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이라는 말
지호의 집은 오래된 아파트 꼭대기 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야 했고,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하나는 자신의 발소리를 들었다. 콘크리트 위에 떨어지는 소리는 정확했다. 한 계단에 한 번. 그 규칙성이 그녀를 조금 진정시켰다.
문을 열어 준 그는 맨발이었다.
"들어오세요. 시끄러운 건 다 꺼 놨어요."
무슨 뜻인지 하나는 곧 알았다. 그의 집에는 시계가 없었다. 텔레비전도 없었다. 냉장고 소리가 났지만 그것은 어디에나 있는 소리였다. 거실에는 낮은 탁자와 두 개의 방석, 그리고 책이 있었다.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겨울 오후의 빛이 커튼 가장자리에서만 새어 들어왔다.
"원래 이렇게 살아요?"
"원래는 시계가 있었어요."
그는 그 말을 더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는 그 시계가 언제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방석에 앉았다.
그날 두 사람은 세 시간을 이야기했다. 정확히는, 하나가 두 시간을 이야기하고 지호가 한 시간을 물었다.
그녀는 이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쁜 사람은 없었다. 다들 규칙을 지켰다. 빨강이라고 말하면 멈춘다는 규칙. 하지만 문제는 규칙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녀였다.
"몸이 차오르면 목이 먼저 막혀요. 소리를 내려면 목을 지나야 하는데, 그때 목은 다른 걸 하고 있어요. 숨을 쉬거나, 울거나, 아니면 그냥 잠겨 있거나. 말이 나오려면 그 다음이에요. 그런데 그 다음은 늘 늦어요."
"얼마나 늦어요?"
"한 호흡. 두 호흡. 별거 아닌 것 같죠."
"별거예요."
지호는 그렇게 말하고 물을 마셨다. 하나는 그가 자기 말을 덜어 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그 지점에서 위로를 시작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천천히 하면 돼. 그는 위로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문제라는 데 동의했다.
"손은 안 늦어요. 손은 몸이랑 붙어 있어요. 목을 안 지나도 돼요. 무서우면 손이 먼저 알아요. 좋아도 손이 먼저 알고요."
"그런데 손이 묶여 있으면."
"네."
"묶이지 않으면요?"
하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커튼 가장자리의 빛이 조금 옮겨 가 있었다.
"묶이고 싶어요. 그게 문제예요."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 않았다. 그는 그 두 가지가 서로 부딪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보여 줄 수 있어요?"
"뭘요?"
"차오를 때 손이 뭘 하는지."
그녀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 준 적은 없었다. 아무도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는 오른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처음엔 이렇게요."
손가락이 안으로 말렸다. 주먹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붙잡으려다 놓친 손 같았다.
"그 다음엔."
손가락이 한 번에 펴졌다. 다섯 개가 다 펴져서 탁자 위에 납작하게 붙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저도 몰라요. 그만인지, 더인지. 그냥 그렇게 돼요."
지호는 그 손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가 자기 손을 그 옆에 놓았다. 닿지는 않았다. 두 손 사이에 손가락 하나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그런데 하나만 시험해 보고 싶어요. 괜찮으면."
"뭘요."
"당신 손을 잡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노랑을 말해 보는 거예요. 소리로. 언제든지."
하나는 그 실험의 뜻을 이해했다. 그는 그녀가 말한 것을 믿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직접 보고 싶은 것이었다. 통역사가 문장을 옮기기 전에 원문을 두 번 확인하는 것처럼.
"알겠어요."
그는 그녀 앞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녀의 두 손목을 잡아 천천히 머리 위로 올렸다. 밧줄은 없었다. 그의 손이 밧줄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두 손목을 벽에 눌렀다. 힘은 세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움직이면 곧 알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뺨에 왔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입을 맞췼다.
천천했다. 처음에는 입술만. 그다음에는 조금 더. 하나는 자기 목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아래 입술을 물었을 때 그녀는 작게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손이 뺨에서 목으로, 목에서 쇄골로 내려왔다. 셔츠 단추가 하나, 둘 열렸다. 그의 손가락이 브래지어 위를 지나 아래로, 배 위에 잠시 머물렀다. 그는 입을 떼지 않았다. 하나는 그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 온전히 알 수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손의 위치는 소리보다 정확했다.
그의 손이 청바지 단추를 풀었다. 지퍼가 아주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그녀는 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속옷 위로 그녀를 눌렀을 때, 그녀는 자기가 이미 젖어 있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는 것을 알았다. 얇은 천이 그 사실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천 위로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그의 가운데 손가락이 정확한 자리를 찾아 멈췄다. 하나의 허리가 벽에서 떨어졌다.
노랑. 그녀는 그 말을 생각했다. 지금이 시험이었다. 지금 말해야 했다. 목이 열려 있었다. 목은 열려 있었지만 그 안으로 다른 것이 가득 차서 말이 지나갈 자리가 없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었다. 말은 그 숨 뒤에 있었다. 한 호흡. 두 호흡.
그의 손이 멈췄다.
입술도 떨어졌다. 하나는 눈을 떴다. 지호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을 잡은 그의 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손 아래에서 그녀의 손가락이 다섯 개 모두 벽에 납작하게 펴져 있었다.
"봤어요."
그가 말했다.
"소리보다 먼저."
하나는 자기 손을 보았다.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을 몰랐다. 손이 먼저 알았다. 손은 늘 먼저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이제야 말이 나왔다. 늦게.
"그만하라는 뜻이 아니었어요."
지호는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그 손을 그녀의 손 위에 겹쳐 놓았다. 아주 가볍게.
"알아요. 그래서 멈춘 거예요.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그것이 정확했다. 하나는 그 정확함에 조금 울고 싶어졌다. 뜻을 모르는 신호를 받으면 멈추는 것. 그것은 통역사가 배우는 첫 번째 규칙이기도 했다. 모르면 옮기지 마라. 모르면 물어라.
"우리 걸 만들죠."
그가 말했다.
"당신 손이 하는 말을, 내가 손으로 읽을 수 있게."
우리. 그는 이번엔 그렇게 말했다.
하나는 청바지 단추를 다시 채웠다. 손이 조금 떨렸다. 지호는 그것을 보았지만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하게 두었다. 그것도 그녀는 고마웠다.
돌아가는 계단에서 그녀는 다시 자기 발소리를 들었다. 한 계단에 한 번. 그런데 이번에는 그 소리가 아까와 다르게 들렸다. 누군가 위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