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줄
마지막 공연 날 아침, 소희는 식탁 위에 표 한 장을 놓았다.
「벚나무 아래」. 대학로 중극장 한빛. A열 15번.
현우는 표를 보고, 소희를 보고, 다시 표를 봤다.
"앞줄은 내 자리가 아니야."
"부탁이 이거야."
"소희."
"마지막 날이야. 한 번만. 네가 처음에 그랬잖아. 우체통 앞에서. 한 번만."
현우는 표를 들지 않았다. "삼백 명이 나를 볼 거야. 무대 조명이 앞줄까지 와. 배우들이 다 봐."
"아니." 소희가 말했다. "삼백 명이 내가 너를 보는 걸 볼 거야. 그게 부탁이야. 팔 주 동안 나는 삼백 명 앞에서 아무 눈도 안 봤어. 정확하게 했어. 마지막 날은 정확하게 안 할 거야. 네 눈을 볼 거야. 삼백 명이 보는 앞에서. 그러려면 네가 보이는 데 있어야 해."
현우는 오래 표를 봤다. A열 15번. 정중앙.
"뒷줄에서는 너 전체가 보여." 그가 말했다. "앞줄에서는 얼굴만 보여."
"오늘은 얼굴만 봐."
그가 표를 들었다.
객석에 불이 꺼지는 순간, 소희는 셌다.
하나. 어둠이 R열을 삼킨다. 둘. 중간 줄. 셋—
셋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A열. 무대 조명이 흘러넘쳐 첫 번째 줄을 희미하게 적시는 곳. 거기 현우가 있었다. 얼굴이 있었다. 팔 주 동안, 아니, 두 작품 열여섯 주 동안 소희가 공연 중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그의 눈. 무릎 위에 놓인 손. 조금 벌어진 입술. 그는 소희를 보고 있었고 소희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첫 대사가 나왔을 때 삼백 명은 하나가 되었다. 아니, 삼백 명은 사라졌다. 소희의 목소리가 가슴에서 배로 내려갔다. 삼백 석에서. 처음으로.
2막 독백. 소희는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삼백 명을 향해 말하는 대신 한 사람을 향해 말했다. A열 15번. 그의 눈을 봤다. 미간이 아니라. 관객이 이상하게 느낄 것이라고 배웠다. 배우가 객석의 한 사람을 보면 삼백 명이 그걸 안다고. 소희는 그것을 알았고 상관하지 않았다. 대사 세 줄째에서 현우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켜쥐어지는 것을 봤다. 여섯 줄째에서 그의 눈이 젖는 것을 봤다. 여덟 줄째에서 소희는 자기 목소리가 어디까지 내려갔는지 알았다. 삼백 명이 숨을 멈춘 것을 들었다. 그들은 소희가 누구를 보는지 알았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아는 사람은 둘이었다.
윙으로 들어왔을 때 상대역 민재가 소희를 잡았다.
"오늘 뭐야. 어디 봤어. 객석 봤지."
"봤어."
"그거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알아."
민재는 소희를 잠깐 보다가 손을 놨다.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좋았어. 다시 나가."
커튼콜. 삼백 명이 일어났다. 박수가 벽에서 벽으로 튀었다. 소희는 배우 일곱 명 사이에서 허리를 굽혔고, 허리를 펴면서 A열 15번을 봤다. 그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두 손. 육백 개의 손 사이에서 소희는 두 개를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몰랐다. 그냥 들렸다.
소희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앙상블 인사가 끝나고 주연이 혼자 받는 박수. 소희는 삼백 명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 대신, A열 15번을 향해 굽혔다. 정확하게 그를 향해. 앞줄의 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옆을 봤다. 무대 위의 여자가 누구를 보는지. 현우는 그 시선들을 받았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팔 주 동안 어둠에 있던 사람이 빛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그는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종연 파티는 극장 근처 술집이었다. 소희는 삼십 분 있었다. 연출에게 절하고, 민재와 소주를 한 잔 하고, 제작자에게 명함을 받고. 그리고 일어났다. 민재가 물었다. "가?" 소희는 대답 대신 웃었고 민재는 더 묻지 않았다.
