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투가 필요 없는 밤

그는 공항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천은 늘 그녀 혼자였다. 입국장을 나와 리무진을 타거나 그의 집까지 택시를 타거나. 그가 배웅은 해도 마중은 하지 않는 것은 두 사람 사이의 말없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그녀의 일이고, 돌아온 뒤부터가 그의 일이라는 듯이.

그런데 그가 있었다.

입국장 유리문이 열리고, 사람들 사이에 그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 손은 주머니에. 그녀를 보자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걸어가는 것을 그냥 보았다. 예나는 캐리어를 끌고 걸었고, 걸으면서 알았다. 자기가 사흘 동안 얼마나 이 사람이 필요했는지. 그것을 이제야, 그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몸이 인정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멈췄다. 그가 손을 내밀어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손이 스쳤다.

"가자."

차 안에서 그는 말이 없었다. 그녀도 없었다. 라디오도 없었다. 올림픽대로의 불빛이 그의 옆얼굴을 지나갔다. 예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의 턱이 굳어 있는 것. 핸들을 잡은 손의 마디가 흰 것. 그가 무언가를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화인지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집. 그는 캐리어를 거실 바닥에 눕히고 열었다. 안쪽 주머니의 지퍼. 봉투. 그는 봉투를 열고 메모지를 꺼냈다.

대디에게,

그것만 있는 종이. 그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뒷면도 비어 있었다. 그가 다시 앞면을 보았다. 예나는 서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다. 대신 손끝이 차가웠다.

"왜 안 걸었어."

그가 물었다. 종이를 보면서.

"…걸면 울 것 같아서요."

"울면."

"우는 소리를 들려주기 싫었어요. 대디가 서울에서 그 소리를 듣고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그러면 대디만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혼자 울었어."

"…네."

그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화보다 더 조용한 것.

"예나. 내가 왜 봉투를 쓰는지 알아?"

"…제가 혼자 있는 방에서 잠들 수 있게."

"반은 맞아." 그는 천천히 말했다. "널 붙잡으려고 쓰는 게 아니야. 네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고 쓰는 것도 아니야. 열한 시 규칙도, 만지지 말라는 것도, 사진을 보내라는 것도 전부 하나야. 네가 그 방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끼게 하려고. 그게 다야."

그녀는 듣고 있었다.

"근데 네가 그 방에서 혼자 울고 나한테 안 알린 순간, 내 봉투는 종이야. 그냥 종이. 네가 뉴욕에서 그걸 알았지. 종이라는 걸."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가 어떻게 아는지. 그녀가 욕조에서 한 생각을.

"빈 종이 보면 알아. 네가 쓸 말이 없었던 게 아니야. 쓸 말이 너무 잔인해서 안 쓴 거야. 봉투가 아무것도 못 했다고. 맞지."

"…맞아요."

"맞아. 봉투는 아무것도 못 해. 봉투로 되는 관계가 아니야, 이건. 봉투는 네가 날 부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두는 거야. 부르는 건 네가 해야 해. 네가 부르지 않으면 나는 만 킬로미터 밖에서 종이 한 장이야. 네가 부르면 나는 거기 있어. 그게 다야. 그게 이 관계야."

예나는 서 있었다. 무언가가 목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규칙 위반이 있었어."

"…열한 시요."

"아니. 열한 시는 됐어. 넌 바닥에서 밤새고 있었어. 그건 위반이 아니야." 그가 소파에 앉았다. "혼자 운 거. 나한테 안 알린 거. 첫 번째 규칙이 뭐였지."

"솔직하게 말하기."

"울고 있는 걸 안 말한 건 솔직하지 않은 거야. 그게 위반이야. 이리 와."

그녀는 갔다.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회항 기억하지."

"네."

"말하면 멈춰. 알지."

"네, 대디."

그는 그녀를 자기 무릎 위로 끌어 눕혔다. 배가 그의 허벅지에 닿고 얼굴이 소파 쿠션에 닿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스커트를 걷어 올렸다. 스타킹을 내렸다. 속옷을 내렸다. 그의 손바닥이 드러난 살 위에 얹혔다. 따뜻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열 번. 세고, 한 번마다 말해. 뭘 해야 했는지."

"…네."

첫 번째. 손바닥이 살을 쳤다. 소리가 방에 울렸다. 통증이 늦게 왔다. 뜨겁게.

"하나. 대디를 불러야 했습니다."

두 번째. 같은 자리.

"둘. 대디를 불러야 했습니다."

셋. 넷. 그의 손은 정확했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고, 같은 자리에 같은 무게로. 살이 뜨거워졌다. 다섯 번째에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다섯. 대디를… 불러야 했습니다."

"뭐가 무서웠어."

여섯 번째와 함께.

"여섯― 대디가 다음에 봉투를 안 넣을까 봐요."

그의 손이 멈췄다. 잠깐. 그리고 일곱 번째.

"일곱. 대디를 불러야 했습니다."

"봉투는 계속 넣어. 네가 나한테 뭘 보여 줘도. 울어도. 나 필요 없다고 해도."

