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셉, 리비전, 리젝

"숙제 했어."

지훈이 노트를 꺼냈다. 진짜 노트였다. 종이. 스프링. 표지에 학회 로고가 박힌, 학회에서 무료로 주는 그 노트. 소연은 그의 침대에 엎드려서 그걸 봤다.

"뭘 했다고?"

"숙제. 네가 규칙 만들자고 했잖아."

"그래서 노트에 정리해왔어?"

"응."

"손글씨로?"

"응."

소연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어깨가 떨렸다. 지훈은 그녀가 다 웃을 때까지 기다렸다. 익숙했다. 삼 년 동안 그녀가 자기를 보고 웃을 때 기다리는 건 그의 기본기였다.

"미안. 계속해."

그는 노트를 펼쳤다. 첫 장 맨 위에 그의 반듯한 글씨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브랫/테이머 다이내믹: 개념 정리 및 적용 방안'. 소연은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소연."

"미안, 미안. 진짜 미안. 제목이 너무…… 학회 포스터 같아서."

"내용 들어."

"들어."

그는 읽었다. 진지하게. 브랫이라는 게 뭔지. 규칙을 일부러 어기고 잡히는 걸 즐기는 것. 저항 자체가 놀이라는 것. 테이머라는 게 뭔지. 그 저항을 받아주고, 이기고, 때로는 이기지 않는 것. 소연은 웃음을 멈췄다. 그가 읽는 문장들이 정확했다. 삼 년 동안 자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말로 듣는 기분이었다.

"어디서 봤어."

"여기저기. 커뮤니티랑, 글이랑. 사흘 걸렸어."

"사흘이나?"

"검색어를 뭐로 넣어야 되는지 몰라서 하루 걸렸어."

소연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를 마주 봤다. 이 남자가 사흘 동안 밤에 혼자 검색창 앞에 앉아서, 자기가 그녀에게 뭘 하고 싶은 건지, 그녀가 자기에게 뭘 원하는 건지 알아보려고 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가슴을 눌렀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결론은 없어. 질문이 있어."

그가 노트를 넘겼다. 두 번째 장. 번호가 매겨진 질문 목록. 그는 첫 질문을 읽었다.

"너는 왜 말을 안 들어."

"뭐?"

"진짜로. 삼 년 동안 왜 매번 마감을 어겨."

소연은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 없이 말했다.

"네가 나를 보니까."

"……"

"마감 지키면 넌 파일만 봐. 마감 어기면 나를 봐. 시계 보고, 나 보고, 한숨 쉬고, 벌칙 정하고. 그 오 분이 하루 중에 네가 나만 보는 유일한 시간이었어."

지훈은 노트를 잠깐 내려놨다. 뭔가 말하려다가 하지 않았다. 다시 노트를 들었다. 그의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그걸 소연은 봤고,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 벌칙에서 네가 좋은 건 뭐야."

"네가 포기 안 하는 거."

"포기?"

"내가 안 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 알겠다고 하고 자기가 해. 너는 안 그래. 계속 서 있어. 계속 세. 나 잡으려고 뒤에서 손목 잡아. 그게 좋아. 내가 아무리 밀어도 안 가는 게."

"세 번째. 싫은 건."

"무시. 그리고…… 진짜 화내는 거. 놀이로 화내는 거랑 진짜 화내는 거 구분이 안 되면 무서워."

그가 뭔가를 적었다. 그녀의 답 옆에.

"이제 네 차례."

소연이 노트를 빼앗았다. 그는 순순히 줬다. 그녀는 그의 글씨를 봤다. 질문 옆에 이미 그가 자기 답을 적어놓은 게 있었다. 작은 글씨로. 그녀는 읽었다.

'테이머에서 내가 좋은 것: 네가 지는 순간. 정확히는 네가 이기는 걸 포기하고 웃는 순간.'

'싫은 것: 내가 진짜로 화가 났는데 네가 그걸 놀이로 받을 때.'

'무서운 것: 네 싫어가 진짜일 때 못 알아보는 것.'

소연은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그를 봤다.

"그럼 세이프워드 정하자."

"그게 뭔데."

"검색 사흘 했다면서 그걸 몰라?"

"알아. 네가 뭘로 정하고 싶은지 묻는 거야."

소연은 생각했다. 십 초.

"억셉, 리비전, 리젝."

"……논문 심사 결과?"

"억셉은 계속해. 좋아. 더 해. 리비전은 잠깐, 뭔가 바꿔야 돼, 속도 늦춰. 리젝은 멈춰. 완전히. 지금."

"메이저 리비전이랑 마이너 리비전은."

"그건 상황 봐서."

지훈은 웃었다. 소리 내서. 그리고 노트에 적었다. 세 단어. 그 옆에 뜻. 그는 그것을 두 번 읽었다. 외우는 것처럼.

"하드 리밋."

그가 말했다. 소연은 이번엔 진지하게 생각했다.

"연구실 사람들 앞에서 진짜 창피 주는 거. 놀이는 괜찮아. 지금까지 한 것처럼. 근데 진짜로. 내 연구를 깎는 거. 그건 안 돼."

"당연히."

"너는."