폰에 문자가 있었다. 박 대표. "일요일이지만 열쇠 있으니. 다음 팀 화요일 들어와. 걸쇠 걸어. 오늘은 노크 안 해."
소희는 그 문자를 현우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대학로 골목. 열일곱 개의 계단. 철문. 걸쇠. 객석 뒷문.
무대가 비어 있었다. 검은 바닥. 고스트라이트 하나. 백 개의 좌석이 어둠 속에 비어 있었다.
소희는 현우의 손을 잡고 통로를 내려갔다. H열을 지나서. 지나갈 때 그가 12번을 봤다. 소희는 놓지 않았다. G, F, E, D, C, B.
A열.
"여기."
"소희."
"오늘은 여기. 얼굴이 보이는 데."
현우는 A열 한가운데 앉았다. 무대에서 삼 미터. 고스트라이트의 노란 빛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소희는 무대로 올라갔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정연의 원피스가 아니라 자기 원피스. 단추가 등에 여덟 개.
"「여름이 끝나는 방식」 마지막 장면."
"우체통이 없어."
"없어도 돼."
소희는 무대 한가운데, 우체통이 있던 자리에 섰다. 없는 우체통에 이마를 댔다. 허공에. 그리고 대사를 했다. 팔 주 동안 마흔 번 한 대사. 이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한 뒤로 넉 달이 지난 대사.
"이제 그만 기다려도 된다고, 누가 나한테 말해줬으면 좋겠어."
허공에서 이마를 뗐다. 현우를 봤다. 삼 미터. 얼굴이 다 보였다.
"그 사람이 아니어도 돼. 그냥, 누구든."
숨을 쉬었다.
"아니야."
현우가 소희를 봤다.
"그 사람이어야 해." 소희가 말했다. 대본에 없는 말. "누구든 아니야. 그 사람이 말해줘야 해. 그 사람이 여기 있어야 해. 그 사람이 보고 있어야 해."
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소희는 봤다. 팔 주 동안 여덟 줄 뒤에서, 넉 달 동안 이십오 미터 뒤에서, 볼 수 없었던 것. 대사가 그에게 닿는 순간의 얼굴.
"옷."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소희는 손을 뒤로 돌렸다. 단추 여덟 개. 그의 얼굴을 보면서 풀었다. 하나. 그의 눈이 소희의 손을 따라갔다. 둘. 셋. 그의 입술이 조금 더 벌어졌다. 넷. 다섯. 여섯. 원피스가 어깨에서 미끄러졌다. 일곱. 여덟. 옷이 떨어지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숨이 나가는 것을 봤다. 팔 주 동안 여덟 줄 뒤에서 그가 저 얼굴을 했었구나. 옷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었지. 소리만.
속옷을 벗었다. 그의 눈이 내려가는 것을 봤다. 내려가서 머무는 것을. 다시 올라오는 것을. 그가 삼 미터 앞에서 자기 몸을 보는 동안 소희는 자기 몸을 보는 그의 얼굴을 봤다. 두 개의 시선이 같은 곳에 있었다.
"돌아봐."
돌았다. 등을 보였다. 그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알았다. 어떤 얼굴인지.
"다시."
정면. 손은 내려두고.
"다리."
벌렸다.
그가 말을 하기 전에 소희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것이 다른 것이었다. 어둠에서 오는 목소리는 소리가 먼저였다. 빛에서 오는 목소리는 얼굴이 먼저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소희는 그의 얼굴에서 먼저 읽었고, 그 말이 소리가 되어 도착할 때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손."
내렸다. 만졌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젖어 있었다. 그가 A열에 앉는 순간부터, 아니, 오늘 아침 식탁에서 표를 드는 순간부터. 손가락이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는 동안 소희는 그의 얼굴이 무너지는 것을 봤다. 팔 주 동안 여덟 줄 뒤에서 무너졌던 얼굴. 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켜쥐어졌다. 이가 물렸다. 눈은 소희의 손에서 얼굴로, 얼굴에서 손으로.
"네 얼굴." 소희가 말했다. 손가락을 멈추지 않고. "네 얼굴 때문에 갈 것 같아. 내 손 때문이 아니라."
"……가."
"아니."
소희가 손을 뗐다. 현우가 숨을 들이켰다.
"올라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커튼콜?"
