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혼자 왔어요?

재우는 노가리를 뜯고 있었다.

정확히는 노가리를 뜯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풍년호프 안쪽, 벽에 붙은 6인 테이블. 앞에는 50대 남자 셋. 넥타이는 풀렸고 셔츠는 소매까지 말려 있고 눈은 셋 다 반쯤 풀려 있었다. 3차다. 확실하다.

2분 전, 재우가 문을 밀고 들어와 두리번거리자 이 셋 중 제일 취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던 것이다.

"총각! 혼자야? 앉아, 앉아!"

완벽했다. 사람 속에 숨는다는 건 이런 거다. 혼자 앉아 있으면 튄다. 하지만 아저씨 셋과 노가리를 뜯고 있는 후드는 을지로 금요일 밤의 풍경 그 자체다.

"친구 기다리는 중이라서요."

"기다리면서 먹어. 이거 먹어. 야, 여기 잔 하나 더!"

잔이 왔고 맥주가 채워졌다. 재우는 한 모금 마셨다. 뛰고 나서 마시는 맥주는 죄다. 죄가 맛있다.

폰이 주머니에서 떨렸다. 핑이 나갔을 거다. 수빈은 지금 이 건물을 보고 있겠지.

"총각 뭐 하는 사람이야?"

"개발자요."

"개발자! 야, 요즘 개발자가 돈 잘 벌지? 여자친구는 있어?"

"있어요."

"어디 있는데 금요일 밤에 혼자 이래?"

재우가 대답을 고르는 사이에 문이 열렸다.

수빈이 들어왔다.

머리는 높게 묶였고 몇 가닥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얇은 바람막이 어깨가 한 줄 찢어졌다. 숨은 골랐지만 가슴이 아직 오르내렸고, 두 눈이 가게 안을 기계처럼 훑었다. 왼쪽 테이블, 오른쪽 테이블, 카운터, 그리고—

멈췄다.

재우는 잔을 입에 댄 채로 그 시선을 받았다. 4미터. 테이블 하나, 아저씨 셋.

수빈이 한 걸음 내디뎠다.

"아가씨!"

제일 취한 아저씨가 팔을 휘저었다.

"아가씨가 이 총각 기다리는 사람이야?"

수빈이 멈춰 섰다. 재우는 잔을 내려놓고, 수빈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아닌데요. 처음 보는 분이에요."

수빈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어? 그럼 아가씨도 혼자 왔어요? 앉아요, 앉아! 여기 총각 개발자래, 개발자! 소개해 줄게!"

"괜찮—"

"앉아요, 앉아! 야, 잔 하나 더!"

두 번째 아저씨가 의자를 빼 주었다. 재우의 정면. 테이블 하나 건너.

수빈은 앉았다.

재우는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규칙 다섯. 살에 손이 닿아야 한다. 테이블 위에 손을 두는 건 자살이다.

"이름이 뭐예요, 아가씨?"

"수빈이요."

"수빈 씨! 총각은?"

"재우요."

"재우 씨, 수빈 씨! 어때, 딱 아니야? 딱 어울려!"

세 번째 아저씨가 손뼉을 쳤다. 잔이 왔다. 맥주가 채워졌다. 수빈은 잔을 받으면서 재우를 봤다. 재우는 노가리를 한 조각 뜯어 입에 넣으면서 수빈을 봤다. 아저씨 셋은 둘을 번갈아 보면서 신이 났다.

"재우 씨는 무슨 개발해?"

"어플이요."

"무슨 어플?"

"사람 잡는 어플이요."

수빈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이 움직였다.

"그게 뭐야, 경찰 같은 거야?"

"비슷한 거요."

"수빈 씨는 뭐 해요?"

"물리치료사예요. 사람 몸 다루는 거."

"어! 둘이 딱이네! 하나는 잡고 하나는 다루고!"

아저씨 셋이 웃었다. 재우가 맥주를 내려놨다. 테이블 아래로, 수빈의 발끝이 재우의 정강이를 슬쩍 밀었다. 트레이닝 팬츠 위. 옷이다. 살 아니다. 재우는 다리를 뒤로 뺐다.

수빈이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아쉽다는 뜻.

"근데 수빈 씨는 왜 그렇게 뛰어왔어요? 얼굴이 벌겋네."

"놓친 게 있어서요."

"뭘?"

"곧 잡을 거예요."

재우는 벽시계를 봤다. 열한 시 사십 분. 타이머로 치면 대략 20분 남았다. 여기 오래 앉아 있을 순 없다. 앉아 있는 사냥감은 90초마다 자기 위치를 갱신하는 표적이다. 저 여자는 지금 테이블을 돌아올 각을 재고 있다.

"저 화장실 좀."

수빈이 일어섰다. 그리고 테이블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재우도 일어섰다.

"저도—"

"어어? 둘이 같이 가? 벌써?"

세 번째 아저씨가 낄낄거렸다. 수빈이 테이블 왼쪽 모서리를 돌았다. 재우는 오른쪽으로 갔다. 테이블이 계속 둘 사이에 있었다. 재우의 등 뒤에 주방 문이 있었다. 그 너머 뒷문. 을지로 호프집은 다 뒷문이 있다.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문.

"재우 씨, 화장실은 저쪽인데?"

"아, 저는—"

수빈이 아저씨 의자 뒤를 지나 빠르게 다가왔다. 2미터. 손이 나왔다.

재우는 주방 문을 어깨로 밀었다. 주방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어어, 거기 손님 들어오면—" 재우는 튀김기 옆을 지나 뒷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열렸다. 뒷골목의 차가운 공기.

"어! 총각! 계산!"

사장님 목소리가 등 뒤에서 터졌다.

수빈이 주방 문 앞에서 멈췄다. 뒷문이 쾅 닫히는 소리. 가게 안 사람들이 다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 셋은 입을 벌린 채였다.

수빈은 바람막이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딱 붙였다.

"노가리 값이요."

"어, 어어—"

"잘 마셨어요."

"수빈 씨! 그 총각 잡으러 가는 거야?"

수빈은 문을 밀면서 뒤돌아봤다.

"네."

"잘 어울린다, 둘이!"

문이 닫혔다.

* * *

노가리 골목으로 다시 나온 수빈은 폰을 꺼냈다. 19:50. 핑이 갱신되기까지 20초.

채팅이 먼저 왔다.

[재우: 아저씨가 나한테 번호 물어봤어]

[수빈: 잡히면 그 번호 지워 줄게]

[재우: 물리치료사가 왜 그렇게 잘 뛰어]

[수빈: 하나는 잡고 하나는 다루잖아. 근데 오늘은 내가 둘 다 해]

핑. 19:30.

점은 노가리 골목 뒤편에서 서쪽으로 빠져 있었다. 다시 인쇄소 골목 쪽. 어두운 쪽. 재우가 큰길을 버리고 다시 컴컴한 데로 들어갔다. 사람 속에 숨는 게 실패했으니 이번엔 어둠 속에 숨겠다는 거다.

수빈은 뛰기 시작했다. 골목의 소음이 등 뒤로 멀어지고, 세 골목을 지나자 다시 그 정적이 왔다. 잉크 냄새. 노란 가로등. 셔터.

핑. 18:00.

점이 인쇄소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있었다. 파레트 야적장 근처. 이 구역에서 제일 어둡고 제일 막힌 곳. 수빈은 방향을 틀어 그쪽으로 달렸다. 발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자기 것 하나뿐이었다.

핑. 16:30.

수빈은 지도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점이 90초 전과 같은 자리였다. 정확히 같은 자리. 파레트 야적장 안쪽.

"멈췄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