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함은 비어 있지 않다

일 년째 되는 파티는 토요일이었고, 도영은 사물함 27번 앞에 서 있었다.

재호는 이제 27번 열쇠를 도영에게 따로 건네지 않았다. 카운터 서랍 안 27번 자리에 그냥 놔뒀고, 도영이 와서 가져갔다. "니 지정석이야" 재호가 첫 번째로 그렇게 했을 때 도영은 웃었다. 지정석. 그 단어가 회사 주차장에서 쓰는 단어인 게 웃겼다.

열쇠를 넣고 돌렸다. 딸깍.

재킷을 벗었다. 걸었다. 넥타이를 풀었다. 손이 매듭에서 미끄러지지 않았다.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풀었다. 바지. 구두. 양말. 가방에서 검은 반바지와 티셔츠. 하네스는 이제 가방에 항상 들어 있었다. 우진 집 신발장에서 도영 가방으로 옮긴 건 여섯 달 전이었다. 우진이 "이건 네 거니까 네가 들고 다녀" 했다. 방석이 두 개인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하네스를 혼자 찼다. 버클 셋. 딸깍 딸깍 딸깍.

그는 사물함 안을 봤다. 옷걸이 하나에 정장 한 벌, 그 아래 구두 한 켤레.

일 년 전 그는 이 안에 사람 하나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까 둘 다 틀렸다. 이건 그냥 정장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입을 옷. 잘 다려져 있고 소매 단추가 하나 헐거워서 이번 주에 고쳐야 하는. 사물함 안에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여기 서 있었다. 하네스를 찬 채로. 그리고 월요일에는 저 옷을 입은 채로 서 있을 것이었다. 그때도 사람은 여기 있을 것이었다.

정장은 사물함이 아니었다. 사물함도 감옥이 아니었다. 그냥 옷장이었다. 옷장은 옷이 있으면 비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문을 닫았다. 열쇠를 돌렸다. 딸깍.

"27번."

돌아섰다. 우진이 통로 입구에 서 있었다. 회색 티셔츠, 검은 조거 팬츠, 맨발. 왼쪽 손목에 목줄 두 번. 오른손에 도영의 가죽 칼라.

"칼라는 내가."

"규칙이니까요."

우진이 들어와서 도영 뒤에 섰다. 가죽이 목에 감겼다. 놋쇠. 두 손가락. 그 손가락이 물러나지 않고 목 옆을 따라 턱 밑으로 올라와서 도영의 고개를 뒤로 젖혔다. 우진이 위에서 도영 입에 입을 맞췄다. 짧게. 사물함 통로에서.

"일 년."

"네."

"열쇠."

도영은 열쇠를 건넸다. 우진이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올렸다. 그 소리는 이제 크게 들리지 않았다. 그냥 지퍼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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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보드에 재호가 '오늘의 팩'을 쓰고 있었다. 모카, 감자, 두부, 콩이, 루비, 보리, 깜지, 솜(14번의 이름이었다—두 달 뒤에 정했고, 이유는 말 안 했다), 그리고 신입 둘. 31번, 8번.

"보리." 재호가 마커를 든 채 돌아봤다. "오늘 31번 너 봐. 우진이는 8번. 세라 누나 오늘 감자 컨디션이 안 좋아서 감자만."

"감자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어떤데요?"

"조용해."

도영이 웃었다. 매트 쪽에서 감자가 정말로 구석에 엎드려 있었다. 세라가 옆에 앉아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조용한 감자는 도영도 처음 봤다.

우진이 도영의 손목에 목줄을 감아줬다. 두 번. 이제 도영도 혼자 감을 수 있는데 우진이 했다. 그것도 규칙이었다. 우진이 만든 규칙.

"오늘 네가 나한테 배운 거 아니고 네가 아는 거로 해."

"차이가 있어요?"

