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개의 의자
"의자가 열두 개야."
도훈이 공방에서 세고 올라왔다. 그가 만들었지만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의자들. 서영은 식탁에 종이를 펴고 있었다. 위에 아무것도 없는 종이.
"열두 명이요?"
"의자는 더 만들면 돼. 사람 먼저 적어."
그녀는 볼펜을 잡았다. 이상했다. 결혼식이었으면 어머니 쪽 친척부터 적었을 것이다. 회사 사람들, 대학 동기들. 이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 종이에 적을 사람은 서영이 무릎을 꿇는 걸 보고도 그녀를 그대로 볼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건 셀 수 있는 숫자였다.
"민재 오빠."
"당연히."
첫 줄에 썼다. 그 밥집 뒷방. 십 년 동안 매달 둘째 주 목요일. 처음 온 사람에게 늘 "여기서는 이름 안 말해도 돼요, 근데 나는 민재예요" 하고 앉히는 사람. 삼 년 전 그가 서영 옆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안 하고 물을 세 번 채워줬다.
"준석 선생님, 유진 언니."
두 번째 줄.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 언니한테 뭐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뭐."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그 사람 손이 어딘가에 있으면 좋겠어요."
"준석 씨한테는?"
"준석 선생님은 그냥 오시면 돼요. 오시는 게 다예요, 그분은."
도훈이 웃었다. 준석은 오십 대 후반이었고 한 자리에 앉아 술만 마시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서영이 유진과 통화를 끝낼 때 뒤에서 준석 목소리가 들렸다. "얘한테 전화 자주 하라고 해. 우리도 그랬어." 그 한마디로 서영은 이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걸 알았다.
"하연."
"하연이는 당연히. 태오도."
세 번째 줄. 하연은 서영보다 다섯 살 위였고 이쪽 세계에서는 서영과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태오의 목에 가죽을 걸어준 사람. 그런데 하연은 서영이 이 관계에서 가장 흔들렸던 두 번째 해 겨울에 매주 화요일 밤 그녀를 불러내 술을 먹였다. "네가 흔들리는 건 네 잘못이 아냐. 흔들리는 걸 도훈한테 말 안 하는 게 잘못이지." 그래서 서영은 말했고, 그 겨울을 지났다.
"다은이도 부르고 싶어요."
도훈이 그녀를 봤다.
"다은이 이런 거 처음일 텐데."
"그러니까요."
다은은 스물여덟이었다. 지난가을 민재 모임에 처음 와서 서영과 똑같이 구석에 앉아 있었다. 젓가락은 안 맞췄지만 물컵을 자꾸 돌렸다. 서영은 그날 다은 옆에 가서 앉았다. 그 뒤로 한 달에 한 번 커피를 사주고 있었다. 다은은 아직 아무의 것도 아니었고 그게 맞는 시간이었다.
"우리도 누군가한테 그런 사람이 됐네요."
"그런 사람?"
"유진 언니가 저한테 그랬던."
도훈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볼펜을 가져가 다은 이름 옆에 작게 동그라미를 쳤다.
"불러."
*
명단은 열네 명에서 멈췄다. 그다음 종이에는 다른 걸 적었다.
"넣을 것과 뺄 것."
도훈이 말했다. 서영이 선을 그어 종이를 반으로 나눴다.
"뺄 것 먼저 해요. 그게 쉬워요."
"계약서."
"계약서요. 우리 거 있잖아요. 매년 읽는 거. 그건 우리 둘 거예요. 그날 남들 앞에서 도장 찍는 건 안 해요."
"반지."
"반지는... 결혼이잖아요. 우리 안 해요."
"누가 널 데리고 들어오는 것."
그녀가 볼펜을 멈췄다.
"혼자 걸어갈 거예요."
"그래야지."
"그리고요." 서영이 잠시 종이를 봤다. "그날 사람들 앞에서 플레이는 안 해요."
도훈이 눈썹을 올렸다. 커뮤니티에서 콜라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의식 뒤에 바로 씬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채우고, 그 자리에서 첫 명령을 내리고. 그걸 보는 게 증인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그건 주인님하고 저 둘 거예요. 채우는 건 보여주고 싶어요. 그다음은 안 보여주고 싶어요."
"그다음이 뭔데."
"그날 밤이요."
그가 그녀 손 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 뺀다."
"넣을 것."
"무릎."
"네. 무릎은 꿇어요. 그건 뺄 수가 없어요."
"말."
"무슨 말을 해요? 서약 같은 거요? 저 그런 거 못 해요. '평생 복종하겠습니다' 이런 거—"
"그건 나도 싫어."
"그럼요."
"배운 걸 말하자."
"배운 거요."
"삼 년 동안 배운 거. 너는 네가 배운 거, 나는 내가 배운 거. 남한테 하는 약속이 아니고 서로한테 하는 보고."
서영은 그 말을 종이에 적었다. 보고.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사서였다. 보고는 그녀가 아는 언어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거."
"증인이요?"