"실험 데이터. 그건 절대 안 건드려. 파일명 바꾸는 건 괜찮아. 폴더 옮기는 것도 괜찮아. 근데 원본 데이터에 손대는 건 안 돼. 그건 놀이가 아니야."

"당연하지. 그걸 왜 건드려."

"그냥. 적어두는 거야. 규칙이니까."

그는 적었다. 소연은 그 옆에 하나 더 덧붙였다. '마감 열두 시간 전에는 섹스 금지.' 지훈이 그걸 보고 말했다.

"그럼 우리 평생 안 하겠네."

"그러니까 마감을 어겨야지."

"이소연."

"뭐, 규칙이야."

그가 노트를 닫았다. 침대 옆 책장에 넣었다. 학회 바인더들 사이에. 그리고 그녀를 봤다.

"테스트하자."

"뭘."

"세이프워드. 진짜로 작동하는지."

소연은 심장이 한 박자 빨라지는 걸 느꼈다.

"어떻게."

그는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학회 명찰 끈. 파란색 랜야드. 지난 학회에서 받은 거였다. 그녀는 그걸 보고 웃었다.

"그거로 뭐 하려고."

"손. 이리 줘."

"싫어."

"이소연."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두 손목을 모아서. 그는 랜야드로 그녀의 손목을 감았다. 세 번. 그리고 묶었다. 헐겁지 않게, 아프지 않게. 그가 그런 것도 검색했다는 걸 그녀는 알았다.

"침대 헤드."

그가 말했다. 그녀는 누웠다. 그가 묶인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헤드보드에 고정했다. 그녀의 팔이 위로 뻗어졌다. 티셔츠가 올라갔다. 배가 드러났다. 그녀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무방비한지 느꼈다. 그리고 그게 무섭지 않았다. 앞에 있는 게 강지훈이니까.

그가 그녀의 티셔츠를 더 올렸다. 가슴까지. 브라는 없었다. 그의 방에서는 안 입기로 한 지 이 주가 됐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젖꼭지에 닿았다. 그녀는 손을 내리려고 했다. 그의 머리를 잡으려고. 랜야드가 그걸 막았다.

"아……"

"손 못 쓰니까 어때."

"……싫어."

"진짜?"

"억셉."

그의 입이 웃는 게 느껴졌다. 그는 계속했다. 한쪽 젖꼭지를 혀로, 다른 쪽을 손가락으로. 그녀는 허리를 비틀었다.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반바지 안으로 들어갔다. 팬티 위로. 그녀가 얼마나 젖었는지 그 위로도 느껴질 만큼.

"손 못 쓰는데 이렇게 젖어?"

"그거 말하는 거 벌칙이라고……"

"열."

그의 손가락이 팬티를 옆으로 밀고 들어왔다. 바로. 두 개. 그녀는 소리를 냈다. 손목이 랜야드를 당겼다. 헤드보드가 삐걱했다. 그의 손가락은 지난주에 찾은 그 자리를 정확히 다시 찾았다. 그는 거기를 눌렀다. 리듬을 타고.

소연은 시험해봐야 했다. 지금이었다. 좋을 때. 너무 좋아서 멈추고 싶지 않을 때. 그때 멈추는지 봐야 했다.

"리비전."

그가 멈췄다.

즉시. 손가락이 그대로 멈췄고, 입이 그녀의 가슴에서 떨어졌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그녀를 봤다. 흥분한 눈. 그런데 그 위에 완전한 집중.

"뭐 바꿀까."

"……아무것도. 테스트야."

그는 잠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웃었다. 안심한 웃음.

"통과?"

"통과."

"그럼 억셉이야?"

소연은 그를 봤다. 이 남자가 지금 그녀 안에 손가락 두 개를 넣은 채로, 그녀가 한 단어를 말했다는 이유로 완전히 멈춰서, 그녀가 뭘 원하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랜야드보다 더 그녀를 묶었다.

"억셉. 억셉. 강지훈, 억셉, 빨리."

그는 웃으면서 다시 시작했다. 멈췄던 자리에서. 아니, 그보다 세게. 그녀는 이 분 안에 갔다. 손목을 랜야드에 당기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한 그 사이의 공백이 만들어낸 압력을 한 번에 터뜨리면서.

그가 랜야드를 풀었다. 손목을 문질러줬다. 붉은 자국이 남았다. 그는 거기에 입술을 댔다. 소연은 그걸 보면서 말했다.

"너 진짜 검색 사흘 한 거 맞아?"

"응."

"검색만?"

"……읽는 것도 좀."

"뭘."

"연습 안 했어. 네가 처음이야. 이런 건."

소연은 그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키스했다. 오래.

"그럼 나도 벌칙 하나 받을게."

"뭔데."

"너한테 명령하는 거. 그거 가끔 하고 싶어. 규칙에 넣어."

"넣어."

"안 물어봐? 왜냐고?"

"알아. 네가 이기고 싶은 날도 있으니까."

소연은 그 말에 뭔가를 느꼈다. 그게 뭔지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훨씬 나중에. 학회 전날 밤에.

다음 날 연구실. 화이트보드 우측 하단 표에 새 열이 생겼다. '누적: 10' 옆에 작은 글씨로 '정산 완료: 7'. 민재가 그걸 보고 물었다.

"정산이 뭐예요?"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몰라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