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저 혼자 낸 자국
이월 말, 연희는 자신의 몸에서 자국을 하나 발견했다.
명훈이 남긴 자국이 아니었다. 왼쪽 가슴 안쪽, 손끝에 걸리는 작은 멍울.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샤워를 하다가 무심코 손이 지나가는데,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만져졌다. 연희는 그 자리에 손을 얹은 채 오래 서 있었다. 물이 식어 차가워지도록.
병원에서는 초음파를 보고, 조직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결과는 열흘 뒤에 나온다고 했다. 열흘. 명훈의 가마가 식는 것과 같은 시간이었다. 연희는 진료실을 나오며 그 우연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웃음은 곧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연희는 거울 앞에 섰다. 그동안 명훈이 남긴 자국을 비춰 보던 그 거울이었다. 겨울 가마의 밤에 앞몸에 앉았던 붉은 자국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거울 속 몸에는 아무 자국도 없었다. 그런데 그 매끈한 살 아래, 손끝에만 걸리는 멍울 하나가 있었다.
연희는 오래 생각했다. 자신이 그동안 자국을 원했던 것을. 명훈이 온도로 남겨 주는 자국을, 자신이 고른 자국을,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것을. 그런데 지금, 몸이 저 혼자 낸 자국이 여기 있었다. 아무도 고르지 않은. 자신도, 명훈도 원한 적 없는. 그것은 온도가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 온도가 잘못 고인 자리 같았다. 가마 안에서 불이 잘못 지나가면 그릇이 갈라지듯이.
연희는 오래전 명훈이 한 말을 떠올렸다. 아내가 아팠던 삼 년 동안, 온몸에 자국이 남는 걸 매일 봤다고. 그게 자기 것이 아닌 자국이라서 힘들어했다고. 자기가 고른 게 아닌데 몸에 새겨지는 것.
이제 연희는 그 말을 몸으로 알았다.
명훈에게 말하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연희는 그 사흘을 혼자 견뎠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명훈의 아내가 어떻게 갔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여덟 해 전, 명훈은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자국이 번지는 것을 삼 년 동안 지켜보았다. 그 자리를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멍울 하나가 그 오래된 상처를 다시 열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결국 말했다. 전화로. 명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참았던 것이 무너졌다.
"명훈 씨." 연희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저… 가슴에 멍울이 만져져요. 검사했어요. 결과가 열흘 뒤에 나와요."
수화기 너머로 긴 침묵이 왔다. 연희는 그 침묵의 온도를 재려 했지만, 잴 수 없었다. 너무 깊어서.
"…지금 어디 있습니까." 명훈이 마침내 물었다. 목소리가 낮고 조심스러웠다.
"집이요."
"내려가겠습니다." 명훈이 말했다. "아니, 올라오시겠습니까. 산으로. 혼자 그 열흘을 있으면 안 됩니다."
연희는 울었다. 소리 없이.
"명훈 씨." 연희가 말했다. "저 무서워요. 아저씨한테 이런 말 하는 것도 무서워요. 사모님… 사모님이 그렇게 가셨잖아요. 제가 명훈 씨한테 그걸 다시…"
"연희 씨." 명훈이 그의 말을 막았다. 목소리가 단단했다. "그 얘기 다시 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거하고 다릅니다. 지금 중요한 건, 연희 씨가 혼자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올라오십시오. 아니면 제가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오늘 밤에."
그날 밤 연희는 산으로 올라갔다.
방바닥이 따뜻한 방에서, 두 사람은 밀랍을 꺼내지 않았다. 촛대도, 뼈붓도 꺼내지 않았다. 명훈은 다만 연희를 품에 안았다. 오래, 아무 말 없이. 연희의 왼쪽 가슴, 멍울이 있는 그 자리에 명훈은 손바닥을 가만히 얹었다. 온도를 재듯이. 그러나 이번에는 무엇을 남기기 위한 손이 아니었다. 지키기 위한 손이었다.
"명훈 씨." 연희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이상해요. 저는 그렇게 자국을 원했는데. 명훈 씨가 내 주는 자국이 그렇게 좋았는데. 지금은… 지금은 이 멍울 하나가 무서워 죽겠어요. 제가 원했던 거하고 뭐가 다른 걸까요. 똑같이 몸에 나는 건데."
명훈은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도공이 유약을 설명하듯 말했다.
"다릅니다." 그가 말했다. "연희 씨가 나한테 자국을 내 달라고 할 때, 그건 연희 씨가 고른 겁니다. 어디에, 얼마나, 언제 멈출지, 다 연희 씨가 정했어요. 그건 연희 씨가 자기 몸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멍울은… 이건 연희 씨가 안 골랐어요. 몸이 저 혼자 낸 겁니다.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자국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안 고른 게 무서운 거예요."
연희는 그 말에 오래 울었다. 명훈은 그를 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명훈이 말을 이었다. "고를 수 있는 걸 고르는 겁니다. 이 열흘 동안, 연희 씨가 혼자 있을지 나하고 있을지, 그건 고를 수 있어요. 무서워할지 덜 무서워할지도, 조금은 고를 수 있고요. 결과는 못 고르지만, 그 열흘을 어떻게 보낼지는 우리가 고릅니다. 가마도 그렇습니다. 불이 지나간 뒤에 그릇이 어떻게 나올지는 못 정해요. 하지만 어떻게 식힐지는 우리가 정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곁을 지키고."
바깥에서는 이월의 마른 바람이 산을 지나갔다. 아직 봄은 멀었다. 두 사람은 밤새 깨어, 식어 가는 것을 지키는 대신,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켰다. 열흘의 첫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