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가 없어
"자기야."
지수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민규는 욕실에서 면도를 하다가 거울 속으로 아내를 봤다. 지수는 침실 문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으로 자기 목을 잡고.
"왜."
"열쇠가 없어."
민규는 면도기를 내려놓았다.
"뭐?"
"열쇠. 목걸이. 없어." 지수가 손을 내렸다. 목에 아무것도 없었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걸려 있던 은색 체인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없어."
"……어젯밤엔 있었잖아."
"있었지. 자기 확인할 때 봤잖아."
"그럼 침대에……."
"봤어. 없어. 이불도 다 뒤졌어."
두 사람은 삼 초 동안 서로를 봤다. 그리고 민규가 아주 천천히 자기 다리 사이를 내려다봤다.
"자기야."
"응."
"나 내일 건강검진이야."
지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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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지수는 회사에 반차를 냈다. 민규는 연차를 냈다. 두 사람은 침대를 벽에서 떼어냈다. 매트리스를 뒤집었다. 침대 프레임 밑을 손전등으로 비췄다. 이불을 털었다. 베개 커버를 벗겼다. 침대 밑에서 나온 건 지수의 머리끈 세 개,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 그리고 언제 떨어졌는지 모르는 마른 과자 부스러기였다.
"체인이 끊어진 거야?"
"모르겠어. 끊어졌으면 체인도 있어야 하는데 체인도 없어."
"그럼 잠결에 벗었나?"
"내가 그걸 왜 벗어."
"자기 잠결에 이상한 거 많이 해."
"뭘 했는데."
"지난주에 내 코 잡고 '이거 뭐야' 그랬어."
지수는 잠시 그 사실을 소화했고, 그 뒤에 침실 서랍을 전부 열었다. 브래지어 밑에서 규칙 종이가 나왔다. 열쇠는 없었다.
오전 열한 시. 두 사람은 거실 바닥에 앉아서 서로를 봤다. 집 안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뒤집혀 있었다.
"자기야." 민규가 말했다. "이거 진짜 웃긴 거 알아?"
"어디가 웃겨."
"후기에 있었잖아. '아내가 키를 잃어버려서 절단기 샀습니다.' 별 셋."
지수는 남편을 봤다. 그리고 웃었다. 웃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었다. 민규도 웃었다. 두 사람은 뒤집힌 거실에서 오 분 동안 웃었다.
"안 돼." 지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절단기는 안 돼. 이거 자물쇠 스테인리스야. 자기 그걸 자기 몸 옆에서 절단할 수 있어?"
"……못 해."
"그러니까 찾아야 돼."
"내일 오전 아홉 시야. 소변 검사 있어."
"알아."
"소변 검사는 그냥 컵에 하면 되니까 괜찮은데, 문제는……." 민규가 목을 쓸었다. "복부 초음파. 바지 내려."
지수는 남편이 검진센터 침대에 누워서 바지를 내리고, 의사가 초음파 젤을 배에 바르다가 스테인리스 새장을 발견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 의사가 어떤 얼굴을 할지. 그 의사가 뭐라고 할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초음파를 계속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찾자." 지수가 일어났다. "여덟 시간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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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세탁기.
"어제 이불 빨래 했잖아."
"했지. 그런데 목걸이는 어젯밤에 있었잖아."
"그러니까 오늘 아침 것. 자기 아침에 세탁기 돌렸어?"
지수가 얼어붙었다. 돌렸다. 잠옷을. 아침에 일어나서 목걸이가 없는 걸 발견하기 전에, 습관적으로 어제 입은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잠옷 상의 주머니. 지수는 그 주머니에 손을 넣는 습관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세탁기 앞으로 달려갔다. 지수가 세탁기 문을 열고 축축한 잠옷을 꺼냈다. 주머니. 없다. 다른 주머니. 없다.
"배수 필터." 민규가 말했다.
"뭐?"
"세탁기 밑에. 배수 필터. 작은 것들 거기 걸려."
"자기 그런 거 어떻게 알아."
