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치 봉투
프랑크푸르트 메세는 닷새였다. 부스 설치 이틀, 본 행사 사흘. 아틀라스 이벤트가 맡은 한국 공동관은 홀 8의 구석이었고, 예나는 도착한 첫날 오후에 이미 두 번 소리를 질렀다. 한 번은 독일 하청업체에게, 한 번은 서울에 있는 후배에게.
호텔은 중앙역 뒤편의 낡은 비즈니스호텔이었다. 방은 좁았고 창밖으로 트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캐리어를 열었을 때 그녀는 잠깐 멈췄다.
봉투가 다섯 개였다.
같은 회색이 다섯 장,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맨 위에는 '프랑크푸르트'라고만 쓰여 있고, 각 봉투에는 숫자가 있었다. 1, 2, 3, 4, 5. 고무줄 안에 끼워진 작은 쪽지.
하루에 하나. 순서대로. 다음 날 것을 먼저 열면 알 수 있어. 어떻게 아는지는 묻지 말고.
예나는 웃었다. 그가 알 방법은 없었다.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도 알았다. 그러니까 이건 그가 그녀를 믿는다는 말을 그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었다.
1.
첫날은 늘 그렇듯이. 짐 풀고, 씻고, 목에 걸고, 만지지 말고 자. 닷새는 길어. 그러니까 천천히 가자.
내일 아침엔 커피 마시기 전에 물 한 컵. 네가 현장 가면 물 안 마시는 거 알아.
잘 자.
둘째 날 밤, 그녀는 부스 바닥에 눕고 싶을 만큼 피곤한 채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앉아 2번을 열었다.
2.
오늘은 만져도 돼. 대신 끝내지는 마.
시간을 재. 다섯 분. 다섯 분 동안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다섯 분이 되면 손 떼고 그대로 자.
내일 아침에 얼마나 미웠는지 문자로 보내.
잘 자.
그녀는 폰의 타이머를 오 분에 맞췄다. 손을 내렸다. 이틀 만이었고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손가락이 젖은 틈을 따라 움직이자 허리가 들렸다. 그가 없는 방에서 그의 허락으로 하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가 보고 있지 않은데 그의 것이었다. 삼 분쯤에 이미 가까웠고, 그녀는 속도를 늦추고 손가락 하나만 안에 넣은 채로 남은 시간을 버텼다. 타이머가 울렸다. 손을 뗐다. 손가락이 젖어 있었고 아래는 열이 나고 맥이 뛰었다. 그녀는 그 상태로 이불을 덮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아침에 보냈다. 「미웠어요. 아주 많이.」 답장. 「좋아. 오늘도 물 마셔.」
셋째 날은 본 행사 첫날이었다. 부스에 사람이 몰렸고, 통역이 한 명 늦었고, 저녁에는 클라이언트 만찬이 있었다. 커리부어스트를 서서 먹으며 그녀는 그 생각을 했다. 준서가 이걸 보면 뭐라고 할까. 이 소스 색깔. 그가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음식.
3.
오늘은 만지지 마. 어제 다섯 분이 오늘 하루를 얼마나 길게 만드는지 봐.
대신 숙제. 오늘 하루 중 내 생각이 난 순간 세 개를 적어. 메모지에. 봉투에 넣어 와.
내일 밤 열한 시, 그곳 시간에 전화할게. 영상 아니고 목소리만.
잘 자.
그녀는 호텔 메모지를 꺼냈다.
하나. 홀 8 조명 리허설 때. 천장에서 조명이 하나씩 켜지는데 대디가 예전에 현장 설명해 주던 목소리가 났어요. 건물이 아침에 깨어난다고 했던 거.
둘. 커리부어스트 먹을 때. 대디가 싫어할 것 같아서.
셋. 트램 안에서.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만년필로 뭘 쓰고 있었어요. 잉크가 파란색이었어요. 그 사람 손을 너무 오래 봐서 그 사람이 저를 쳐다봤어요.
셋을 쓰고 보니 세 개가 모자랐다. 그녀는 밑에 덧붙였다. 사실 세 개가 아니었어요. 세 개만 고른 거예요.
넷째 날 밤이었다.
그녀는 열한 시 십 분 전부터 침대에 있었다. 4번 봉투는 그날 아침에 열었다. 아침에 열어도 된다고는 안 했지만 밤에 열어도 된다고도 안 했으니까, 하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그리고 그 변명을 하는 동안에도 5번 봉투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었다. 마지막 날 것. 무엇이 쓰여 있을까. 손이 몇 번 갔다. 가지 않았다. 그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그가 알 수 없기 때문에.
4.
오늘 밤은 목소리만이야. 카메라 없어. 네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는 못 봐. 그러니까 네가 말해 줘야 해.
