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꺼지면

"다 꺼요."

다인이 그렇게 말한 건 옷을 벗기 전이었다.

승재는 불을 다 켜둔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다인은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등도, 스위치도.

"다 꺼요. 등도. 촛불도 안 켜고."

"네."

"그리고 말도 하지 말아요."

승재는 다인을 봤다.

"말을 안 하면 물어볼 수가 없어요."

"손으로 해요." 다인이 말했다. 오는 길에 생각한 것이었다. "승재 씨가 제 손을 한 번 쥐면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한 번 쥐면 네. 두 번이면 새벽."

"대답이 없으면요."

"새벽."

"네."

"그리고 이거."

다인은 가방에서 작은 것을 꺼냈다. 종이었다. 놋쇠로 된,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종. 문구점에서 샀다. 흔들면 맑은 소리가 났다.

"이걸 손에 들고 있을게요. 소리가 나면 새벽이에요. 제가 흔들어도, 떨어뜨려도."

승재는 종을 봤다. 그러고 다인을 봤다.

"방음이라서요." 다인이 말했다. "여기서는 이 소리가 다 들리잖아요."

그가 웃었다. 천천히.

"네. 다 들려요."

그는 다인이 정한 것들을 소리 내어 다시 말했다. 한 번 쥐면 질문. 한 번이면 네. 두 번이면 새벽. 대답 없음도 새벽. 종소리도 새벽. 새벽이면 침대 옆 작은 등부터. 다인은 매번 네라고 했다. 그가 종이에 그걸 썼다. 다인이 보는 앞에서.

옷은 불을 켠 채로 벗었다. 둘 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다인은 그의 몸을 봤다. 오래. 오늘은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도 다인을 봤다. 같은 이유로.

"꺼도 돼요?"

"네."

천장등. 스탠드 셋. 그가 하나씩 껐다. 매번 다인을 봤고 다인은 매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스탠드 앞에서 그는 다인의 손을 잡았다. 한 번 쥐었다.

다인은 한 번 쥐었다.

딸깍.

어둠.

이번에는 진짜였다. 스위치도 없었다. 촛불도 없었다. 손에는 종. 다른 손에는 그의 손.

그리고 정적.

방음벽이 모든 것을 먹었다. 밖의 차 소리. 옆집. 냉장고. 시계도 없었다. 승재는 말하지 않았다. 다인은 자기 숨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숨소리를. 그것만 있었다. 두 사람의 숨과 어둠.

다인의 손목이 기억을 시작했다.

다인은 종을 쥐었다. 꽉. 소리가 나지 않게. 손목은 기억했다. 다인은 기억하게 두었다. 기억은 기억이고 지금은 지금이었다. 손에 종이 있었다. 다른 손에 승재의 손이 있었다.

승재의 손이 다인의 손을 한 번 쥐었다.

괜찮아요?

다인은 한 번 쥐었다.

네.

그의 손이 다인의 손에서 떠났다. 다인은 잠깐 혼자였다. 어둠 속에서. 종을 쥔 채. 그러다 그의 손이 다인의 뺨에 닿았다. 어디서 올지 몰랐다. 뺨. 따뜻했다. 다인은 그 손에 얼굴을 기울였다.

그의 입술이 이마에. 눈꺼풀 위에. 다인은 눈을 감았다. 감아도 떠도 같았으니까. 처음으로 감아도 괜찮았다.

입술이 입술에. 오래. 다인은 그의 목에 손을 감았다. 종이 그의 등에 닿았다. 차가운 놋쇠. 그가 잠깐 멈췄다가 계속했다.

그의 손이 다인의 손을 찾았다. 한 번.

다인은 한 번.

그의 입이 목으로 내려갔다. 쇄골. 가슴. 어둠 속에서 젖꼭지에 입이 닿았을 때 다인은 소리를 냈다.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벽이 먹었으니까. 그의 혀가 젖꼭지를 돌았다. 다른 손이 다른 젖꼭지를. 다인의 허리가 들렸다.

그가 다인을 눕혔다. 어둠 속에서 다인은 시트에 등을 댔다. 시트가 차가웠다가 따뜻해졌다.

한 번.

한 번.

그의 입이 배로. 아랫배로. 다인의 다리 사이로. 어둠 속에서 다인은 자기 다리를 열었다. 보이지 않는데 열었다. 그의 숨이 거기 닿았다. 그러고 혀.

다인은 소리를 냈다. 종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리가 나지 않게. 혀가 클리토리스를 돌았다. 천천히. 어둠 속에서 그 감각만 있었다. 다른 게 없었다. 볼 것도 들을 것도. 오직 혀. 오직 거기.

