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침묵, 어머니의 장부

준의 얼굴은 사흘 동안 나빠져 있었다.

눈 밑이 어두웠고, 수염이 자라 있었고,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아라는 그 얼굴을 보면서 자기가 보지 못한 사흘을 봤다. 카페와 편의점 의자와 지하철 벤치. 문 앞에 아라가 서 있을까 봐 들어오지 못한 남자.

두 사람은 러그 위에 마주 앉아 있었다. 무릎이 거의 닿았다. 아라의 손목은 앞에서 묶여 무릎 위에 놓여 있었고, 거기서 나온 로프가 준의 오른손에 감겨 있었다. 준은 그 줄을 당기지 않았다. 그냥 쥐고 있었다.

"왜 사흘이야."

아라가 물었다.

"우리 싸우면 하룻밤이었어. 길어도. 다음 날 아침에 네가 커피 내리면서 어제 미안, 그러고 나는 나도, 그러고. 그런데 이번엔 사흘이야. 왜."

"모르겠어. 하루가 지나니까 둘째 날은 더 어려웠어. 둘째 날이 지나니까 셋째 날은—어떻게 나가는지 모르겠더라."

"우리 아빠도 딱 그랬어."

준이 아라를 봤다.

"사흘. 우리 아빠 기준으로는 짧은 거야. 길면 일주일. 아빠가 화나면 말을 안 했어. 소리 지르는 게 아니고. 그냥 없어졌어. 집에 있는데 없어졌어. 밥상에 앉아 있는데 없었어. 엄마는 그 옆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밥을 차렸고, 나는—"

아라가 멈췄다. 숨을 골랐다. 아랫줄이 없는데 숨이 얕았다.

"노란불."

준의 손이 로프에서 조금 풀렸다.

"천천히. 천천히 해."

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다. 아라가 다시 말할 때까지 일 분이 걸렸는데 준은 그 일 분 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아홉 살 때 알았어. 소리를 내면 끝난다는 걸. 그릇을 떨어뜨리거나. 버릇없는 말을 하거나. 그러면 아빠가 소리를 질렀어. 그러면 끝이었어. 소리 지르고 나면 아빠가 돌아왔어. 다음 날 아침엔 말을 했어. 그래서 나는—"

아라는 묶인 손을 봤다.

"그래서 나는 소리를 내. 네가 조용해지면 나는 더 크게 말해. 더 나쁜 말을 해. 뭐라도 나오게 하려고. 네 입에서 뭐라도. 욕이라도. 욕이라도 네가 소리를 내면 네가 거기 있다는 거니까. 로프 쥘 때만 사람이라고 한 것도. 그거였어. 아마. 네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그릇을 떨어뜨린 거야."

준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침묵은 다른 종류였다. 아라는 그걸 구분할 수 있었다. 준이 눈을 떼지 않았으니까. 거기 있었으니까.

"나는 소리 나면 더 조용해져."

준이 말했다.

"알아."

"왜 그런지 말해줄게."

준이 로프를 쥔 손을 봤다.

"우리 엄마는 장부가 있었어. 진짜 장부는 아니고. 머릿속에. 내가 뭘 잘못했는지. 초등학교 때부터. 날짜까지 기억했어. 삼 학년 때 네가, 그러면서. 중학교 이 학년 여름에 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가 그 장부를 꺼내서 읽어줬어. 처음부터. 그리고 내가 거기에 뭐라고 하면—변명이든, 사과든, 그게 아니라고 하든—그게 장부에 추가됐어. 그날 네가 그렇게 말했지, 하고. 그래서 나는 말을 안 하는 걸 배웠어. 말을 안 하면 추가가 안 되니까. 그냥 앉아서 다 읽는 걸 들으면 끝나니까."

"……."

