가 안 느껴져서."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 시. 김 대리. 말했지. 화장실. 안 만졌어. 손만 씻었어. 그리고 다섯 시 반. 퇴근. 지하철에서 자기 생각했어. 집에 가면 자기가 잠글 거라고. 그 생각 하니까……." 그가 자기 다리 사이를 내려다봤다. 슬랙스 앞이 팽팽했다. "지하철에서 이렇게 됐어. 서서 왔어. 가방으로 가리고."
"……끝?"
"끝." 그가 지수를 올려다봤다. "하루 종일 안 만졌어."
지수는 남편의 얼굴을 봤다. 무릎을 꿇고 지수를 올려다보는 얼굴. 하루 종일 풀려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이 원하는 건 칭찬이 아니었다. 지수는 그걸 알았다. 그가 원하는 건 열쇠였다.
"잘했어." 지수가 말했다.
"고마워."
"근데 아직 안 잠글 거야."
그의 얼굴이 움직였다.
"오늘 하루 풀려 있었잖아. 그럼 오늘 확인은 좀 길게 해야지."
지수는 그의 넥타이를 잡고 끌어당겼다. 그가 무릎으로 다가왔다. 지수는 그의 슬랙스 벨트를 풀었다. 지퍼를 내렸다. 브리프 위로 이미 젖은 자국이 있었다. 지수는 브리프를 내렸다. 한 달 넘게 잠겨 있던 그것이 하루 종일 풀려 있다가 지수 앞에서 완전히 서 있었다. 링 자국이 뿌리에 옅게 남아 있었다.
지수는 소파에서 내려와 남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이 같은 높이가 됐다. 지수는 그를 손으로 감쌌다.
"오늘 하루 종일 이거 이렇게 있었어?"
"……거의."
"만지고 싶었어?"
"미칠 것 같았어."
"근데 안 만졌어."
"자기가 안 만지라고 했으니까."
지수는 그 말에 몸을 숙여 그를 입에 넣었다. 깊게. 그가 신음하면서 지수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지수는 오래 했다. 그가 원하는 속도가 아니라 지수가 원하는 속도로. 그가 가까워지면 멈추고, 그가 가라앉으면 다시 시작하고. 세 번. 네 번. 그의 다리가 떨렸다. 다섯 번째에 그가 지수의 이름을 불렀다.
"지수야, 지수야, 제발……."
"뭐."
"가게 해줘. 오늘. 하루 종일 참았어."
"참았지."
"제발."
지수는 그를 입에서 빼고 얼굴을 들었다. 그의 것이 지수의 입술 앞에서 떨었다. 지수는 그걸 봤다. 그리고 남편의 눈을 봤다.
"안 돼."
"……."
"오늘은 자기 풀려 있는 날이었어. 자기가 이걸 스스로 지켰어. 그러니까 이건 자기가 만든 거야. 이 참는 거.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지수가 손으로 그를 쥐었다. 아주 세게. "그걸 내가 오늘 밤에 다 풀어버리면 아깝잖아."
민규는 지수를 봤다. 배신감과 흥분이 섞인 그 얼굴. 지수가 사랑하는 그 얼굴. 그런데 오늘은 그 얼굴에 다른 게 하나 더 있었다. 이해였다. 그는 이해했다.
"……알았어."
"진짜?"
"응. 자기 말이 맞아."
지수는 남편이 이 말을 하는 순간 뭔가가 바뀌는 걸 느꼈다. 이제 이 사람은 지수가 안 된다고 하는 걸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 안 된다는 게 왜 좋은지 알고 있었다.
지수는 협탁에서 케이지를 가져왔다. 그가 식기를 기다렸다. 이십 분. 그 사이에 지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자기 스커트 속에 손을 넣었다. 그가 봤다. 지수는 왔다. 그 앞에서, 그를 보면서, 그의 것이 다시 커지는 걸 보면서.
"자기야, 그러면 안 식잖아……."
"알아. 그래서 하는 거야."
삼십 분이 걸렸다. 그리고 지수는 링을 끼웠다. 케이지를 씌웠다. 열쇠를 넣고—
"자기야." 민규가 말했다.
"응."
"잠가 줘."
지수는 열쇠를 돌렸다. 딸깍.
민규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안도. 지수는 그 소리를 들었다. 한 달 넘게 들어온 그의 소리 중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잠기는 게 안도인 소리.
"어때?"
"……돌아온 것 같아."
지수는 남편을 안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둘 다. 그의 다리 사이에서 차가운 스테인리스가 지수의 허벅지에 닿았다.
"자기야."
"응."
"오늘 알았어. 이거 자기 벌칙 아니고 내 선물도 아니야."
"그럼 뭐야."
지수는 그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우리 거야."
민규는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수의 목에 걸린 열쇠를 손으로 감쌌다.
"D+35." 그가 말했다.
"응."
"계속 세도 돼?"
"세. 근데 자기야, 그 숫자 어디까지 가는지 나 이제 정했어."
민규가 고개를 들었다.
"백일." 지수가 말했다. "결혼 백일."
민규의 눈이 커졌다. 그가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게 보였다. 회계사의 뇌. 결혼식 날짜. 오늘. 남은 날.
"……오십 일."
"응."
"오십 일 더."
"응."
민규는 지수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지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았다. 조금 무섭고 많이 좋은 것.
"백일에 뭐 할 거야." 그가 물었다.
"자기가 상상하는 거 전부."
"전부?"
"전부. 그날 하루 종일."
민규는 지수의 열쇠를 손에 쥔 채로 바닥에 누웠다. 지수도 옆에 누웠다. 두 사람은 거실 바닥에서 천장을 봤다.
"오십 일." 그가 말했다.
"응."
"기다릴 수 있어."
"알아. 자기 기다리는 거 잘하잖아."
"자기가 가르쳐줬어."
지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오십 일 후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오십 일 동안 남편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했다. 목록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