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정리하러 왔다니까

"데이터 정리하러 왔어."

소연은 지훈의 원룸 문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토요일 오후 세 시. 손에는 노트북 가방. 가방 안에 노트북은 없었다. 충전기와 복숭아 젤리와 칫솔이 있었다. 칫솔은 자기도 왜 넣었는지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무슨 데이터."

"몰라. 네가 정해."

지훈은 문을 열어줬다. 그의 방은 예상대로였다. 책상 위에 모니터 두 대, 책장에 논문 바인더가 학회별로 정리, 침대는 각을 잡아 정돈. 이 방에서 유일하게 정리 안 된 건 지금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라면 먹을래."

"먹어."

그는 라면을 끓였다. 그녀는 책상 의자에 앉아서 그의 모니터를 켰다. 배경화면은 회귀 분석 그래프였다. 그녀는 그걸 보고 웃었다.

"너 진짜 재미없게 산다."

"라면에 계란 넣어."

"넣어."

라면을 먹었다. 침대 끄트머리에 나란히 앉아서. 팔십 센티미터는 이제 없었다. 십 센티미터. 국물이 뜨거웠다. 둘 다 별로 말을 안 했다. 택시에서 일주일이 지났다. 그 일주일 동안 연구실에서 두 사람은 완벽하게 평소처럼 지냈다. 너무 완벽해서 민재가 오히려 이상하다고 했을 정도로.

"그래서."

지훈이 그릇을 내려놓았다.

"뭐."

"일곱 개."

소연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일어나서 그의 책상으로 갔다. 모니터 앞. 그리고 책상 위에 앉았다. 모니터를 등으로 가리고. 다리를 꼬고. 그를 봤다.

"이소연."

"응."

"내려와."

"싫어."

그가 일어났다.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녀는 책상 위에 앉아 있어서 눈높이가 비슷했다. 그가 안경을 벗어서 모니터 옆에 놓았다. 그 동작이 이상하게 소연의 배 아래를 건드렸다.

"내려와."

"싫다니까."

"그럼 여덟."

"아 진짜, 너 그거 그만 세."

"세는 게 좋다고 했잖아."

그가 그녀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꼰 다리 위에. 그리고 아주 천천히 다리를 풀었다. 소연은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하는 척만 했다. 무릎에 힘을 줬다가 그가 조금 더 힘을 주자 풀었다.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섰다.

"이게 벌칙이야?"

"아직 아니야."

그가 키스했다. 택시에서보다 느리게. 그녀의 아랫입술을 천천히 물고, 놓고, 혀로 입술 사이를 열었다. 소연은 그의 티셔츠를 잡았다. 이번엔 밀어내려고 잡은 것도, 뭔가 잡아야 해서 잡은 것도 아니었다. 끌어당기려고 잡았다.

"강지훈."

"응."

"너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논문."

"거짓말."

"유튜브."

"더 거짓말."

그가 웃었다. 그녀의 입술에 대고. 웃음이 진동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의 손이 그녀의 티셔츠 아래로 들어갔다. 허리. 옆구리. 소연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손은 손목을 잡을 때랑 같은 온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맨살이었다.

"벗어."

"싫어."

"이소연."

"네가 벗겨."

그는 벗겼다. 티셔츠를 머리 위로. 그녀의 머리가 헝클어졌다. 그녀는 그걸 정리하지 않았다. 브라는 검은색이었다. 평소에 안 입는 색이었다. 오늘 아침에 십 분 고민해서 고른 색이었다. 그는 그걸 몰랐다. 대신 그 위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녀를 봤다.

"뭐."

"예뻐서."

"그런 말 하지 마. 벌칙 캐릭터랑 안 맞아."

"그럼 어떤 말이 맞아."

"몰라. 그냥…… 명령 같은 거."

그가 브라 후크를 풀었다. 한 손으로. 그건 진짜 어디서 배운 건지 물어봐야 했지만 소연은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브라가 떨어졌고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감쌌다. 젖꼭지가 그의 손바닥에 닿았다. 이미 서 있었다. 그는 엄지로 그걸 문질렀다. 소연의 허리가 저절로 젖혀졌다.

"침대."

그가 말했다. 명령이었다. 소연은 그 말투에 몸 어딘가가 조여드는 걸 느꼈다.

"싫어."

"침대로."

그가 그녀를 들었다. 책상에서. 그녀의 허벅지를 잡고. 그녀는 그의 목을 안았다.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았다. 세 걸음. 침대. 그가 그녀를 눕혔다. 각 잡혀 있던 이불이 구겨졌다.

그는 그녀의 바지를 벗겼다. 팬티도. 그리고 무릎으로 침대 위에 올라와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안경을 벗은 그의 얼굴은 삼 년 동안 봤던 얼굴이 아니었다. 더 어렸고 더 진지했고 더 뭔가를 참고 있었다.

"너도 벗어."

소연이 말했다.

"명령이야?"

"응."

"벌칙 받는 사람이 명령을 해."

"그러니까 벌칙 하나 더 세."

