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각은 목에 걸린다

오후 6시 47분, 웨이브릿 개발1팀 팀장 김보라는 오늘 열두 번째로 "네, 제가 확인할게요"라고 말했다.

열두 번째라는 건 정확한 숫자다. 그녀는 세고 있었다. 팀장이 된 뒤로 생긴 이상한 습관 중 하나였는데, 하루 동안 자기 입에서 나가는 "제가 할게요"의 횟수를 세다 보면 퇴근 시간이 조금 덜 멀게 느껴졌다. 서른 번을 넘긴 날은 집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격이 생기는 것 같았다.

"팀장님, 스테이징이 또 죽었는데요."

백엔드 주니어 민수가 모니터 뒤에서 고개만 내밀었다. 죽었다는 말을 저렇게 밝게 하는 사람은 세상에 민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죽였어?"

"저요."

"알아. 어떻게 죽였는지 물은 거야."

"아… 마이그레이션 파일 순서를요."

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민수의 모니터 앞에 섰다. 롤백 명령어를 두 줄 쳐 넣고, 로그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며 속으로 열셋, 하고 셌다. 스테이징이 살아나는 동안 프론트엔드의 지은이 다가와 "팀장님, 다음 주 목요일 연차 괜찮을까요?" 하고 물었고, 시니어 동현은 말없이 PR 링크 하나를 슬랙으로 보냈다. 동현은 사람 얼굴을 보고 말을 거는 대신 PR 링크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링크 뒤에 붙은 이모지가 불꽃이면 급한 것, 눈알이면 봐 달라는 것,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알려주는 것. 오늘은 불꽃이었다.

"보라 팀장, 잠깐 시간 돼요?"

CTO 강 이사의 이 문장은 '시간 돼요?'라고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 의미는 '지금 와요'다. 보라는 열넷, 하고 세면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팀장이라는 직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열 명분의 걱정을 대신 하고 한 명분의 월급을 받는 직업. 보라는 이 문장을 승진 3개월째에 만들었고, 아직 더 나은 문장을 찾지 못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그녀의 엄지는 슬랙 위를 오갔다. 민수가 롤백을 성공했다는 메시지에 하트를 눌렀고, 지은의 연차를 승인했고, 동현의 불꽃 PR에 "내일 아침에 볼게요"라고 답했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목이 뻐근했다. 4호선은 늘 그렇듯 사람을 짐처럼 실어 날랐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어둠 속에서 보라는 자기 얼굴이 유리에 비치는 것을 봤다. 회의용 얼굴이었다. 입꼬리가 정확히 3밀리미터 올라가 있고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얼굴.

아파트 복도. 도어락 비밀번호. 여섯 자리를 누르는 동안 손끝에서 하루가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문이 열리기 전에 안에서 먼저 열렸다.

"다녀왔어?"

준혁이었다. 회색 반바지에 낡은 티셔츠, 머리는 낮에 감은 뒤 한 번도 빗지 않은 모양이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은 사람의 머리 모양에 관대하다. 그리고 그의 왼손에는, 얇은 갈색 가죽끈 하나가 걸려 있었다.

끈 한가운데에 작은 황동 방울이 달려 있었다.

보라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정확히는 손에서 힘이 빠져 가방이 떨어졌다. 어깨가 내려갔다. 아침에 올라간 뒤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던 어깨였다.

그녀는 현관 매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열일곱 번."

"오늘 '제가 할게요' 횟수?"

"응."

"수고했어."

준혁이 몸을 숙였다. 가죽끈이 목을 감았다. 따뜻했다. 그가 손에 쥐고 기다리는 동안 체온이 옮은 것이다. 뒤에서 작은 버클이 잠기는 소리가 났고, 이어서, 그녀가 고개를 들자—

딸랑.

"다녀왔어, 나비."

"…야옹."

보라의 첫 야옹은 늘 이렇게 나온다. 지라 티켓을 소리 내어 읽는 사람의 억양으로. 감정이 실리지 않은, 사양서에 적힌 야옹. 준혁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웃는다. 오늘도 웃었다.

"아직 팀장님이네."

"야옹."

"괜찮아. 천천히 내려와."

그는 그녀의 정장 재킷을 벗겼다. 슬랙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신발장 위 서랍에 넣고 닫았다. 이 집에서 방울이 울리는 동안 휴대폰은 서랍에 산다. 그것이 첫 번째 규칙이다.

보라는 네 발로 거실로 갔다. 원목 바닥이 손바닥에 차가웠고, 걸을 때마다 목 아래에서 방울이 흔들렸다. 딸랑, 딸랑.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등뼈가 하나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소파에 준혁이 앉았고, 그녀는 그의 무릎 위로 기어올라 몸을 둥글게 말았다. 서른셋 살 여자 하나가 다 접혀서 들어가는 무릎은 아니었지만, 준혁은 늘 자리를 만들어 줬다.

