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마네킹의 값
서준이 규칙을 시험하기로 마음먹은 건 예상된 일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건 그가 그걸 이렇게 능청스럽게, 이렇게 도발적으로 할 줄은 몰랐다는 점이었다.
다섯 번째 밤, 혜림은 그를 세워두고 진열대 정리를 하고 있었다. 워밍업이었다. 그녀가 다른 일에 몰두하는 동안 그가 조명 아래서 기다리게 하는 것. 무시당하는 것도 그에게는 일종의 시선이었으니까 — 언제 저 사람이 나를 다시 봐줄까 하는.
오늘의 의상은 실크 로브였다. 허리끈만 묶은. 혜림이 등을 돌린 채 셔츠를 개고 있는데, 유리에 비친 서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손끝을 로브 안으로 미끄러뜨리며. 혜림이 안 볼 거라 생각하고, 아니 정확히는 혜림이 볼 걸 알면서. 그는 마네킹이기를 포기하고, 그녀가 없는 관객에게 하듯 자기 자신을 만지기 시작했다. 도발이었다. 규칙 셋을 정면으로 어기는.
혜림은 셔츠를 마저 갰다. 서두르지 않았다. 그가 유리 속에서 점점 대담해지는 걸, 그녀가 알아채기를 기다리는 걸, 다 보이는 각도로 지켜봤다. 그리고 마지막 셔츠까지 반듯하게 정리한 뒤에야, 천천히 돌아섰다.
서준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올렸다. 반항의 미소.
"마네킹이 움직이네." 혜림이 팔짱을 꼈다. 목소리는 서늘했다. "고장 났나."
"관객이 안 봐주니까요." 서준이 나른하게 대꾸했다. "혼자라도 즐겨야죠."
혜림은 이 순간을 사랑했다. 서준이 브랫이 될 때. 그가 규칙을 깨는 건 규칙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규칙을 다시 세워달라는 요청이었다. 벌을 원하는 방식으로 부리는 응석. 그녀는 그 언어를 완벽하게 알아들었다.
"고장 난 마네킹은 어떻게 하는지 알아?" 그녀가 다가가며 물었다. "수리를 보내지. 아니면 —" 그녀가 그의 손목을 잡아 로브에서 떼어냈다. "손을 못 쓰게 묶어두거나."
혜림은 진열용 실크 스카프를 집었다. 부드럽지만 튼튼한. 서준의 손목을 뒤로 모아, 그의 등 뒤 마네킹 거치대 기둥에 묶었다. 세게는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풀 수 있게. 하지만 풀지 않을 걸 두 사람 다 알았다.
"이제 넌 진짜로 못 움직여." 그녀가 로브 끈을 풀며 말했다. "네가 원한 대로 됐네. 완벽한 마네킹."
서준의 표정이 바뀌었다. 도발이 기대로, 기대가 갈망으로. 손이 묶이니 그는 정말로 무력했고, 무력함은 그가 가장 원하던 상태였다. 조명 아래, 벌어진 로브, 등 뒤로 묶인 손. 밖에서 보면 이제 그는 정말로 진열된 물건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놓인.
혜림은 이번엔 어둠 속에 숨지 않았다. 그의 앞에, 조명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에 두 사람이 함께 비쳤다. 처음이었다.
"오늘은 나도 진열될게." 그녀가 말했다. "밖에 누가 있으면, 우릴 같이 보라지."
그리고 그녀는 그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입으로, 온몸으로. 서준은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냈다. 그는 벌로서 이걸 받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이건 상이었다. 혜림이 주는 가장 극진한 종류의 시선이었다. 그녀가 온 신경을 그에게만 쏟는 것. 그 자체가 관객 백 명보다 강했다.
"도망 못 가." 그녀가 그의 귀에 대고 웃었다. 그를 끝까지 데려갔다가 다시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이번엔 관객이 없어도 못 참을걸. 왜냐면 오늘의 관객은 나거든. 진짜로 있는 나."
그 말이 서준을 무너뜨렸다. 상상 속 시선이 아니라, 눈앞에 확실히 존재하는 한 사람의 시선. 그 시선이 오직 자기만을 향하고 있다는 실감. 그는 묶인 손목을 팽팽하게 당기며, 조명 아래서, 유리에 두 사람이 함께 비친 채로 끝에 다다랐다. 소리를 삼키지도 않았다.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관객이 실재했고, 그 관객이 이 소리를 원했으니까.
한참 뒤, 혜림이 스카프를 풀어주었다. 서준의 손목에 옅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자국을 내려다보며 이상하게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건 증거잖아요." 혜림이 놀렸다. "증거는 재미없다며."
"이건 달라요." 서준이 손목을 문지르며 웃었다. "이건 나만 아는 증거예요. 남한테 보이는 게 아니라. 이건… 좋은 증거예요."
혜림은 그 구분이 흥미로웠다. 남에게 보이는 증거는 게임을 죽이지만, 두 사람만 아는 증거는 게임을 깊게 한다. 그녀는 그 원리를 머릿속에 접어두었다. 마지막 밤에 쓸 데가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