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고 나서 이야기하자
열쇠 소리는 여덟 시 십 분에 났다.
열한 시가 아니었다. 아라는 그것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준이 말했다. 사흘 내내 회사에 열한 시까지 있었던 게 아니라고. 근처 카페에서, 편의점 앞 의자에서, 지하철 승강장 벤치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집에 들어가면 문 앞에 아라가 서 있을까 봐. 서 있지 않을까 봐.
현관에서 준이 멈췄다.
아라는 러그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옆에 로프 두 다발. 안전가위. 거실 불은 켜져 있었다.
준의 시선이 로프에 갔다가, 가위에 갔다가, 아라의 옷에 갔다가, 얼굴에 왔다. 사흘 만에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묶고 나서 이야기하자."
준은 신발을 벗지 않았다.
"뭐라고?"
"묶어. 그리고 이야기해. 묶여 있는 동안."
"……."
"들어와서 신발 벗어. 도망 안 가."
준이 신발을 벗었다. 느리게.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 입구에 섰다. 러그까지 세 걸음이었는데 오지 않았다.
"화난 채로는 안 묶어."
"알아."
"내 규칙이야. 네가 알잖아. 화났을 때, 술 마셨을 때, 피곤할 때. 안 묶어. 손이 그러면 안 되는 걸 해."
"알아. 그래서 하자는 거야."
준이 아라를 봤다. 아라는 무릎에 손을 올렸다. 손이 떨리는 걸 준이 볼까 봐 그랬는데, 그러니까 더 잘 보였다.
"너는 화난 채로는 못 묶어. 그럼 묶으려면 화를 좀 내려놔야 하잖아. 조금이라도. 그리고 나는—"
아라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나는 손이 자유로우면 계속 뭘 해. 문 잠그고, 폰 들고, 코트 입고 나가고. 사흘 동안 백 번은 일어나서 저 방 문 앞까지 갔어. 두드리면 어떻게 될지 알아서 안 두드렸어. 근데 묶여 있으면 못 하잖아. 아무것도. 거기 앉아 있어야 하잖아."
"……."
"그리고 너는. 묶는 동안엔 말해야 하잖아. 나한테 물어야 하잖아. 손 저리냐고. 숨 괜찮냐고. 규칙이니까. 삼십 초마다. 네가 그렇게 배웠고 나한테도 그렇게 가르쳤어."
준이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라는 기다렸다. 이제 기다리는 건 잘했다.
"그건 내가 로프를 도구로 쓰는 거야. 너를 붙잡아두는 데."
"아니. 내가 쓰는 거야. 내가 부탁하는 거야. 그 차이 있잖아."
준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그러고 나서 준이 했던 건, 아라가 이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 사흘 만에 처음 떠오르게 하는 일이었다. 준은 리거의 질문을 시작했다.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걸 모르는 얼굴로.
"안전어는."
"그대로. 빨간불이면 풀어. 노란불이면 천천히."
"몇 시간 잤어."
"네 시간. 어젯밤."
"밥은."
"먹었어. 다섯 시에. 너는?"
"먹었어."
"거짓말."
준이 눈을 내렸다.
"……안 먹었어."
"그럼 먹고 해. 기다릴 수 있어. 사흘 기다렸어."
준이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고 밥을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김치를 꺼냈다. 조리대에 서서 먹었다. 앉지 않았다. 아라는 러그에서 그 등을 봤다. 사흘 만에 처음으로 한 방에 일 분 이상 같이 있는 거였다. 준이 밥을 씹는 소리가 났다. 전자레인지 문 닫는 소리. 수저 놓는 소리. 그리고 물소리. 준이 손을 씻고 있었다. 비누로.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로프 만지기 전에 항상 그랬다.
준이 러그로 왔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다. 안경을 벗어서 소파 위에 올렸다. 아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로프 한 다발을 들었다.
그리고 시작했다. 아라가 수백 번 본 것. 매듭을 풀고 8미터를 전부 손가락 사이로 통과시키는 것. 1미터씩.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마 섬유가 일어난 데는 없는지, 끊어진 올은 없는지. 준은 그걸 한 번도 건너뛴 적이 없었다. 로프가 준의 손가락 사이를 지나가면서 마른 소리를 냈다. 스스슥. 준의 어깨가 내려가는 게 보였다. 한 뼘씩. 로프가 준을 데려가고 있었다. 준이 사람이 되는 그곳으로. 아라는 그걸 보면서 자기가 던진 말이 어디를 맞혔는지 정확히 알았다.
두 번째 다발도 통과시켰다. 다 끝나자 준이 물었다.
"어디 묶어."
"손. 양손. 뒤로."
"후수?"
"응."
"뒤로 묶으면 삼십 분이 한계야. 네 팔은. 알잖아. 이야기 길어지면 저려."
"그럼 삼십 분 안에 하자. 못 끝내면 풀고 다시 묶어."
준이 아라를 봤다.
"내가 힘들면 나도 멈춰. 리거도 안전어 있어."
"알아. 그것도 네가 가르쳤어."
준이 가위를 들어서 자기 오른쪽 무릎 옆에 놨다. 항상 두는 자리. 손 뻗으면 바로 닿는 곳.
"돌아 앉아."
아라가 돌아앉았다. 무릎을 모으고 정좌를 했다. 등이 준을 향했다. 등 뒤에서 준의 숨소리가 났다. 아라는 팔을 뒤로 돌렸다. 손목을 허리 뒤에서 모았다.
준의 손이 아라의 손목을 잡았다.
둘 다 움찔했다. 사흘 만에 닿은 거였다. 준의 손이 차가웠다. 씻은 직후라 그랬다. 준은 손을 뗐다가 다시 잡았다. 이번엔 안 움찔했다.
준이 아라의 팔뚝을 등 뒤에서 나란히 눕혔다. 왼팔 위에 오른팔. 손목이 겹치게. 아라의 어깨가 뒤로 열렸다. 늘 그렇듯 첫 숨이 조금 막혔고, 두 번째 숨에서 풀렸다. 로프가 손목에 닿았다. 두 겹으로 접힌 마 로프의 가운데가 손목 안쪽을 지나갔다. 한 바퀴. 두 바퀴. 준이 로프 양 끝을 당겼다. 마 섬유가 살에 물렸다. 따뜻해졌다. 준이 한 손으로 두 바퀴를 눌러 잡고 다른 손으로 끝을 돌려 매듭을 만들었다. 싱글 컬럼. 아라의 몸이 아는 매듭. 조여지다가, 딱 멈추는.
"손가락 두 개."
준이 로프와 손목 사이로 손가락 두 개를 넣었다. 들어갔다.
"됐어?"
"응."
준의 손이 손목에 그대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아라는 준이 뭘 하는지 알았다. 다음 줄을 어디로 보낼지 정하는 게 아니었다. 준은 이미 다 알았다. 눈 감고도 묶었다. 그건 다른 거였다.
"이야기하자는 게 뭔데."
준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왔다.
"내가 뭘 말하면 되는데."
"네가 진짜 왜 화났는지."
로프 끝이 아라의 오른쪽 어깨 위로 올라오다가 멈췄다.
"그거 말하면 넌 더 화날 거야."
아라는 자기 손목을 묶은 매듭을 느꼈다. 두 바퀴. 손가락 두 개. 풀 수 없는.
"묶여 있잖아. 뭘 하겠어."
로프가 어깨 위를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