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자기야, 링 사이즈가 뭐야?"
"뭐?"
"링. 베이스 링. 사십, 사십오, 오십. 이게 뭘 재는 거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첫 주말, 지수는 식탁에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 있었고 민규는 그 뒤에 서서 모니터를 훔쳐보며 계란을 부치고 있었다. 계란은 이미 다 탔다.
"그게, 뿌리 쪽 둘레 같은데."
"자기 거 둘레가 몇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지수가 의자를 돌렸다. "그럼 재야지."
민규는 프라이팬을 든 채로 얼어붙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자기야, 이거 사이즈 잘못 사면 안 되는 거야. 후기 봐. '작아서 아팠어요' 별 하나. '커서 빠져요' 별 하나. 그리고 이건 진짜 웃긴데, '아내가 키를 잃어버려서 절단기 샀습니다' 별 셋."
"별 셋?"
"제품은 괜찮았대."
민규는 웃었고, 웃으면서 거실 수납장에서 재봉용 줄자를 가져왔다. 지수가 결혼 전 취미로 산 재봉틀은 아직 박스째였지만 줄자는 꺼내져 있었다. 이런 용도로 쓰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발기 안 한 상태에서 재야 해." 지수가 화면을 읽으며 말했다. "그게 기본 상태라서."
"그럼 자기가 재면 안 되겠는데."
"왜."
"자기가 잡으면 기본 상태가 안 돼."
지수는 고개를 들어 남편을 봤다. 반바지 위로 이미 기본 상태가 아니었다. 지수는 웃음을 참으려다가 실패했다.
"거실 창문 열어놓고 삼 분 서 있어. 찬바람 맞으면서."
"미쳤어?"
"아니면 뉴스 봐. 경제 뉴스. 자기 회계사잖아. 금리 얘기 들으면 좀 죽지 않아?"
민규는 진심으로 상처받은 얼굴을 했지만 결국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오 분 후에 나왔다. 줄자를 들고. 종이에 숫자 두 개를 적어 왔다. 지수는 그 종이를 아주 진지한 얼굴로 받아서 노트북 옆에 놓았다.
"뭐 하고 나왔어? 오 분 동안."
"세금 계산했어. 머릿속으로."
"진짜?"
"……진짜."
지수는 그날 밤 그 숫자를 무슨 보물 지도처럼 들여다보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았다. 스테인리스. 케이지 길이. 링 두께. 힌지형. 통풍구. 위생 스프레이. 그리고 자물쇠 대신 쓰는 일회용 번호 잠금 태그라는 게 있는 걸 발견하고 한참 읽었다.
"이건 뭐야?"
"그건 열쇠 없이 잠그는 거래. 번호 적힌 플라스틱 타이. 잘라야 열 수 있어서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 알 수 있대."
"우리는 열쇠 있잖아." 지수가 목에 손을 댔다. 아직 걸지도 않은 열쇠를 이미 만지는 버릇이 생겨 있었다. "자물쇠로 하자. 열쇠가 포인트야."
"자기는 그 열쇠에 진짜 집착하네."
"그럼. 이게 결혼 선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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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는 화요일에 왔다. 상자에 '생활용품'이라고 적혀 있어서 지수는 안심했고 민규는 이걸 경비 아저씨가 들고 있던 걸 상상하며 조금 죽고 싶어 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식탁에 상자를 열어놓고 마주 앉았다. 지수는 A4 용지를 한 장 꺼냈다. 상단에 볼펜으로 '규칙'이라고 적혀 있었다.
"자기 지금 회의하는 거야?"
"이건 중요한 거야. 자기 몸에 하는 거잖아. 앉아."
민규는 앉았다. 지수가 이런 얼굴을 할 때는 앉는 게 맞다는 걸 결혼 준비하는 동안 배웠다.
"첫째. 세이프워드." 지수가 종이에 썼다. "이거 말하면 무조건, 이유 안 물고, 그 자리에서 열어 준다. 장난이든 뭐든 상관없이. 뭐로 할까."
"제주도."
지수가 고개를 들었다.
"거기서 시작했으니까." 민규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수는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 단어는 너무 예뻤다. 그래서 그냥 '제주도'라고 썼다.
"둘째. 아프면 말한다. 붓거나, 감각 없거나, 색이 이상하거나, 살이 까지거나. 그건 세이프워드 안 써도 그냥 열어. 게임보다 몸이 먼저야. 알았지?"
"응."
"셋째. 하루에 한 번 확인. 저녁에 내가 직접 본다. 씻는 것도 내가 보는 데서."
민규가 목을 쓸었다. "매일?"
"매일. 후기에 다 있어. 안 씻으면 냄새나고 염증 생기고 그러면 비뇨기과 가야 하는데, 자기 비뇨기과 가서 이 얘기 할 수 있어?"
"……못 해."
"그러니까 내가 매일 봐. 넷째." 지수가 볼펜을 멈췄다. "얼마나 오래 할지."
두 사람은 서로를 봤다.
"처음엔 사흘." 지수가 말했다. "사흘 하고 어떤지 보자.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사흘."
"실망했어?"
"아니." 민규가 너무 빨리 대답했다. 지수는 웃음을 참았다. 이 사람은 실망했다. 사흘이 짧아서 실망했다. 지수는 그 사실을 종이 한구석에 작게 적어두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에 적었다.
"다섯째. 조기 해방 조건. 병원 갈 일 있으면. 몸이 이상하면. 그리고 자기가 진짜 못 견디겠으면 세이프워드. 그것 말고는……." 지수가 볼펜 끝으로 종이를 톡톡 쳤다. "내가 정해."
