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씌우는 밤

윤은 낮에 보면 다른 사람이었다.

성수동 카페. 오후 두 시. 그는 후드티를 입고 노트북 가방을 메고 왔다. 그래픽 디자이너. 스물여덟. 세령은 그의 본명을 알고 있었지만 부르지 않았다. 그도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다. 지하에서 부르던 것과 같은 말이 지상에서는 다르게 들렸다.

"누나, 도현 형이 이상한 말 해요."

그는 아메리카노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손목에 아직 로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지난주.

"뭐라고."

"누나가… 밖에서 어떤 남자 발밑에 있다고. 검은 문에서는 여왕이지만 집에 가면 무릎 꿇는다고. 그날 그 노랑 밴드가 그 사람이라고."

세령은 커피를 들었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누구한테."

"몇 명한테요. 웃으면서. 농담처럼. 그런데 형은 농담을 그렇게 안 해요. 형이 농담하면 사람들이 웃고 끝나는데, 이건 사람들이 웃고 나서 서로 봐요."

"윤."

"네."

"너는 그날 복도에서 뭘 봤어."

윤은 컵을 내려놓았다. 오래 침묵했다.

"누나가 벽에 기대 있는 거. 그 사람이 옆에 있는 거. 누나 숨소리."

"그리고."

"그리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무한테도. 형한테도."

"알아."

"…알아요?"

"네가 말했으면 도현이 그렇게 말 안 해. 도현은 복도 얘기를 안 하잖아. 그건 도현이 못 본 거야. 도현이 본 건 내가 씬 끝나고 어디를 봤는지야. 그것만으로 저렇게 말하는 거야."

윤이 고개를 숙였다.

"누나."

"응."

"진짜예요?"

세령은 그를 봤다. 그는 그녀의 손 아래에서 일 년을 보냈다. 그녀가 그의 몸을 지도처럼 외운 것처럼, 그도 그녀의 무언가를 외웠을 것이다.

"진짜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누나가 그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누나한테도 그런 자리가 있다는 게."

세령은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윤."

"네."

"고마워."

하연의 전화는 그 밤에 왔다.

"소문이 돌아."

"들었어. 윤이 말해줬어."

"세령. 내 말 잘 들어. 네가 서브라는 거, 그 자체는 아무 문제 없어. 알지? 이 방에 스위치가 몇 명인지 알잖아. 나도 스위치야. 문제는 그게 아니야."

"알아."

"문제는 도현 같은 놈들이 그걸 틈으로 본다는 거야. 여왕이 무릎 꿇는다. 그러면 여왕도 꿇릴 수 있다. 그 논리로 가는 거야. 그리고 그놈이 네 손목 잡은 게 바로 그 논리였어. 네가 누군가에게 열려 있다면 자기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는 거."

"그건 논리가 아니야."

"놈들한테는 논리야. 그리고 세령, 그게 네 방을 위험하게 해. 네 밑에서 무너지는 아이들이 안전한 이유는 네가 아무한테도 안 열려 있다고 다들 믿어서야. 그 믿음이 흔들리면 그 아이들이 흔들려."

세령은 창밖을 봤다. 문래동 밤. 철공소 골목.

"그럼 어떻게 해."

"두 가지야. 하나는 부정하는 거. 그 남자는 그냥 내 손님이었다고 하고 넘어가는 거. 도현은 증거가 없어. 소문은 죽어."

"다른 하나는."

"…모르겠어. 아직. 그런데 세령, 네가 부정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벽이야. 그거 알고 골라."

전화를 끊고 세령은 한참 서 있었다. 재훈이 위층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손 씻는 소리. 그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하연 씨?"

"응."

"소문."

"…알았어?"

"윤이라는 아이가 목공소에 왔어. 오늘 낮에. 너 만나고 나서."

세령이 돌아봤다.

"주소를 어떻게—"

"몰라. 어떻게든 알았겠지. 문 열고 들어와서 상자 하나 주문했어. 이만한 크기. 그러고 갔어. 이름은 안 물었어. 그런데 손목에 자국이 있었어."

세령은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었지만.

"그 아이 나한테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그냥 상자 주문했어. 그런데 나가면서 이랬어. 잘 만들어달라고. 중요한 걸 넣을 거라고."

세령은 식탁에 앉았다. 금 간 컵에 연필 세 자루가 꽂혀 있었다.

"하연이 두 가지래. 부정하거나. 아니면 몰라."

"뭐가 몰라."

"다른 하나가 뭔지."

재훈은 그녀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 그녀를 봤다.

"왕관 가져와."

세령이 그를 봤다.

"뭐?"

"상자. 열어서. 가져와."

"…왜."

"써봐. 여기서. 나한테."

세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령아. 나는 그 방에서 네가 그걸 쓴 걸 봤어. 그런데 그 밑에 있어본 적은 없어. 서른 명이 왜 고개를 숙이는지 나는 벽에서 봤지, 느껴본 건 아니야. 도현이 왜 그렇게 그걸 뒤집고 싶어하는지도. 나는 네 반쪽을 이 년 동안 봤고, 나머지 반쪽을 한 번 벽에서 봤어. 한 번은 밑에서 보고 싶어."