"이제 없어. 그래서 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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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은 여자였다. 이십대 후반, 빨강 팔찌. 회색 후드에 검은 레깅스. 초등학교 교사라고 했다. 사물함 통로에서 열쇠를 반바지 주머니가 아니라 후드 주머니에 넣고 세 번 확인했다.

"31번? 보리야. 오늘 네 담당."

"저, 저는 이름이……"

"아직 없지. 알아."

도영은 무릎 패드를 내밀었다. 규칙을 말했다. 세 가지. 팔찌. 빨강이니까 오늘 아무도 널 안 만져. 인사하러 오는 애들 있으면 눈만 마주쳐도 돼. 네가 만지고 싶은 건 네가 정하는 거야. 신호. 두 번. 목줄은 손잡이가 아니야.

31번이 그 말들을 듣는 동안 도영은 자기 말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 말이었다. 우진이 오늘 저 매트 오른쪽에서 8번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세라가 감자에게 삼 년 전에 했을 말. 재호가 육 년 전 우진에게 했을 말. 그 이전에 누가 재호에게. 도영은 그 줄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몰랐다. 알 필요 없었다. 자기가 그 줄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았다.

"이제 기어봐. 저기 화이트보드까지만."

31번이 엎드렸다. 팔이 너무 길다는 얼굴. 도영은 클립을 걸었다. 딸깍.

"안 봐. 아무도 안 봐. 다들 자기 놀기 바빠."

31번이 갔다. 도영이 따라갔다. 매트 반대편에서 우진이 8번의 목줄을 잡고 따라가고 있었다. 둘이 매트 한가운데서 눈이 마주쳤다. 각자 신입 하나씩 앞세우고. 우진이 아주 살짝 웃었다. 도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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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공에서 31번의 머리가 꺼졌다. 도영은 그걸 봤다. 손바닥을 매트에 내려놨다. 31번이 이마를 댔다. 도영이 머리를 쓸었다.

"잘했어."

31번이 소리를 냈다. 놀랐다.

"응. 그거야. 그거 해도 돼."

그 뒤로 도영은 매트 위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했다. 하나는 31번의 목줄 끝을 손목에 걸고 31번이 어디 있는지 항상 아는 것. 다른 하나는 자기 목에 우진의 칼라가 있다는 걸 항상 아는 것. 둘이 충돌하지 않았다. 일 년 전에는 이게 충돌할 거라고 생각했다. 둘 중 하나여야 한다고. 지금은 그냥 둘 다였다. 한 손엔 목줄, 목에는 칼라. 방석 두 개.

어느 순간 솜이 와서 31번 앞에 멈췄다. 빨강. 솜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눈만 마주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고 물러났다. 31번이 그걸 보고 도영을 돌아봤다.

"인사야." 도영이 말했다. "빨강이라서 안 만진 거야. 저 애 이름 솜. 일 년 전에 저 애도 14번이었어."

31번이 솜의 뒷모습을 봤다. 도영은 그 시선이 뭘 보는지 알았다. 자기도 일 년 전에 모카의 뒷모습을 그렇게 봤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편하지. 그 답은 하나였다. 시간. 그리고 매주 여기 오는 것.

깜지가 매트 저쪽에서 감자를 위로하러 갔다가 감자에게 깔렸다. 조용한 감자가 다시 시끄러운 감자로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세라가 "감자 컨디션 돌아왔네" 하고 한숨을 쉬면서 웃었다. 두부와 두부 남자친구—이제 남편이었다—가 나란히 엎드려 그걸 보고 있었다. 콩이와 루비가 서로 등에 올라탔다가 무너졌다.

밝고, 시끄럽고, 느렸다. 체육관 같았다. 도영의 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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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나고 도영은 31번에게 담요를 걸어주고 물을 건넸다. 십 분 옆에 앉아 있었다. 31번은 울지 않았다. 대신 웃었다. 계속. 웃음이 안 멈추는 사람도 있었다. 도영은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이라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칼라를 풀었다. 딸깍.

