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그림자는 남자였다. 혼자. 한 손에 콜라. 다른 손에 휴대폰 불빛.

그는 문을 잡고 잠깐 서 있었다. 시아는 숨을 멈췄다. 심장이 아니라 온몸이 멈췄다. 코트 밑 손은 그대로. 하준의 것이 손바닥 안에서 아직 뜨겁게 뛰고 있었다. 뛰는 게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 오히려 더.

남자는 휴대폰 불빛으로 좌석 번호를 찾았다. 앞으로 걸어 내려갔다. 계단. 계단. 계단. F열쯤에서 멈추고, 통로 쪽 자리에 앉았다.

네 줄 앞. 등만 보였다. 후드 모자.

시아는 숨을 내쉬었다. 코로. 아주 천천히.

하준은 시아의 손을 잡았다. 빼주려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다시 감아 쥐게 했다.

"미쳤어."

입술만으로 말했다. 소리는 없이.

하준도 입술만으로.

"안 보여."

"들려."

"네가 안 내면."

시아는 남자의 뒷머리를 봤다. 후드. 콜라 컵이 팔걸이에 얹히는 소리. 남자는 스크린만 봤다. 저 사람은 몰랐다. 네 줄 뒤에 뭐가 있는지. 그 모른다는 사실이 시아의 배 속에서 뭔가를 꽉 쥐었다.

하준의 손이 다시 코트 밑으로 들어왔다. 시아의 허벅지 사이로. 아직 젖어 있는 곳. 아니, 더 젖어 있는 곳.

"거봐."

손가락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아는 이를 물었다. 남자가 콜라를 마셨다. 빨대 소리. 스크린에서 아이들이 뛰어갔다. 웃음소리. 시아는 그 웃음소리 밑에 자기 숨을 숨겼다.

이건 다른 게임이었다. 아무도 없을 때랑은 달랐다. 이제 진짜였다. 네 줄 앞에 진짜 귀가 있었다. 진짜 눈이 뒤를 돌면 진짜로 보일 거였다. 시아는 그 사실이 무서운지 좋은지 구분이 안 갔다. 구분이 안 가는 채로 하준의 손가락 위에서 젖어갔다.

"이 상태로 끝까지 가."

"안 돼."

"돼."

그때 두 번째 빛이 들어왔다. 이번엔 문이 아니라 통로 아래쪽. 손전등.

직원이었다. 순찰. 조끼를 입은 젊은 직원이 손전등을 바닥에 비추면서 통로를 올라오고 있었다. 한 줄. 한 줄. 손전등 빛이 좌석 밑을 훑었다. 빈 컵, 떨어진 팝콘, 사람 발.

시아의 몸이 얼었다. 하준의 손가락은 얼지 않았다. 안에 든 채로. 아주 천천히. 아주 깊게. 딱 한 번 구부렸다.

시아는 눈을 감았다. 감으면 안 보이니까. 감으면 없는 거니까. 바보 같은 생각인 걸 알면서.

손전등 빛이 H열을 지났다. I열. 바닥. 시아의 부츠. 하준의 운동화. 두 사람 무릎 위에 덮인 코트. 빛이 코트 위에서 반 초 멈췄다.

반 초.

시아는 그 반 초 동안 하준의 손가락을 있는 힘껏 조였다. 의지가 아니었다. 몸이 그랬다. 공포와 다른 무언가가 같은 곳에서 터졌다. 소리는—안 났다. 안 났다. 시아는 이빨로 아랫입술을 뚫을 것처럼 물었고, 소리는 나지 않았다.

빛이 옮겨갔다. J열 나머지. 벽. 출구.

직원이 문을 밀고 나갔다. 복도 빛이 한 번 쐐기처럼 들어왔다가 닫혔다.

시아는 숨을 토했다. 소리 없이. 온몸이 젤리처럼 풀렸다.

"방금."

"응."

"내가 방금."

"알아. 느꼈어."

"아직 안 왔어. 거의—"

"알아."

하준이 시아의 귓가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있었다. 낮고 뜨거운 웃음.

"너 손전등 보고 조였어. 무서워서 조인 게 아니었어."

"닥쳐."

"이제 진짜 하자."

"뭘."

하준이 자기 무릎을 두드렸다. 코트 밑에서 아직 꺼내진 채로 서 있는 것. 시아는 그 뜻을 알아듣는 데 한 박자가 걸렸다. 알아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세게.

"저 사람 있어."

"등 돌리고 있어."

"돌면?"

"안 돌아. 이 영화 지루하잖아. 저 사람도 졸아."

"오빠—"

"뒷줄이야. 어두워. 코트 있어. 그리고."

하준이 시아의 젖은 손가락을 시아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댔다.

"네가 이걸 원해."

시아는 자기 냄새를 맡았다. 원했다. 인정하기 싫을 만큼 원했다. 네 줄 앞 후드 남자의 뒷머리를 보면서, 원했다.

시아는 일어났다. 반쯤. 원피스를 허리까지 걷고. 스타킹은 아침에 밴드형으로 신은 거였다. 하준이 그렇게 시켰으니까. 이제 왜 그랬는지 알았다. 시아는 하준의 무릎 위로 등을 돌려 앉았다. 스크린을 보는 자세로. 코트가 두 사람 위로 다시 덮였다.

하준의 손이 시아의 허리를 잡았다. 시아가 손을 뒤로 뻗어 그것을 잡았다. 자기 밑에 맞췄다. 그리고 앉았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끝까지. 시아는 입을 벌렸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 채로 입만 벌렸다. 스크린 속 바다가 흔들렸다.

"움직이지 마."

하준의 입술이 시아의 뒷목에 닿았다.

"영화 봐."

시아는 후드 남자의 뒷머리를 봤다. 그 사람이 콜라를 마셨다. 빨대 소리. 시아는 하준의 것으로 꽉 채워진 채, 소리 하나 못 내고, 스크린을 봤다.

남자가 기침을 했다.

시아의 온몸이 튀었다.

하준이 시아의 입을 손으로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