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가동범위
가을이 됐다.
마라톤 동호회 회장이 돌아왔다. 이번엔 왼쪽 무릎이라고 했다. 연우는 그가 운동화를 벗는 것을 봤고, 양말을 벗는 것을 봤고, 베드에 올라앉으며 왼쪽 다리를 조심스럽게 안으로 모으는 것을 봤다.
"무릎 아니에요."
"...또요?"
"이번엔 반대쪽이 억울한 거예요. 허벅지 안쪽. 엎드리세요."
내전근이었다. 연우는 팔뚝으로 장내전근을 따라 밀어 올렸다. 남자가 소리를 냈다. 아픈 사람의 소리. 정확히 그 소리였고, 연우의 배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연우는 그걸 확인했다. 확인하는 자기를 확인했다. 그다음 그 확인을 그만뒀다. 손이 알고 있었다. 이 손은 지금 낮의 손이었다.
"선생님 손 무서운 거 여전하네요."
"정확한 거예요."
"그 말도 여전하시네."
연우는 웃었다. 이번엔 진심으로.
지현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팔꿈치 덜 쓰네."
"응."
"어깨 각도 돌아왔어. 저번 달부터."
"보여?"
"보여."
연우는 커피를 받았다. 지현은 그 이상 묻지 않았고, 연우는 그것이 고마웠다.
* * *
집의 해부도는 이제 지도라기보다 일지였다.
후면 해부도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서 시작한 날짜들은 아래 여백을 다 채우고 왼쪽으로 꺾여 올라갔다. 여섯 줄의 규칙 옆에 성재의 글씨로 아침 보고들이 붙어 있었다. 대둔근 7, 이틀. 광배근 5, 하루. 햄스트링 6, 사흘, 앉을 때만. 코팅이 벗겨진 자리에서 유성펜이 번졌다. 전면 해부도는 조금 덜 어지러웠지만 연우의 날짜들도 모서리를 채우고 있었다.
"새 거 사자."
성재가 말했다. 목요일 식탁. 물 두 잔.
"왜."
"자리가 없어. 그리고 이거 오 년 벽에 붙어 있었다며. 이제 우리 집에서 반년이야. 은퇴시켜야지."
"옮기는 건 누가 해."
"내가 할게. 빨강부터. 그다음 노랑. 파랑은 네가."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재가 의자를 고쳐 앉았다. 연우는 그 자세를 알았다. 지도 수정을 요청하는 자세.
"말해."
"발바닥."
"노랑."
"파랑으로."
"간지럽다며."
"이제 안 간지러워. 굳었어. 서서 일하잖아. 네가 스탠딩 데스크 사 줘서."
연우는 웃음을 참았다. 파란 펜을 들었다. 후면 해부도의 발바닥 위, 노란 빗금 위에 파란 빗금을 덧그렸다.
"다음."
"...고환."
"빨강."
"노랑으로. 아직은 말고, 다음 지도에서."
연우는 펜을 든 채 그를 봤다. 삼 초.
"아직은 내 대답도 아직이야."
"그게 무슨 뜻이야."
"다음 지도에서 다시 물어."
"그건 언제야."
"이 지도 다 찰 때."
성재는 새 지도가 얼마나 빨리 찰지 계산하는 얼굴이 됐다. 연우는 그 얼굴을 보고 물을 마셨다.
"오늘은."
"오늘은 처음처럼."
"처음이 뭔데."
"의자."
* * *
성재가 서재 의자에 앉았다. 연우가 뒤에 섰다. 샤워를 했고, 검은 민소매였고, 물을 마셨다. 성재의 목은 이제 십오 도 기울어 있지 않았다. 스탠딩 데스크와 매주 이 손 때문에. 연우는 그래도 손바닥으로 목에서 어깨로 세 번 쓸었다. 그다음 엄지로 결을 따라 내려갔다. 결절은 작아졌지만 있었다. 은행알이 아니라 팥알.
"여기네."
"응. 거기."
눌렀다.
성재가 소리를 냈다. 반년 전과 같은 소리. 낮고, 길고, 끝이 떨리는. 연우는 이제 그 소리를 하루에 스무 번 듣는 소리와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구분이 됐다. 손이 구분했다. 이 소리는 밤의 소리였고 이 손은 밤의 손이었다.
"몇이야."
"...여섯."
"일곱."
"가."
연우는 엄지의 각도를 바꿨다. 가장자리로. 성재의 등이 의자에서 들렸다. 연우는 왼손을 앞으로 내렸다. 반바지 안으로. 반년 전과 같은 자리에 같은 것이 있었다. 단단했고, 젖어 있었다.
"삼십 초."
"또?"
"처음처럼이라고 했잖아."
연우는 눌렀고 감쌌고 세었다. 삼십. 이십구. 성재의 허벅지가 떨렸다. 이십. 십오. 그의 것이 손 안에서 뛰었다. 십. 연우는 이번엔 손목을 돌리지 않았다. 완전히 가만히 있었다. 오. 사. 삼. 이. 일.