"우리 집 세탁기 설명서 다 읽었어."
지수는 이 남자가 세탁기 설명서를 다 읽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지금 정조대를 찬 채로 세탁기 밑을 드라이버로 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감동적이었다. 필터에서 나온 건 머리카락 뭉치, 동전 두 개, 그리고 지수가 기억도 못 하는 단추 하나였다. 열쇠는 없었다.
"없어."
"없네."
두 사람은 젖은 세탁실 바닥에 앉았다. 오후 두 시 사십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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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지수의 아버지.
"아빠, 나 질문 하나만."
"뭔데."
"작은 자물쇠 있잖아. 열쇠가 없으면 어떻게 열어?"
지수의 아버지는 삼십 년 동안 철물점을 했다. 지수는 열쇠 복사기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아버지의 손은 항상 기름 냄새가 났고, 지수가 첫 자전거 자물쇠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 아버지는 삼 초 만에 그걸 열었다.
"무슨 자물쇠인데."
"작은 거. 일기장 자물쇠 정도."
"일기장 자물쇠면 그냥 부수면 되지."
"부수면 안 돼. 소중한 거야."
"그럼 열쇠 종류가 뭐야. 핀 텀블러야?"
"……몰라."
"사진 보내봐."
지수는 폰을 든 채로 얼어붙었다. 남편의 다리 사이를 아버지에게 사진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옆에서 민규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빠, 그게 지금 사진이 좀 곤란해."
"곤란한 자물쇠가 어디 있어."
"……있어."
침묵. 아버지의 침묵은 길었다. 지수는 그 침묵 속에서 아버지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열쇠 하나 남은 거 없어? 원래 두 개 오잖아, 그런 거."
지수는 폰을 귀에서 뗐다. 민규를 봤다. 민규도 지수를 봤다.
두 개.
"자기야." 지수가 말했다. "신혼여행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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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이 준 상자. 싼 플라스틱 정조대가 들어 있던 상자. 그 상자에 리본으로 묶인 열쇠가 두 개 있었다. 그건 그 싼 것의 열쇠였다. 그런데 제대로 된 걸 샀을 때, 그 택배 상자에도 열쇠가 두 개 왔다. 지수는 하나를 목걸이에 걸었고, 나머지 하나는—
"어디 뒀어."
"기억 안 나. 자기가 정리했잖아. 택배 상자."
"내가 정리했지. 그런데 열쇠는 자기가 가져갔잖아. 자기가 '이건 내 거야' 그랬어."
"내가?"
"응. 두 개 다 자기가 가져갔어. 하나는 목걸이에 걸고 하나는……."
지수는 눈을 감았다. 그날. 택배가 온 화요일. 규칙 종이를 쓴 날. 열쇠 두 개를 손에 들고—
"냉장고."
"뭐?"
"규칙 종이 붙일 때. 자석. 자석 뒤에……."
지수는 냉장고로 달려갔다. 규칙 종이를 붙였던 자석. 아직 그 자리에 붙어 있는 자석. 지수가 그걸 뗐다. 뒤에 아무것도 없었다. 지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위를 봤다. 냉장고 옆 틈을 봤다.
"아니야. 여기가 아니야. 내가 그날 이거 어디 뒀지……."
"자기야, 천천히. 그날 뭐 했는지 순서대로."
"택배 열었어. 상자에서 꺼냈어. 열쇠 두 개. 자기한테 규칙 설명하려고 종이 쓰고. 자기 사인 받고. 냉장고에 붙이고. 그리고……." 지수가 눈을 떴다. "그리고 목걸이 체인 샀잖아. 그날 오후에. 자기 열쇠 걸 거라고. 근데 그전에 열쇠를 어디 뒀냐면……."
지수는 부엌 서랍을 열었다. 세 번째 서랍. 잡동사니 서랍. 건전지, 고무줄, 배달 스티커, 젓가락 포장지, 그리고 결혼 축의금 봉투 하나. 지수는 그 봉투를 집었다. 뭔가 안에서 달그락거렸다.
