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은 문 앞에서 벗는다

검은 문은 밤 열 시에 열린다.

한남동 언덕길 끝, 간판 없는 건물의 지하. 계단을 열여섯 개 내려가면 나오는 철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검은 문이라고 불렀고, 그 이름이 그대로 이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초대받은 사람만. 휴대폰은 입구의 사물함에 잠가두고, 손목에는 색깔 밴드를 찬다. 초록은 열려 있다는 뜻. 노랑은 보기만 하겠다는 뜻. 빨강은 묻지도 말라는 뜻.

강세령은 계단 끝에서 잠시 멈췄다. 습기와 가죽 냄새, 그리고 누군가 미리 켜둔 향 냄새가 아래에서 올라왔다. 그녀는 가방에서 얇은 검은 금속 관을 꺼냈다. 왕관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소박한, 손가락 두 개 폭의 서클릿. 그것을 머리에 얹고, 거울도 없이 손끝으로 위치를 잡았다. 팔 년을 했으면 손이 기억한다.

문을 밀었다.

소리가 먼저 바뀌었다. 웅성거리던 방이 반 박자 낮아지는 순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았다. 여왕이 왔다.

"늦었네."

하연이 다가와 세령의 팔꿈치를 가볍게 잡았다. 마흔다섯, 이 방의 주인. 붉은 밴드를 찬 모니터 넷이 벽에 기대 서 있고, 그들의 시선은 하연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이 방에서 하연이 규칙이고, 세령은 그 규칙 위에 앉은 사람이었다.

"택시가 안 잡혔어."

"윤이 한 시간 전부터 기다려. 십자가 옆에서 물만 세 컵 마셨어."

세령은 방 안쪽을 보았다. 붉은 조명 아래 세워진 X자 십자가, 그 옆에 선 청년. 윤. 씬 네임이고, 본명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스물여덟, 마른 몸, 이 방에서 일 년째 세령의 손을 기다려온 아이. 그가 세령을 발견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시선을 맞추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배운 첫 번째 예의였다.

"오늘은 뭐 할 거야?"

"묻지 않기로 했잖아."

하연이 웃었다. "혹시 몰라서. 오늘 손님이 좀 많아."

세령은 대답하지 않고 방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어도 아무도 손을 뻗지 않았다. 그것이 왕관이 하는 일이다.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으면서 닿을 수 없게 만드는 것.

윤 앞에 섰다.

"고개 들어."

윤이 고개를 들었다. 붉은 빛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이미 젖어 있었다. 기다림만으로 이렇게 된다. 세령은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늦게 왔다.

"색깔."

"초록이요."

"오늘 한계는."

"지난달하고 같아요. 피 나는 거, 얼굴, 목 조르는 거. 그거 빼고 다."

"세이프워드."

"빨강. 멈춰달라고 할 때는 노랑."

"좋아. 옷 벗어."

윤은 셔츠부터 벗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르면 다시 입게 한다는 걸 알았다. 바지가 내려가고 속옷이 내려갔을 때 방 안의 누군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세령은 돌아보지 않았다. 윤의 성기는 이미 반쯤 서 있었다. 아직 손도 닿지 않았는데.

"십자가에."

윤이 뒤로 돌아 십자가에 등을 붙였다. 모니터 하나가 다가와 가죽 커프를 건넸고, 세령은 직접 윤의 손목을 묶었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여유. 손목 안쪽 맥박을 손끝으로 한 번 확인하고. 다음은 발목. 가죽이 조여질 때 윤의 배가 움푹 들어갔다.

세령은 한 걸음 물러섰다.

"봐."

윤이 그녀를 봤다.

"이 방에 몇 명 있는지 세어."

윤의 눈이 방을 훔쳤다. "서른, 서른둘…"

"서른넷. 다 널 보고 있어. 네가 서 있는 거, 네가 발기한 거, 네가 지금 무슨 표정인지. 다 봐."

윤의 목이 울컥 움직였다.

"부끄러워?"

"…네."

"그게 오늘 첫 번째 벌이야. 부끄러운 채로 서 있는 거."

세령은 하연이 준비해둔 테이블로 갔다. 플로거 세 개, 크롭 하나, 장갑, 가위, 물, 담요. 그녀는 가장 가벼운 플로거를 들었다. 스웨이드 가죽 끈 서른 가닥. 손바닥으로 무게를 재고, 한 번 허공에 휘둘렀다. 쉭 소리에 윤의 허벅지가 떨렸다.

첫 타는 가슴이었다. 소리가 살을 감싸듯 퍼졌다. 두 번째는 배. 세 번째는 허벅지 안쪽. 세령은 리듬을 만들었다. 강하지 않게, 대신 쉬지 않게. 윤의 피부가 분홍색으로 물들어갔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째에서 그녀는 멈추고 손바닥을 그의 가슴에 얹었다.

뜨겁다.

"숨 쉬어."

윤이 숨을 쉬었다. 배가 부풀고 가라앉았다.

