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 사 분의 두유
밤은 시간대별로 손님이 다르다.
열 시에 교대를 하고 앞치마를 두르면 처음 오는 건 퇴근이 늦은 사람들이다.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넣은 채 도시락과 캔맥주를 산다. 열두 시가 지나면 취객이다. 담배 이름을 두 번 말하고, 잔돈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문을 어깨로 민다. 한 시에는 대리기사들이 온다. 커피를 사고, 취식대에 서서 마시고, 휴대폰을 보다가 부르는 소리가 나면 반쯤 남긴 채 나간다. 두 시에는 물류 트럭이 온다. 트럭 아저씨는 상자를 열두 개쯤 내려놓고 인수증에 사인을 받고, 현수가 인사를 하면 고개만 까딱하고 간다. 열한 달 동안 그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세 시가 된다.
세 시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대로 건너편 오피스텔에 불 켜진 창이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아무도 오지 않는다. 오늘은 세 개다. 어제도 세 개였다. 현수는 그 세 개 중 하나가 매일 같은 창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지만 확인해본 적은 없다. 유리에 자기 얼굴이 비쳐서 잘 보이지 않기도 했다.
세 시에 오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여자는 세 시 사 분쯤에 온다. 세 시 이 분에 오는 날도 있고 세 시 칠 분에 오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사 분이다. 문이 열리면 차임이 두 번 울리고, 여자는 곧장 음료 냉장고로 간다. 회색 코트. 여름에는 리넨 셔츠였고 가을에는 카디건이었는데 지난주부터 회색 코트다. 냉장고에서 무가당 두유를 하나 꺼낸다. 백구십 밀리리터짜리, 초록색 팩. 가끔 초코바를 하나 더 산다. 원플러스원 행사 중이어도 하나만 산다. 계산대에 올리고, 지갑이 아니라 코트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천사백 원. 초코바까지 사는 날은 이천육백 원. 언제나 딱 맞는 금액이다.
"영수증 드릴까요."
"네."
이 편의점에서 영수증을 받아가는 손님은 그 여자 하나다.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거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나가고, 현수는 뽑혀 나온 종이를 찢어서 계산대 밑 상자에 넣는다. 그 여자는 영수증을 받아 반으로 접어 코트 주머니에 넣는다. 두유는 손에 든 채로 나간다. 차임이 두 번 울린다.
그게 전부다. 열한 달 동안 그게 전부였다.
현수는 그 여자의 이름을 모른다. 카드를 쓰지 않으니 알 방법이 없다. 나이는 서른 후반쯤이라고 짐작했다. 눈가 때문이었다. 웃는 걸 본 적은 없는데 눈가에 웃음이 지나간 자리가 있었다. 손톱은 짧고 깨끗했고 반지는 없었다. 편의점 안에서는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냉장고 앞에서 잠깐, 매일 사는 두유의 성분표를 읽었다. 매일 같은 것을 사면서 매일 읽었다. 현수는 그게 읽는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세 시에 창문을 세는 것처럼.
두 시 오십 분이 되면 현수는 음료 냉장고 문을 열고 두유를 정리한다. 앞줄에 있는 것을 뒤로 밀고 뒷줄에서 가장 차가운 것을 앞으로 꺼낸다. 물류에서 들어온 새것이 있으면 그걸 앞에 둔다. 유통기한이 긴 것을 앞에 두는 건 매장 규칙에 어긋난다. 사장이 알면 뭐라고 할 것이다. 사장은 두 시 오십 분에 매장에 없다.
그 여자는 모른다. 현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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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스물여섯이다. 시각디자인과 삼학년 일학기를 마치고 휴학했고, 휴학은 이 년째다. 복학을 하려면 등록금이 필요하고 등록금을 벌려면 야간 근무가 시급이 높다. 그게 처음의 계산이었다. 지금은 계산을 하지 않는다. 계산을 하면 이 년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편의점에서 원룸까지는 걸어서 칠 분이다. 여섯 시에 교대를 하고 여섯 시 십 분에 집에 들어가면 암막커튼을 치고 폐기 도시락을 먹는다. 여덟 시에 눕는다. 오후 두 시쯤 엄마 전화가 온다. 엄마는 그가 자는 시간을 알지만 두 시에 전화를 한다. 그 시간이 엄마가 시간이 나는 시간이다. 현수는 받거나 받지 않는다. 받으면 목소리가 갈라진다. 엄마는 밥은 먹었느냐고 묻고, 현수는 먹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그게 어느 끼니를 말하는지 묻지 않는다.
세 시에 일어나 씻고, 다섯 시쯤 창문을 열면 해가 지고 있다. 그는 그 시간에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 대학 친구들은 취업을 했거나 준비를 했다. 단체 대화방에 가끔 낮 술 약속이 올라온다. 현수는 읽고 답하지 않는다. 그가 깨어 있을 때 그들은 자고, 그들이 깨어 있을 때 그는 잔다. 처음에는 그게 핑계였는데 이제는 사실이 됐다.