여덟. 아홉. 그녀는 울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픈 것 때문이 아니었다. 아픈 것은 오히려 그녀를 깨웠다. 우는 것은 사흘 전 욕조에서 다 울지 못한 것이었다.

"열. 대디를 불러야 했습니다."

그의 손이 붉어진 살 위에 얹혔다. 이번엔 움직였다. 천천히 쓸었다. 뜨거운 곳을. 손이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닿았다. 젖어 있었다. 그가 그것을 확인하는 것을 그녀는 느꼈고 얼굴이 쿠션 속에서 붉어졌다.

"이건 뭐야."

"…모르겠어요."

"알잖아."

"…대디 손이라서요."

그는 그녀를 일으켜 안았다. 소파에서, 무릎 위에, 그녀의 얼굴을 자기 어깨에 묻게 하고. 그녀는 울었다. 그의 코트 냄새. 그의 손이 그녀의 뒷머리를 쓸었다. 인천 출국장에서처럼.

"다 울어. 여기서. 내가 있는 데서."

그녀는 울었다. 그의 셔츠가 젖었다. 한참 뒤에 그의 손이 그녀의 턱을 들었다. 그가 입을 맞췄다. 사흘 만이 아니라 뉴욕 이전부터, 그가 이렇게 입을 맞춘 것은 처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혀가 그녀의 입안에 들어왔고 그녀는 그를 물었다.

그는 그녀를 안고 일어나 침실로 갔다. 침대에 눕혔다. 옷을 벗겼다. 하나씩. 은 원판만 남기고. 그리고 그녀를 뒤집어 붉어진 살에 입을 맞췄다. 뜨거운 곳에 차가운 입술. 그녀는 소리를 냈다.

그가 그녀를 다시 돌려 눕히고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그의 입이 닿았다. 혀가 젖은 틈을 갈랐다. 그녀는 허리를 들었다. 그의 손이 허리를 눌러 내렸다. 그의 혀가 안으로 들어왔다가 위로 올라와 가장 예민한 곳을 감쌌다. 빨았다. 그녀는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뉴욕에서 사흘, 그 전에 참았던 날들, 화면 너머로만 듣던 그의 목소리. 그 전부가 그의 입 하나에 모였다. 그녀는 빨리 왔다. 소리를 내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두 번째로 떨 때까지.

그가 몸을 일으켜 그녀 위로 왔다. 옷을 벗는 동안 그녀는 그의 몸을 보았다. 그의 것이 이미 단단했다. 그가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자기를 맞췄다. 들어왔다. 천천히. 그는 천천히, 라는 말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었고 지금 그것을 몸으로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끝까지 들어올 때까지 그의 눈을 보았다.

"여기 있어."

그가 말했다.

"네…"

"누구 거야."

"대디 거요."

"뉴욕에서도."

"네―"

"뉴욕에서도 내 거였어. 네가 안 불렀을 때도."

그가 움직였다. 처음엔 느리게. 그녀 안에서 그의 것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그녀는 하나하나 느꼈다. 그가 그녀의 무릎을 들어 올려 더 깊이. 그녀의 손이 그의 등을 붙잡았다. 손톱이 들어갔다. 그가 신음했다. 낮게. 그가 속도를 올렸다. 침대가 소리를 냈다. 그녀는 그의 이름과 대디를 번갈아 불렀다. 어느 것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봐. 나 봐."

그녀는 그를 보았다. 그의 얼굴. 굳어 있던 턱이 풀리고 눈이 반쯤 감기고 이마에 땀. 그가 그녀 안에서 그녀를 보면서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본 적 없는 얼굴. 그녀가 여기 있어야만 볼 수 있는 얼굴.

"대디, 같이―"

"같이."

그가 손을 내려 두 사람이 맞닿은 곳 위를 문질렀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왔다. 안쪽이 그를 세게 물었고 그가 이를 물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 안 깊은 곳에서 떨었다. 그의 무게가 그녀 위로 무너졌다. 그의 숨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그가 몸을 빼고 옆에 누워 그녀를 끌어당겼다. 물을 가져왔다. 다 마시는 것을 보았다. 서랍에서 연고를 꺼내 그녀를 옆으로 눕히고 붉어진 살에 발랐다. 차가운 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새 규칙이야."

"…네."

"울면 걸어. 몇 시든. 내가 회의 중이든 자고 있든. 내가 못 받으면 음성 남겨. 우는 소리 그대로. 다듬지 말고. 알았어?"

"네, 대디."

"봉투는 계속 넣을 거야. 그건 안 바뀌어. 근데 봉투가 종이라는 거 알게 되면 걸어. 그러면 내가 종이 아니라는 거 알게 해 줄게."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웃었다. 울면서.

그가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등에 닿았다. 무언가를 썼다. 천천히, 한 획씩. 그녀는 눈을 감고 그것을 읽었다.

잘 자.

"…읽었어요."

"오늘은 종이 없어."

"네."

"잘 자, 예나."

"잘 자요, 대디."

그녀는 그가 여기 있는 방에서 잠들었다.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녀는 사흘 동안 잊고 있었고, 이제 다시 기억했다. 그리고 다음에 그가 없는 방에서 봉투를 열 때 이 밤을 같이 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