다인은 알았다. 어둠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었다. 다른 게 다 없어서 하나만 있는 것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 둘. 혀는 계속. 다인의 허리가 들렸다 내려왔다. 다인은 어둠 속에서 자기 손이 시트를 잡는 걸 느꼈다. 종을 쥔 손은 그대로. 다른 손은 시트를.

몸이 조여왔다. 발끝부터. 다인은 어둠 속에서 갔다. 그의 입 위에서.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방을 채웠다. 벽이 먹었다. 종은 울리지 않았다.

그는 다인이 다 떨고 나서 얼굴을 들었다. 다인의 배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 다인의 손을 찾았다.

한 번.

다인은 숨을 고르고 한 번 쥐었다.

그가 올라왔다. 다인은 그의 몸이 자기 몸 위로 오는 걸 느꼈다. 무게. 열. 콘돔 봉지 소리. 어둠 속에서 그 소리가 컸다. 그러고 그의 성기가 음순에 닿았다.

한 번.

다인은 한 번.

그가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다인은 자기 안이 열리는 것만 느꼈다. 그가 채웠다. 다인은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감았다. 같았다. 안에 그가 있었다. 그게 다였다.

그가 움직였다. 천천히. 다인은 종을 쥔 손을 그의 등에 얹었다. 놋쇠가 그의 살에 닿았다. 그의 등이 젖어 갔다. 다인은 그 젖음을 느꼈다. 볼 수 없어서 손으로.

그는 다인의 손을 찾아 한 번 쥐었다. 움직이면서.

다인은 한 번.

그가 깊어졌다. 다인은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았다. 그의 숨소리가 귀 옆에서 났다. 빨라진 숨. 다인의 숨도. 두 숨이 어둠을 채웠다. 살이 닿는 소리. 시트. 그것만.

다인은 어둠 속에서 다시 갔다. 이번에는 그의 아래에서. 그가 안에 있는 채로. 다인의 안이 그를 조였다. 다인은 그의 등에 손톱을 넣었다. 종이 그의 등에 눌렸다. 울리지 않았다.

그의 손이 다인의 손을 찾았다. 한 번.

다인은 웃었다. 어둠 속에서. 소리 내어. 저도 가도 돼요, 라는 질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한 번.

그가 몇 번 더 움직였다. 깊게. 그러고 다인 안에서 굳었다. 소리를 냈다. 어둠 속에서 그 소리는 다인의 귀 바로 옆에서 났다. 다인은 그가 가는 것을 들었다. 볼 수 없어서 들었다.

그는 다인 위에 내려앉았다. 무겁지 않게. 숨이 다인의 목에.

그러고 조용해졌다.

그가 빠져나가고 콘돔을 처리하고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어둠 속에서 그 소리들이 다 들렸다. 발소리. 시트. 그가 옆에 누웠다. 닿지 않게.

다인은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정적 속에.

손에 종이 있었다.

다인은 그 종을 얼마나 꽉 쥐고 있었는지 그때 알았다. 손가락이 아팠다. 놋쇠가 손바닥에 자국을 냈을 것이었다. 처음 불이 꺼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놓지 않았다.

다인은 손을 폈다.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씩. 종이 손바닥 위에 놓였다. 다인은 손을 옆으로 뻗어 종을 시트 위에 내려놓았다.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지 않게. 종이 시트에 닿았다.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뗐다.

빈손이었다. 어둠 속에서. 다인은 그 빈손으로 승재를 찾았다. 그의 손을. 찾았다.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놀란 것 같았다. 다인의 두 손이 다 자기 손에 있다는 것을. 종이 없다는 것을. 그는 종이 어디 있는지 알았을 것이다. 소리를 들었으니까. 시트에 내려놓는 소리를.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인의 두 손 안에 손을 두었다.

다인은 어둠 속에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손목은 더 이상 기억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했지만 그건 손목의 일이었다. 다인은 그 옆에 있었다.

다인은 숨을 쉬었다. 들어왔다. 나갔다. 셋째 숨이 들어왔다. 넷째. 다섯째. 세지 않게 됐다.

어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둠은 그냥 어둠이었다.

그게 쉬는 것이었다. 다인은 그걸 그때 알았다. 볼 것이 없고 들을 것이 없고 지킬 것이 없는 것. 옆에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다인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

시간이 지났다. 얼마나인지 몰랐다.

어둠 속에서 승재의 목소리가 났다. 오늘 밤 처음으로. 아주 작게.

"괜찮아요?"

다인은 대답했다.

"네. 여기 있어요."

그는 불을 켜지 않았다. 다인도 켜라고 하지 않았다.

다인은 어둠 속에서 잠들었다. 스탠드 없이. 촛불 없이. 스위치 없이. 종 없이.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밤중에 한 번 깼다. 어둠이었다. 다인은 천장을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셀 것이 없었다.

세지 않았다.

옆에서 숨소리가 났다. 다인은 다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