"…나는 너한테 그걸 못 해."

"왜."

"네가 내 자리니까. 네 앞에서 내가 그걸 쓰면 내 자리가 없어져."

"한 번만. 그리고 자리는 안 없어져. 자리는 내가 정해. 내가 오늘 밤에 잠깐 자리를 비우는 거야."

세령은 오래 그를 봤다. 그리고 일어났다. 현관. 상자. 뚜껑.

그녀는 왕관을 들고 부엌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것을 봤다. 두 번째로. 이 년 만에 그의 부엌에서, 그가 만든 상자에서 나온 것을.

그녀는 그것을 머리에 얹지 않았다.

"일어나."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아직 그녀의 것이었다.

"옷 벗어."

그는 일어나 옷을 벗었다. 작업복 셔츠. 청바지. 속옷. 그는 그녀 앞에 알몸으로 섰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를 그렇게 봤다. 그녀가 서 있고 그가 서 있고, 그녀가 옷을 입고 있고 그가 아닌 상태로. 그의 몸. 목공의 몸. 어깨가 넓고 팔이 두껍고 허리는 마른. 십 년 넘게 나무를 든 몸. 그의 것은 아직 서지 않았다. 아직.

그녀는 왕관을 썼다.

거울 없이. 손끝으로. 팔 년.

그리고 그녀는 그를 봤다.

그는 그것을 느꼈다. 그녀의 눈이 바뀌는 것을. 문래동 부엌이 아니라 한남동 지하가 되는 것을. 그녀의 어깨가 뒤로 가고 턱이 아주 조금 들리고, 그리고 방이, 그가 만든 방이, 그녀의 것이 되는 것을.

"무릎."

그는 무릎을 꿇었다. 오크 마루. 그가 깐.

그녀는 그의 주위를 돌았다. 천천히. 부츠가 아니라 맨발이었지만 소리가 났다. 그녀는 그의 뒤에 서서 손가락으로 그의 목뒤를 훑었다.

"고개 숙여."

그가 숙였다.

"색깔."

"…초록."

"한계."

그는 잠시 생각했다.

"얼굴. 자국 남는 거. 나머지는… 모르겠어. 안 해봐서."

"그럼 노랑 자주 써. 모르는 건 노랑이야."

"응."

"세이프워드."

"빨강."

그녀는 그의 앞으로 왔다. 그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었다. 그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왕관. 얇은 검은 선. 그 아래 그가 아는 눈이 있었는데 지금은 알 수 없었다.

"네가 그 방에서 본 거 있지. 내가 윤 손목 묶을 때."

"응."

"손 뒤로."

그는 손을 뒤로 모았다. 그녀는 부엌 서랍에서 그가 쓰는 마 로프 한 다발을 꺼냈다. 목공용. 그녀의 것보다 거칠었다. 그녀는 그것을 그의 손목에 감았다. 빠르게. 정확하게. 그는 그 속도를 벽에서 봤다. 지금 그것이 자기 손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손가락 두 개. 맥.

"뛰네."

"…응."

"빨라."

"응."

"왜."

"…모르겠어."

"알잖아."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것이 서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는 것도 기술이었다.

그녀는 그를 일으켜 식탁으로 데려갔다. 그 식탁. 그녀가 셀 수 없이 눕혀졌던. 그녀는 그를 그 위에 앉혔다. 묶인 손이 뒤로. 그녀는 그의 무릎을 벌렸다.

"봐."

그가 봤다.

"네 몸이 지금 뭐라고 하는지 봐."

그의 것은 완전히 서 있었다. 그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그녀를 봤다.

"부끄러워?"

"…조금."

"그게 첫 번째야. 부끄러운 채로 있는 거."

그녀는 그의 허벅지 안쪽을 손톱으로 긁었다. 위에서 아래로. 그의 배가 움푹 들어갔다. 그녀는 크롭을 가져오지 않았다. 부엌에 그런 것은 없었다. 대신 그녀는 나무 주걱을 들었다. 그가 만든 것. 그것으로 그의 허벅지 안쪽을 쳤다. 가볍게. 소리가 났다. 그의 입에서도.

"세어."

"하나."

다른 쪽. "둘." 젖꼭지. 그가 소리를 냈다. "셋…" 열까지. 그의 것은 그 사이 한 번도 내려가지 않았다. 끝에서 투명한 것이 실처럼 늘어졌다.

그녀는 그것을 잡았다.

그냥 잡았다. 움직이지 않고.

그의 온몸이 앞으로 밀려나왔다. 묶인 손이 뒤에서 그를 붙잡았다. 그녀는 그의 눈을 보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그는 이를 악물었다.

한 번. 멈춤. 두 번. 멈춤. 그녀는 그가 윤에게서 본 것을 그에게 했다. 열 번. 여덟 번째에 그의 눈이 젖었다. 그는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사정하고 싶어?"

"…응."

"안 돼."

