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은 두고 와

규칙은 하나였다. 소리를 내지 말 것.

나머지는 전부 그 하나에서 자랐다.

두 번째 심야 상영에서 시아는 삼십 분을 버텼다. 세 번째에서는 한 시간. 벌칙은 매번 같았다. 하준이 손을 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해준다. 침대에 눕히고도 안 해준다. 시아가 먼저 애원할 때까지.

"이게 벌칙이야? 고문이지."

"둘이 뭐가 달라."

네 번째에는 상영관에 다른 관객이 셋 있었다. 앞줄에 하나, 가운데에 둘. 하준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뒷줄에 앉았고 시아는 그날 처음으로 끝까지 버텼다. 소리 한 번 안 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하준이 귓가에 말했다.

"상 줘야겠네."

그날 밤 하준은 시아가 말하는 걸 전부 해줬다. 전부. 시아는 새벽 세 시에 다리가 후들거려서 화장실도 기어갔다.

그렇게 규칙이 완성됐다. 심야, 뒷줄, 소리 금지. 실패하면 굶기고, 성공하면 배불리 먹인다. 시아는 이제 상영 시간표를 하준보다 먼저 확인했다. 자정 넘어 시작하는 것, 상영 시간 두 시간 넘는 것, 인기 없어서 텅 빌 것.

"넌 이제 영화 애호가야."

"영화는 하나도 못 봤는데."

그리고 이날. 목요일. 하준이 오후 네 시에 문자를 보냈다.

[오늘 11시 50분. 2관.]

시아는 회의 중에 그걸 봤다. 다리가 먼저 반응했다. 삼 초 뒤에 두 번째 문자.

[속옷 입지 마.]

시아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회의가 끝나고 다시 뒤집었다. 문자는 그대로 있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 밑에 하나 더 와 있었다.

[스타킹은 밴드형.]

[미쳤어?]

[응.]

[거기 사람 있으면?]

[없을 거야. 있어도 뒷줄은 안 보여.]

[스커트야 오늘.]

[알아. 그래서.]

시아는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얼굴이 빨갰다. 아직 일곱 시간이나 남았는데.

퇴근하고 집에 들러 갈아입었다. 니트 원피스. 허벅지까지 오는 밴드 스타킹. 그리고 그 사이에 아무것도. 거울 앞에서 원피스 단을 잡고 한 번 들어봤다. 내려놨다. 다시 들어봤다. 이걸 입고 지하철을 타야 했다. 시아는 택시를 불렀다.

열한 시 반. 영화관 로비는 청소기 소리만 났다. 매표소 직원은 하나, 팝콘 카운터는 불이 꺼져 있었다. 시아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 있었다. 코트 밑은 니트 원피스. 원피스 밑은 스타킹. 스타킹 위는—

하준이 뒤에서 왔다. 등에 몸을 붙이고, 목덜미에 턱을 얹고,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입었어?"

"…안 입었어."

"착하네."

"확인 안 해?"

"뒷줄에서."

시아는 웃음이 새는 걸 참으려고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하준은 키오스크에서 표 두 장을 뽑았다. J열 7, 8번. 맨 뒷줄. 상영관에 들어가는 계단에서 시아는 다리 사이가 벌써 미끈거리는 걸 느꼈다. 스타킹 밴드 위로 맨살이 공기에 닿는 감각. 걸을 때마다 그 감각이 위로 올라왔다.

2관은 비어 있었다. 완전히. 예고편이 아무도 없는 좌석들을 향해 떠들고 있었다.

"봤지. 없어."

"두 시간 십 분이야, 오빠."

"알아."

"중간에 사람 들어오면."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시아는 J열 7번에 앉았다. 하준이 8번에. 코트는 벗어서 무릎 위에 덮었다. 두 사람 다.

영화가 시작됐다. 이번엔 일본 영화였다. 바닷가 마을, 자전거, 느린 대화. 시아는 처음 십 분 동안 정말로 영화를 봤다. 하준이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그게 규칙의 일부라는 것도 이제는 알았다. 기다리게 하는 것. 기다리는 동안 혼자 젖게 하는 것.

십이 분. 하준의 손이 코트 밑으로 들어왔다.

무릎. 무릎 위. 원피스 단. 스타킹 위로 허벅지 안쪽.

시아는 팔걸이를 잡았다. 이제는 습관이었다. 왼손은 팔걸이, 오른손은 하준의 팔. 입은 다물고, 숨은 코로. 훈련이었다. 여섯 번의 심야 상영으로 몸에 새겨진.

손가락이 스타킹 밴드에 닿았다. 그 위로. 맨살. 그리고 그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했을 때, 하준이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게 시아한테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진짜 안 입었네."

"…입지 말라고 했잖아."

"근데 이렇게 젖어 있으라곤 안 했는데."

손가락이 갈라진 살을 따라 한 번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시아의 허리가 좌석에서 떴다. 소리는 안 났다. 거의.

"두 시간 십 분이야, 시아."

하준은 시아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그리고 가운뎃손가락을 아무 예고도 없이, 뿌리까지 밀어 넣었다.

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스크린에서 자전거 벨 소리가 울렸다.

이제 두 시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