"아니. 커튼콜은 관객한테 하는 말이야. 배우가 무대에서 관객을 부르는 말." 소희가 무대 끝으로 걸어와 그를 내려다봤다. 삼 미터가 일 미터가 됐다. "너는 오늘 관객 아니야. 올라와."
현우가 일어났다. 무대 계단이 아니라 무대 턱을 손으로 짚고 올라왔다. 소희 앞에 섰다. 소희가 그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벨트를. 바지를. 속옷을. 그가 무대 위에서 전부 벗은 것은 월요일 밤 한 번뿐이었고, 소희와 함께 전부 벗은 것은 처음이었다.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의 차이가 옷의 양으로 남아 있던 것이 없어졌다. 두 사람이 고스트라이트 아래 알몸으로 마주 서 있었다.
소희가 그를 바닥에 눕혔다. 아니, 그가 소희를 눕혔다. 누가 먼저였는지 몰랐다. 검은 무대 바닥이 등에 차가웠고 그의 몸이 위에서 따뜻했다. 그가 들어왔다. 천천히. 소희는 그의 얼굴을 봤다.
"네 눈썹." 소희가 말했다. "들어올 때 이렇게 돼. 여기가 모여."
"……."
"이를 물어. 내 얼굴 보다가. 아래 보다가. 다시 얼굴." 소희는 그의 뺨을 감쌌다.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부스에서.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말해줄게. 이제 내가 말해줄게. 네가 내 안에 있을 때 네 얼굴이 어떤지."
현우가 움직였다. 소희는 말했다. 그가 밀어 넣을 때 그의 눈이 어떻게 감기려다 감기지 않는지. 그가 빼낼 때 입술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소희가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았을 때 그의 목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소희가 안에서 그를 조였을 때 그의 이마에 어떤 주름이 생기는지. 그는 들었다. 자기가 보여지는 것을 들었다. 소희의 목소리가 배 아래에서 나왔다.
"다 보여?" 그가 물었다. 겨우.
"다 보여."
"……무서워?"
"응. 좋아서."
소희가 먼저 갔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그가 소희가 가는 것을 보는 얼굴을 보면서. 그 얼굴 때문에 더 오래 갔다. 현우는 소희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따라왔다. 소희의 안에서, 소희의 이름을 부르면서, 정연이 아닌 이름을, 눈을 감지 않고.
한참 뒤.
소희가 일어났다. 알몸으로. 고스트라이트 아래. 무대 한가운데. 백 개의 빈 좌석을 향해 섰다. 그리고 허리를 굽혔다. 주연이 혼자 받는 인사. 깊게. 오래. 아무도 없는 객석을 향해.
허리를 펴자 뒤에서 소리가 났다.
현우가 무대 바닥에 앉은 채 박수를 치고 있었다.
두 손. 텅 빈 극장에서. 그 소리는 삼백 명의 것보다 컸다. 벽에서 벽으로 튀지 않고 곧게 소희에게 왔다. 소희는 셌다. 하나. 둘. 셋. 세는 걸 잊었다.
"매일 밤 삼백 명이 박수를 쳤어." 소희가 말했다. 돌아보지 않고. "그런데 나는 늘 이 소리를 들었어. 이거만."
"이제 알아?"
"뭘."
"네가 왜 뒷줄에서 더 떨렸는지."
소희는 돌아봤다. 그가 박수를 멈추고 소희를 보고 있었다.
"삼백 명은 배우한테 박수를 쳐." 현우가 말했다. "나는 너한테 쳐."
알람이 울렸다. 열한 시 이십 분. 소희의 가방 속에서. 무대 옆 바닥에서.
두 사람은 웃었다. 소희는 무대 한가운데 알몸으로 서서, 현우는 바닥에 앉아서.
"어떤 상태든." 소희가 말했다.
"어떤 상태든."
옷을 입었다. 서로의 옷을 주워 건네면서. 걸쇠를 풀고 철문을 열고 열일곱 개의 계단을 오르기 전에 소희는 객석 뒷문에서 뒤를 돌아봤다.
고스트라이트가 텅 빈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유령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밤에 무대에 뭐가 있어도 아무도 넘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다음 월요일을 위해서.
소희는 불을 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