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저리면 말해

로프가 오른쪽 어깨를 넘어 가슴 위를 지나갔다.

쇄골 아래. 가슴 위. 준이 로프를 왼쪽으로 끌고 갔다. 마 섬유가 민소매 위로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왼쪽 팔 위를 돌아 등 뒤로. 아라는 로프가 등 뒤에서 기둥줄에 걸리는 걸 느꼈다. 손목에서 올라온 세로줄. 준이 그 뒤로 로프를 감아 돌리고 텐션을 잡았다. 한 번 더. 두 바퀴. 윗줄.

준이 두 줄을 나란히 정리했다. 손가락으로 줄 사이의 간격을 재는 게 느껴졌다. 겹치지 않게. 꼬이지 않게. 그 손이 아라의 팔 위에서 멈췄다.

"팔 감각."

"있어."

"……."

로프가 기둥에서 한 번 감기고, 매듭이 아닌 마찰로 고정됐다. 준은 매듭을 최소로 썼다. 매듭은 풀 때 오래 걸리니까. 마찰은 당기면 풀리니까. 아라는 그것도 알았다.

"나 그날 잊은 거 아니야."

아라의 등이 굳었다. 로프 밑에서.

"정확히 말하면. 두 시에 알람이 울렸어. 내가 맞춰놓은 거. 삼 주 전에. 회의 중이었어. 알람 끄고, 앉아 있었어."

로프가 움직이지 않았다.

"두 시면 이미 늦었잖아. 병원까지 사십 분이야. 못 가. 그래서—문자를 하려고 했어. 미안하다고. 못 간다고. 그런데 지금 그 문자를 네가 대기실에서 받으면. 혼자 앉아서 받으면. 그게 더 나쁠 것 같았어. 그래서 안 했어."

"……."

"회의 끝나고 네 시였어. 그때는 결과 나왔겠다 싶었어. 전화하려고 폰 들었어. 그런데 네가 안 한 거잖아. 전화를. 나쁜 결과면 했을 거잖아, 그렇게 생각했어. 괜찮은 거구나. 그럼 지금 전화해서 '결과 어때' 물으면, 두 시부터 알고 있었다는 게 티 나잖아. 알면서 안 온 게. 그래서 여섯 시가 되고, 여덟 시가 되고. 그냥 집에 가서 네가 먼저 말하면, 그때 처음 듣는 것처럼 하자. 그렇게 정했어."

아라는 눈앞의 벽을 보고 있었다. 벽에는 두 사람이 작년에 붙인 사진이 있었다. 눈이 그걸 보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게."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그게 잊은 것보다 더 나빠."

"알아."

"너 그거 알면서 한 거야?"

"응."

"왜."

준의 손이 아라의 팔에서 떨어졌다. 로프의 텐션이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아라의 몸이 그걸 먼저 알았다.

"무서워서."

"뭐가."

"네가 또—"

준이 멈췄다.

"또 뭐."

"또 그렇게 볼까 봐. 그 얼굴. 다 계산 끝난 얼굴. 내가 뭘 얼마나 못 했는지 이미 다 더해놓고, 이제 나한테 그 숫자를 읽어줄 준비가 된 얼굴."

아라는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어깨가 반쯤 돌아가다가 로프에 걸렸다. 윗줄이 팔을 잡았다.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앞을 보고 말했다.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나 혼자 일곱 시간 앉혀놨어? 무서워서? 두 시부터 알고 있으면서 아홉 시 사십 분에 밥 먹었냐고 물었어? 나한테?"

"……."

"대답해."

"……."

"대답하라고!"

준의 손이 완전히 떨어졌다. 로프 끝이 아라의 등에 툭 떨어졌다. 마 로프가 살에 닿는 감촉.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준이 뒤로 앉았다는 게 느껴졌다.

"왜 멈춰."

"손 떨려서."

"……."

"떨리는 손으론 안 묶어."

아라는 입을 다물었다. 등 뒤에서 준이 숨을 쉬는 소리가 났다. 들이쉬고, 참고, 내쉬고. 준이 로프 전에 하는 호흡이었다. 아라도 따라서 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다. 몸이 그렇게 했다. 로프가 가슴 위에 있으면 몸이 그렇게 했다.