엄지를 뗐다.
그리고 왼손도 뗐다.
"—뭐야."
"처음처럼 하면 여기서 끝나잖아. 오늘은 처음 다음도 있어."
연우는 그의 의자를 돌렸다. 성재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연우는 반바지를 내렸다. 그다음 그의 것을 잡고 의자 위로 올라갔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이거 하중—"
"몰라. 계산 안 해."
내려갔다. 성재가 신음하며 의자 팔걸이를 잡았다. 연우는 그의 손을 떼어 자기 엉덩이로 옮겼다.
"대둔근. 세게."
성재가 세게 잡았다. 연우는 끝까지 앉았다. 의자가 뒤로 젖혀졌다. 성재가 발로 바닥을 버텼다. 대퇴사두근이 굳는 걸 연우는 자기 허벅지 아래로 느꼈다. 그 굳은 근육 위에서 움직였다.
"몇이야."
이번엔 연우가 물었다. 움직이면서.
"...아홉."
"아홉은 없어. 아홉은 내 실수야."
"통증 아니야."
"그럼 뭐야."
"이건—이름이 없어."
"그럼 라틴어로도 못 하겠네."
성재가 웃었다. 웃으면서 신음했다. 연우는 그의 승모근을 잡았다. 오늘 눌렀던 자리. 팥알. 엄지로 눌렀다. 성재의 몸이 활이 됐고 의자가 삐걱거렸고 그의 것이 그녀 안에서 뛰었다.
"연우—"
"아직."
"제발—"
"몇이야."
"열—"
"열은 병원."
"그럼 병원 가—"
연우는 갔다. 그의 승모근을 쥐고, 그의 대퇴사두근 위에서, 소리를 내면서. 성재가 그녀의 엉덩이를 파고들었다. 자국. 지도에 없는 자국. 연우는 그걸 원했다. 처음부터.
엄지를 뗐다.
성재가 갔다. 이완에서. 반년 전과 같이. 등이 의자에서 완전히 들려서, 그녀 안으로, 여러 번. 연우는 그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손님의 근육이 다 풀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속도로. 그다음 그의 가슴에 엎드렸다. 대흉근. 심박. 백사십. 내려가는 중.
"이완에서 갔네."
"...이제 그 말 좀 그만하면 안 돼?"
"정확한 게 좋다고 했잖아."
"좋아. 좋은데."
성재가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 누르지 않고. 뜻이 하나인 손. 연우는 그 손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 * *
한참 뒤에 둘은 식탁에 앉았다. 새 해부도 두 장. 인터넷에서 산 것. 코팅이 새것이라 유성펜이 미끄러졌다. 성재가 빨간 펜을 들었다. 목 앞. 척추 정중선. 슬와. 요방형근. 얼굴. 그는 얼굴에 빗금을 칠 때 천천히 쳤다. 연우는 그걸 봤다.
"이건 네 거잖아. 내가 그린 거."
"둘 다 거야."
성재는 후면 해부도의 고환 자리에 빨간 점을 찍었다. 그다음 파란 펜으로, 그 위에, 원래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다시 그려 넣었다. 저번보다 조금 더 사실적으로.
"이건 지도에 있어야 되니까."
"실력 늘었네."
"반년 봤잖아."
노랑. 갈비뼈. 복부. 파랑은 연우가 그렸다. 대둔근. 햄스트링 셋. 대퇴사두근 넷. 광배근. 승모근 상부 중부. 비복근. 발바닥, 새로.
그다음 오른쪽 여백. 연우가 썼다. 승모근 = 정지. 광배근 = 천천히. 숫자. 여섯 줄의 규칙. 그리고 마지막에, 옛 지도에는 없던 한 줄을 더 썼다.
감탄사는 라틴어로.
성재가 웃었다. 연우는 웃지 않았다. 진심이기 때문이다.
전면 해부도에 연우가 자기 것을 옮겼다. 얼굴. 목. 호흡 X. 결박 X. 가끔은 그냥 만져. 성재가 그 마지막 줄을 보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쓸었다. 그냥.
"날짜."
연우는 두 장 다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날짜를 썼다. 그 밑에 썼다. 2차 검사.
"1차는 어디 갔어."
"옛 지도에."
"버려?"
"보관. 손님 기록은 오 년 보관이야."
"난 손님 아니라며."
"그러니까 십 년."
성재는 그 말을 들었다. 들은 다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우도 하지 않았다. 냉장고 소리가 났다.
연우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맥. 습관. 성재는 이제 그것을 묻지 않았다.
"정상."
"뭐가."
연우는 새 지도를 봤다. 빨강, 노랑, 파랑. 두 장. 낮에는 통증을 지우고 밤에는 통증을 만드는 손. 같은 손. 다른 계약. 그 계약이 두 장의 종이 위에 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가동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