"네가 날짜를 말하면. 삼 주 전에, 일주일 전에, 어젯밤에. 그게 엄마 목소리로 들려. 미안. 네가 아니라는 거 알아. 네가 왜 그러는지도 지금 알았어. 그런데 들려. 그 순간에는 네 얼굴이 안 보이고 장부만 보여. 그래서 입을 닫아. 뭐라도 하면 추가되니까."

아라는 준의 얼굴을 봤다. 손을 들어서 그 얼굴을 만지고 싶었다. 손이 무릎 위에서 조금 들렸다가 로프에 걸렸다.

"나 네 엄마 아니야."

"알아."

"너 우리 아빠 아니야."

"알아."

"그런데 우리 사흘 동안 그 두 사람이랑 싸웠네."

준이 웃었다. 울면서 웃어서 아라랑 똑같은 소리가 났다.

"그러네."

"그 사람들은 여기 없는데."

"없는데."

"우리 둘만 있는데."

아라는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 할 말이 있었다. 손이 묶인 채로 해야 하는 말. 손으로 얼굴을 가릴 수도, 준의 손을 잡을 수도, 대신 준의 어깨에 이마를 묻을 수도 없이. 말만으로.

"미안해."

준이 아라를 봤다.

"로프 쥘 때만 사람이라고 한 거. 그거 아니야. 진짜 아니야. 너는 로프 쥘 때 제일 잘 보이는 거야. 제일 못 보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얼마나 자주 확인하는지, 내가 아프면 얼마나 빨리 멈추는지. 그게 로프에서 제일 잘 보이는 거야. 밖에서도 하고 있었을 거야. 내가 안 본 거야. 됐어, 하고."

"……."

"그리고 몸만이라고 한 거. 그것도 미안해. 몸만 있는 게 아니었어. 두 주 동안 네가 매일 밤 내 쪽으로 돌아누운 거 알아. 내가 등을 돌려도 네 손이 내 허리에 있었어. 알아. 알면서도 그 말 했어. 네 입에서 뭐라도 나오게 하려고. 그릇 떨어뜨린 거야. 제일 아끼는 그릇을."

준이 로프를 쥔 손을 아라의 묶인 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아침에 말 안 한 거. 그것도 미안해. 시험이었어. 네 말이 맞아. 시험 냈어. 그리고 네가 떨어지길 어디선가 바랐어. 그래야 내가 맞으니까. 그래야 네가 나쁜 사람이 되니까. 그게 제일 미안해."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라의 묶인 손을 들어서 자기 이마에 댔다.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있었다.

"나는."

준이 말했다.

"풀면서 할게. 사과."

"왜."

"그게 맞을 것 같아. 매듭 하나에 하나씩."

"매듭 몇 개야."

"많아."

아라가 웃었다. 준이 아라의 손을 이마에서 떼서 입술에 댔다. 손목의 로프 바로 위. 맥박 자리에. 그 입술이 거기 오래 있었다.

아라의 몸이 다시 시작했다. 아니, 멈춘 적이 없었다. 아까 준의 가슴에 기대 있었을 때부터. 레깅스 안은 아직 젖어 있었고, 준의 입술이 손목에 닿자 그게 다시 뜨거워졌다.

"지금 나 만져줘."

아라가 말했다.

준이 눈을 들었다.

"말 말고. 손으로. 이제 할 말은 다 했어. 나는."

"아직 화났어?"

아라는 정말로 생각했다. 몸 안을 뒤져봤다. 화가 있던 자리를.

"아니. 뭔지는 모르겠는데 화는 아니야."

"나도."

"그럼."

준이 로프를 쥔 손을 당겼다. 아라의 묶인 손이 앞으로 끌려왔다. 준이 그 손을 아라의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아라를 뒤로 눕혔다. 러그 위에. 아라의 팔이 머리 위로 뻗어졌고, 준은 그 로프 끝을 왼손에 감아 쥐고 러그에 눌렀다. 아라는 팔을 내릴 수 없었다. 손목이 머리 위에서 묶인 채 고정됐다.