전화를 받으면 스피커로 바꾸고, 폰은 베개 옆에. 엎드려. 베개 하나는 머리 밑에, 하나는 배 밑에.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손 안 돼.
오늘은 나도 같이 해.
잘 자.
마지막 문장을 그녀는 아침에 읽고 하루 종일 지니고 다녔다. 오늘은 나도 같이 해.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화면 속에서, 전화 속에서 스스로를 만진 적이 없었다. 늘 그녀만 보게 했다. 늘 그녀만 소리 내게 했다.
열한 시. 전화.
"받았네."
"네, 대디."
"엎드렸어?"
"네."
"베개는?"
"머리 밑에 하나, 배 밑에 하나."
"좋아." 그는 잠깐 말이 없었다. 숨소리. 옷 스치는 소리. "지금 나 어디 있는지 알아?"
"침대…?"
"네가 자던 쪽에. 네 베개에 얼굴 대고 있어. 아직 네 냄새 나."
예나는 눈을 감았다. 배 밑의 베개가 아랫배를 눌렀다. 그것만으로 몸이 반응했다.
"셋째 날 참았어?"
"네."
"오늘 참기 힘들었어?"
"아침에 봉투 열었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하루 종일 뭐."
"…젖어 있었어요."
낮은 소리가 났다. 웃음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손 내려. 배 밑에 베개 사이로."
그녀는 손을 밀어 넣었다. 손등이 베개에 눌리고 손바닥이 자기 몸에 닿았다.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소리가 났다.
"말해. 어떤지."
"…뜨거워요. 다 젖었어요. 대디."
"안에 넣어. 두 개."
그녀는 넣었다. 엎드린 자세에서는 각도가 달랐다. 손목이 불편하고 그래서 더 절박했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가 그가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들었다.
"나도 지금 잡고 있어."
그 말에 그녀의 안쪽이 저절로 조여들었다.
"네 소리 듣고 있어. 네가 어제 문자 보낸 거 읽고 아침부터 이랬어. 미웠다고 했지. 나도 미웠어. 네가 여기 없는 게."
그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자기 소리를 죽였다. 그가 숨을 뱉는 리듬. 손이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 죽이지 마."
"대디 소리 듣고 싶어서…"
"둘 다 내. 허리 움직여. 베개에 문질러. 손이랑 같이."
그녀는 허리를 움직였다. 배 밑의 베개에 대고 아래를 문지르면서 안에 넣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이 갑자기 좋았다. 보지 못하니까 그녀는 더 아무렇게나 움직일 수 있었고, 그가 그것을 목소리로만 상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뜨겁게 했다.
"어때. 말해."
"좋아요. 대디, 좋아요, 너무―"
"뭐가 좋아. 제대로 말해."
"손가락이… 안에… 베개에 문지르는 거… 대디 숨소리… 다요, 다 좋아요…"
"가까워?"
"네, 네―"
"기다려. 나 아직."
그녀는 기다렸다. 손을 멈추지 않고 속도만 늦췄다. 그의 숨소리가 점점 짧아졌다. 그가 이를 물고 내는 소리. 그녀가 서울의 그 침대에서 몇 번 들었던 소리. 그가 절정 직전에 내는 소리를 그녀는 알았다.
"예나."
"네, 네, 대디―"
"지금. 같이."
그녀는 손가락을 깊이 밀어 넣고 허리를 세게 눌렀다. 몸이 뒤집히듯이 왔다. 소리가 터졌고, 거의 동시에 폰에서 그의 소리가 났다. 낮고 길게 끊어지는 신음. 그녀의 이름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붙잡고 두 번 더 떨었다.
한참을 둘 다 말이 없었다. 트램 지나가는 소리. 그의 숨이 천천히 고르게 돌아왔다.
"…손 빼. 씻고 와. 기다릴게."
그녀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채로 욕실에 갔다 왔다. 폰은 계속 켜져 있었다.
"대디."
"응."
"같이 하는 거 좋았어요."
"알아."
"…다음에도 해 주세요."
"다음은 내가 정해."
"네."
"5번 열어봤어?"
"안 열었어요."
"알아. 잘했어."
그녀는 웃었다. 그가 알 수 없다는 것을 둘 다 알았다. 그런데 그가 알았다.
"잘 자, 예나."
"잘 자요, 대디."
다섯째 날 밤, 짐을 다 싸고 나서 그녀는 마지막 봉투를 열었다.
5.
오늘은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자.
내일 인천에서 캐리어 열 때 세 순간 읽을게. 세 개보다 많이 써도 돼. 다 읽을게.
닷새 잘 버텼어. 내일 보자.
잘 자.
그녀는 봉투 다섯 개를 고무줄로 다시 묶어 캐리어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 옆에 세 순간이 적힌 메모지가 든 봉투를 넣었다. 잠은 금방 왔다. 마지막 밤은 늘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