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의 컵라면
응급실에서 밤 열한 시는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 아니다. 하루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인계 갈게요. 3번 베드 심정지 환자는 ROSC 이후 중환자실 자리 대기 중이고, 승압제 노르에피 0.1로 가다가 삼십 분 전에 0.08로 낮췄어요. 7번은 알코올, 억제대 두 시간마다 피부 확인 부탁해요. 11번 흉통은 두 번째 트로포닌 새벽 한 시에 나가야 하고, 소생실 인튜베이션 카트는 제가 다시 채웠어요. 석션 카테터 14프렌치 거의 다 써서 물류에 얘기해뒀고요. 그리고 민지 선생, 오늘 처음으로 CPR 들어갔으니까 나이트 때 한 번만 챙겨봐 주세요."
정서윤은 인계장을 읽으면서도 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모니터 알람이 톤을 바꾸는 것을 귀로 먼저 잡아내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7번 산소포화도 프로브 빠졌어요, 누가 좀" 하고 말하자 저쪽에서 누군가가 뛰어갔다. 열두 년째였다. 스물둘에 이 응급실에 들어와 서른넷이 되었고, 지금은 이브닝 책임간호사였다. 응급의료센터 중증구역에서 하룻밤에 몇 개의 결정을 내리는지 세어본 적이 있었다. 삼백 개가 넘어가자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서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서윤 쌤, 이 환자 KTAS 2로 올릴까요?"
"정 선생, 저 인턴이 흉관 세트 어디 있냐고 세 번째 물어보는데."
응급실의 모든 문장은 그녀의 이름으로 시작해서 물음표로 끝났다. 서윤은 그 물음표를 하나씩 마침표로 바꾸는 사람이었다. 그게 그녀의 일이고, 그녀가 잘하는 일이고, 사람들이 그녀를 필요로 하는 이유였다. 오늘도 신규 간호사 민지가 심정지 환자 앞에서 하얗게 굳었을 때, 서윤은 민지의 손을 잡아 환자의 흉골 위에 얹고 "여기. 내가 셀게. 하나, 둘" 하고 리듬을 붙여주었다. 민지의 압박이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서윤은 다른 손으로 제세동기 패드를 뜯고, 입으로는 인턴에게 에피네프린 용량을 불러주고, 눈으로는 시계를 보았다. 그 삼 분 동안 그녀는 세 사람 몫의 결정을 했고, 환자는 돌아왔고, 아무도 그녀에게 괜찮으냐고 묻지 않았다. 물을 이유가 없었다. 서윤은 늘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벗을 때 어깨가 소리를 냈다. 정확히는 소리가 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껴졌다. 승모근이 두 개의 단단한 매듭이 되어 목 아래에 걸려 있었다. 서윤은 그 매듭을 손으로 눌러보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언니, 오늘 진짜 고생했어요." 민지가 사물함 문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진짜, 손이 안 움직였는데."
"처음엔 다 그래. 다음엔 움직여."
"언니는 처음에도 움직였을 것 같은데."
서윤은 웃었다. 그 웃음이 어떤 종류의 웃음인지 민지는 아직 모를 것이었다.
버스는 비어 있었다. 서윤은 맨 뒷자리에 앉아 창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열두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 애쓰는 것조차 하나의 결정이라는 걸 알았을 때 조금 웃겼다.
오피스텔 8층. 현관 센서등이 켜졌다가 그녀가 신발을 벗는 동안 꺼졌다. 서윤은 거실 큰 불을 켜지 않았다. 싱크대 위 작은 등만 켜고,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컵라면 뚜껑을 반쯤 뜯었다. 삼 분을 기다리며 그녀는 오늘 하루의 마지막 결정을 했다. 젓가락을 꺼낼 것인가, 포크를 꺼낼 것인가. 서랍을 열어 손에 먼저 닿는 것을 꺼냈다. 젓가락이었다.
서윤은 서서 먹었다. 싱크대에 허리를 기대고, 국물이 튀지 않게 몸을 앞으로 조금 숙이고. 식탁은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거기까지 가서 앉는 것도, 앉아서 먹는 사람이 되기로 정하는 것도 지금은 너무 많은 일이었다.
열한 시 사십 분. 그녀는 라면 국물을 버리고 용기를 헹궈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그 와중에도 손은 정확했다. 손은 늘 정확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켰다. 습관처럼 그 사이트를 열었다. 일 년 전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흘러들어간 커뮤니티였다. 처음에는 낯설고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쓰는 단어들이 그랬다. 그러다 어느 게시판의 글 하나에 걸렸다. 어떤 사람이 쓴, 자기가 퇴근하면 "작아진다"는 이야기였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군가가 밥을 먹었는지 물어봐주고, 몇 시에 자야 하는지 정해주고, 잘했다고 말해주는 시간. 글쓴이는 자기 나이를 밝혔다. 서른아홉이었고, 세무사였다.
서윤은 그 글을 여섯 번 읽었다. 그리고 매번 창을 닫으면서 같은 문장을 생각했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야.
그 문장을 일 년 동안 생각했다.
새벽 두 시 십 분이었다. 서윤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깨의 매듭이 따라 올라왔다. 그녀는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커서가 깜박였다. 그 깜박임을 한참 보았다. 응급실에서 그녀는 커서가 깜박이는 것을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항상 글자가 먼저였다.
그녀는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짧았다.
「저는 하루에 삼백 개쯤 결정을 합니다. 직업이 그렇습니다. 잘합니다. 잘해서 사람들이 저한테 옵니다. 집에 오면 컵라면을 젓가락으로 먹을지 포크로 먹을지도 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정을 안 해도 되는 시간이 갖고 싶습니다. 아기 말투 같은 건 잘 모르겠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더 단순한 것 같습니다. 밥 먹었느냐고 물어봐주는 것. 몇 시에 자라고 정해주는 것. 잘했다고 말해주는 것. 그 정도입니다.
이게 여기서 말하는 그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서른넷입니다. 이상한 글이면 지우겟습니다.」
오타를 발견했지만 고치지 않았다. 고치는 것도 결정이었다. 그녀는 등록 버튼을 눌렀고, 휴대폰을 엎어놓고, 불을 끄고, 여덟 시간 뒤에 데이 근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어깨가 아팠다. 그것은 익숙해서 거의 편안했다.
아침 여섯 시 반,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떴다. 휴대폰을 뒤집었다. 알림이 하나 있었다.
댓글이었다. 아이디는 「톱밥」이었다.
「결정을 안 해도 되는 시간, 이라는 말이 정확해서 오래 봤습니다. 저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는 쪽입니다. 마흔하나이고, 나무로 물건을 만듭니다.
밥은 먹었습니까. 안 먹었으면 오늘은 삼각김밥 말고 따뜻한 걸 먹어보세요. 그게 오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말입니다. 급하지 않으니,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보세요.」
서윤은 그 댓글을 여섯 번 읽었다. 이번에는 창을 닫지 않았다.
출근길 편의점에서 그녀는 삼각김밥 앞에 서서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옆 칸의 뜨거운 어묵 국물을 샀다. 종이컵이 손바닥을 데웠다. 그 열이 어깨까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올라오는 길을 조금 알려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