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지 못한 봉투

뉴욕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부스 자재를 실은 컨테이너가 뉴어크 항에서 통관에 걸렸다. 설치 시작이 마흔 시간 밀렸고 개막은 밀리지 않았다. 예나는 JFK에서 호텔에 들르지도 못하고 곧장 재비츠 센터로 갔다. 캐리어는 후배가 대신 호텔에 맡겼다. 그날 밤 그녀는 전시장 바닥에 앉아 대체 자재 견적을 세 군데서 받았고, 새벽 세 시에 한 군데를 골랐고, 다섯 시에 첫 트럭이 왔다.

호텔 방에 처음 들어간 것은 도착하고 스물여섯 시간 뒤였다. 아침 여덟 시. 그녀는 신발을 벗지 못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그대로 옆으로 넘어졌다. 캐리어는 방 구석에 세워진 채였다. 열지 않았다.

깼을 때는 오후 두 시였고 폰에는 부재중 통화 하나와 카톡 몇 개가 있었다.

「도착했어?」 어제 아침.

「방에 들어갔어?」 어제 밤.

「무리하지 마.」 오늘 새벽.

그녀는 답을 썼다. 「네 정신없어요. 부스 자재 통관 걸려서 밤샜어요.」 보내고 나서 캐리어를 열었다.

봉투가 세 개였다. 사흘 일정. 고무줄, 숫자.

1.

첫날 밤 열한 시, 그곳 시간에 전화할게. 기다릴게.

그게 전부였다. 짧았다. 그가 이번엔 짧게 쓰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뜻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첫날 밤 열한 시는 이미 지나 있었다. 그녀는 그 시간에 전시장 바닥에 있었고, 폰은 가방에 있었고, 부재중 통화 하나는 그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받지 않는 전화를 걸고 기다렸을 것이다. 그의 낮 열두 시에.

그녀는 2번을 열었다.

2.

첫날 전화를 못 받았으면, 오늘은 네가 걸어. 내가 먼저 걸지 않을게. 네가 걸 때까지 기다릴게. 몇 시든.

예나는 종이를 손에 든 채 오래 앉아 있었다.

걸면 됐다. 지금 걸면 됐다. 서울은 새벽 세 시였다. 그가 잘 시간이었다. 몇 시든, 이라고 그가 썼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 세 시에 그를 깨워서 무슨 말을 하나. 부스 자재가 걸렸어요. 밤샜어요. 지금 일어났어요. 그러면 그는 무슨 말을 할까. 밥은 먹었어. 잠은 잤어.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고 그녀는 지금 그 말을 들으면 울 것 같았다.

울면 그가 들을 것이다. 서울 새벽 세 시에, 그녀가 뉴욕 호텔 방에서 우는 소리를. 그리고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폰을 내려놓았다. 나중에. 오늘 밤에. 그의 아침에.

그날 밤은 오지 않았다. 대체 자재가 규격에 맞지 않았고 그녀는 다시 전시장에서 밤을 보냈다. 열한 시에 그녀는 방에 있지 않았다.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생각할 자리가 없었다.

둘째 날 카톡.

「먹었어?」

그녀는 열두 시간 뒤에 봤다. 답하지 않았다. 답할 말이 없었다. 안 먹었다고 하면 그가 걱정할 것이고, 먹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첫 번째 규칙.

셋째 날. 개막. 부스는 열렸다. 한 시간 늦게, 완벽하지 않게, 그러나 열렸다. 클라이언트는 화를 냈고 그다음엔 고마워했고 예나는 웃었고 후배들에게 밥을 사 주었고 다섯 시에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몸이 물에 잠기자 그제야 알았다. 자기가 사흘 동안 얼마나 굳어 있었는지. 뜨거운 물에서 근육이 풀리는 것과 함께 다른 것도 풀려 나왔다. 그녀는 욕조 가장자리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다 냈다. 방음이 안 되는 것 같아 수도꼭지를 틀었다.

이게 뭔가.