그가 벗었다. 티셔츠, 바지, 속옷. 그의 성기는 이미 단단하게 서 있었다. 소연은 그걸 보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삼 년 동안 매일 마주 앉았던 사람이었다. 지금 그 사람의 발기한 성기가 그녀 앞에 있었다. 그건 정리가 안 되는 데이터였다.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허벅지 안쪽에 입술. 소연은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다. 그가 두 손으로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그리고 혀를 댔다.

"아…… 야, 강지훈……"

"조용히."

"싫……"

그의 혀가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눌렀다. 천천히 원을 그렸다. 소연은 시트를 잡았다. 그의 혀는 그의 코드처럼 정확했다.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이미 아는 것처럼. 그녀가 숨을 참으면 더 세게, 그녀가 소리를 내면 더 느리게. 그녀는 십 초 만에 자기가 이 게임에서 진 걸 알았다. 그리고 그게 좋았다.

그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하나. 그녀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그가 그걸 알았다는 걸 그녀도 알았다. 그가 아주 잠깐 혀를 떼고 말했다.

"이렇게 젖어놓고 싫어?"

"……벌칙 하나 더."

"뭐가."

"그 말. 그런 말 하는 거."

"그럼 아홉."

두 번째 손가락. 그는 손가락을 구부렸다. 그녀 안쪽의 어딘가를 정확히 찾았다. 소연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의 혀가 다시 클리토리스로. 손가락은 안에서, 혀는 밖에서, 그리고 그의 다른 손은 그녀의 허벅지를 눌러 고정. 세 곳에서 동시에. 그녀는 소리를 냈다. 옆집에 들릴 소리였다. 상관없었다.

"지훈아, 나…… 나 갈 것 같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멈추지도 않았다. 오히려 리듬을 더 정확하게 맞췄다. 그녀는 갔다. 그의 손가락을 조이면서,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으면서, 등을 침대에서 완전히 띄우면서. 소리가 절반은 비명이고 절반은 웃음이었다. 웃음이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너무 좋아서 웃음이 나오는 게.

그가 몸을 일으켰다. 입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그리고 그녀를 봤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그를 올려다봤다.

"……데이터 정리 잘한다."

"조용히."

"싫어."

"이소연."

"넣어."

그가 멈췄다. 그녀가 말했다.

"명령이야. 넣어. 지금."

그는 콘돔을 꼈다. 서랍에서. 그게 서랍에 있었다는 사실에 소연은 나중에 따질 생각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가 그녀 위로 왔다. 팔꿈치로 몸을 받치고. 그리고 천천히 들어왔다.

"아……"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냈다. 그는 끝까지 들어와서 멈췄다. 소연은 그를 안았다. 등을. 손톱이 그의 피부에 닿았다. 그는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댔다.

"싫으면 말해."

그가 말했다. 이번엔 벌칙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냥 강지훈이었다.

"진짜 싫으면."

"진짜 싫으면 발로 차."

"그건 좀."

"그럼 진짜 싫으면 네 논문 리젝 사유 다 외워서 읊을게. 그럼 알아들어."

그가 웃었다. 그리고 움직였다. 천천히, 그다음에 덜 천천히. 그녀는 그의 리듬에 맞춰 허리를 들었다. 그가 깊이 들어올 때마다 그녀 안쪽에서 뭔가가 다시 쌓였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느리게 왔다. 그리고 더 컸다.

"소연아."

그가 그녀 이름을 그렇게 부른 건 처음이었다. 아, 를 붙여서. 그녀는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이 바로 위에 있었다. 땀이 나 있었다. 그는 이를 물고 있었다. 참고 있었다. 삼 년 동안 참았던 것처럼.

"참지 마."

그녀가 말했다.

"명령이야?"

"응."

그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허리를 잡고, 세게, 빠르게, 그녀가 소리를 지르게. 그녀가 두 번째로 갔을 때 그도 갔다. 그녀 안에서. 몸을 떨면서.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의 소리는 낮았고 짧았고, 그녀는 그 소리를 평생 기억할 것 같았다.

한참 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이불은 바닥에 있었다. 소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훈은 그게 이상해서 고개를 돌렸다.

"왜 조용해."

"생각 중이야."

"뭘."

"우리 방금 뭐 한 거지."

"데이터 정리."

소연이 웃었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누워 그를 봤다.

"근데 하나만."

"뭐."

"내가 '싫어'라고 할 때. 너 헷갈렸지. 진짜 싫은 건지."

지훈은 잠깐 말이 없었다.

"응."

"몇 번."

"세 번."

"매번 계속했잖아."

"네가 다리를 안 오므렸으니까. 입은 싫다고 하는데 몸은 계속 열려 있어서."

"그거 믿고 한 거야?"

"응. 근데 무서웠어."

소연은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아직 빨랐다.

"그럼 우리 규칙 만들어야겠다."

"무슨 규칙."

"벌칙 규칙. 진짜 규칙. 화이트보드에 못 쓰는 거."

지훈은 그녀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이소연."

"응."

"그거 하자고 하면서 벌칙 카운트는 계속 올릴 거야?"

"당연하지. 그게 내 취미인데."

"뭐가."

"말 안 듣는 거."

그는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이마에 키스했다. 그녀는 그게 아주 마음에 안 드는 척을 했다. 그런 척이 그녀의 취미 중 하나였다.

가방 속 칫솔은 그날 밤 그의 욕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칫솔 옆에. 각 안 맞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