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으면 된 거 아니야
결과는 괜찮았다.
"양성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아라를 보지는 않았다. 볼 필요가 없는 결과였으니까.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이미 다음 환자의 이름이 불리고 있었다.
두 시 사십 분에 진료실을 나왔고, 세 시 반에 집에 도착했고, 그때부터 아라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가방은 무릎 위에 그대로 있었다. 코트도 벗지 않았다. 창밖의 빛이 하얀색에서 노란색으로, 노란색에서 회색으로 바뀌는 동안 아라는 불을 켜지 않았다. 냉장고 문에 붙은 달력이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걸 보고 있었다. 빨간 펜으로 쓴 글자. 14일. 14:00 결과. 준 반차.
삼 주 전에 쓴 글자였다. 재검 통보를 받은 날 밤에 썼다. 준이 뒤에서 어깨 너머로 보고 말했다. "반차 낼게. 같이 가." 일주일 전에 한 번 더 말했다. 준은 "응, 알아"라고 했다. 어젯밤에도 말했다. 준은 "알아, 아라. 내일. 두 시"라고 했다. 이불 속에서 아라의 발등을 발로 한 번 쓸어주고는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커피를 내렸고, 준이 현관에서 신발 끈을 묶는 걸 봤고, "잘 다녀와"라고 했다. 그게 다였다. 왜 그랬는지는 아라도 알았다. 오늘까지 내가 말해주면 그건 네가 온 게 아니라 내가 끌고 간 거니까. 한 번은. 한 번만은 네가 먼저 기억해주길 바랐으니까.
대기실에는 스무 명쯤 있었다. 전부 둘씩이었다. 엄마와 딸. 부부. 자매처럼 보이는 두 여자. 손을 잡고 있거나, 어깨를 붙이고 있거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방을 들어주고 있었다. 간호사가 아라의 이름을 부르고 차트를 넘기면서 물었다.
"보호자분은요?"
"없어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아라는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없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휴대폰은 식탁 위에 엎어져 있었다. 세 시 반부터 아홉 시까지 열두 번 뒤집어 봤다. 준에게서 온 건 없었다. 아라는 '괜찮대'라고 썼다가 지웠다. 세 번 썼다가 세 번 지웠다. 보내면 준은 기억할 것이다. 아라 때문에. 그건 기억이 아니었다.
이게 시험이라는 것도 알았다. 시험이 불공평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앉아 있었다.
아홉 시 사십 분에 열쇠 소리가 났다.
"아라? 왜 불 안 켜."
거실 불이 켜졌다. 아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준은 가방을 소파에 던져놓고 냉장고로 갔다. 달력 앞을 지나갔다. 문을 열고 물을 꺼내고 문을 닫았다. 달력 앞을 다시 지나갔다. 뚜껑을 열어 물을 마셨다.
"밥 먹었어? 나 오늘 진짜 정신없었어. 오늘 뭐 했어?"
"오늘 며칠이야."
준이 병을 든 채로 멈췄다.
아라는 그 얼굴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얼굴 위를 지나갔다. 그때 아라는 그게 기억이 돌아오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그게 아니었다는 걸.
"……열넷."
"응."
"결과."
"응."
"어떻게 됐어."
"괜찮대. 양성. 아무것도 아니래."
준의 어깨가 내려갔다. 긴 숨이 나왔다. 그리고 웃었다. 진심으로 안도한 얼굴로,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다행이다. 아, 진짜 다행이다. 괜찮으면 된 거 아니야? 아니 그럼 왜 이렇게 불도 안 켜고 앉아—"
아라의 목소리는 커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언제나 그랬다. 아주 작아졌다.
"세 시 반부터 앉아 있었어."
"왜 전화 안 했어? 나한테 바로 전화하지, 그럼—"
"내가 왜 전화해야 해?"
"그야 결과가 나왔으면—"
"네가 온다고 했잖아."
준이 입을 다물었다.
"반차 낸다고. 같이 간다고. 삼 주 전에 네가 그랬어. 저기 달력에 네가 보는 앞에서 썼어. 일주일 전에 또 말했어. 어젯밤에도 말했어. 너 내 발 쓸어주면서 '알아, 내일, 두 시'라고 했어."
"……일이 그렇게 됐어. 미안. 진짜 미안해. 그래도 결과가 괜찮으니까—"
"결과 얘기 한 번만 더 해."
"아라."
"대기실에 스무 명 있었어. 다 누구랑 왔어. 나만 혼자였어. 간호사가 보호자분은요, 그러는데 내가 없어요, 그랬어. 없어요. 그 말을 내가 했어. 두 주 동안 밤마다 네 옆에 누워서 내 장례식 생각했어. 누가 올까, 엄마는 어떡하지, 네가 내 물건들 어떻게 하지. 너 몰랐지. 옆에서 잤는데. 몰랐지."
"말을 하지. 무서웠으면 말을—"
"말하면 네가 괜찮을 거야, 그럴 거잖아. 괜찮을 거야. 지금처럼. 괜찮으면 된 거 아니야, 그럴 거잖아!"
