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은 어디를 보는가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도현은 재훈 옆 벽에 기댔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 뻗지는 않았다. 그는 규칙을 아는 사람이었다. 규칙 안에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도.

"누구 손님?"

"주인 손님입니다."

"하연이."

"네."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재훈은 그를 봤다. 좋은 슈트. 좋은 시계. 손이 깨끗했다. 손톱이 정리되어 있었다.

"손님은 이름 없다고 들었습니다."

도현이 웃었다.

"규칙 잘 아시네. 처음인데."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아까 씬 어땠어요."

"…정확하더군요."

"정확하다." 도현이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렸다. "재밌는 표현이네. 대부분은 무섭다거나 아름답다거나 그런 말 하는데. 정확하다."

재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왕이 씬 끝나고 어디 봤는지 봤어요?"

"봤습니다."

"어디 봤어요?"

"이쪽."

"이쪽."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에 뭐가 있길래."

"벽이요."

도현은 오래 웃었다. 그리고 잔을 들어 마시고, 벽에서 몸을 뗐다.

"오늘 즐겁게 보세요. 손님."

그는 걸어갔다. 세령 쪽으로. 재훈은 자기 손이 다시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알았다. 풀었다.

세령은 하연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들 몇이 그녀 주위에 느슨하게 서 있었다. 씬 후의 시간. 그녀는 물을 들고 있었다. 도현이 다가가자 하연의 눈이 먼저 그를 봤다.

"여왕님."

"도현."

"멋진 씬이었어요. 윤이 저렇게 우는 건 여왕님 손에서만 봐요."

"고마워."

"그래서 말인데."

그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커졌다. 주위 사람들이 들을 만큼. 계산된 크기.

"오 주년에요. 사람들이 여왕님 헤드라인 씬 기대하잖아요. 그런데 다들 팔 년 동안 같은 걸 봤어요. 여왕님이 누굴 묶는 거. 이번엔 좀 다른 걸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거."

"여왕님이 십자가 쪽에 서는 거요."

주위가 조용해졌다. 웃음이 나오려다 멈췄다. 누가 먼저 웃을지 아무도 정하지 못했다.

세령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싫어."

"에이. 오 주년인데. 한 번쯤—"

"싫다고 했어."

"저랑 하면 안전하다는 건 여왕님도 알잖아요. 이 방에서 제 손 의심하는 사람 없어요."

"네 손을 의심하는 게 아니야. 네 질문을 의심하는 거야."

도현이 한 걸음 다가섰다.

"질문이 뭐가 문제예요. 여왕님도 사람인데. 팔 년 동안 한 번도 안 궁금했어요? 반대편은 어떤지?"

그리고 그는 손을 뻗었다.

가볍게. 웃으면서. 그녀의 손목에. 마치 친구가 하는 것처럼. 손가락이 그녀의 손목을 감았다. 일 초.

방이 얼어붙었다.

세령은 그의 손을 봤다. 자기 손목에 있는.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봤다.

"손 떼."

목소리가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지금."

도현의 손가락이 풀렸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웃음이 얼굴에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벽에서 붉은 밴드 하나가 움직여 이미 도현의 두 걸음 뒤에 서 있었다. 하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령이 처리하게 두었다.

"이 방에서."

세령이 말했다. 방 전체에 들리도록. 소리를 높이지 않고, 그냥 모든 사람이 듣게.

"내 몸에 허락 없이 손을 댄 사람은 팔 년 동안 없었어. 네가 첫 번째야."

도현이 입을 열었다.

"자랑스러워?"

그는 닫았다.

"네가 이 방에서 좋은 손이라고 불리는 건 네가 묻고 나서 만지는 사람이라서야. 방금 넌 묻지 않았어. 그럼 너는 뭐야."

"…농담이었어요."

"이 방에 농담이 어디 있어. 웃지 않음. 첫 번째 규칙이야. 네가 팔 년 동안 지킨."

도현은 물러섰다. 두 걸음. 붉은 밴드가 그의 옆에 섰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도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는 하연을 봤다. 세령을 봤다. 그리고 벽을 봤다. 노랑 밴드. 검은 셔츠. 그 남자의 손이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그는 그것을 봤고, 그것이 그가 원했던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방이 다시 숨을 쉬었다. 낮게, 조심스럽게. 세령은 물을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의 손이 흔들리는 것을 본 적 없었다. 그녀는 하연에게 뭔가 말하고 방 뒤쪽 복도로 걸어갔다. 화장실과 창고와 비상구가 있는 복도. 조명이 없는.

