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바, 목요일 아홉 시
파리의 봉투는 한 장이었다. 그리고 그 한 장에 두 줄뿐이었다.
목요일 밤 아홉 시. 로비 바. 검은 원피스, 목에 있는 것. 폰은 가방에. 혼자 앉아 있어.
그때까지 만지지 마.
그게 다였다. 인사도 없고, 잘 자, 도 없었다. 그가 잘 자, 를 쓰지 않은 봉투는 처음이었다.
예나는 그것을 월요일 밤에 열었고 화요일과 수요일을 그 두 줄과 함께 보냈다. 파리 노르 전시장에서 부스를 돌고 클라이언트와 점심을 먹고 통역과 말다툼을 하는 동안, 두 줄이 계속 그녀 안에 있었다. 목요일 밤 아홉 시. 그가 그 시간에 무엇을 하려는지 그녀는 짐작했다. 영상통화. 아니, 폰은 가방에 두라고 했다. 그러면 사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바에 혼자 앉아 있는 그녀를 그가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
만지지 마, 는 사흘째였다. 그것은 이제 쉬운 일이었어야 했는데 이번엔 쉽지 않았다. 잘 자, 가 없어서였다. 그 두 글자가 없는 지시서는 이상하게 그녀를 불안하게 했고, 불안은 그녀를 뜨겁게 했다. 그가 그것을 알고 뺐을 것이다.
목요일. 그녀는 여덟 시에 방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고 검은 원피스를 입었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목선이 깊지 않은 것. 은 원판이 그 목선 위에 정확히 보이도록. 머리를 올렸다. 폰은 가방에 넣고 가방은 닫았다.
여덟 시 오십 분. 로비 바.
호텔은 마레 지구의 작은 곳이었고 바는 로비 한쪽에 등 높은 의자 여섯 개가 있는 정도였다. 그녀는 끝자리에 앉았다. 와인을 한 잔 시켰다. 마시지 않았다. 아홉 시. 아무 일도 없었다. 아홉 시 십 분. 그녀는 가방을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폰은 가방에. 규칙.
아홉 시 이십 분.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LA의 엘리베이터가 생각났다. 태윤의 웃음. 한 잔만 더. 그녀는 와인 잔을 잡고 앞을 보았다. 옆에 앉은 사람이 바텐더에게 무언가를 주문했다. 프랑스어가 아니었다. 영어도 아니었다.
"위스키. 얼음 없이."
한국어였다.
그녀는 돌아보았다.
검은 코트. 손은 카운터 위에. 그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인천 입국장에서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냥 보고 있었다.
예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와인 잔을 놓지도 못했다. 그가 여기 있었다. 파리에. 마레 지구의 이 작은 바에. 서울에서 열두 시간을 날아서.
"아홉 시라고 했지."
그가 말했다.
"이십 분 늦었어. 드골에서 택시가 안 잡혀서."
"…어떻게…"
"사무소에 파리 근교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 답사. 핑계는 그거고, 진짜는 네 일정표 보고 항공권 끊은 거야. 두 달 전에."
그녀는 그를 보았다. 그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에 걸린 은 원판을 손끝으로 눌렀다.
"걸었네."
"…한 번도 안 벗었어요."
"알아."
그의 손이 원판에서 그녀의 목으로, 턱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그 손에 얼굴을 맡겼다. 로비였다. 바텐더가 있었다. 상관없었다.
"사흘 참았어?"
"…네."
"잘 자, 안 써서 힘들었지."
"…네."
"오늘은 종이 대신 내가 말하려고 뺀 거야."
그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카드를 카운터에 놓았다.
"올라가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그녀를 만지지 않았다. 나란히 서서 층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것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가 옆에 있는데 만지지 않는 것. 그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방문이 닫혔다. 그가 잠갔다. 그리고 그녀를 돌려 세워 문에 등을 대게 하고 입을 맞췄다. 사흘, 아니 이 출장 동안, 아니 지난 두 달 동안의 전부가 그 입맞춤에 있었다. 그녀는 그의 코트를 붙잡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그의 것이 이미 단단한 것이 원피스 너머로 느껴졌다.
"런던에서 세 번 멈추라고 했지."
그가 그녀의 귀에 말했다.
"이번엔 내 손으로 할 거야. 화면 아니고."
그는 그녀를 창가로 데려갔다. 커튼이 열려 있었다. 파리의 밤. 마레의 지붕들, 멀리 불 켜진 첨탑. 그가 그녀를 유리창 앞에 세우고 양손을 유리에 대게 했다. 차가웠다.
