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박 190
새벽 다섯 시 이십 분. 잠수교 남단, 반포 한강공원. 기온 14도, 습도 78퍼센트. 강에서 올라오는 바람은 초속 2미터, 하류 방향.
지안은 시계보다 몸을 먼저 봤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크루원 열둘이 둥글게 서서 동적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그녀는 원 바깥을 천천히 돌았다. 레그 스윙에서 골반이 따라 도는 사람. 런지에서 앞무릎이 안쪽으로 무너지는 사람. 어제 술을 마신 사람은 숨이 먼저 고백한다. 열두 개의 몸이 열두 개의 문장처럼 읽혔고, 그녀는 그 문장들을 읽는 데 7년을 썼다.
그 전의 12년은 자기 몸을 읽는 데 썼다. 5000미터 16분 4초. 국가대표 상비군. 스물일곱에 왼쪽 아킬레스가 끊어지는 소리를 트랙 위에서 들었다. 나무젓가락 부러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 소리 이후로 그녀는 달리는 사람 대신 달리는 사람을 보는 사람이 됐다. 잠원동 지하 1층에 트레드밀 두 대와 마사지 테이블 하나가 있는 스튜디오를 열었고, 이 크루의 코치를 맡았다. 새벽 페이서스. 화, 목, 토. 다섯 시 반.
"오늘 400 열 개. 회복 90초. 페이스는 각자 5K 기록 기준으로 불러줄 거고, 마지막 두 개는 자유."
앓는 소리가 몇 개 올라왔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태경 오빠는 95초. 수아는 88. 준호 90."
그리고 민혁.
민혁은 스물아홉, 크루 2년차, 판교 어딘가에서 서버를 만지는 사람이었다. 10K 44분대. 키는 178 정도, 체지방은 눈으로 봐도 한 자리. 근육은 큰 게 아니라 긴 종류였다. 그의 발소리가 그녀는 늘 좋았다. 발이 지면을 두드리지 않고 훔쳤다. 착지가 가볍고 이탈이 빨랐다. 코치가 가르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종류의 발.
그가 원 밖으로 나와 그녀 옆에 섰다.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인 채, 목소리를 낮춰서.
"코치님. 오늘 좀 더 밀어붙여 주세요."
세 번째였다. 세 주 연속.
첫 주엔 그러려니 했다. 대회 앞두면 다 저런다. 둘째 주엔 잠깐 이상했다. 그는 등록한 대회가 없었다. 셋째 주인 오늘, 그녀는 그의 얼굴을 봤다. 그는 그녀의 눈을 보지 않았다. 강을 보고 있었다. 부탁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를 들고 서서, 받아줄지 아닐지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82초."
그의 5K 기준이면 85초가 맞았다. 3초는 400미터에서 작은 숫자가 아니다.
"네."
그는 그 한 마디를 숨 쉬듯이 뱉고 스타트 라인으로 갔다.
첫 번째. 81초. 팔 스윙 안정. 턱 내려감. 착지 소리 규칙적.
두 번째. 81초. 호흡 2-2. 아직 여유.
세 번째. 82초. 이 구간은 다 편하다. 몸이 아직 거짓말을 안 할 때.
네 번째. 82초.
다섯 번째. 82초. 수아가 뒤에서 88초 그룹을 끌고 들어오면서 민혁을 흘깃 봤다. 지안은 그 시선도 읽었다. 스물넷의 시선. 그것도 문장이었다. 다만 오늘 읽을 문장은 아니었다.
여섯 번째. 82초. 호흡이 2-2에서 2-1로 바뀌었다. 들이쉬는 게 두 걸음, 내쉬는 게 한 걸음. 산소가 모자라기 시작한다는 신호.
일곱 번째. 83초. 어깨가 귀 쪽으로 올라왔다. 여기가 보통 벽이다. 400 열 개짜리 세트에서 사람들은 대개 일곱 번째에서 처음 벽을 만난다.