준의 오른손이 아라의 민소매를 걷어 올렸다. 가슴이 드러났다. 윗줄과 아랫줄 자국이 아직 있었다. 가슴 위아래로, 빨갛게 두 줄씩. 준이 그 자국을 봤다. 손가락으로 윗줄 자국을 따라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아랫줄. 그러고 나서 입술을 대고 같은 길을 갔다. 자국 위로. 마 로프가 지나간 자리를 입술이 다시 지나갔다.

아라의 등이 떴다.

준의 입이 젖꼭지에 닿았다. 혀가 돌았다. 아라의 팔이 로프를 당겼다. 준의 왼손이 그걸 붙잡았다. 못 내려왔다. 아라는 준의 머리를 잡고 싶었는데 못 잡았다. 그래서 소리를 냈다. 이번엔 그릇이 아니었다.

준의 손이 레깅스 허리를 잡았다. 벗겼다. 속옷과 함께 한 번에. 아라가 무릎을 세우자 준이 그 사이로 내려갔다. 허벅지 안쪽에 입술이 닿았다. 한쪽. 다른 쪽. 천천히 올라왔다. 아라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팔은 머리 위에. 손목엔 로프. 준의 왼손이 로프 끝을 잡고 있는 게 손목으로 전해졌다. 아주 약한 텐션. 여기 있어. 내가 잡고 있어.

준의 혀가 아라를 갈랐다.

아래에서 위로. 한 번. 아라는 소리를 냈다. 준의 혀가 다시 갔다. 젖은 걸 벌리고, 안쪽을 따라 올라가서, 클리토리스에 닿았다. 그 자리에 머물렀다. 원을 그렸다. 아라의 허벅지가 준의 머리 양쪽을 조였다. 준이 오른손으로 아라의 한쪽 허벅지를 밀어서 열었다. 손바닥으로 잡아뒀다. 혀는 계속 움직였다. 느리게. 준은 로프도 느리게 했다. 항상.

"준."

"응."

준이 입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 진동이 그대로 전해졌다.

"더."

아라가 말했다. 로프에서 하는 말. 밖에서는 안 하던 말.

준의 혀가 빨라졌다. 손가락 하나가 아라 안으로 들어왔다. 젖어서 저항이 없었다. 두 번째 손가락. 준이 손가락을 구부려서 안쪽 벽을 눌렀고, 혀는 위에서 돌았다. 아라의 팔이 로프를 당겼다. 세게. 준의 왼손이 버텼다. 로프가 손목을 물었다. 두 바퀴. 손가락 두 개의 여유가 없어졌다. 아라는 그 조임을 느끼면서 밀려 올라갔다. 배에서 시작해서 허벅지로, 발끝으로, 손끝으로. 등이 러그에서 완전히 떴다.

아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왔다.

아랫줄이 없어서 소리가 나왔다. 사흘 동안 참았던 게 다 그 소리에 있었다. 준은 멈추지 않았다. 아라가 떨리는 동안 혀를 천천히 눌러서 그 떨림을 끝까지 따라갔다. 아라의 허벅지가 풀리고, 등이 러그에 내려오고, 팔에서 힘이 빠질 때까지.

준이 얼굴을 들었다. 입술과 턱이 젖어 있었다. 아라를 봤다. 그러고는 로프를 쥔 왼손의 힘을 풀었다. 아라의 팔이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묶인 손이 아라의 가슴 위에 얹혔다. 준이 올라와서 그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아라는 울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둘 다였다.

"이제 풀어."

아라가 말했다.

"아직."

"왜."

준이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아직 사과 안 했어. 풀면서 하기로 했잖아."

"그럼 지금 풀면서 해."

"그 전에."

준이 셔츠를 벗었다. 아라가 사흘 동안 못 본 몸이었다.

"그 전에 이거 해야겠어. 네가 내 사과 들을 때. 나 안에 있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