"그대로 있어."
그의 손이 뒤에서 원피스 자락을 걷어 올렸다. 속옷이 내려갔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사흘 동안 만지지 못한 곳은 그의 손끝이 닿는 순간 소리를 냈다. 젖어 있었다. 바에 앉아 있을 때부터. 아니, 월요일 밤 봉투를 열 때부터.
"봐. 유리에 네 얼굴 비치지."
그녀는 보았다.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과, 그 뒤에 선 그의 어깨. 그리고 유리 너머 파리.
그의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왔다. 두 개. 런던의 그 밤에 그가 화면 너머에서 시켰던 것을 이제 그의 손이 했다. 그의 엄지가 위를 눌렀다. 원을 그렸다. 그녀는 유리에 이마를 댔다. 소리가 났다. 그가 그녀의 귀에 숨을 뱉었다.
"멈춰."
그의 손이 멈췄다. 안에 든 채로. 그녀는 신음했다.
"대디―"
"하나."
그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더 깊이. 손목이 리듬을 만들었다. 그녀의 무릎이 흔들렸다. 그의 다른 팔이 그녀의 허리를 받쳤다.
"멈춰."
"…둘…"
"세고 있네."
"…시켰잖아요…"
그가 웃었다. 뒤에서. 그 웃음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가 세 번째로 움직였다.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유리에 손바닥을 눌러 붙이고, 허리가 저절로 뒤로 밀리고, 안쪽이 그의 손가락을 조이고, 파리의 불빛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올 때까지.
그가 그녀를 돌려 세웠다. 원피스를 벗겼다. 머리 위로. 은 원판만 남았다. 그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창가에, 유리를 등지고 선 그녀 앞에.
"이건 화면으로 못 했던 거."
그의 입이 닿았다. 그녀는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유리가 등에 차가웠고 그의 입은 뜨거웠다. 그의 혀가 안으로, 위로, 빨고, 놓고, 다시. 그녀는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무릎 꿇은 그의 어깨, 흐트러진 머리. 그가 그녀를 이렇게 올려다보는 것을 그녀는 화면으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두 번째가 왔다. 첫 번째보다 빠르게. 그녀의 무릎이 꺾였고 그가 그녀를 받았다.
침대. 그가 옷을 벗었다. 그녀는 누워서 그것을 보았다. 싱가포르에서 화면으로 처음 봤던 그의 것이 지금 방 안에 있었다. 그가 그녀 위로 왔다. 다리를 벌렸다. 그가 자기를 맞췄다.
"천천히."
그가 말했다. 자기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가 들어왔다. 천천히. 그녀는 그것을 하나하나 느꼈다. 그가 끝까지 들어와 멈췄을 때 그녀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대디, 진짜 여기 있어요?"
"여기 있어."
"…봉투 없이."
"봉투는 내가 왔다는 거야. 이번엔."
그가 움직였다. 느리게, 그다음엔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녀가 문장으로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배운 대로. 더 깊이. 더 빨리. 대디, 거기. 그가 그것을 하나하나 들어 주었다. 그녀 안에서 그가 움직이는 것과 그녀의 문장이 하나가 되었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떨어졌다. 그가 그녀의 무릎을 자기 어깨에 올렸다. 더 깊이. 침대가 소리를 냈고 파리의 밤이 창밖에 있었고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세 번째로 왔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 안에서 왔다. 길게. 그녀는 그것을 느꼈다. 화면으로 봤던 것이 아니라 안에서.
그가 그녀 위로 무너졌다. 그녀는 그의 등을 안았다.
한참 뒤에 그는 몸을 빼고 옆에 누워 그녀를 끌어당겼다. 물. 이불. 그의 손이 그녀의 등에 닿았다. 무언가를 쓰려는 듯이. 그러다 멈췄다.
"오늘은 안 쓸게."
"…왜요."
"말할 거야."
그가 그녀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잘 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 두 글자를 사흘 동안 기다렸다. 아니, 일 년 반을. 종이가 아니라 그의 입에서, 그가 있는 방에서.
"잘 자요, 대디."
그가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낮게.
"돌아가면 얘기할 게 있어. 지금 말고."
"…뭔데요."
"봉투에 넣을게. 다음에."
그녀는 웃었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그가 여기 있는데도 다음 봉투를 약속하는 것이 이상하고 좋았다. 그녀는 그가 있는 방에서 잠들었다. 파리에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고, 이번엔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