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밴드
재훈은 아홉 시 반에 계단을 내려갔다.
열여섯 개. 그는 세었다. 세는 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나무를 재고, 각도를 재고, 시간을 재는 사람. 철문 앞에서 그는 잠깐 멈춰 자기 손을 봤다. 오늘 아침까지 오일을 먹인 손. 손톱 밑에 아직 갈색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닦지 않고 왔다. 그것이 그가 누구인지였다.
문이 안에서 열렸다.
"이재훈 씨."
하연이었다. 세령이 말한 것보다 작았고, 말한 것보다 눈이 깊었다. 그녀는 그를 안으로 들이지 않고 문 안쪽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사물함이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휴대폰."
그는 넣었다. 그녀가 열쇠를 건넸다.
"앉으세요."
그는 앉았다. 하연은 서서 말했다. 십 분 동안. 세령이 거실 마루에 무릎을 꿇고 말한 것과 같은 규칙들. 그러나 하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달랐다. 그것은 낭독이 아니라 경고였다. 이 아래에서 누군가가 다치면 그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아는 사람의 목소리.
"질문."
"없습니다."
"하나 더. 오늘 이 방에서 이재훈 씨는 제 손님입니다. 누가 물으면 그렇게 말하세요. 그 이상은 말하지 마세요. 세령이하고 아는 사이라는 것도."
"네."
"그리고 세령이가 씬을 시작하면, 그 아이한테서 눈 떼지 마세요."
그가 하연을 봤다.
"보러 왔잖아요. 그럼 봐요. 제대로. 반쯤 보고 나가면 그 아이가 평생 신경 쓸 거예요."
그녀는 서랍에서 노란 밴드를 꺼내 그의 손목에 직접 감았다. 손가락 하나 여유.
"들어가세요."
방은 그가 상상한 것과 달랐다. 더 어두웠고 더 조용했다. 붉은 조명, 검은 벽, 나무 바닥. 그는 나무를 봤다. 오래된 소나무. 오일이 아니라 왁스로 마감했다. 그런 것을 보는 자신이 우스웠다. 사람들은 서른 명쯤. 옷은 다양했다. 가죽, 라텍스, 슈트, 그냥 검은 셔츠. 그는 검은 셔츠였다. 아무도 그를 두 번 보지 않았다.
그는 벽을 찾았다. 십자가에서 멀리, 그러나 십자가가 보이는 벽. 기댔다. 기다렸다.
열 시 십 분. 소리가 바뀌었다.
그는 그것을 들었다. 세령이 말한 것. 방이 반 박자 낮아지는 순간. 그는 문을 봤다.
그녀가 들어왔다.
검은 실크. 어깨가 드러난. 가죽 스커트. 부츠. 그리고 머리 위에 얇은 검은 선. 그는 그것을 처음 봤다. 이 년 동안 상자 안에 있던 것. 그가 만든 상자 안에. 그것은 왕관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늘었다. 그러나 방 안의 서른 명이 그것을 향해 고개를 조금씩 숙이는 것을 보고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녀는 그를 보지 않았다.
방을 가로질러 걸었다. 사람들이 갈라졌다. 그녀의 걸음은 그가 아는 걸음이 아니었다. 문래동 부엌에서 그의 티셔츠를 입고 커피를 들고 걷는 걸음이 아니었다. 이것은 바닥이 자기 것인 사람의 걸음이었다.
하연이 그녀에게 뭔가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십자가 앞. 청년이 서 있었다. 윤. 재훈은 그 이름을 여러 번 들었다. 마르고, 어리고, 그녀를 보는 눈이 젖어 있는.
"고개 들어."
그녀의 목소리. 그는 그 목소리를 몰랐다. 낮고, 평평하고, 끝이 떨어지는.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 이것은 날씨였다.
"색깔."
"초록이요."
"한계."
"지난달하고 같아요."
"세이프워드."
"빨강. 노랑."
"오늘은 로프 먼저야. 옷."
윤이 옷을 벗었다. 재훈은 자기가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윤의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세령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테이블에서 검붉은 로프 한 다발을 들었다. 마 로프. 그는 재질을 알았다. 그것을 푸는 그녀의 손이 빨랐다. 그가 본 적 없는 속도로.
그녀는 윤의 뒤로 가서 그의 가슴에 로프를 감기 시작했다. 위, 아래, 뒤에서 매듭, 다시 앞으로. 가슴 위와 아래 두 줄. 겨드랑이 아래로 지나 어깨 뒤로. 그녀의 손은 멈추지 않았고 한 번도 더듬지 않았다. 매듭마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로프 아래로 밀어 넣어 여유를 확인했다. 윤의 손목을 뒤로 모아 묶었다. 맥. 그는 그녀가 맥을 짚는 것을 봤다. 그녀가 말했던 것. 그가 시킨 것이 아니라 그녀가 이미 하던 것.