사물함 앞에서 열쇠를 돌려줬다. "밖에 있을게. 천천히 입어."

31번이 나왔을 때 회색 후드를 입고 있었고 목이 허전한 얼굴이었다.

"어때?"

"…다음 주에 또 와도 돼요?"

도영은 웃었다. 이 답은 처음이었다. 자기 것보다 좋은 답이었다.

"와. 재호 형한테 나 배정해달라고 하면 되고, 안 해도 다른 핸들러 있어."

"보리 씨로 할게요."

"그럼 보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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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 집에 도착한 건 새벽 두 시였다. 국밥집에서 재호가 "일 년은 오너가 쏘는 거다" 했고 우진이 "그런 규칙 없잖아" 했고 재호가 "지금 만들었어" 했고 우진이 카드를 냈다. 열네 명이었다. 국밥집 사장님이 깍두기를 세 접시 냈다.

현관에서 우진이 도영 손목의 목줄을 풀어 고리에 걸었다. 자기 것 옆에. 하네스를 벗겨 걸었다. 칼라는 그대로.

"일 년."

"네."

우진이 조거 팬츠 주머니에서 뭘 꺼냈다. 상자가 아니었다. 그냥 손바닥에 놓인 작은 것. 도영이 봤다.

가죽 팔찌였다. 검은색. 도영 칼라와 같은 가죽. 안쪽에 작게 뭐가 새겨져 있었다.

"뒤집어 봐."

도영이 뒤집었다. 안쪽에 '보리'. 그 옆에 도영 전화번호.

"형……"

"네 태그에 내 번호 있잖아. 내 손목에도 네 번호 있어야 맞지." 우진이 팔찌를 도영에게 건넸다. "네가 채워."

도영은 우진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목줄이 항상 두 번 감기는 자리. 거기 가죽 팔찌를 채웠다. 버클. 놋쇠. 두 손가락으로 여유를 확인했다. 우진이 그걸 보고 웃었다.

"배운 대로 하네."

"배운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요."

우진이 도영을 안았다. 그러고 도영의 귀에 대고 말했다.

"오늘은 아무도 무릎 안 꿇어."

도영이 물러나서 우진을 봤다.

"침대. 둘 다 사람으로. 칼라는 그대로, 팔찌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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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우진이 도영의 옷을 벗겼고 도영이 우진의 옷을 벗겼다. 동시에. 일 년 동안 처음이었다. 우진이 항상 옷을 입고 있었다. 오늘 우진은 벗었다. 도영은 우진의 몸을 봤다. 재활치료사 몸. 어깨가 넓고 손이 컸다. 손목에 가죽 팔찌.

도영이 우진 위에 올라갔다. 무릎을 벌리고. 우진이 젤과 콘돔을 건넸다. 도영이 우진에게 씌웠다. 손이 안 떨렸다. 젤을 발랐다. 자기 뒤에도. 우진이 손을 뻗었지만 도영이 그 손을 잡아 침대에 눌렀다.

"오늘은 제가."

우진이 눈썹을 올렸다. 그러고 손을 침대에 그대로 뒀다.

도영이 앉았다. 천천히. 자기 속도로. 일 년 동안 몸이 배운 대로. 반쯤. 끝까지. 우진이 밑에서 신음했다. 도영은 그 소리를 들었다. 우진 소리를 이렇게 위에서 듣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봐요."

우진이 웃었다. "누가 누구한테."

"눈 감지 마요."

우진이 눈을 안 감았다. 도영이 움직였다. 우진 얼굴을 보면서. 우진이 자기 안에서 어떤 얼굴을 하는지. 도영은 우진의 두 손목을 잡고 침대에 눌렀다. 가죽 팔찌가 손바닥에 닿았다. 우진이 손목을 빼지 않았다. 빼려면 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안 뺐다.

"이거 괜찮아요?"

"…응."

