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범위 끝에서
일요일 아침 식탁에 도구가 놓였다. 연우가 센터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물소뿔 괄사판 하나. 마사지건 하나. 파란색 니트릴 장갑 한 상자. 오일.
"이거 다 센터 거야?"
"괄사판은 내 거. 센터에 내가 가져다 둔 거. 나머지는 센터 거."
"들고 와도 돼?"
"내가 원장한테 말 안 하면 되지."
성재는 그 말을 별생각 없이 넘겼다. 연우도 그랬다. 그때는.
지도가 펼쳐졌다. 연우는 파란 펜으로 후면 해부도의 등과 햄스트링에 작은 빗금을 추가했다. 괄사 가능. 마사지건은 파랑 어디든, 단계는 1에서 2까지. 그다음 성재가 전면 해부도의 아래쪽, 자기가 파랗게 그려 넣은 것 뒤편을 가리켰다.
"여기."
"거기가 어디."
"안."
연우가 그를 봤다.
"전립선은 근육이 아니야."
"골반저근은 근육이잖아. 그 옆에 있으니까 인접 조직."
"해부학 공부했어?"
"번역가는 뭐든 검색해."
연우는 삼 초쯤 그를 보고, 파란 펜으로 작은 점을 찍었다. 점 옆에 썼다. 촉진 가능. 성재가 그 글자를 보고 웃음을 참았다. 연우는 참지 않았다.
* * *
"PNF가 뭔지 알아?"
성재는 테이블 위에 누워 있었다. 등에는 이미 괄사가 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열 줄. 광배근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척추에서 바깥으로. 연우는 그 자국이 진한 분홍에서 붉은색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멈췄다. 성재는 더 하자고 했고, 연우는 색을 보고 아니라고 했다. 사(痧)는 모세혈관이 터진 흔적이다. 얼마나 터뜨릴지는 연우가 정했다.
"몰라. 알아야 돼?"
"고유수용성 신경근 촉진법."
"모르는 게 낫겠다."
"근육을 늘리려고 하면 저항해. 그런데 먼저 수축시키고, 그다음 늘리면 더 늘어나. 몸은 한 번 버틴 다음에 더 열려."
연우는 그의 오른쪽 다리를 들어 자기 어깨에 걸었다. 발뒤꿈치가 그녀의 쇄골에 닿았다. 무릎을 편 채로, 햄스트링이 당기는 지점까지 밀었다. 성재가 숨을 들이켰다.
"밀어. 내 어깨를. 다리로. 육 초."
성재가 밀었다. 연우는 버텼다. 그의 햄스트링이 수축하면서 허벅지 뒤가 돌처럼 되는 걸 어깨로 느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풀어."
성재가 힘을 뺐다. 그 순간 연우가 밀었다. 다리가 아까보다 한 뼘 더 그의 가슴 쪽으로 넘어갔다. 성재가 소리를 냈다.
"봤지. 더 열렸어."
"봤—어."
"여기서 멈춰. 이게 네 가동범위 끝이야."
연우는 그 자리에서 멈추고 체중을 걸었다. 성재는 움직일 수 없었다. 묶인 게 아니었다. 다리 하나가 가동범위 끝에 있으면 몸은 다른 데를 움직이지 못한다. 골반이 고정되고 허리가 고정된다. 손은 움직일 수 있었다. 성재는 그 손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잡았다.
"몇이야."
"...여섯. 스트레칭은 좀 다른데."
"다르지. 그래도 숫자."
"여섯."
연우는 왼손을 뻗어 바닥의 마사지건을 집었다. 1단계로 켰다. 낮은 진동음. 그걸 그의 왼쪽 허벅지 안쪽, 내전근에 댔다. 성재의 몸이 튀었지만 튈 수가 없었다. 다리가 그녀 어깨에 걸려 있었다.
"어—"
"내전근."
연우는 마사지건을 천천히 위로 옮겼다. 사타구니 쪽으로. 근육이 끊어지는 자리, 지도에 없는 자리 직전에서 멈췄다. 그리고 각도를 바꿔 그의 것 뿌리 아래, 회음부에 헤드를 살짝 댔다. 접촉만. 누르지 않고.
성재가 내는 소리는 숫자로 바꿀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몇이야."
"그건—그건 통증이 아니야—"
"그럼 뭐야."
"...그냥 여섯."
연우는 웃었고, 마사지건을 껐다. 다리를 어깨에서 내려 테이블에 눕혔다. 성재가 숨을 몰아쉬었다. 연우는 파란 장갑을 꼈다. 탁, 손목에서 소리가 났다. 성재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거 센터 장갑이잖아."
"장갑은 장갑이야."
