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의 리듬

두 사람의 시간은 가마의 리듬을 따라 흘렀다.

명훈은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다섯 주에 한 번 불을 넣었다. 그 사이 흙을 이기고, 물레를 돌리고, 초벌한 그릇에 유약을 입히고, 장작을 팼다. 그건 연희가 없는 시간이었고, 연희에게는 서울이 있는 시간이었다.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아무도 급하게 찾지 않는 옛 책들을 한 줄씩 옮기는 시간.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음 불을 기다렸다. 기다린다기보다, 다음 온도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는 시간이었다.

연희는 그 간격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산에서 내려온 다음 날 아침, 서울의 원룸에서 눈을 뜨면 등이 저 혼자 그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밀랍이 지나간 자리, 명훈의 손바닥이 눌렀던 자리. 자국은 사나흘이면 사라진다고 했지만, 몸의 기억은 그보다 오래갔다. 연희는 샤워를 하다가 거울에 등을 비춰 보곤 했다. 옅게 붉었던 자리가 흰 살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아쉬움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십일월의 어느 날, 번역가들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데, 옆자리의 후배가 문득 연희의 손목을 보았다.

"선배님, 여기 뭐 났어요? 데셨어요?"

연희는 반사적으로 소매를 끌어 내렸다. 지난 밤 명훈이 손목 안쪽에 남긴 옅은 붉은 자국이 아직 있었다. 심장이 뛰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 뜨거운 물에… 차 우리다가." 연희가 말했다. 거짓말이 서툴렀다.

후배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연희는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부끄러움이 맞았지만, 그 부끄러움의 결이 이상했다. 들킬까 봐 무서운 것과, 들키고 싶은 것이 몸 안에서 뒤섞였다. 마흔여섯 먹은 여자의 손목에 왜 자국이 났느냐고, 누가 캐물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게 알려지면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웠다. 이 나이에. 다 큰 여자가.

연희는 그 밤에 명훈에게 편지를 썼다. 문자가 아니라 편지였다. 두 사람은 대개 편지를 주고받았다. 불을 언제 넣는지, 어떤 그릇이 잘 나왔는지, 산에 무슨 꽃이 폈는지. 그러나 그 밤의 편지에서 연희는 처음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적었다.

'오늘 사람들 사이에서 손목을 들켰어요.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하루 종일 마음이 이상했어요. 나는 이게 좋은데, 이 나이에 이런 걸 원하는 게 좋은데, 세상에는 이걸 설명할 말이 없네요. 명훈 씨 앞에서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데, 산을 내려오면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 같아요.'

명훈의 답장은 닷새 뒤에 왔다. 그 사람은 언제나 답이 느렸다. 흙을 만지는 손으로, 저녁에 등불 아래 한 자 한 자 적는 사람이었다.

'연희 씨. 재가 흐른 자국이 앉은 사발을 사람들은 흠이 있다고 합니다. 매끈한 걸 좋은 거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배운 거지, 아는 게 아닙니다. 재가 흐른 그릇이 왜 아름다운지는, 불을 겪어 본 사람만 압니다. 연희 씨가 이상한 게 아니라, 세상이 아직 그 아름다움을 배우지 못한 겁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다만 아무한테나 보여 줄 것도 아닙니다. 좋은 그릇은 아는 사람한테만 보이는 겁니다. 다음 불은 십이월 초에 넣겠습니다. 첫눈 오기 전에 오십시오.'

연희는 그 편지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마흔여섯에.

십이월 초, 연희는 첫눈이 오기 전에 산으로 올라갔다. 불을 넣는 이틀 밤을 함께 보내고, 봉통을 봉한 밤, 두 사람은 방바닥이 따뜻한 방에 나란히 누웠다. 그 밤에는 밀랍을 꺼내지 않았다. 명훈은 다만 연희의 등을 손바닥으로 오래 쓸었다. 자국이 났던 자리들을, 이제는 아무 자국도 없는 그 자리들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여기, 여기, 여기." 그가 말했다. "지난번 자국이 여기 있었습니다. 제 손이 기억합니다."

"자국은 없어졌는데요."

"살에서는 없어졌지요." 명훈이 말했다. "제 손에서는 안 없어집니다. 흙 만진 자리는 손이 기억합니다."

연희가 돌아누워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창밖으로 눈이 오려는지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가마는 여전히 낮게 울며 식어 갔다.

"명훈 씨." 연희가 말했다. "우리는 왜 밤에만 만나요."

명훈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연희의 등에서 멈췄다.

"낮에는." 그가 마침내 말했다. "제가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여덟 해 동안 이 산에서 낮이란 건 혼자 일하는 시간이었어요. 밤은… 밤은 원래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었고요. 그런데 연희 씨가 그 밤에 들어왔습니다. 아직 낮까지는 자리를 못 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할 거 없어요." 연희가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에는 아주 옅은 그늘이 있었다. "저도 아직 낮에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까요. 우리 둘 다 밤사람인가 봐요."

그날 밤 첫눈이 내렸다. 두 사람은 창을 열어 놓고, 눈이 가마 지붕에 소리 없이 쌓이는 것을 보았다. 식어 가는 가마의 온기가 지붕의 눈을 녹여, 처마 끝에서 물이 되어 떨어졌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만나는 자리. 연희는 그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세며, 이 밤사람의 시간이 언제까지고 밤에만 머물지, 아니면 언젠가 낮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흙이 무엇이 될지 초벌 때는 알 수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