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산 역치
목요일. 다섯 시 이십팔 분. 기온 12도. 강 위에 안개가 허리 높이로 깔려 있었다.
"오늘 역치주. 잠수교 건너서 이촌 찍고 돌아오는 6킬로. 대화 불가능한 페이스로, 근데 무너지진 않는 페이스."
젖산 역치. 몸이 만들어내는 젖산을 몸이 치울 수 있는 마지막 속도. 그 선을 조금만 넘으면 다리에 시멘트가 들어차고, 그 선 안에만 있으면 한 시간도 간다. 코치의 일은 그 선을 찾아서 러너를 그 위에 세워두는 것이다. 선 바로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안은 오늘 세트를 짤 때 한 사람의 선을 일부러 잘못 그렸다.
"민혁은 4분 15초."
그의 역치 페이스는 4분 25초였다. 킬로당 10초. 6킬로면 1분. 이건 3초가 아니라 채찍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그의 눈에서 계산이 지나가는 걸 봤다. 그리고 계산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도 봤다. 계산과 상관없는 것.
"네."
이번에도 그 한 마디였다.
지안은 자전거를 타고 따라붙지 않았다. 대신 뛰었다. 아킬레스는 이제 5킬로 조깅 정도는 허락했다. 경쟁은 못 해도 옆에서 보는 건 됐다. 그녀는 그의 왼쪽 반 걸음 뒤에 붙었다. 얼굴이 아니라 등을 볼 수 있는 자리. 등은 얼굴보다 거짓말을 못 한다.
1킬로. 4분 13초. 너무 빠르다. 첫 킬로는 다들 빠르다.
2킬로. 4분 16초. 호흡 2-2. 팔꿈치 각도 정상. 상체가 살짝 앞으로 기울어 있고 그건 좋은 기울기였다.
잠수교 위.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서 강물 소리가 발밑에서 올라왔다. 그의 발소리가 그 위에 얹혔다. 훔치는 발. 그녀는 자기 숨소리를 그의 리듬에 맞췄다. 그의 왼발이 닿을 때 들이쉬고 오른발이 닿을 때 내쉬었다. 코치가 러너를 읽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같이 숨쉬면 안다.
3킬로. 4분 17초.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이촌 반환점. 그가 콘을 돌 때 그녀는 그의 얼굴을 반 초 봤다. 아직 아니었다. 아직 도망치는 얼굴도, 그 다른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일하는 얼굴이었다.
4킬로. 4분 19초. 호흡이 2-1로 바뀜. 어깨 올라옴. 착지 소리가 미세하게 무거워짐. 훔치던 발이 이제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깨."
그가 어깨를 내렸다. 3초 버텼고 다시 올라왔다.
"어깨, 민혁."
다시 내렸다. 이번엔 5초.
5킬로. 4분 22초. 페이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정된 무너짐. 그녀가 그렸던 잘못된 선이 그를 여기까지 끌고 왔고, 이제 그는 그 선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선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등에서 그걸 봤다. 등이 펴졌다. 무너지는 몸은 보통 웅크린다. 그의 등은 반대로 열렸다. 견갑골 사이가 넓어지고 목이 길어졌다. 마치 누가 뒤에서 척추 위쪽을 손바닥으로 밀어준 것처럼.
"페이스 유지 안 되면 늦춰."
그가 대답 대신 속도를 냈다. 4분 15초로 돌아갔다. 200미터 동안. 그 200미터는 그가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빚으로 낸 속도였다.
"민혁. 늦춰."
"조금만—"
"늦추라고 했어."
그가 늦췄다. 4분 30초. 그리고 그녀는 들었다. 그가 내쉬는 숨에 섞여 나온 소리. 안도. 아니, 안도 밑에 깔린 뭔가. 한 번 더 시켜주기를 바랐던 사람이, 시켜주지 않은 것에 대해 더 만족하는 소리.
6킬로. 4분 31초. 잠수교 남단. 끝.
그는 이번엔 무릎에 손을 얹지 않았다. 그대로 걸었다. 열 걸음, 스무 걸음.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폐를 열었다. 셔츠가 등에 붙어서 견갑골 두 개가 젖은 천 아래로 그대로 드러났다. 땀이 팔꿈치에서 떨어졌다. 그가 돌아서서 그녀를 봤다.
