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네 차례

시아가 고른 영화는 무성영화였다.

"무성영화?"

"1927년작. 복원판. 자정 상영."

"소리가 없어?"

"피아노 반주만."

하준은 예매 화면을 오래 들여다봤다. 시아는 그 옆에서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안으로 말고.

"규칙은."

"오빠가 소리 내지 말 것."

"그리고?"

"나는 규칙 없음."

"불공평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네."

하준은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시아는 그 얼굴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증거용.

토요일 자정. 3관. 무성영화는 정말로 아무도 안 봤다. 좌석 백 몇 개, 관객 둘. 시아는 맨 뒷줄 가운데를 골랐다. 정확히 하준이 첫날 골랐던 자리.

"코트 벗어."

"추운데."

"무릎에 덮어."

하준은 순순히 벗었다. 시아는 그게 웃겼다. 하준은 이런 걸 잘 못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손이 갈 곳이 없어서 팔걸이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것.

영화가 시작됐다. 흑백. 여자가 계단을 내려왔다. 피아노가 그 발걸음을 따라갔다. 대사는 자막으로. 상영관에는 피아노 소리밖에 없었다.

"이제 알겠지."

"뭘."

"오빠가 신음하면 피아노 위로 다 들려."

하준이 시아를 봤다. 시아는 스크린을 봤다. 손을 하준의 무릎 위에 얹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아무것도 안 했다.

십 분. 이십 분.

"시아."

"영화 봐."

"너 이거—"

"쉿."

시아는 그 말이 이렇게 통쾌한 줄 몰랐다. 하준은 입을 다물었다. 시아는 이십 분을 더 아무것도 안 했다. 손만 얹고. 하준의 허벅지가 손바닥 밑에서 점점 굳어갔다. 청바지 앞이 점점 부풀었다. 시아는 그걸 곁눈으로 보면서 웃었다. 소리 없이.

삼십오 분. 시아의 손이 움직였다. 지퍼로. 아주 천천히. 한 칸. 한 칸. 지퍼 소리가 피아노 밑에서 났다.

"천천히."

하준이 말했다. 시아가 고개를 돌렸다.

"소리."

"…말은 되잖아."

"내 규칙에 그런 예외 없어."

"—"

하준이 입을 다물었다. 시아는 그의 것을 꺼냈다. 이미 단단하고 이미 뜨겁고 이미 끝이 젖어 있었다. 시아는 그걸 손바닥으로 감싸고 한 번 쓸어내렸다. 하준의 숨이 콧구멍에서 세게 뿜어졌다.

"경계선."

시아가 속삭였다. 하준이 눈을 감았다.

시아는 천천히 했다. 아주 천천히. 하준이 시아한테 했던 것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리듬을 주다가 뺏는 것. 가까워지면 멈추는 것. 멈춘 채로 그냥 쥐고만 있는 것. 하준의 허벅지가 떨렸다. 허리가 저절로 시아의 손을 향해 밀렸다. 시아는 그만큼 손을 뒤로 뺐다.

"가만히 있어."

"…"

"착하네."

하준이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도 그 눈이 뭘 말하는지 보였다. 나중에 죽는다. 시아는 웃었다.

"나중은 나중이고."

시아가 몸을 숙였다. 코트 밑으로. 하준이 시아의 머리를 잡았다. 밀어내려는지 끌어당기려는지 자기도 모르는 손이었다. 시아는 입을 벌리고 그를 받았다. 끝부터. 천천히. 혀로 한 바퀴. 그리고 깊게.

하준의 허리가 좌석에서 떴다. 소리가—

났다. 아주 낮게. 목 안에서. 짧게.

시아는 입을 뗐다. 고개를 들었다. 하준의 얼굴이 스크린 불빛에 반쯤 잠겨 있었다. 입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자기 입을 자기 손으로.

"냈다."

"…안 냈어."

"냈어."

"목이야."

"벌칙."