그녀가 손을 뗐다.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를 그녀는 처음 들었다. 그가 그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그는 이 년 동안 그녀 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너지는 소리를 그녀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었고, 그리고 무언가를 느꼈다. 힘. 그녀가 그에게 말한 것. 이 사람이 나 때문에 안전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가 벽에서 본 것을 그녀가 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옷을 벗었다. 서서. 그가 보는 앞에서. 왕관은 벗지 않았다. 그리고 식탁 위로 올라가 그의 무릎에 앉았다. 그의 것을 잡고, 자기 입구에 대고, 그리고 천천히 앉았다.

그가 소리를 냈다. 그녀도.

"움직이지 마. 내가 해."

그녀가 움직였다. 그를 안에 두고. 그의 묶인 손은 뒤에 있었고 그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잡고 그를 올려다보게 했다. 왕관. 그의 눈은 그것을 보고 있었다.

"뭐가 보여."

"…네가."

"어떤."

"모르겠어. 아는 너 같은데… 모르는…"

"둘 다야."

그녀가 속도를 올렸다. 그의 눈이 감기려 했다.

"떠."

그가 떴다. 그녀는 그의 얼굴이 무너지는 것을 봤다. 그가 그녀의 것을 셀 수 없이 봤듯이. 그의 이마에 땀. 그의 턱이 떨리는 것. 이 년 동안 그가 그녀 앞에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것.

"가고 싶어?"

"응… 응…"

"누구한테 물어야 해."

"…너한테."

"뭐라고 불러야 해."

그는 그녀를 봤다. 왕관. 그리고 그 아래.

"…세령아."

그녀가 멈췄다.

그것은 답이 아니었다. 그 방에서라면. 여왕님, 이라고 해야 했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왕관 아래에서. 그녀가 그의 위에 앉아 그를 잡고 있는데.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그것이 그가 한 번도 그녀의 밑에 있지 않은 이유라는 것을. 그가 아무 반항도 없이 무릎을 꿇고 손을 묶이고 주걱에 맞고 열 번 멈춰지고 그녀 밑에 앉았는데, 그는 한 순간도 그녀의 밑에 있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왕관을 벗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의 가슴에 얹었다. 차가운 금속이 그의 젖은 피부 위에.

"이제 네가 해."

그녀는 손을 뒤로 뻗어 그의 손목 로프를 풀었다. 한 번에. 그녀가 묶는 것만큼 빠르게 풀었다. 그의 손이 자유로워지는 순간 그는 그녀를 뒤집었다. 식탁 위에. 왕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리가 났다. 둘 다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녀 위에 있었다. 이 년 동안의 자리. 그는 그녀 안으로 다시 들어왔고 이번엔 그가 움직였다. 세게. 그녀가 그에게 한 것을 돌려주는 것처럼.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갚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령아."

"응… 응…"

"네가 나한테 그거 씌우고 있을 때."

"응…"

"나는 너 봤어. 그 아래 너. 계속 있었어."

"…알아. 알아서 벗었어."

"거기 사람들은 그걸 못 봐?"

"못 봐. 아무도."

"그럼 그 사람들은 널 안 보는 거야."

그가 그녀를 데려갔다. 빠르게. 그녀는 그의 등에 손톱을 세우고 소리를 지르며 갔고, 그가 따라왔다. 그녀 안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바닥에 왕관이 있었다. 둘은 식탁 위에 누워 그것을 봤다.

"어땠어."

그녀가 물었다.

"무서웠어."

"…내가?"

"아니. 네가 나한테서 저걸 볼 수 있다는 게. 내가 저걸 원했다는 게. 그 열 번 동안."

세령은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왕관이 있던 자리. 차가웠던 자리가 이제 뜨거웠다.

"아냐. 넌 나한테 저걸 보여준 거야. 그건 완전히 다른 거야."

"뭐가 달라."

"도현은 나한테서 저걸 보고 싶어해. 자기가 뒤집고 싶어해. 내가 자기 밑에 있는 걸 보고 싶어해. 너는… 내가 저걸 쓴 걸 봤는데, 저걸 쓰고 있는 나를 봤어. 그래서 이름을 불렀어."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게 하연 씨가 말한 다른 하나야?"

세령은 왕관을 봤다. 바닥 위의 얇은 검은 선.

"모르겠어. 그런데 방향은 그쪽인 것 같아."

"어느 쪽."

"숨기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쪽."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그건 네 방을 위험하게 하는 거 아니야?"

"…모르겠어. 도현이 뒤집고 싶어하는 걸 내가 먼저 보여주면, 그건 뒤집는 게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따라 달라. 잘못 보여주면 하연 말이 맞아. 아이들이 흔들려."

"그럼 잘 보여줘."

"어떻게."

"모르겠어. 그런데 너는 정확한 사람이잖아. 그거 정확하게 하는 방법이 있을 거야."

세령은 오래 천장을 봤다. 그리고 일어나 왕관을 주웠다. 상자에 넣었다.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현관 매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알몸으로.

그가 식탁에서 내려와 다가왔다. 그녀의 뒷목에 손을 얹었다.

"세령아."

"응."

"이건 왜."

"자리 확인."

그는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안아 들었다.

"있어. 안 없어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