"유진 씨한테 물어봤어. 준석 씨랑 유진 씨 때 뭘 했냐고. 그때는 지금처럼 이런 거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둘이서 그냥 했대. 근데 유진 씨가 늘 아쉬웠다고 하더라. 누가 봐줬으면 했다고."
"그래서요."
"유진 씨가 하나 제안했어. 목줄을 상자에 넣어서 사람들 손을 다 거치게 하자고. 한 명씩 잡고 한마디씩 하고 옆으로 넘기고. 마지막에 내 손에 오면 그때 채우는 거."
서영은 볼펜을 놓았다. 상자가 손에서 손으로 가는 걸 그렸다. 민재의 손. 준석의 손. 하연의 손. 다은의 떨리는 손. 그 손들을 다 지나서 도훈의 손에 오는 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물푸레나무.
"따뜻할 거예요."
"뭐가."
"열네 사람이 잡고 나면요. 쇠가 따뜻할 거예요."
도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종이 맨 밑에 한 줄 더 썼다. 음식: 서영.
"그거 안 써도 돼요."
"쓴 거야. 넣을 것에."
*
명단이 끝났을 때 밤 열 시였다. 도훈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대신 식탁을 두드렸다.
"밑으로."
서영은 알았다. 식탁 밑으로 들어가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 식탁은 낮았고 그녀는 등을 구부려야 했다. 그가 바지를 열었다. 위에서 볼펜 소리가 났다. 그는 아직 뭔가를 쓰고 있었다.
"명단 다시 볼 거야. 다 볼 때까지 하고 있어."
그녀는 그를 입에 넣었다. 그는 이미 반쯤 서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했다. 위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그는 한 번도 아래를 보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보지 않는 동안 그를 빨았다. 그게 이 집에서 가장 그녀다운 시간이었다. 보지 않아도 있는 것. 확인하지 않아도 있는 것.
그가 완전히 섰을 때 그녀는 뿌리까지 받았다. 목이 열렸다. 그가 처음으로 손을 내려 그녀 머리에 얹었다. 누르지 않았다. 그냥 얹었다. 그리고 계속 썼다.
"다은이 옆에 누구 앉히면 좋겠어."
그녀는 입을 뺐다. "하연 언니요." 다시 넣었다.
"준석 씨 술은."
입을 뺐다. "막걸리요. 민재 오빠가 갖고 온대요." 다시 넣었다.
"의자 두 개 더."
이번엔 입을 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걸 느꼈다. 소리를 냈다. 볼펜이 멈췄다.
"됐어. 나와."
그가 의자를 밀고 그녀를 식탁 밑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그녀를 식탁 위에 눕혔다. 종이가 그녀 등 밑에서 구겨졌다. 열네 명의 이름 위에 그녀가 누워 있었다.
"오늘은 네가 원하는 거 말해."
그녀는 그의 얼굴을 봤다. 삼 년 동안 그가 이 말을 한 건 손에 꼽았다.
"세게요."
"이유."
"온종일 명단 짜고 뭐 넣고 뭐 뺄지 정하니까요. 신부 같았어요. 저 신부 아니에요. 주인님 것이에요. 그거 기억하게 해주세요."
그가 그녀 잠옷을 찢었다. 정말로 찢었다. 낡은 거라 소리가 났다. 그녀 다리를 자기 어깨에 걸치고 한 번에 들어왔다. 식탁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신부."
"아니에요—"
"뭔데."
"주인님 노예요."
그가 그녀 목의 사슬을 잡고 위로 당겼다. 그녀 상체가 식탁에서 떠올랐다.
"다시."
"주인님 노예요. 주인님 거예요. 주인님이 채우고 주인님이 쓰고 주인님이—"
그가 박았다. 말이 끊겼다. 그는 그녀 입에 손가락 두 개를 넣었고 그녀는 그걸 빨았다. 다른 손으로 그녀 음핵을 세게 눌렀다. 종이가 등 밑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소리를 냈다. 목이 늘어났고 사슬이 목을 파고들었고 그가 안에 가득했다.
"가도 돼요—"
"아직."
그녀는 이를 물었다. 그가 더 빨라졌다. 사슬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숨이 조금 막혔다. 그는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알았다. 삼 년이 알게 한 것이었다.
"지금."
그녀가 무너졌다. 식탁 위에서 등이 휘었고 다리가 그의 어깨를 조였고 안이 그를 물었다. 그가 그녀 안에서 사정했다. 그가 사슬을 놓았을 때 그녀 목에 붉은 줄이 나 있었다.
그는 오래 그녀 위에 있었다. 그러다 그녀 등 밑에서 종이를 빼냈다. 구겨지고 젖고 한쪽이 찢어져 있었다. 열네 개의 이름은 다 읽을 수 있었다.
"다시 써야겠네."
"제가 쓸게요. 내일."
"아니. 이거 그냥 둬."
그가 종이를 폈다. 식탁 끝에 놓고 커피잔으로 눌렀다.
"이게 우리 명단이야."
서영은 식탁 위에 누운 채로 웃었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이 집에서 그 두 개도 구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