목소리가 커졌다. 아라는 자기가 일어서 있다는 걸 알았다. 가방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침에 한 마디만 했으면 내가—"
"내가 왜? 왜 그것까지 내가 해야 돼? 왜 내가 매번—"
"그러니까 넌 내가 잊기를 기다린 거잖아. 잊나 안 잊나 보려고."
"그래서? 그래서 잊었잖아! 그럼 내가 틀린 거야?"
준의 얼굴이 바뀌고 있었다. 아라는 그걸 알았다. 그게 제일 싫었다. 뭔가가 내려오는 것. 셔터처럼. 눈은 아라를 보고 있는데 그 뒤에 아무도 없는 것.
"너 지금 나한테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날짜별로 말해주는 거야? 삼 주 전, 일주일 전, 어젯밤."
"그래야 네가 아니까!"
"또 그거. 또."
"또? 뭐가 또야?"
"내가 뭐라고 하든 넌 이미 다 정해놨잖아. 내가 얼마나 못 했는지. 몇 번 못 했는지.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해."
"말을 해! 뭐라도!"
"뭘."
그리고 준은 조용해졌다.
아라는 그 침묵을 알았다. 그게 몸에 닿으면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벽이었다. 벽 앞에 서서 소리를 지르는 아이처럼 아라는 뭐라도 나오게 하려고 했다. 뭐라도. 욕이라도. 그래서 손에 잡히는 걸 던졌다. 나중에 가장 후회하게 될 말을.
"넌 로프 쥐고 있을 때만 사람이야."
준의 눈이 아라를 봤다.
"그때만 나 봐. 그때만 내 숨소리 듣고, 손 색 보고, 저리냐고 물어. 삼십 초마다. 그 외엔—그 외엔 내가 여기 있는지도 몰라. 옆에 있긴 있지. 몸만. 너는 몸만 있어."
준은 오랫동안 아라를 봤다. 그러고 나서 소파에 던져둔 가방을 다시 들었다. 작은방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쾅, 이 아니었다. 딸깍. 그게 아라가 평생 들은 소리 중 가장 조용한 소리였다.
첫날.
준은 아라가 일어나기 전에 나갔다. 아라는 정오까지 침대에 있었다. 일어나서 작은방 문을 열어봤다. 바닥에 요가 깔려 있었고 이불은 반으로 접혀 있었다. 책상 위에 노트북이 없었다. 벽 선반에는 로프가 그대로 있었다. 여덟 다발. 아라는 문을 닫았다. 태블릿을 켜고 마감 작업을 열었다. 세 시간 동안 선을 하나도 못 그었다. 준은 열한 시에 들어왔다. 신발 소리, 발소리, 딸깍.
둘째 날.
일곱 시에 부엌에서 소리가 났다. 아라는 방문 틈으로 봤다. 준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습관대로 컵을 두 개 꺼냈다. 항상 쓰는 두 개. 파란 것과 흰 것. 준이 두 번째 컵을 보고 멈췄다. 손이 잠깐 공중에 있었다. 그러고는 흰 컵에만 커피를 담아서 나갔다. 파란 컵은 조리대 위에 빈 채로 남아 있었다. 아라는 정오에 그 컵에 식은 커피를 부어서 마셨다. 이유는 몰랐다.
그날 밤, 아라는 작은방 문 앞에 서 있었다. 열두 시였다. 문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손을 들었다. 노크하면 어떻게 될지 알았다. 준이 문을 열 것이고, 아라는 말할 것이고, 준은 대답하지 않을 것이고, 아라는 대답을 끌어내려고 더 말할 것이고, 나오는 대답은 둘 다 후회할 종류일 것이다. 항상 그랬다.
손이 내려왔다.
아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게 뭘 배운 건지 뭘 포기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셋째 날.
오후 세 시에 아라는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준은 회사에 있었다. 요는 개켜져 있었다. 아라는 선반 앞에 섰다.
마 로프. 6밀리. 8미터씩, 여덟 다발. 준이 한 달에 한 번씩 밀랍과 동백유를 먹여서 손질하는 것. 아라는 한 다발을 들었다. 무게가 손에 익었다. 코를 대자 냄새가 났다. 마른 풀과 꿀과, 그 밑에 준의 손 냄새. 이 냄새는 아라에게 한 가지 뜻이었다. 준이 나만 보는 시간.
그 시간을 아라는 사흘 전에 준의 얼굴에 던졌다.
그때만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아라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하나는 알았다. 그때 준은 말을 한다. 삼십 초마다 묻는다. 그때 아라는 도망을 못 간다. 문을 잠글 수도, 폰을 집을 수도, 나갈 수도 없다. 사흘 동안 백 번은 일어나서 저 방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온 손이, 묶여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때만 사람이라면. 그럼 그때 이야기하면 되잖아.
아라는 로프를 안고 바닥에 앉아서 한 시간을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두 다발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준이 언제나 함께 두는 안전가위도 서랍에서 꺼냈다. 러그 위에 나란히 놓았다.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민소매 티와 레깅스. 로프 입는 옷.
러그에 앉았다. 여섯 시 오십 분이었다. 준은 요즘 열한 시에 들어왔다.
아라는 14일에 여섯 시간을 기다렸다. 네 시간쯤은 더 기다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