이번엔 아쉬움이 아니었다. 이번엔, 그가 그녀가 안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쿨다운 하고 와."
크루가 돌아오는 데 20분이 걸렸다. 편의점 앞 벤치. 이온음료. 바나나. 태경이 무릎 통증을 얘기했고 지안은 신발 밑창을 뒤집어 마모를 봤다. 바깥쪽이 닳았다. 발을 안쪽으로 딛고 있다는 뜻. 준호는 다음 주 출장이라 빠진다고 했다. 수아는 민혁 옆에 앉아 자기 페이스 얘기를 했고 민혁은 잘 들어줬다. 그는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지안은 진작부터 알았다.
하나씩 갔다. 태경이 가고 준호가 가고 수아가 마지막까지 있다가 갔다. 가면서 민혁을 한 번 더 봤다. 민혁은 못 봤다. 지안은 봤다.
둘이 남았다. 강.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물 위로 햇빛이 처음 닿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민혁 씨."
"네."
"기록 때문 아니지."
그가 이온음료를 입으로 가져가다 멈췄다. 병이 그 자리에 떴다.
"10K 44분에서 43분으로 가는 데 그런 얼굴 안 나와. 내가 그 얼굴을 몇 개나 봤는지 알아? 하프 뛰는 사람, 풀 뛰는 사람, 서브3 하는 사람, 대표팀 애들. 다 봤어. 그 얼굴은 없었어."
"어떤 얼굴인데요."
목소리가 낮았다. 묻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목소리.
"끝나는 걸 아까워하는 얼굴. 그리고 내가 끝내니까 안심하는 얼굴."
그는 병을 내려놨다. 강을 봤다. 오래 봤다. 지안은 기다렸다. 기다리는 건 코치의 기술 중 가장 어려운 것이고 그녀는 그것도 잘했다.
"힘들 때가."
그가 시작했다.
"제일 조용해요. 머릿속이. 평소엔 하루에 서버 알람이 몇백 개씩 오고 슬랙이 몇천 개씩 오고, 잘 때도 뭔가 켜져 있는데. 7번째 400 넘어가면 다 꺼져요. 다리 아픈 거랑 숨 안 쉬어지는 거만 남아요. 그게 좋아요. 아니, 좋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필요해요."
"그건 러너들 다 그래. 그건 문제 아니야."
"근데 저는요."
그가 그녀를 봤다.
"혼자서는 못 가요. 그 지점까지. 제가 저를 밀면 항상 그 전에 멈춰요. 안전하게. 누가 밀어줘야 가요. 그리고."
멈췄다. 그녀는 밀지 않았다.
"누가 멈추라고 해줘야 멈춰요. 그게 없으면 제가 어디까지 갈지 저도 몰라서. 무서워서. 코치님이 아까 늦추라고 했을 때. 그때가 오늘 제일 좋았어요."
새 한 마리가 물 위를 낮게 지나갔다.
지안은 자기 안에서 그 잠긴 방의 문이 아주 조금 열리는 걸 느꼈다. 문이 아니라 문틈. 그 틈으로 나오는 공기의 온도를 그녀는 알았다. 정확히 알았다.
"그거 러닝 얘기 아니지."
"...러닝 얘기이기도 해요."
"이기도."
"네."
그가 고개를 떨궜다.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무게였다. 말한 것의 무게.
지안은 벤치에서 일어섰다. 무릎을 폈다. 왼쪽 아킬레스가 낮게 불평했다. 그녀는 그 불평에 익숙했다. 자기 몸이 내는 소리에 익숙한 사람만이 다른 몸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오늘 밤 아홉 시. 스튜디오로 와."
"훈련이요?"
"러닝복 말고 그냥 와."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에서 아까 트랙 위의 그것을 봤다. 맑아지는 눈. 정면에 고정되는 시선. 두려움과 안도가 같은 자리에 있는 얼굴.
"네."
그 한 마디. 세 주 동안 들은 것과 같은 한 마디. 다만 이번엔 그게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 두 사람 다 알았다.
지안은 가방을 어깨에 걸고 돌아섰다. 잠수교 위로 출근 차량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시는 아직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다. 강도 몰랐다. 아는 건 둘뿐이었다.
그녀는 스튜디오까지 걸어가면서 자기 맥을 한 번 짚었다. 손목. 분당 72. 평소 안정 시 맥박은 58이었다.
빠르지 않았다. 다만 정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