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만나요
다인은 불을 켜고 잔다.
침대 옆에 작은 스탠드 하나. 주황색 전구. 밤중에 눈을 뜨면 그 빛으로 천장의 무늬를 셌다. 하나, 둘, 셋. 무늬가 보이면 괜찮았다. 보이지 않으면 괜찮지 않았다.
이 년째였다.
그 사람의 이름은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그날의 순서만 남아 있었다. 눈가리개. 손목. 그리고 자기 목소리. 그만. 둘이 정한 말이었다. 다인이 말했고, 그 사람은 웃었다. 조금만 더. 그러고는 계속했다.
그날 이후로 어둠을 기억하는 건 다인이 아니라 다인의 몸이었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불이 꺼지면 손목이 먼저 알았다.
그래서 그 커뮤니티에서도 다인은 글을 쓰지 않았다. 읽기만 했다. 반년 넘게.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말들을 읽었다. 자랑하는 글, 다친 글, 규칙에 대해 따지는 글.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있었다. 승재라는 아이디. 그는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만 썼다.
기다리는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상대의 숨소리를 세는 거예요.
다인은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그리고 창을 닫았다. 다음 날 다시 열었다.
메시지를 보낸 건 밤 두 시였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저는 눈가리개를 못 합니다. 그것만 먼저 말씀드려요.
답장은 아침에 와 있었다.
알겠습니다. 안 합니다. 이유는 말하고 싶어질 때만 말해주세요. 안 말해도 됩니다.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달 동안 그들은 글로만 이야기했다. 승재는 답이 늦었다. 하루에 한 번, 길게. 다인이 물으면 답했고, 묻지 않으면 묻지 않았다. 어떤 날 다인은 물었다. 왜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만 써요?
기다리는 게 제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라서요. 승재는 그렇게 답했다. 저는 소리를 만지는 일을 해요. 소리는 먼저 들어야 만질 수 있어요.
다인은 그 답을 오래 봤다.
그리고 어떤 날, 다인이 먼저 썼다. 그때 그 사람은 제가 그만이라고 했을 때 웃었어요. 그게 다예요.
승재의 답은 짧았다. 그건 그 사람 잘못이에요. 전부 다.
다인은 그 문장을 캡처해서 저장했다.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만나자는 말은 다인이 먼저 했다. 낮에 만나요. 창가 자리에서.
네. 문이 보이는 자리는 다인 씨가 앉으세요. 저는 등 돌리고 앉을게요.
카페는 삼 층이었다. 유리창으로 오후 빛이 통째로 들어왔다. 승재는 먼저 와 있었다. 다인이 들어서자 일어났다.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일어나서 고개를 조금 숙였다.
생각보다 마른 사람이었다. 소매를 걷은 팔에 힘줄이 보였다. 눈은 조용했다.
다인은 문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승재는 창을 등지고 앉았고, 그래서 그의 얼굴은 빛 속에 다 드러나 있었다. 감출 수 있는 게 없는 자리였다. 그가 그 자리를 고른 것이라는 걸 다인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커피잔 옆에. 그리고 한 시간 동안 그 손을 탁자 밑으로 내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별 게 아니었다. 다인은 작은 출판사에서 교정을 봤다. 승재는 스튜디오에서 소리를 다뤘다. 낮에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 살고, 몇 시에 자는지.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들.
그러다 다인이 말했다.
"눈가리개는 안 돼요."
"안 합니다."
"이미 말한 거 알아요. 얼굴 보고 다시 말하고 싶었어요."
"그럼 저도 얼굴 보고 말할게요." 승재는 다인의 눈을 봤다. "안 합니다. 그건 제가 원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럼 뭘 원해요?"
승재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차 소리가 올라왔다. 그는 그 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빛을 하나씩 줄이는 거요."
다인은 커피잔을 잡았다.
"제 방에는 등이 여러 개 있어요. 천장등, 스탠드, 조광기, 촛불. 그걸 하나씩 꺼요. 하나 끌 때마다 물어볼 거예요. 다인 씨가 싫다고 하면 거기서 끝이에요. 그날은 거기까지고, 다음에도 거기까지일 수도 있어요. 평생 거기까지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돼요?"
"그래도 돼요. 그건 실패가 아니에요."
"뭘 보고 싶은 거예요, 그럼."
"다인 씨가 어둠 속에서 숨을 편하게 쉬는 거." 승재가 말했다. "그걸 보고 싶어요. 못 보게 되면 못 보는 거고요."
다인의 손이 떨렸다. 잔 속의 커피가 흔들려 표면에 작은 원이 생겼다. 다인은 그걸 봤고, 승재도 그걸 봤다.
그는 손을 뻗지 않았다.
다인은 그 순간을 오래 기억했다. 그가 손을 뻗어 자기 손을 잡아주지 않은 것. 잡아줘도 될 것 같은 순간에, 그가 그냥 두 손을 탁자 위에 그대로 둔 것. 자기 손이 떨리는 걸 보고도 거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허락받지 않은 손은 다인에게 오지 않았다. 그게 위로였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생각해볼게요." 다인이 말했다.
"네. 천천히요."
헤어질 때도 그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다시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다인은 스탠드를 켰다. 천장의 무늬를 셌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휴대폰을 들었다.
다음 주에 시간 있어요?
답은 바로 왔다.
있어요. 불은 다 켜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