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가 식는 온도
팔월의 마지막 불을 넣은 것은 사흘 전이었다. 명훈은 이천 신둔의 산기슭, 소나무가 반쯤 그늘을 드리운 자리에 웅크린 장작가마의 봉통 앞에 앉아, 식어 가는 것의 소리를 들었다. 다 타 버린 가마는 조용하지 않다. 벽돌이 온도를 놓아 주면서 미세하게 우는 소리, 재가 주저앉는 소리, 안쪽 어딘가에서 유약이 굳으며 그릇이 저 혼자 갈라지거나 붙는 소리. 그는 그 소리들을 이름처럼 알았다.
가마를 식히는 데에는 불을 넣는 것보다 더 오랜 밤이 든다. 사람들은 불을 지피는 사흘을 이야기하지만, 명훈에게 진짜 일은 그 뒤에 왔다. 천삼백 도에서 아래로, 아주 천천히. 하루에 몇백 도씩 서둘러 내리면 그릇의 몸에 금이 간다. 안과 밖이 다른 속도로 식으면서 서로를 찢는다. 그래서 그는 봉통을 흙으로 봉하고, 재구멍을 젖은 가마니로 덮고, 밤새 그 곁을 지켰다. 식는 것을 지켜보는 일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그게 그 일의 전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놓지 않는 것.
아내가 죽은 지 여덟 해가 되었다. 그 사이 그는 이곳에서 혼자 불을 넣고 혼자 식혔다. 도시의 딸은 아버지가 산속에서 늙어 간다고 걱정했지만, 명훈은 자신이 늙는 게 아니라 굳어 간다고 생각했다. 그릇처럼. 한 번 천삼백 도를 지나온 것은 다시 물러지지 않는다. 그는 그 단단함이 좋았다. 외로움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편안했다.
그 여자가 온 것은 해가 산등성이에 걸린 저녁이었다.
봄에 우편으로 찻사발 하나를 주문했던 사람이었다. 서연희. 편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대개 그런 주문은 택배로 부치고 끝났다. 그런데 이 사람은 편지를 보냈다. 손으로 쓴 편지에, 자신은 차를 우린다고, 지금 쓰는 사발은 입술에 닿는 자리가 너무 매끄러워서 물이 미끄러진다고, 조금 거친 자리가 있는 사발을 갖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물이 미끄러진다는 표현을 명훈은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건 그가 쓰는 말이었다. 흙을 아는 사람의 말.
여자는 회색 삼베 옷을 입고, 오래 걸어온 사람처럼 신발에 흙을 묻힌 채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흔 대여섯쯤. 얼굴에 화장기가 없었고, 눈가에 잔주름이 자리를 잡았는데 그게 지친 얼굴이 아니라 오래 무언가를 응시해 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명훈은 앉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불을 아직 안 여셨네요." 여자가 가마를 보며 말했다. 인사보다 먼저 그 말이 나왔다.
"열려면 멀었습니다." 명훈이 말했다. "지금 열면 다 깨집니다."
"며칠이나 걸려요."
"이레는 봅니다. 크기가 크면 열흘도."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는 아는 사람의 무게가 있었다. 조급하지 않은 사람의. 그는 마당 끝의 평상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으며, 가마를 마치 잠든 짐승 보듯 바라보았다.
"기다리는 게 일이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식는 걸 지키는 겁니다. 기다리는 거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데요."
명훈은 잠깐 대답을 골랐다. 여덟 해 동안 아무도 그에게 그런 걸 묻지 않았다.
"기다리는 건 딴 데 마음을 두고 시간이 가기를 바라는 거고." 그가 봉통의 봉한 자리를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지키는 건, 여기 온도가 지금 몇 도쯤일지 계속 몸으로 세고 있는 겁니다. 놓으면 금이 가니까."
여자가 그를 오래 보았다. 저녁 빛이 여자의 옆얼굴을 지나가며 광대 위에 옅은 그늘을 만들었다.
"저도 그런 걸 압니다." 여자가 말했다. "온도를 세는 거요."
명훈은 물을 끓여 차를 냈다. 봄에 보낸 그 사발이 아직 그의 선반에 있었다. 부치지 않았다. 왜였는지 그때는 몰랐다. 입술 닿는 자리에 일부러 유약을 얇게 발라 흙살이 비치도록 한 사발이었다. 그는 그 사발에 차를 담아 여자 앞에 놓았다.
여자는 사발을 두 손으로 감쌌다. 뜨거웠을 텐데 놓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온도를 재듯이 한참을 그렇게 쥐고 있다가, 사발을 돌려 입술 닿는 자리를 찾았다. 거친 자리에 아랫입술을 대고, 그는 눈을 감았다.
"여기예요." 여자가 나직이 말했다. "물이 미끄러지지 않는 자리."
명훈은 자신의 작업대를 흘긋 보았다. 유약을 입힐 때 물이 닿지 않아야 하는 자리를 막는 데 쓰는 밀랍 덩어리가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누렇고 반투명한, 벌집에서 나온 초. 낮에 촛대에 녹여 붓으로 발라 두었던 것이 다시 굳어 표면에 잔물결처럼 무늬를 남겼다. 여자의 시선이 그 밀랍에 잠깐 머물렀다. 아주 잠깐. 그러나 명훈은 그 시선이 무늬 위를 지나가는 속도가, 다른 것을 볼 때와 미묘하게 달랐다는 걸 알았다. 오래 흙을 만진 사람은 손끝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온도를 잰다.
"이 초는 어디다 쓰세요." 여자가 물었다. 가벼운 물음이었다. 너무 가벼워서, 명훈은 오히려 그게 가볍지 않은 물음이라는 걸 알았다.
"발수(撥水)에 씁니다." 그가 말했다. "유약이 묻으면 안 되는 자리에 미리 초를 발라 둡니다. 초를 바른 데는 유약이 물처럼 굴러떨어지지요. 그러면 거기만 흙살이 그대로 남습니다."
"녹는 온도가 있겠네요. 초도."
"예순두 도쯤 됩니다. 벌초는." 명훈이 말했다. "생각보다 낮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초는 뜨거운 걸로만 아는데, 손등에 떨어질 정도로 식으면 그렇게 뜨겁지도 않습니다. 붓는 높이에 따라 다르고요."
여자는 사발을 다시 두 손으로 감쌌다. 밖에서는 산이 어두워지고, 가마는 여전히 낮게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은 사람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온도가 내려가는 소리였다.
"열흘 뒤에 다시 와도 될까요." 여자가 말했다. "여는 걸 보고 싶어요."
명훈은 대답 대신, 봄에 부치지 않은 그 사발을 여자 앞으로 조금 더 밀어 주었다.
"이건 가져가십시오. 원래 부쳤어야 하는 건데." 그가 말했다. "여는 건 다음에 보시고."
여자는 사발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명훈 쪽으로 도로 밀며 말했다.
"부치지 않으셨잖아요.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그러고는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저는 그 이유가 뭔지 좀 더 알고 싶은데요."
그날 밤 여자가 산을 내려간 뒤에도 가마는 오래 식었다. 명훈은 봉통 앞에 다시 앉아, 벽돌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접시 위의 밀랍을 오래 바라보았다. 예순두 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온도를 손등 어디쯤에서 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