밤에 깨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사람이 줄어드는 대신 모르는 사람을 더 잘 보게 된다. 대리기사 아저씨는 왼손 약지에 반지 자국만 있다. 취객 중 한 명은 매주 화요일에 와서 매주 같은 소주를 산다. 물류 아저씨는 상자를 내려놓을 때 허리를 왼쪽으로만 편다. 그리고 세 시 사 분에 오는 여자는, 두유 팩을 손에 들고 나갈 때 팩의 윗부분이 아니라 몸통을 감아 잡는다. 손이 차가운 사람이 차가운 것을 쥐는 방식이다.
현수는 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말할 사람이 없기도 했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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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 첫째 주 목요일이었다.
두 시 오십 분에 두유를 정리했다. 물류에서 새것이 들어온 날이었다. 유통기한이 삼 주 남은 초록색 팩을 맨 앞에 두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유리에 손자국이 남았다. 닦지 않았다. 다시 계산대로 돌아가 오피스텔 창을 셌다. 세 개. 그중 하나가 꺼졌다. 두 개.
세 시 삼 분에 차임이 두 번 울렸다.
회색 코트. 여자는 냉장고로 갔고 문을 열었고 앞줄의 두유를 꺼냈다. 성분표를 읽었다. 그러고 나서 진열대 쪽으로 가서 초코바를 하나 집었다. 오늘은 초코바를 사는 날이다. 현수는 이천육백 원이라고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했다.
"이천육백 원입니다."
동전이 계산대 위에 놓였다. 오백 원짜리 다섯 개, 백 원짜리 하나. 딱 맞았다.
"영수증 드릴까요."
"네."
여자가 영수증을 받았다. 그리고 반으로 접지 않았다.
"펜 좀 빌려주세요."
계산대에는 끈이 달린 볼펜이 하나 있다. 배달 기사들이 인수증에 사인을 할 때 쓰는 것이다. 현수는 그것을 건넸다. 여자는 영수증을 뒤집어 흰 면을 위로 놓고, 계산대에 대고 무언가를 썼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줄, 그리고 한 줄. 볼펜을 내려놓고 영수증을 한 번 접었다. 그리고 그것을 현수 쪽으로 밀었다.
"이건 현수 씨 거."
현수는 자기 가슴께를 봤다. 명찰. 김현수. 열한 달 동안 달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두유 팩의 몸통을 감아 잡고 돌아섰다. 차임이 두 번 울렸다. 문이 닫혔다. 유리 너머로 회색 코트가 대로 쪽으로 걸어갔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고, 건너갔고, 오피스텔이 아니라 그 옆 아파트 단지 쪽으로 들어갔다. 현수는 그 여자가 어디로 가는지 처음 봤다. 열한 달 동안 문 밖을 본 적이 없었다.
영수증은 계산대 위에 접힌 채로 있었다.
세 시 육 분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물류 상자 세 개가 아직 뜯기지 않은 채 매대 옆에 있었다. 현수는 영수증을 집어 펼쳤다.
내 지시를 따를 준비가 되면 이 번호로 연락해.
그 아래에 열한 자리 숫자가 있었다. 글씨는 작고 곧았다. 힘을 준 데가 없었다. 볼펜을 눌러 쓴 자리가 종이 뒷면, 그러니까 영수증 앞면의 '무가당 두유 1,400'이라는 글자 위로 살짝 비쳤다.
현수는 그것을 두 번 읽었다. 세 번째에는 읽지 않고 그냥 봤다.
지시.
그는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았다. 스물여섯이고 밤에 깨어 있는 사람이고, 밤에 깨어 있는 사람은 인터넷에서 많은 것을 본다. 다만 그 단어가 자기한테 온 적은 없었다. 이 편의점에서, 세 시 육 분에, 이천육백 원짜리 영수증 뒷면으로.
그는 영수증을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물류 상자를 뜯었다. 컵라면을 진열하고 삼각김밥을 냉장 매대에 채웠다. 네 시에 대리기사가 한 명 와서 커피를 샀고, 영수증은 받지 않았다. 현수는 그것을 찢어 상자에 넣었다.
다섯 시 오십 분에 아침 교대가 왔다. 여섯 시에 앞치마를 벗었다. 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내 바지 주머니로 옮겼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춥고, 대로 건너편 아파트에는 불 켜진 창이 하나도 없었다.
집까지 칠 분을 걸었다. 암막커튼을 쳤다.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영수증을 책상 위에 펴놓고 오래 봤다.
세 시 사 분에 오는 여자는 자기 이름을 알고 있었다. 열한 달 동안.
두유 냉장고 문에는 손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자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