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다 켜둔 방
오피스텔은 십이 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가 조용했다. 승재의 집은 복도 끝이었다. 다인은 문 앞에 서서 한 번 숨을 쉬고 벨을 눌렀다. 안에서 발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빛이 쏟아졌다.
말 그대로였다. 천장등이 켜져 있고, 스탠드 세 개가 켜져 있고, 주방 불도 켜져 있고, 화장실 불까지 켜져 있었다. 방이 낮처럼 환했다. 아니, 낮보다 환했다.
"말한 대로요." 승재가 말했다.
다인은 웃었다. 웃을 생각이 없었는데 웃음이 났다.
방은 넓지 않았다. 침대와 낮은 탁자, 책장 하나, 벽에 붙은 두꺼운 회색 패널들. 창에는 검은 커튼이 걷혀 있었다. 바닥은 나무였고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방음이에요." 승재가 벽을 가리켰다. "일 때문에 한 거예요. 여기서는 소리가 밖으로 안 나가요."
다인은 그 말을 들었다.
"그게 무섭다는 거 알아요." 승재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못 들어요. 그러니까 먼저 이거."
그는 문으로 갔다. 손잡이 위에 동그란 잠금장치가 있었다.
"안에서는 이걸 돌리면 열려요. 항상. 열쇠 없이. 밖에서만 열쇠가 필요해요." 그가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건 다인 씨 거예요. 가져가세요. 언제든 나가도 돼요. 인사 안 해도 되고, 이유 안 말해도 돼요."
다인은 열쇠를 봤다. 은색이었다. 오래 쓴 것 같았다.
"그리고 불."
그는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천장등 스위치는 문 옆에. 조광기는 그 아래, 둥근 손잡이. 돌리면 천장등이 서서히 어두워진다고 했다. 스탠드는 세 개. 침대 옆, 책장 옆, 창가. 각자 스위치가 몸통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탁자 서랍. 열자 촛불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흰 것, 낮은 것. 라이터도 있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꺼요." 승재가 서랍을 닫았다. "오늘은 방을 익히는 날이에요."
다인은 침대 끝에 앉았다. 승재는 바닥에 앉았다. 다인보다 낮게. 그것도 고른 자리라는 걸 다인은 알았다.
"말을 정해요." 그가 말했다.
"안전어요?"
"네. 다인 씨가 골라요."
다인은 생각했다. 그만. 그 말은 이미 한 번 죽었다. 그 말은 쓸 수 없었다.
"새벽."
승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밝아지는 거니까요." 다인이 말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설명했다.
"좋아요. 새벽." 그가 그 말을 한 번 입에 담아봤다. "새벽이라고 하면 저는 그 자리에서 다 멈춰요. 불을 켜요. 그리고 다인 씨한테서 손을 떼요. 물어보지 않고요."
"네."
"그리고 하나 더." 승재가 말했다. "제가 물었을 때 대답이 없으면, 그것도 새벽이에요."
다인은 그를 봤다.
"말이 안 나오는 순간이 있어요. 몸이 먼저 굳으면 말이 안 나와요. 그때 저는 다인 씨가 싫다고 한 걸로 들어요. 침묵을 네로 안 들어요. 절대로."
다인은 잠깐 숨을 쉬지 못했다.
그 사람은 침묵을 네로 들었다. 다인이 말을 못 하게 됐을 때, 그 사람은 그걸 허락으로 들었다. 그리고 다인이 말했을 때는 그걸 장난으로 들었다.
승재는 다인의 숨이 멈춘 걸 봤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인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때까지.
"그리고 두 번 두드리기." 그가 이어서 말했다. "말도 안 나오고 손도 안 움직일 때가 있는데, 그래도 두 번은 두드릴 수 있을 때가 있어요. 어디든. 제 팔, 침대, 벽. 두 번이면 새벽이에요."
"네."
"천천히는 천천히예요. 그건 그냥 말로 해도 돼요."
"네."
승재는 종이를 꺼냈다. 볼펜도. 다인이 보는 앞에서 썼다. 새벽. 두 번 두드리기. 대답 없음. 그 아래에 줄을 긋고 물었다.
"안 되는 거."
"눈가리개."
그가 썼다.
"손목 묶는 거. 지금은요."
썼다.
"입 막는 거."
썼다. 그리고 종이를 다인 쪽으로 밀었다.
"이건 다인 씨가 갖고 있어요. 고치고 싶을 때 고쳐요. 늘리든 줄이든."
다인은 종이를 접어 열쇠 옆에 두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방은 환했다. 스탠드 세 개의 빛이 겹쳐서 바닥에 그림자가 거의 없었다. 벽의 회색 패널이 소리를 다 먹어서 냉장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인은 자기 숨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승재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는 다인보다 느리게 숨을 쉬었다.
"손 잡아도 돼요?" 승재가 물었다.
다인은 자기 손을 봤다. 무릎 위에 있었다.
"네."
그가 일어나서 침대 옆에 앉았다. 다인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손바닥이 마르고 조금 거칠었다. 그게 다였다. 그는 손을 잡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인의 손가락을 쓰다듬지도 않았다. 그냥 잡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벽 때문에 밖의 시간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요." 승재가 말했다.
"이게 다예요?"
"네. 이게 다예요."
다인은 손을 빼지 않았다. 조금 더 있었다. 그가 먼저 놓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 다인은 스탠드를 켰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무늬를 세려고 했다.
그런데 세지 못했다. 세기 전에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스탠드가 그대로 켜져 있었다. 밤중에 한 번도 깨지 않은 건 이 년 만이었다.
탁자 위에 은색 열쇠가 있었다. 다인은 그걸 열쇠고리에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