지안은 시계를 내리고 그의 얼굴을 봤다.
사람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얼굴이 먼저 도망친다. 시선이 발끝으로 떨어지고 입은 공기를 씹고 눈동자가 흔들린다. 몸은 아직 뛰고 있는데 얼굴은 이미 그만두고 싶다고 외치는 것. 그녀는 그 얼굴을 수천 번 봤다. 자기 얼굴로도 몇천 번을 만들었다.
민혁은 반대였다.
눈이 맑아졌다. 시선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대신 정면에 고정됐다. 씹던 입이 오히려 열렸다. 그리고 입가에,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고 고통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편안한 무언가가 걸렸다.
여덟 번째. 83초. 그 얼굴 그대로.
아홉 번째. 자유. 79초. 그는 자기가 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냈다. 지안은 그 숫자보다 그가 라인을 지날 때 내는 소리를 들었다. 신음이었다. 아픈 사람의 소리라기보다, 아픈 걸 마침내 받은 사람의 소리.
열 번째. 80초. 그는 라인을 넘어 열 발짝쯤 더 가서 무릎에 손을 얹었다. 등이 크게 올라왔다 내려갔다. 땀이 코끝에서 줄로 떨어졌다. 심박계 스트랩이 젖은 셔츠 위로 윤곽을 드러냈다. 그가 손목의 시계를 내려다봤다. 190.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봤다.
그 표정이었다. 지안은 그걸 이름 붙일 필요가 없었다.
아쉬움.
"끝났어요?"
"끝났어."
"하나만 더—"
"끝났다고 했어."
그가 말을 삼켰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몸에서 뭔가가 내려갔다. 어깨가 떨어졌다. 턱이 풀렸다. 항의하던 얼굴이 아니라, 안도한 얼굴이 됐다. 누가 대신 결정해줬다는 안도.
지안은 그걸 봤고, 그걸 봤다는 사실이 자기 몸 어디에 닿는지도 정확히 알았다. 명치 조금 아래. 오래 잠가둔 방의 문 쪽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것.
그녀는 사람이 무너지는 지점을 보는 게 좋았다. 항상 좋았다. 코치는 그걸 '한계 파악'이라고 부른다. 페이스를 정하고 회복 시간을 정하고 몇 개까지 시킬지를 정하는 것. 얼마나 아프게 할지, 언제 멈추게 할지를 자기가 정하는 것. 그녀는 그 일을 잘했고, 그 일을 잘하는 이유를 7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스포츠 과학은 그걸 코칭이라고 부른다. 다른 방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그녀는 그 방을 스물몇 살 이후로 잠가두고 있었다. 방 안에서 하는 일에 이름을 붙이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그 이름을 정확히 알기 때문이었다.
"쿨다운. 2킬로 조깅. 대화 가능한 페이스."
크루가 강변 도로 쪽으로 흩어졌다. 지안은 콘을 걷었다. 수아가 민혁에게 이온음료를 건네는 게 보였다. 민혁은 받으며 고맙다고 웃었다. 평범한 웃음이었다. 아까 그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은 그걸 잘 감춘다. 감출 줄 아는 사람만 감춘다.
그녀는 코칭 노트를 폈다. 훈련 기록용, 방수 커버.
민혁. 400×10. 81~83. 마지막 79/80. 7번째부터 표정 변화. 기록 욕심 아님.
그리고 볼펜을 멈췄다. 그 다음에 뭘 써야 할지 알았지만 쓰지 않았다. 노트에 적을 종류의 관찰이 아니었다.
강 위로 해가 아직 안 뜬 상태에서 하늘만 회색으로 밝아졌다. 잠수교 위로 첫 버스가 지나갔다. 그녀는 콘 열두 개를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다음 훈련은 목요일. 그녀는 이미 세트를 짜고 있었다.
이번엔 기록을 보기 위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