"처음이죠. 형이 이렇게 있는 거."

"…응."

도영은 그 대답에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위에서, 우진 손목을 누른 채로, 그런데 목엔 우진 칼라. 둘 다. 그는 움직였다. 우진이 알려준 각도. 우진이 밑에서 허리를 들어 맞췄다. 도영이 소리를 냈다. 우진도. 둘 다 소리를 안 죽였다. 새벽 두 시 빌라 3층. 일 년 동안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형."

"응."

"내 강아지라고 해봐요."

우진이 밑에서 웃었다. 그러고 말했다.

"내 강아지."

"또."

"내 강아지. 보리. 내 거."

도영이 손목을 놨다. 우진의 손이 즉시 올라와서 도영의 허리를 잡았다. 그러고 밑에서 세게 올려 박았다. 주도권이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그냥 둘이 하는 거였다. 도영이 위에서 내려오고 우진이 밑에서 올라오고. 우진 한 손이 도영을 잡았다. 도영이 우진 가슴에 손을 짚고 소리를 냈다. 짖는 소리. 일 년 동안 부끄러웠던 적 없는 소리.

"해. 나 봐. 내 위에."

도영이 우진 배 위로 쏟았다. 눈을 안 감고. 우진이 도영 안에서 조여지는 걸 느끼고 몇 번 더 세게 올려 박고 도영의 허리를 잡은 채 멈췄다. 도영이 우진 위로 무너졌다. 칼라 태그가 우진 가슴 위에 떨어졌다. 우진 손이 도영 등을 쓸었다. 가죽 팔찌가 등에 닿았다.

한참을 그렇게.

"물."

"조금만 더요."

"…그럼 조금만 더."

우진 가슴이 도영 뺨 밑에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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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여섯 시 반, 도영은 우진 집 거실에서 정장을 입었다.

셔츠. 단추를 아래에서부터. 바지. 벨트. 넥타이. 매듭을 만들면서 그는 목을 봤다. 거울에. 칼라는 어젯밤에 풀었다. 월요일이니까. 그런데 가죽이 있던 자리에 아주 옅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셔츠 칼라를 세우면 안 보이는 자리에.

우진이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손목에 가죽 팔찌. 병원에 가도 그건 안 풀 거라고 했다. "재활치료사가 팔찌 하는 거 아무도 신경 안 써."

도영은 재킷을 입고 가방을 들었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었다. 신발장 옆에 목줄 두 개, 하네스 하나, 무릎 패드 두 쌍. 파란 방석과 회색 방석이 거실에. 회색 방석에 우진이 앉은 걸 도영은 지난달에 처음 봤다. 그 얘기는 나중이었다. 아니면 다음 일 년.

"밥 사진."

"열두 시 전에 퇴근해요, 오늘은."

"그럼 퇴근 사진."

도영이 웃었다. 우진이 커피잔을 든 채 현관까지 왔다. 도영의 넥타이 매듭을 손으로 한 번 고쳐줬다. 그러고 그 손으로 도영의 목 뒤를 눌렀다. 자국이 있는 자리.

"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도영은 목덜미를 만졌다. 버릇처럼. 셔츠 칼라 아래, 실크 넥타이 아래, 아무것도 없는 자리. 그런데 있었다. 손끝에 아주 옅게. 어젯밤 가죽이 있던 자리. 오늘 밤 다시 있을 자리.

그는 손을 내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열 시 회의가 있었고, 하진이 재고 실사표를 가져올 것이었고, 숫자는 맞을 것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그게 다인 게 좋았다.

정장은 몸에 맞았다. 셔츠도 몸의 모양이었다. 사물함은 홍대 지하 3층에 비어 있었고, 토요일 아홉 시에 다시 채워질 것이었다. 그때까지 정장은 도영이 입고 있을 것이었다. 정장이 도영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그는 목덜미에서 손을 뗐다. 아무것도 조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