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아침 여섯 시의 밤
두 번째 봉투는 두 달 뒤였다.
히스로에서 패딩턴으로 들어오는 기차 안에서 예나는 캐리어를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세 번 참았다. 봉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만 하고 싶었다. 없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과 있을 거야, 하는 마음이 번갈아 왔다.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 알 수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날 준서는 캐리어를 말없이 받아 열더니 은 체인이 그대로 그녀 목에 있는 것을 보고 아주 잠깐 웃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편지에 대해 그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고, 예나도 묻지 않았다. 다만 그날 밤 그는 그녀에게 닷새 동안 허락하지 않았던 것을 한 번에 돌려주었고, 그녀는 그의 침대에서 자기 목소리가 갈라지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러니까 묻지 않는 것이 규칙이 되었다. 봉투는 있을 때 있고, 없을 때 없는 것이어야 했다. 그가 넣고 싶을 때 넣는 것.
봉투는 있었다.
런던. 방에 도착해서 열 것.
같은 회색, 같은 남색 잉크. 다만 이번엔 두 장이었다.
예나에게.
런던은 지금 밤 아홉 시가 넘으면 해가 져. 그 시간이면 나는 아침 여섯 시. 내가 새벽에 일어나는 건 너 때문이니까, 시간을 맞춰.
첫날은 짐 풀고 자. 오늘은 만지지 마. 이건 알잖아.
둘째 날 밤 아홉 시, 영상통화를 걸게. 그 전에 준비해 둘 것.
노트북을 침대 발치의 의자 위에. 카메라가 침대 전체를 잡도록. 조명은 침대 옆 램프 하나만. 이불은 개어서 바닥에 두고. 옷은 다 벗어. 목에 있는 것만 남기고. 손은 내가 말하기 전까지 무릎 위.
그리고 답장을 써. 끝난 뒤에, 호텔 메모지에. 봉투에 넣어서 캐리어 안쪽 주머니에 넣어 와. 네가 돌아오면 내가 캐리어를 열 때 읽을게.
잘 자.
— 준서
두 번째 장은 짧았다.
추신. 첫날 밤은 진짜로 자. 내가 못 보는 데서 하는 건 하는 게 아니야. 나한테 보여주지 않는 건 네 것이 아니야.
예나는 첫날 밤을 그의 말대로 통과했다. 쉽지 않았다. 둘째 날은 회의가 길었고, 사우스뱅크의 전시장을 두 번 돌았고, 호텔에 돌아온 것이 여덟 시였다. 그녀는 샤워를 했고, 시키는 대로 노트북을 의자 위에 놓았고, 램프 하나만 남기고 불을 다 꺼서 방이 갑자기 좁아진 것 같았고, 이불을 개어 바닥에 두었다.
옷을 벗었다. 은 원판이 쇄골 사이에 있었다. 침대 위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두었더니 자기가 얼마나 벌거벗었는지 갑자기 실감이 났다. 카메라는 아직 꺼져 있는데, 그가 아직 보고 있지 않은데, 그가 볼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미 다리 사이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홉 시 정각. 화면에 그가 나타났다.
방금 일어난 얼굴이었다. 머리는 눌려 있고, 상의는 입지 않았고, 서울의 새벽빛이 그의 왼쪽 어깨에만 파랗게 걸려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화면을 보았다. 오래. 예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카메라를 보다가, 그를 보다가, 무릎 위의 자기 손을 보았다.
"예쁘다."
그가 말했다.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손 그대로 두고, 다리 벌려."
그녀는 벌렸다.
"더."
무릎이 시트 위에서 벌어지는 감각. 램프 불빛이 허벅지 안쪽으로 떨어졌다. 그가 화면 너머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손, 배 위에. 천천히 내려."
그녀는 손바닥을 배에 얹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천천히 내리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았다. 그는 천천히, 라는 말을 한 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손끝이 아랫배를 지나 그 아래 부드러운 곳에 닿았다.
"안에는 아직 안 돼. 겉만."
손가락이 갈라진 틈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미 미끄러웠다. 어제 하루를 참았고, 오늘 하루를 그를 기다리며 보냈으니 당연했다. 예민한 부분에 손끝이 스치자 몸이 저절로 움찔했고, 그 움찔함을 그가 봤을 것이다.