세령은 두 번째 플로거를 들었다. 이번엔 소가죽. 무게가 달랐다. 첫 타에 윤의 입에서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방을 가로질러 뒤쪽 벽까지 닿았다. 세령은 그 소리의 크기로 다음 타의 세기를 정했다. 팔 년 동안 익힌 계산. 붉게, 더 붉게. 윤의 성기는 쉬지 않고 서 있었고, 끝에서 투명한 것이 실처럼 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여?"

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네 몸이 지금 뭐라고 하는지 보여? 맞을 때마다 더 단단해지잖아. 네 몸은 정직해. 네 입만 거짓말하지."

"거짓말… 안 해요…"

"그럼 말해. 지금 뭐가 필요해?"

"…여왕님 손이요."

세령은 장갑을 꼈다. 검은 라텍스가 손목까지 올라왔다. 그녀는 윤의 성기를 잡았다. 그냥 잡았다. 움직이지 않고. 윤의 온몸이 앞으로 밀려 나오려 했지만 십자가가 그를 붙잡았다.

"움직이지 마."

윤이 이를 악물었다.

세령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렸다. 한 번. 그리고 멈췄다. 윤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한 번. 멈춤. 이런 식으로 열 번. 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픈 눈물이 아니었다.

"사정하고 싶어?"

"네, 네…"

"안 돼."

세령은 손을 뗐다. 윤의 흐느낌이 방을 채웠다. 세령은 그를 놔둔 채 테이블로 돌아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서른네 명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 뒤쪽 어둠에서 누군가가 세령을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윤을 보는 게 아니라 세령을. 그 시선의 온도를 그녀는 알았다. 도현. 이 방에서 그녀와 같은 쪽에 서 있는 남자.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녀를 반대쪽에 세우고 싶어하는 남자.

세령은 그 시선을 무시했다. 무시하는 것도 왕관이 하는 일이다.

윤에게 돌아갔다. 크롭을 들고. 얇은 가죽 끝이 그의 젖꼭지를 툭 쳤다. 윤이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다른 쪽. 그리고 허벅지 안쪽, 그리고 성기 바로 옆 살을 아주 가볍게.

"세어."

"하나… 둘…"

스물까지. 윤의 목소리가 무너져서 숫자가 되지 않을 때 세령은 크롭을 내렸다. 다시 그의 성기를 잡았다.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이제 해."

윤은 세령의 허락이 끝나기도 전에 사정했다. 몸이 십자가에서 활처럼 휘었고 그의 것이 세령의 장갑 위로, 바닥으로, 방바닥의 붉은 빛 위로 쏟아졌다. 소리가 아주 컸다. 방의 누구도 웃지 않았다. 이 방에서 그 소리는 웃음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항복이었고, 항복은 존중받았다.

세령은 그가 다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떨림이 지나갔을 때 그녀는 장갑을 벗어 테이블에 두고,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잘했어."

윤이 울었다.

세령은 모니터에게 손짓했고, 커프가 풀렸다. 윤의 무릎이 꺾이자 그녀가 받았다. 담요로 그를 감고, 바닥에 앉혀, 물병을 입에 대주었다. 십 분 동안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등을 쓸었다. 방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낮게, 마치 잠든 아이 옆에서 하는 대화처럼.

"누나."

"응."

"고마워요."

"내일 연락해. 몸 어떤지 말해."

"네."

그녀는 윤을 하연에게 넘겼다. 시계는 두 시 사십 분. 세령은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봤다. 도현이 벽에 기대 서서 그녀를 향해 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며 그녀는 왕관을 벗었다. 검은 금속이 손 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지상으로 나오면 새벽 세 시. 택시. 문래동까지 사십 분.

문래동은 낮에는 쇠 깎는 소리로 가득하고 밤에는 죽은 듯 조용한 동네다. 세령은 철공소 골목 사이의 낡은 삼층 건물 앞에서 내렸다. 일층은 목공소. 이층은 집. 계단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열쇠를 돌리자 나무 냄새가 밀려나왔다.

현관에는 얇은 매트가 하나 깔려 있다. 그녀는 신발을 벗었다. 코트를 벗어 걸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왕관을 꺼내 현관 옆 선반 위의 나무 상자를 열었다. 호두나무. 안쪽에는 진회색 펠트. 왕관이 들어가기에 정확히 맞는 크기. 그녀는 왕관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매트 위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숙이고, 손은 허벅지 위에, 등은 곧게. 팔 년 동안 남들에게 시키던 자세.

주방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찻잔이 놓이는 소리. 발소리가 다가오다가 현관에서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가 거기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얼마나 오래 서 있는지는 그가 정한다.

한참 후에.

"왔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이었다. 아직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따뜻한 손이 그녀의 뒷목에 얹혔다. 그 손이 왕관 자국이 남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세령아."

그녀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서른네 명 앞에서 한 번도 내쉬지 못했던 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