"오늘 뭐 먹었어?"

"야옹."

"안 먹었구나."

준혁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정수리에서 뒷목으로, 뒷목에서 어깨로. 손바닥이 넓고 따뜻했다. 보라는 목 안쪽에서 낮게 울리는 소리를 냈다. 사람은 진짜 고양이처럼 골골거릴 수 없어서, 그녀가 내는 소리는 준혁의 표현에 따르면 '냉장고가 열심히 일하는 소리'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는 좋아했다. 그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팀장이 나갔다는 뜻이니까.

부엌에서 볶음밥 냄새가 났다. 준혁은 그녀를 무릎에 얹은 채로 몸을 뻗어 식탁 위의 접시를 끌어왔고, 숟가락으로 한 입 떠서 그녀의 입 앞에 댔다. 고양이는 숟가락을 잡지 않는다. 그것이 네 번째 규칙이다. 보라는 그의 손에서 밥을 받아먹었다. 계란과 파와 간장. 열두 시간 만에 처음 먹는 따뜻한 것이었다.

"착하지."

그 말에 그녀는 또 냉장고 소리를 냈다.

세 숟가락, 네 숟가락. 준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다섯 번째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는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었다. 보라는 그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단추가 풀릴 때마다 방울이 조금씩 울렸다. 브래지어 후크가 등 뒤에서 떨어지고, 그의 손바닥이 늑골을 따라 올라와 왼쪽 가슴을 감쌌다.

"여긴 팀장 아니지?"

"…야옹."

이번 야옹은 사양서가 아니었다.

준혁의 엄지가 젖꼭지를 천천히 문질렀다. 한 바퀴, 두 바퀴. 보라의 몸이 무릎 위에서 조그맣게 떨렸고 방울이 따라 떨렸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방울이 대신 보고했다.

"나비 오늘 힘들었어?"

"야옹."

"그럼 오늘은 그냥 받아."

슬랙스 버튼이 풀렸다.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준혁의 손이 속옷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보라는 숨을 멈췄다. 그의 중지가 그녀의 갈라진 틈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쓸어내렸다. 이미 젖어 있었다. 현관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부터였는지, 방울이 처음 울렸을 때부터였는지 그녀도 몰랐다.

"우리 나비 벌써 젖었네."

부끄러움이 얼굴로 올라왔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다리를 조금 벌렸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준혁은 두 손가락으로 그녀를 열었다. 검지와 중지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 보라의 허리가 저절로 들렸고, 방울이 짧게 세 번 울렸다. 그는 손가락을 깊이 넣은 채 잠시 멈추었다가, 안쪽 벽을 천천히 누르며 당겼다. 손바닥 아랫부분이 클리토리스에 닿았다. 그 상태로 손 전체를 작게, 리듬을 타듯 움직였다.

"소리 내도 돼. 말만 안 되는 거야."

"으, 응…"

보라의 손이 그의 티셔츠를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안에서 축축한 소리가 났고, 그 소리와 방울 소리가 번갈아 거실을 채웠다.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이 움직이는 대로 두는 거였다. 팀장은 하루 종일 몸이 아닌 것으로 살았다. 이제는 몸만 남았다.

"착하지. 그렇게. 내 손에 다 맡겨."

그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엄지가 클리토리스를 원을 그리며 눌렀다. 보라의 다리가 떨렸고 발끝이 소파 쿠션을 밀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야옹의 형태를 완전히 잃었다. 준혁이 그녀의 뒷목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방울 바로 위. 그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을 때—

보라는 그의 어깨를 물었다. 티셔츠 위로, 세게. 몸 전체가 무릎 위에서 한 번 크게 경직됐고, 안쪽이 그의 손가락을 꽉 물었고, 방울이 쉬지 않고 울렸다.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다 내려올 때까지, 마지막 떨림이 허벅지 안쪽에서 사라질 때까지 천천히, 더 천천히 움직였다.

"…착하지, 우리 나비."

보라는 축 늘어졌다. 준혁이 손을 빼고, 젖은 손가락을 티셔츠에 닦고, 그녀를 다시 무릎 위에 제대로 안았다. 그녀는 그의 목에 코를 대고 숨을 쉬었다. 냉장고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게.

한참 뒤, 그녀의 손이 그의 반바지 허리춤으로 내려갔다. 준혁이 그 손을 잡아 올렸다.

"오늘은 그냥 받는 날."

"…야옹."

"팀장은 하루 종일 줬잖아. 열일곱 번."

보라는 그 말을 반박할 문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문장은 방울이 풀린 뒤에나 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그의 무릎에 다시 몸을 말았다. 방울이 마지막으로 한 번 울리고 조용해졌다.

내일 아침 일곱 시에 이 방울은 다시 풀릴 것이다. 그때까지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됐다. 열 명의 팀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