"젖었어?"
"…네."
"보여 줘."
그녀는 손을 들어 카메라 쪽으로 향했다. 램프 불빛에 손가락 끝이 젖어 반짝였다. 화면 속에서 그가 턱을 조금 들었다. 그가 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 작은 움직임이 그녀 안에서 무언가를 더 뜨겁게 했다.
"다시. 손가락 하나. 천천히 넣어."
가운뎃손가락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따뜻하고 좁고, 그를 두 달 동안 알아 온 몸은 손가락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즉시 말했다. 그녀는 소리를 냈다. 작게.
"소리 내. 여기서 들려."
"대디…"
"두 개."
두 번째 손가락. 안쪽 벽이 조여드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그녀는 손목을 움직였다. 천천히, 그가 말한 속도로. 램프 하나뿐인 방에서 자기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엄지로 위쪽. 동시에."
엄지가 예민한 돌기 위에 얹혔다. 원을 그렸다. 안에 든 두 손가락과 함께. 허리가 시트에서 떠올랐다. 그가 화면 너머에서 낮게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멈춰."
그녀는 멈췄다. 손이 그 자리에 있는 채로. 온몸이 그 손 하나에 매달려 있었다.
"대디, 제발―"
"누구 거야?"
"대디 거요."
"그러면 대디가 하라는 대로 해. 다시. 아까보다 느리게."
느리게. 그것이 더 지독했다. 절정이 바로 저기 있는데 그 앞에서 걷는 속도로 걸으라는 것. 그녀는 이를 물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온 것이 손바닥까지 적셨다.
"멈춰."
두 번째. 그녀는 소리를 냈다. 거의 울음 같았다.
"울지 마. 아직."
"못 참아요, 대디, 진짜―"
"참을 수 있어. 어제도 참았잖아."
그는 잠깐 말이 없었다. 화면 속의 그는 이불 밖으로 나온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스스로 참고 있는 것처럼. 그 얼굴을 보고 예나는 알았다. 그도 지금 서울의 새벽에서 그녀와 똑같이 뜨겁다는 것을.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그의 방식이라는 것을.
"지금."
그가 말했다.
"나 보면서. 눈 감지 말고."
그녀는 그를 보았다. 손이 움직였다. 이번엔 속도를 그가 정하지 않았다. 몇 초 만에 왔다. 허리가 들리고 허벅지가 떨리고 안쪽이 손가락을 세게 조였다. 소리가 목에서 터져 나왔고 그녀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베개에 묻으려 했다.
"입 떼. 듣고 싶어."
그녀는 뗐다. 소리가 방을 채웠다. 서울의 새벽까지 갔다.
한참 뒤에 숨이 돌아왔다. 예나는 시트 위에 늘어져 화면을 보았다. 그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한참을.
"잘했어."
그 두 마디에 눈이 뜨끈해졌다.
"이불 덮어. 물 마셔. 다 마시는 거 볼 거야."
그녀는 바닥의 이불을 끌어올려 덮고 침대 옆의 물을 마셨다. 그는 그녀가 병을 내려놓는 것까지 보았다.
"답장 써. 지금 느끼는 거 그대로. 나 출근해야 해."
"…네."
"예나."
"네."
"잘 자."
화면이 꺼졌다. 예나는 호텔 메모지를 꺼냈다. 상단에 호텔 로고가 박힌 작은 종이. 볼펜이 잘 나오지 않아서 두 번 그어야 했다.
대디에게.
런던의 둘째 날 밤 아홉 시.
대디가 세 번 멈추라고 했을 때, 두 번째까지는 미웠고 세 번째엔 미워할 힘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에 제가 여기 혼자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안 났어요. 방에 대디가 있는 것 같았어요. 의자 위에, 램프 옆에.
다음엔 더 오래 멈추라고 하셔도 돼요. 아니, 그건 취소할게요.
목걸이는 안 벗었어요.
잘 자요, 대디. 거기는 아침이지만.
— 예나
그녀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봉투에 넣고, 캐리어 안쪽 주머니의 지퍼를 잠갔다. 그가 이것을 읽을 때 자기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했다. 아마 그의 옆에. 캐리어를 열고 있는 그의 옆에 서서, 그가 읽는 동안 얼굴을 붉히고 있겠지.
그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날을 기다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