"자기가 정해."
"내가 정해. 내가 언제 열지, 열어서 뭘 할지, 다시 잠글지. 전부."
민규는 그 종이를 한참 봤다. 그리고 볼펜을 받아서 밑에 자기 이름을 썼다. 회계사답게, 아주 또박또박.
지수는 그 서명 옆에 자기 이름을 쓰고, 이니셜까지 넣었다. 그리고 종이를 접어서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였다. 시어머니가 오시면 떼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는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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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끼우는 거였다.
"기본 상태여야 한다니까."
"알아. 아는데." 민규가 침대 끝에 앉아서 울 것 같은 얼굴로 자기 다리 사이를 내려다봤다. "자기가 옆에 앉아 있잖아."
"내가 보는 데서 하는 게 규칙이야."
"규칙이 너무 가혹해."
지수는 침대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잠옷 차림이었다. 그리고 목에는 오늘 오후에 산 가는 은색 체인이 걸려 있었고, 그 끝에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진짜 열쇠. 진짜 자물쇠의 열쇠. 지수는 자기가 그걸 만지는 걸 민규가 계속 본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계속 만졌다.
"자기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뭘."
"열쇠. 계속 만지는 거."
"내 목걸이인데 내가 만지는 거잖아." 지수가 열쇠를 입술에 댔다. "왜. 방해돼?"
민규가 신음 같은 소리를 냈다. 방해됐다. 명백히 방해됐다.
결국 지수는 얼음물 컵을 가져왔다. 민규는 그걸 보고 인간의 존엄에 대해 짧게 항의했고, 지수는 그 항의를 들으며 열쇠를 만졌고, 민규는 항의를 포기했다. 차가운 손으로 그의 것을 감싸자 그가 헉 소리를 냈고, 지수는 그가 줄어드는 걸 손바닥으로 느꼈다. 이상한 만족감이었다. 이 사람의 몸이 내 손 하나에 이렇게 바뀐다.
"빨리, 지금."
민규가 서둘러 링을 뿌리 쪽으로 밀어 넣었다. 고환 밑으로 하나씩, 그다음 위로. 그리고 케이지를 앞에서 씌워 링에 맞추는데 손이 떨려서 두 번 놓쳤다.
"내가 할게."
"자기가 하면 또……."
"쉿."
지수는 케이지를 받아 들었다. 차갑고 무겁고 매끈했다. 이걸 그의 몸에 씌우는 순간, 지수는 자기 손이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힌지가 맞물렸다. 딸깍. 자물쇠 구멍이 위로 올라왔다. 지수는 목에서 체인을 벗지 않은 채 몸을 숙여, 열쇠를 자물쇠에 넣었다. 목걸이 길이가 딱 그만큼이었다. 지수의 얼굴이 그의 배 바로 앞에 있었다.
"돌릴까?"
민규는 대답을 못 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지수가 열쇠를 돌렸다. 작고 단단한 소리. 딸깍.
지수가 열쇠를 빼고 몸을 세우자 체인이 흔들리며 열쇠가 지수의 쇄골 사이에서 반짝였다. 두 사람은 그걸 봤다. 그다음 그의 다리 사이를 봤다. 스테인리스 새장 안에 갇힌 그것. 이미 안에서 커지려고 하는데 커질 수 없어서 살이 살 사이로 볼록볼록 밀려 나오는 모습.
"……어때?"
"이상해." 민규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무거워. 그리고, 아……."
"아파?"
"아니. 아니야. 그냥."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자기 목에 열쇠 걸린 거 보니까 미칠 것 같아."
지수는 배 속이 뒤집히는 걸 느꼈다. 웃음이랑 다른 어떤 것으로.
"사흘이야." 지수가 남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사흘만 참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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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에 민규가 지수를 깨웠다.
"자기야. 자기야."
"……뭐야."
"아파."
지수가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민규는 이불을 걷어내고 무릎을 세운 채 누워 있었고, 스테인리스 새장 안의 그것이 터질 듯이 살을 밀어내고 있었다. 새벽 발기. 후기에서 스무 번은 읽은 거였는데 실제로 보니까 다른 문제였다.
"어떡해, 열어줘?"
"아니, 아니야. 아픈 게 아니라, 아니, 아픈데 그……." 민규가 이를 악물고 웃었다. 진짜로 웃었다. "이거 진짜 이상해. 서고 싶은데 못 서."
"그게 원래 그런 거잖아……."
"알아. 아는데 몸이 몰라."
지수는 열쇠에 손을 댔다. 목에 걸린 채로 자고 있었다. 이걸 지금 돌리면 끝난다. 여섯 시간짜리 게임.
"자기야. 진짜 아프면 말해. 진짜 아픈 거면 제주도 해."
민규는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봤다. 오래 봤다. 지수는 그 사이에 얼음 주머니를 가져왔다. 새벽 세 시에 신혼부부 침실에서 남편의 다리 사이에 얼음 주머니를 올려놓는 일이 자기 인생에 생길 거라고는 결혼식 날엔 몰랐다.
"……안 해." 민규가 결국 말했다. "제주도 안 해."
"확실해?"
"응. 확실해." 그가 지수를 봤다. 눈이 젖어 있었지만 웃고 있었다. "자기 그거, 계속 목에 걸고 있어 줘."
지수는 얼음 주머니 위에 손을 올린 채 남편을 내려다봤다. 사흘 중에 여섯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지수는 이미 사흘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야."
"응."
"그거 알아? 이거 자기 벌칙이 아니라 내 선물이야."
민규는 얼음 위에서 다시 한번 신음했고, 지수는 웃으면서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