성재는 더 말하지 않았다. 연우는 오일을 손가락에 덥혔다. 그의 무릎을 세우고 벌렸다. 성재의 것이 배 위에서 뛰었다. 연우는 그걸 왼손으로 감싸고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그의 입구에 댔다.
"숨 내쉬어."
성재가 내쉬었다. 연우는 들어갔다. 천천히, 손님의 굳은 근육을 뚫고 들어갈 때와 같은 속도로. 저항이 있었고, 그 저항이 풀리는 순간이 있었다. 골반저근. 연우는 그 근육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했다. 성재가 신음했다.
"여기."
손가락 끝이 닿았다. 밤톨만 한, 다른 것보다 조금 단단한 조직. 연우는 그 위를 지문으로 쓸었다.
"교과서대로네."
"교과서에—나와?"
"해부학 교과서엔 다 나와."
연우는 왼손을 움직였다. 그의 것을 위아래로. 그리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눌렀다. 아주 조금. 성재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아까 다리가 어깨에 걸려 있을 때보다 더 심하게. 지금은 아무것도 그를 붙잡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움직이지 못했다. 연우의 손가락 하나가 그를 테이블에 박아 놓고 있었다.
"연우—"
"몇이야."
"몰라—"
"모르면 안 돼."
"일곱—일곱, 여덟—"
연우는 손가락의 압력을 그 자리에서 고정했다. 왼손은 계속 움직였다. 성재의 것이 손 안에서 팽팽해졌다. 끝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연우는 그가 가까워지는 걸 봤다. 복직근이 물결치고, 대퇴사두근이 떨리고, 발가락이 말렸다.
멈췄다. 두 손 다.
"아—안 돼—"
"돼."
연우는 기다렸다. 그의 것이 손 안에서 뛰는 걸 셌다. 뛰는 간격이 벌어질 때까지. 그다음 다시 시작했다. 손가락을 다시 눌렀다. 손을 다시 움직였다. 성재의 소리가 커졌다.
"광배근—"
연우의 손이 느려졌다. 즉시. 손가락의 압력을 반으로 줄이고, 왼손을 거의 멈췄다. 뺀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광배근은 천천히였다.
"잘했어."
성재가 숨을 몰아쉬었다. 눈을 뜨고 그녀를 봤다.
"...괜찮아?"
"괜찮아. 너무—너무 빨랐어. 잠깐만."
"그게 맞아. 그 말 하라고 있는 거야."
연우는 손가락을 그 자리에 두고 움직이지 않았다. 왼손도. 그냥 감싸고 있었다. 성재의 호흡이 내려오는 걸 기다렸다. 백사십에서 백이십으로. 손님의 맥이 내려오는 걸 기다리는 것처럼.
"다시 해도 돼?"
"...응. 천천히."
연우는 천천히 했다. 처음보다 천천히. 손가락은 누르지 않고 쓸기만 했다. 왼손은 길게. 성재가 다시 올라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 번 멈춰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연우—더."
"더 뭐."
"더, 세게—괄사, 다음엔 자국 남게—일주일—"
연우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건 지도에 없어."
"그럼 지도에—"
"지도는 식탁에서. 지금은 테이블이야."
성재가 뭐라고 하려 했다. 연우는 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눌렀다. 아까 여덟이라고 했던 압력으로. 성재의 말이 소리가 됐다. 연우는 왼손을 빠르게 했다. 이번엔 멈추지 않았다.
성재가 갔다. 배 위로, 가슴까지. 골반저근이 연우의 손가락을 조였다. 연우는 그 수축을 셌다.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그가 다 끝날 때까지 손가락을 빼지 않았다. 그다음 천천히 뺐다. 장갑을 벗어 뒤집었다. 탁.
성재는 테이블 위에서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연우는 타월로 그의 배를 닦았다. 그의 심박을 손목에서 짚었다. 내려가는 중이었다.
"괄사 좀 볼래?"
성재가 느리게 일어나 욕실로 갔다. 연우는 거실에 서서 그가 거울 앞에서 몸을 돌리는 것을 봤다. 등에 붉은 줄 열 개. 성재는 휴대폰을 들어 거울에 비친 자기 등을 찍었다. 웃고 있었다.
"이거 얼마나 가?"
"사흘. 나흘."
"일주일 가게 하면 안 돼?"
"그러면 모세혈관이 아니라 그 밑이 터져."
"그게 나빠?"
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성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연우는 식탁을 봤다. 파란 장갑 상자. 센터 로고가 찍혀 있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첫 손님이 있었다. 어깨가 굳은 사무직 여자. 연우는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아직 오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예열 좀 짧게 하면 안 돼? 다음엔."
욕실에서 성재가 물었다.
"안 돼."
연우는 손을 씻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