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벌

열흘째 되던 날 아침에 가마를 열었다.

연희는 첫차를 타고 산으로 올라와, 명훈이 봉통의 흙을 헐고 벽돌을 한 장씩 빼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열흘을 식혔는데도 안에서는 아직 미지근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서 그릇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재가 흘러내려 굳은 자리, 불길이 지나간 쪽만 유약이 녹아 흐른 자리, 불을 등진 쪽은 흙빛 그대로인 자리. 같은 가마 안에서도 그릇마다 다른 온도를 겪은 것이다.

"불이 지나간 길이 다 보이네요." 연희가 말했다.

"예. 재가 어디로 흘렀는지, 불이 어느 쪽에서 왔는지, 다 그릇에 남습니다." 명훈이 첫 사발을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숨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걸 싫어합니다. 매끈한 거, 예측되는 거를 좋아하지요."

"저는 이게 좋아요." 연희가 말했다. "겪은 게 남는 거."

그날 연희는 사발 세 개를 골랐다. 하나는 봄에 주문했던, 명훈이 부치지 않았던 그 사발이었다. 나머지 둘은 불길이 유난히 거칠게 지나간 것들이었다. 재가 흘러 한쪽 옆구리에 검푸른 자국이 앉은 사발을, 연희는 오래 손바닥으로 감쌌다.

"이건 흠이 있는 건데요." 명훈이 말했다. "여기, 재가 이렇게 앉은 건 원래 안 파는 겁니다."

"흠이 아니라 겪은 자국이라면서요." 연희가 그를 보며 말했다. 명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뒤로 연희는 가마가 식는 밤마다 왔다.

말로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명훈이 다음 불을 언제 넣는지 편지로 알려 주면, 연희는 불이 꺼지고 봉통을 봉한 밤에 맞춰 산으로 올라왔다. 낮에 오지 않았다. 낮의 공방은 흙먼지와 물레 소리와 배달 온 흙자루로 분주했고, 그건 연희의 시간이 아니었다. 연희의 시간은 밤이었다. 불이 다 타고, 가마가 스스로의 온도를 놓아 가는 그 길고 조용한 밤.

가을이 이르게 왔다. 소나무 그늘 아래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봉통 앞 평상에 나란히 앉아, 담요 한 장을 무릎에 나눠 덮고, 식어 가는 벽돌의 울음을 들었다. 연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흘렸다. 서울에서 번역 일을 한다고. 오래된 책들을, 아무도 급하게 찾지 않는 책들을 옮긴다고. 오 년 전에 이혼했고, 아이는 없다고. 남편은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어서, 그래서 자신이 살아 있는지 어떤지도 잘 모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매를 맞았다는 게 아니에요." 연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아무 자국도 안 남는 게, 어떤 때는 더 무서웠어요. 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 몸에 그 사람이 지나간 자리가 한 군데도 없더라고요. 불이 지나갔는데 그릇에 아무것도 안 남은 것처럼."

명훈은 담요 아래에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몇 개 있었다. 가마 불을 만지고 살아온 손이었다.

"저는 반대였습니다." 그가 말했다. "아내가 아팠던 삼 년 동안, 온몸에 자국이 남는 걸 매일 봤어요. 주삿바늘 자국, 수술 자국… 그게 자기 것이 아닌 자국이라서 아내가 힘들어했습니다. 자기가 고른 게 아닌데 몸에 새겨지는 거요."

두 사람은 한참 말이 없었다. 가마가 낮게 울었다.

"고른 자국하고." 연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은 자국은 다른 거겠죠."

"다릅니다." 명훈이 말했다. "아주 다릅니다."

연희는 무릎 위의 담요를 조금 끌어당겼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오래 준비해 온 말을 하듯이 말했다.

"저는 제가 고른 자국을 갖고 싶어요. 오래전부터요. 아무한테도 말 못 했어요. 이 나이에 그런 걸 원한다는 게… 우스운 것 같아서."

"뭐가 우습습니까." 명훈이 말했다.

"마흔여섯 먹은 여자가." 연희가 작게 웃었지만, 그 웃음은 떨렸다. "아프고 싶다는 거요. 누가 나한테 자국을 내 줬으면 좋겠다는 거요. 아무 데도 말할 데가 없어요. 병원 갈 일도 아니고, 친구한테 할 말도 아니고. 그냥 마음속에서 오래 굳어만 갔어요."

명훈은 접시 위의 밀랍을 떠올렸다. 낮에 유약을 막으려고 발라 둔, 예순두 도에 녹는 그것을.

"굳은 건 다시 녹일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온도만 맞으면요."

연희가 그를 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 눈이 젖어 있었다.

"명훈 씨는." 연희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무섭지 않으세요. 이런 얘기."

"아니요." 명훈이 말했다. 그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섭지 않습니다. 다만 서두르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식는 것도 서두르면 금이 가니까요."

그날 밤 연희는 산을 내려가지 않았다. 처음으로, 공방 한쪽의 손님방에서 잤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 명훈은 밤새 봉통 앞에 앉아 온도를 세었고, 연희는 문 안쪽에서 그 인기척을 들으며 오래 깨어 있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것을 세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온도를.

새벽에 명훈이 물을 끓이는 소리에 연희가 깼다. 문을 열고 나오니 산 아래로 안개가 깔려 있었고, 명훈이 그 봄의 사발에 차를 우리고 있었다.

"오늘은 초벌만 넣습니다." 그가 말했다. "본벌은 다음 달에. 초벌은 흙에서 물기만 빼는 거예요. 아직 유약은 안 입힙니다."

"순서가 있는 거네요."

"순서가 있습니다." 명훈이 사발을 내밀며 말했다. "무엇을 입힐지는, 초벌이 끝나고 천천히 정합니다. 그전엔 정하지 않습니다."

연희는 사발을 받아 두 손으로 감쌌다. 아직 이른 아침의 온도가 손바닥으로 스몄다. 무엇을 입힐지 아직 정하지 않은 흙의 몸. 물기만 빠지고, 아직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연희는 그 미지근함이 자신의 몸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