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먼저 말하는 사람
진료실의 형광등은 아주 낮게 울었다. 하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유일한 차이였고, 하나가 이 의자에 앉아 있는 이유였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수치가 조금 높긴 한데, 이 정도면, 뭐, 지켜보죠."
의사는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하나는 의사의 입이 아니라 여자의 눈을 보며 손을 움직였다. 아마. 조금. 뭐. 소리로 된 말에는 그런 것들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 입은 결정을 미룰 수 있었다. 문장의 끝을 흘려 버릴 수 있었다.
손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하나의 손은 '괜찮다'와 '지켜본다'를 정확한 모양으로 만들어야 했다. 의사가 흘려 버린 '아마'를 어디에 얼마만큼 놓을지, 그 결정을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의 손가락이 해야 했다. 손은 얼버무릴 수 없다. 얼버무리려면 손을 내려야 했다. 손을 내리는 것은 침묵이었고, 침묵은 통역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였다.
여자가 손을 들어 물었다. 얼마나 높은가요.
하나는 그 질문을 소리로 바꾸어 의사에게 건넸다. 의사가 숫자를 말했다. 하나는 숫자를 다시 손으로 바꾸었다. 숫자는 손 위에서 더 정확해졌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병원을 나오자 저녁이었다. 하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하루 종일 일한 손은 저녁이 되면 늘 조금 뜨거웠다. 그녀는 그 열을 좋아했다. 말을 한 흔적이 몸에 남는 것 같아서였다.
사람들은 종종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온종일 손으로 말하면 힘들지 않아요. 하나는 그때마다 웃기만 했다. 사실은 반대였다. 힘든 것은 소리였다. 소리는 새어 나갔다. 소리는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공기 속으로 흩어졌고, 한 번 나가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손은 달랐다. 손은 상대가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했다. 손은 도착한 것을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모임은 여덟 시였다.
오래된 건물 이층에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나무 바닥, 낮은 조명, 벽에 걸린 밧줄 몇 타래. 열두 명 정도가 둘러앉아 있었고, 하나는 문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이곳에 오는 것은 세 번째였다. 아직 누구와도 깊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로 보았다.
그날 밧줄을 설명하는 사람은 지호였다. 그는 말이 많지 않았다. 매듭 하나를 만들고, 풀고, 다시 만들었다. 그의 손은 서두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매듭의 이름을 받아 적는 동안 하나는 그의 손가락이 밧줄을 쥐는 방식을 보았다. 엄지가 어디에 놓이는지, 남은 손가락들이 어떤 순서로 열리는지.
그는 밧줄을 자기 왼쪽 손목에 감아 보이면서 말했다.
"묶는 사람이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건, 묶인 사람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예요."
그 문장은 조용했지만 하나에게는 크게 들렸다.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이 밧줄을 정리하는 동안 지호가 그녀 쪽으로 왔다. 그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매듭을 안 보시더라고요."
하나는 조금 놀랐다. 그는 그녀가 무엇을 보는지 알고 있었다.
"손을 봤어요."
"왜요?"
"직업이요. 손으로 말을 옮겨요. 수어 통역사예요."
지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 입술을 살짝 안으로 무는 것을 하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그럼 손이 묶이면, 말을 잃는 거네요."
하나는 그가 그 질문을 할 줄 알았다. 사람들은 대개 거기까지 생각하고 멈췄다. 그래서 그녀는 늘 준비해 둔 대답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나왔다.
"아니요. 그때부터가 진짜 문제죠."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계속 말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하나는 그 기울임을 읽었다. 그것은 손으로 된 말이 아니었지만, 그녀가 하루 종일 읽는 것들과 같은 종류였다.
"사람들은 안전어를 소리로 정해요. 빨강, 노랑. 근데 저는 소리가 늦어요. 몸이 먼저 차고, 말은 그 뒤에 와요. 손은 안 늦어요. 손은 몸이랑 같이 움직여요. 그런데 손이 묶여 있으면……"
그녀는 거기서 멈췄다. 자신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말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지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손이 묶여 있으면, 제일 정확한 말을 못 쓰는 거네요."
"네."
"그럼 다른 말을 만들어야겠네요."
그는 그 말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했다. 문제를 발견한 사람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말하는 사람의 말투였다. 하나는 그의 손을 보았다. 종이컵을 내려놓은 뒤 그의 손은 탁자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손가락이 다 펴져 있었다. 무엇도 쥐고 있지 않은 손.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하나는 불을 켜지 않고 잠시 서 있었다. 냉장고가 아주 낮게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자기 손을 들어 어둠 속에서 몇 개의 모양을 만들어 보았다. 괜찮다. 기다려. 그만.
어둠 속에서는 아무도 그 말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다. 그것이 소리와 다른 점이었다.
그녀는 지호가 마지막에 한 말을 떠올렸다. 다른 말을 만들어야겠네요. 그는 우리가, 라고 하지 않았다. 아직은.
하나는 손을 내리고 불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