일 분쯤 지났다. 아라가 말했다.

"손 안 저려. 계속해."

"노란불이야?"

준이 물었다. 아라는 그게 뭘 묻는 건지 알았다. 천천히 갈까. 지금 이 속도가 너무 빠른가.

생각했다. 정말로 생각했다.

"아니. 계속 묶어. 말도 계속해. 둘 다 멈추지 마."

준의 손이 돌아왔다. 로프를 다시 들었다. 남은 길이가 짧았다. 준이 두 번째 다발을 첫 줄 끝에 이었다.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어진 로프가 이번엔 가슴 아래로 갔다. 갈비뼈 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팔 밑을 지나 등 뒤로. 기둥줄에 감기고, 다시 앞으로. 두 바퀴. 아랫줄. 준이 두 줄을 당겼다.

아라의 갈비뼈가 조여졌다. 숨이 반쯤 갇혔다. 이게 아라가 아랫줄을 좋아하는 이유였고, 지금 그게 싫은 이유였다. 크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올릴 수가 없었다. 아랫줄이 있으면 소리를 지를 수 없다. 배로 숨을 쉬어야 하고 배로 말해야 한다. 천천히.

"숨 쉬어."

준이 말했다. 아랫줄 잡을 때 항상 하는 말. 아라는 숨을 쉬었다. 배로.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아랫줄이 허락하는 속도로.

"두 시 사십 분에 나왔어. 진료실에서. 의사가 나를 안 봤어. 모니터 보고 양성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고 다음 사람 불렀어. 삼십 초였어. 두 주 동안 밤마다 내 장례식 생각한 게 삼십 초로 끝났어."

"……."

"복도로 나왔는데. 아무도 없었어. 내가 괜찮대, 라고 할 사람이. 그 말을 하고 싶었어. 누구한테. 괜찮대. 그러면 그 사람이 나를 안고. 그럼 내가 울고. 그게 다였어. 그거 하려고 세 시 반부터 앉아 있었어. 소식 전하려고 앉아 있었던 게 아니야. 안기려고 앉아 있었어."

로프가 기둥에 감겼다. 준이 텐션을 잡았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떨리지도 않았다.

"두 주 동안 왜 말 안 했어."

"말하면 네가 괜찮을 거야, 할 거잖아."

"그럼 뭘 듣고 싶었어."

"……몰라. 아무 말도. 그냥 옆에 있는 거."

"나 옆에 있었어. 매일 밤."

"몸만."

준의 손이 멈췄다.

아라는 그 말이 나온 걸 알았다. 사흘 전과 같은 말. 아랫줄 때문에 크게 말할 수 없어서 그 말은 작게 나왔다. 작게 나오니까 더 잘 들렸다.

준은 한참 아무것도 안 했다. 그리고 로프를 마무리했다. 아랫줄과 윗줄 사이를 겨드랑이 쪽에서 한 번씩 조여서 두 줄을 한 몸으로 만들었다. 남은 로프를 기둥에 감아 정리했다. 손이 아라의 손목으로 내려왔다.

"엄지 움직여봐."

아라는 엄지를 움직였다.

"손 쥐어봐."

쥐었다.

"저려?"

"아니."

준이 아라의 손을 자기 손 위에 올려놓고 색을 봤다. 손등에 눌린 자국이 있는지, 손톱 밑이 하얘지지 않았는지. 준의 손바닥이 따뜻해져 있었다.

"'몸만'이라는 말."

준이 아라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그거랑. '로프 쥘 때만 사람'이라는 말. 그 두 개가 내가 평생 들은 말 중에 제일 아픈 말이야. 그래서 방에 들어갔어. 거기 더 있으면 나도 너한테 그런 말 할 것 같아서. 나한테도 있어. 너한테 하면 네가 못 잊을 말. 그거 하기 전에 들어갔어."

아라는 손을 준의 손 위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묶인 손이라 그것밖에 못 했다.

"다 묶었어."

준이 말했다. 뒤로 앉는 소리가 났다.

"여덟 시 사십 분. 삼십 분이야."

"응."

"손 저리면 말해."

"응."

"거짓말하지 말고."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