시아는 코트를 정리했다. 하준의 것을 꺼내진 채로 두고. 손을 뗐다. 팔걸이에 팔을 얹고 스크린을 봤다. 흑백 여자가 편지를 읽었다. 피아노가 슬펐다.

"시아."

"영화 봐."

"장난이지."

"오빠는 장난이었어?"

하준은 대답 못 했다. 시아는 십오 분을 그렇게 뒀다. 하준의 것이 코트 밑에서 서 있는 채로, 아무도 만지지 않는 채로. 하준은 십오 분 동안 세 번 시아 이름을 부르려다가 참았다. 시아는 셌다.

"이제 알겠어?"

"…응."

"뭘."

"고문이랑 벌칙이 같은 거."

시아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 다시 몸을 숙였다.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입으로 깊게, 손으로 뿌리를 쥐고. 하준의 손이 시아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세게. 그것이 시아의 입에서 더 부풀었다. 하준의 숨이 거칠어졌다. 소리는—안 났다. 이번엔 안 났다. 시아는 그게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조금 자랑스러웠다. 오빠도 배우네.

"크레딧까지."

시아가 입을 떼고 속삭였다.

"뭐?"

"크레딧 올라갈 때까지 참아."

"…너 진짜."

"소리."

하준이 이를 갈았다. 시아는 웃으면서 다시 그를 물었다.

무성영화의 마지막 십 분. 피아노가 빨라졌다. 흑백 남녀가 기차역에서 뛰었다. 시아는 피아노에 맞춰 입을 움직였다. 빠르게. 하준의 허벅지가 돌덩이가 됐다. 손가락이 시아의 두피를 파고들었다.

화면이 검어졌다. 흰 글자.

"됐어."

하준이 왔다. 시아의 입 안에. 뜨겁게, 길게. 시아는 전부 받았다. 하준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온몸을 떨면서, 이를 악물고, 좌석 팔걸이를 부술 것처럼 쥐고. 소리 하나 없이.

시아는 고개를 들고 삼켰다. 입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통과."

하준은 좌석에 녹아 있었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보고, 숨만 쉬면서.

"…상."

"뭐?"

"버텼으니까 상."

"오빠가 상을 달라고?"

"규칙이잖아."

시아는 크레딧을 봤다. 1927년 사람들의 이름. 전부 죽은 사람들. 그 밑에서 시아는 원피스를 걷고 하준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이번엔 마주 보고. 아직 반쯤 서 있는 그것을 자기 안에 맞추고, 앉았다.

"이게 상이야."

"이건 네 상 같은데."

"둘이 뭐가 달라."

하준이 웃었다. 시아도 웃었다. 크레딧이 끝나고 불이 켜졌다. 텅 빈 상영관에서 두 사람은 소리를 냈다. 마음껏. 규칙은 끝났으니까.

주차장으로 나오면서 하준이 휴대폰을 꺼냈다. 시아가 들여다봤다.

"뭐 찍어."

"자동차 극장."

"…뭐?"

"경기도에 하나 남았어. 차 안이니까 소리 내도 되고. 근데 옆 차에서 다 보여."

"미쳤어."

"다음 달엔 영화제. 새벽 상영. 관객이 이백 명."

"거긴 안 돼."

"맨 뒷줄은 남아."

시아는 웃음이 터졌다. 주차장 기둥에 웃음이 부딪쳐 돌아왔다.

"그 다음은?"

"아이맥스 맨 앞줄."

"거긴 다 보이잖아."

"그러니까."

시아는 하준의 팔을 잡았다. 걸으면서. 다리가 아직 후들거렸다.

"그래서 다음엔 누가 소리 내면 안 되는데?"

하준이 멈춰 섰다. 시아를 봤다. 씩 웃었다.

"가위바위보."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이 정해."

시아는 손을 내밀었다. 주먹. 하준도. 주차장 형광등 아래에서 두 사람이 진지하게 가위바위보를 했다.

누가 이겼는지는 다음 영화가 시작될 때 알게 될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