봉투를 뒤집자 열쇠가 나왔다. 아주 작은 은색 열쇠.
"……있어."
"……있어?"
"있어!"
지수는 열쇠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민규도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은 부엌에서 껴안고 뛰었다. 지수는 열쇠를 남편 얼굴 앞에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민규의 얼굴은 지수가 결혼식 날 본 얼굴과 똑같았다.
"자기야."
"응."
"이거 내일 아침에 쓴다는 거지."
지수는 열쇠를 든 손을 천천히 내렸다.
"……응. 검진 가야 하니까."
"그럼 나 내일……."
"내일 아침에 열고. 검진 끝나면 다시 잠가."
민규의 얼굴이 천천히 무너졌다. 지수는 그 얼굴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리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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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지수는 새 체인을 사러 나갔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철물점에 들렀다. 아버지는 카운터 뒤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찾았어?"
"응. 예비 키 있었어."
"그럴 줄 알았다. 뭐 잠근 건데 그렇게 난리를 쳤어."
지수는 카운터에 열쇠를 올렸다. 아주 작은 열쇠. 아버지가 그걸 들어 형광등에 비쳤다. 삼십 년 경력의 눈으로.
"이거 복사해 줘."
"이걸? 이거 특수 키야. 홈이 특이해. 우리 집 기계로 될지 모르겠는데."
"해줘. 두 개."
아버지는 열쇠를 다시 봤다. 그리고 지수를 봤다.
"뭐 잠근 거냐, 이게."
"……일기장."
"일기장 열쇠를 세 개나 만들어?"
"소중한 일기장이야."
아버지는 지수를 오래 봤다. 그리고 웃었다. 지수가 자라면서 아버지가 저렇게 웃는 걸 본 건 몇 번 안 됐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열쇠 복사기 앞으로 갔다.
십 분 후 아버지는 열쇠 세 개를 지수 손에 쥐여줬다. 원본, 복사본 둘.
"신혼이 좋긴 좋다." 아버지가 말했다. "일기장 열쇠 갖고 그렇게 난리 치는 거."
"……응."
"민규 잘 챙겨."
지수는 아버지가 그 말을 어떤 의미로 했는지 평생 묻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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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지수는 새 체인에 원본 열쇠를 걸었다. 복사본 하나는 지수의 회사 사물함 열쇠고리에 걸었다. 다른 하나는 봉투에 넣어서 침실 금고에 넣었다. 금고 비밀번호는 지수만 알았다.
"자기야." 민규가 그걸 보면서 말했다. "그거 세 개 다 자기 거지."
"응."
"나는 하나도 없네."
"자기 거는 저기 있잖아." 지수가 그의 다리 사이를 가리켰다. "자물쇠."
민규는 웃었다. 그리고 지수의 목에 걸린 새 체인을 손끝으로 만졌다. 그 끝의 열쇠를. 하루 종일 없었던 그것이 다시 지수 목에 있었다.
"오늘 진짜 무서웠어." 그가 말했다.
"검진 때문에?"
"아니." 그가 열쇠를 손바닥에 올렸다. "자기 목에 이게 없으니까. 자기가 이걸 안 걸고 있으니까. 그게 무서웠어."
지수는 남편의 손에서 열쇠를 가져와 쇄골 사이에 내려놓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안 없어져." 지수가 말했다. "이제 세 개야."
"세 개."
"그리고 자기야, 내일 아침에 열어주는 거. 그거 내가 세는 거에 안 들어가."
"……알아."
"검진 끝나고 집에 오면 바로 잠글 거야. 그 사이에 만지지 마."
"안 만져."
"진짜?"
"진짜." 그가 지수를 봤다. "자기가 열쇠 세 개 갖고 있는 남편이 그런 걸 하겠어."
지수는 그 밤에 남편 옆에서 아주 잘 잤다. 열쇠는 목에 있었고, 예비 키는 두 개였고, 이 사람은 내일 하루 풀려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지수는 그걸 알았다. 이제 그건 지수가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