가슴 하네스가 완성됐다. 윤은 로프에 감긴 채 십자가로 걸어가 등을 붙였다. 세령은 그의 묶인 손목을 십자가 뒤 고리에 걸고, 발목을 커프로 채웠다.
그리고 물러섰다. 봤다.
재훈은 그녀의 얼굴을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안쪽에 있었다. 그녀가 그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 때의 반대. 완전히 닫힌, 그래서 완전히 안전한 얼굴.
플로거.
첫 타. 소리가 방을 가로질러 그의 가슴에 닿았다. 윤의 피부가 로프 사이로 붉어졌다. 세령은 리듬을 만들었다. 재훈은 그것이 리듬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패질과 같았다. 힘이 아니라 반복. 같은 각도, 같은 속도, 살이 열릴 때까지. 그는 세었다. 스물, 서른. 서른에 그녀가 멈추고 손바닥을 윤의 가슴에 얹었다. 온도. 그가 나무 표면을 확인하듯이.
두 번째 플로거. 무거운 소리. 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달라졌다. 재훈은 자기 손이 주먹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풀리지 않았다. 그것은 질투가 아니었다. 그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정확한지. 윤의 소리가 커질 때 그녀의 팔이 아주 조금 느려지는 것을. 그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못 봤을 만큼.
"부끄러워?"
"…네."
"누가 보고 있는지 봐."
윤의 눈이 방을 훔쳤다. 그리고 그 눈이 재훈을 지나갔다. 반 초. 재훈은 움직이지 않았다. 윤은 그를 몰랐다. 그냥 노랑 밴드 하나.
세령은 장갑을 꼈다. 재훈은 그 장갑을 알았다. 그녀가 집에 가져와 씻어서 말리는 것을 봤다. 그 장갑이 윤의 성기를 잡았다. 방이 숨을 멈췄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잡고만 있었다. 윤의 온몸이 앞으로 밀려나왔다. 십자가가 그를 붙잡았다.
"움직이지 마."
한 번. 멈춤. 두 번. 멈춤.
재훈은 자기 목이 마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그에게 말한 것을 그는 보고 있었다. 그러나 말과 보는 것은 달랐다. 말은 그녀가 그의 앞에 무릎 꿇고 한 것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서서 하는 것이었다. 그 둘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고, 아는 것과 보는 것이 달랐다.
열 번째에 윤이 울었다.
"사정하고 싶어?"
"네… 네…"
"안 돼."
그녀가 손을 뗐다. 그리고 테이블로 걸어가 물을 마셨다. 등을 돌린 채로. 방을 향해. 재훈은 그녀의 등을 봤다. 어깨뼈. 그 등을 그는 셀 수 없이 만졌다. 그 등이 지금 서른 명에게 보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른 명 중 아무도 그 등이 오크 식탁 위에 눕혀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그는 알았다. 자기가 왜 왔는지.
크롭. 스물. 윤의 숫자가 부서졌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그를 잡았고,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이제 해."
윤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로프가 살에 파고들었다. 그의 것이 그녀의 장갑 위로, 바닥으로 쏟아졌다. 방은 조용했다. 웃지 않음. 재훈은 그 규칙이 무엇인지 이제 이해했다. 그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방이 서 있는 기반이었다. 누군가가 무너질 때 그 무너짐이 안전하다는 것.
그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떨림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녀가 장갑을 벗고 윤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을 때.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반 초.
그녀의 눈이 방을 가로질러 그를 찾았다. 벽. 노랑 밴드. 검은 셔츠. 손톱 밑의 갈색. 그 눈은 허락을 구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아는 눈이었다. 현관 매트 위에서 그가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리는 눈.
그리고 사라졌다. 그녀는 다시 윤을 보고 있었다. 커프를 풀고, 로프를 풀고, 담요를 감고, 물을 먹였다. 정확하게.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재훈은 그 반 초를 봤다.
그리고 방 반대편 벽에서, 잔을 든 남자 하나도 봤다. 마흔쯤. 좋은 슈트. 그의 눈은 윤도 세령도 아닌, 세령의 눈이 갔던 곳을 따라가고 있었다. 벽. 노랑 밴드. 검은 셔츠.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도현이 잔을 살짝 들었다. 재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것이 규칙이었다.
세령은 윤을 하연에게 넘기고 일어섰다. 그녀는 재훈을 다시 보지 않았다. 약속대로. 그러나 그녀는 알았다. 자기가 반 초 동안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 반 초를 누가 봤는지.
계획은 열한 시 사십 분에 그가 먼저 나가는 것이었다.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도현이 벽에서 몸을 뗐다. 잔을 든 채로, 서두르지 않고, 방을 가로질러 걸어왔다. 노랑 밴드를 찬 검은 셔츠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