재훈은 벽에서 몸을 뗐다.

그것은 규칙 위반이었다. 그는 알았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그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손이 잔을 내려놓을 때 아주 조금, 그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못 봤을 만큼, 떨리는 것을 봤다.

복도는 어두웠다. 그녀는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왕관은 아직 머리에.

그가 다가가는 것을 그녀는 소리로 알았다. 눈을 뜨지 않고.

"안 돼."

"알아."

"규칙이야."

"알아."

그는 그녀 앞에 섰다. 손을 뻗어 그녀의 뒷머리를 잡았다. 머리카락을. 왕관 바로 아래를. 세게. 그녀의 얼굴이 들렸다. 눈을 떴다.

"누구 거야."

"…네 거."

"그 남자 손이 여기 있었을 때."

"네 거였어."

"여기서 무릎 꿇고 싶어?"

"응."

"안 돼."

그녀의 입에서 소리가 났다. 항의도 아니고 안도도 아닌.

"여기서는 안 돼. 여기서 넌 여왕이야. 집에 가서."

"…응."

그는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세게. 그녀의 머리가 벽에 닿았다. 왕관이 벽돌에 긁히는 소리.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가죽 스커트 아래로 들어갔다. 허벅지. 스타킹 끝. 그리고 그 위. 그녀는 젖어 있었다. 흘러넘칠 만큼.

"이거."

그가 손가락을 그녀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윤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너."

"그 남자 때문은 아니고."

"아니… 절대…"

"그럼 뭐 때문에."

"네가… 벽에서 보고 있어서. 내가 저기 서 있는 동안. 내가 저 아이 잡고 있는 동안. 내가 널 볼 수 없다는 게…"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물었다. 소리를 죽이려고. 복도 끝에서 방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십 미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직.

"저 남자가 네 손목 잡았을 때."

"응…"

"나는 저 남자 손 부러뜨리고 싶었어."

"알아… 네 손 봤어…"

"그런데 넌 네가 처리했어."

"내 방이니까."

"그래."

그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그녀는 벽을 붙잡았다. 왕관이 기울었다. 그녀는 그것을 바로잡지 않았다.

"가고 싶어?"

"응…"

"여기서? 왕관 쓴 채로?"

"…응."

"안 돼."

그는 손을 뺐다. 그녀는 무너지듯 벽에 기댔다. 숨이 거칠었다. 그는 그녀의 왕관을 바로잡았다. 손끝으로. 그가 만든 상자에 든 것을 이 년 만에 처음 만졌다. 차갑고 가벼웠다.

"집에서. 나한테. 이거 벗고."

"…응."

발소리.

둘은 떨어졌다. 재훈은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벽에 기댔다. 복도 끝에서 실루엣. 담요를 어깨에 걸친 마른 몸.

윤이었다.

그는 복도 입구에 서서 둘을 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왕이 벽에 기대 있는 것. 노랑 밴드가 한 걸음 옆에 서 있는 것. 여왕의 숨이 아직 고르지 않은 것. 그는 이 방에서 일 년을 그녀의 손 아래에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를 몰랐을 리 없다.

"…누나."

세령은 몸을 세웠다. 목소리가 돌아왔다.

"응."

"화장실… 가려고요."

"가."

윤은 둘 사이를 지나갔다. 재훈을 보지 않았다. 세령도 보지 않았다. 화장실 문이 닫혔다.

세령은 재훈을 봤다.

"가."

"…응."

"열한 시 사십 분이야. 계획대로."

그는 갔다. 그녀는 복도에 남았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그녀는 벽에서 몸을 떼고 옷을 정리하고 왕관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하연이 그녀를 봤다. 하연은 물었다. 눈으로만.

세령은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물함 방에서 재훈은 노랑 밴드를 풀어 하연 대신 서 있던 붉은 밴드에게 건넸다. 계단을 올라갔다. 열여섯 개. 지상은 차가웠다. 그는 손을 봤다. 손톱 밑의 갈색. 그리고 손가락 끝에 아직 남은 그녀.

그는 택시를 잡지 않았다. 걸었다. 문래동까지는 두 시간이었다. 그는 두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