그녀는 물소리 속에서 생각했다. 봉투 세 장. 회색 종이 세 장이 캐리어에 있고 그 종이에 그가 기다리겠다고 썼다. 그리고 그녀는 사흘 동안 그에게 걸지 못했다. 종이는 아무것도 못 했다. 그녀가 바닥에서 밤샐 때 종이는 캐리어 안에 있었고, 그녀가 울 때 종이는 여전히 캐리어 안에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사무소에 가고 저녁을 먹고 잠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거리가 갑자기 너무 정확하게 느껴졌다. 만 천 킬로미터. 열세 시간. 그가 하루를 사는 동안 그녀는 다른 하루를 살고, 그 두 하루는 종이 한 장으로만 이어져 있었다.

이걸 관계라고 할 수 있나. 그가 없는 방에서 그의 글씨를 읽고, 그가 시킨 대로 움직이고, 그의 목소리에 맞춰 스스로를 만지고, 그것이. 그것이 그가 여기 있는 것과 같은가. 그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는 사흘 동안 혼자 울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는 밥을 먹었을 것이다.

봉투는 그를 대신하지 못했다. 그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인데, 지금 처음 알았다.

물이 식었다. 그녀는 나왔다. 몸을 닦고 침대에 앉았다. 폰을 들었다. 서울은 아침 일곱 시. 그가 일어나 있을 시간.

그녀는 걸지 않았다. 걸 수 없었다. 걸면 그가 목소리를 듣고 알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자기가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을, 봉투가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을 그에게 알려 주는 것이 그녀는 무서웠다. 그것을 알게 된 그가 다음 캐리어에 봉투를 넣지 않을까 봐.

그녀는 대신 카톡을 썼다.

「부스 열었어요. 이제 좀 잘 것 같아요.」

답은 곧 왔다.

「고생했어. 자.」

그리고 몇 분 뒤.

「3번 열었어?」

그녀는 열지 않았다. 마지막 봉투. 그녀는 캐리어에서 꺼냈다. 손이 떨렸다. 이 안에 무엇이 있을지 그녀는 무서웠다. 실망이 있을까. 왜 안 걸었어, 가 있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쓴, 즐거운 지시가 있을까. 그러면 더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

3.

이 봉투를 열고 있으면 살아남은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몰라. 네가 첫날 전화를 못 받았고 둘째 날 네가 안 걸었고, 그러면 뭔가 있었다는 거지. 그게 뭔지는 네가 돌아와서 말해도 돼. 지금 안 해도 돼.

만지는 거, 규칙, 열한 시, 다 됐어. 이번엔 다 잊어.

잘했어. 살아남았어.

집에 와.

잘 자.

— 준서

그녀는 종이를 가슴에 대고 침대에 옆으로 누웠다. 울었다. 이번엔 물소리 없이. 그가 그녀가 출발하기 전에 이것을 썼다는 것.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가 걸지 못할 것을 알았다는 것. 그리고 그 경우를 위한 봉투를 미리 써서 넣어 두었다는 것.

그런데도 그녀는 걸 수 없었다. 종이는 그녀를 안았고, 그녀는 그것이 종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가는 날 아침, 그녀는 호텔 메모지를 꺼냈다. 답장을 쓰려고. 볼펜을 들고 앉아 있었다. 대디에게, 까지 썼다. 그다음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걸지 못했어요, 는 너무 짧고. 왜 못 걸었는지는 너무 길고. 봉투가 종이라는 걸 알았어요, 는 너무 잔인하고.

그녀는 대디에게, 라고만 쓴 메모지를 봉투에 넣었다. 나머지는 빈 채로. 캐리어 안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갔다.

JFK로 가는 차 안에서 그녀는 창밖을 보았다. 그가 이 빈 종이를 읽으면 무슨 얼굴을 할까. 그가 그것을 읽을 때 자기가 어디 있을까. 아마 그의 옆에. 그리고 이번엔 얼굴을 붉히지 않을 것이다.

비행기가 뜨자 그녀는 잠들었다. 열네 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도착하기 전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그녀는 봉투를 열었고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종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