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날은 육월 셋째 토요일로 잡혔다. 서윤이 문자를 보냈다. 날짜와 시간과 한 문장. "열한 명 확정. 명단은 만나서."
이 주가 남았다.
하은은 옷을 골랐다. 그것이 첫 문제였다. 벗기 위한 옷. 그녀는 옷장 앞에 서서 오래 생각했다. 원피스는 지퍼가 등에 있어서 안 됐다. 혼자 벗을 때 등을 돌려야 했다. 블라우스와 스커트는 두 번 벗어야 했다. 그녀는 벗는 동작이 하나이길 원했다. 하나의 문장처럼.
결국 그녀가 고른 것은 검은 실크 랩 드레스였다. 앞에서 여미는 것. 허리에 끈 하나. 그 끈을 풀면 앞이 열리고, 어깨에서 흘러내리면 끝이었다. 하나의 동작.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기로 했다.
"신발은."
재민이 물었다.
"맨발."
"바닥이 차가울 텐데."
"차가운 게 좋아. 발이 차가우면 정신이 들어."
그 다음은 빛이었다. 서윤은 그 방에 스탠드 조명 두 개가 있다고 했다. 텅스텐. 노란 빛. 하은이 원한 대로 밝게. 재민은 집의 스탠드 두 개를 거실로 옮겼다. 각도를 맞췄다. 그리고 바닥에 테이프를 붙였다. 이 미터. 소파를 벽으로 밀고 식탁 의자를 테이프 뒤에 놓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하은이 물었다.
"리허설이잖아."
"공연도 아닌데."
"공연이야." 그가 말했다. "삼십 분짜리."
그녀는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오래 가지 않았다. 그녀는 테이프를 봤다. 바닥에 붙은 노란 선. 그것이 실제가 되는 것 같았다. 이 층집이 아니라 자기 집 거실에 그것이 있다는 것이.
"해 보자."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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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은 의자에 앉았다. 카메라 없이. 그것이 이상했다. 그의 손은 늘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부엌에서도 침실에서도 창가에서도. 카메라가 없을 때는 그녀의 몸을 잡고 있었다. 지금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손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무릎에 올렸다. 의자 팔걸이를 잡았다. 다시 무릎에 올렸다.
"손이."
하은이 말했다.
"뭐."
"손이 갈 데를 못 찾네."
"카메라 없으니까."
"그날도 없어."
"알아."
그녀는 드레스를 입고 거실 가운데에 섰다. 테이프에서 이 미터. 스탠드 빛이 그녀의 양쪽에서 왔다. 그림자가 두 개 생겼다. 그녀는 맨발이었다. 발가락이 마룻바닥을 눌렀다.
"뭘 해야 하지."
"아무것도. 그냥 있어."
"그날도 그냥 있으면 돼?"
"각본은 없어. 항목만 있어."
그녀는 서 있었다. 삼십 초. 일 분. 그는 봤다. 그녀가 숨 쉬는 것을. 실크가 숨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그녀의 손이 허리끈을 찾다가 멈추는 것을. 그가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이 번갈아 지나가는 것을.
"어려워."
그녀가 말했다.
"뭐가."
"셔터 소리가 없어서. 언제 다음으로 넘어가야 되는지 모르겠어."
그는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셔터 소리는 허락이었다. 소리가 나면 그녀는 다음 단추를 풀었다. 이제 소리가 없었다. 열두 개의 눈만 있었다. 눈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가."
그가 말했다.
"뭐."
"내가 눈으로 하면 어때. 준비됐으면 내가 고개를 끄덕일게. 아주 조금."
"거기 앉아서?"
"거기 앉아서."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 너만 알아."
그녀는 그를 봤다. 오래.
"해 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조금. 턱이 일 센티미터쯤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녀의 손이 허리끈으로 갔다. 그가 봤다. 그녀는 끈을 풀지 않았다. 잡고 있었다. 그러다 그를 봤다. 그가 다시 끄덕였다. 끈이 풀렸다.
드레스가 열렸다.
실크가 어깨에서 미끄러지는 데는 일 초가 걸렸다. 그것은 소리 없이 떨어졌다. 그녀는 거실 가운데에 벌거벗은 채로 서 있었다. 두 개의 스탠드 빛. 두 개의 그림자. 맨발. 그리고 이 미터 너머의 그.
"여기서."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응."
"여기서 뭘 해야 돼?"
"아무것도. 그냥 있어. 보여져."
그녀는 있었다. 그것이 어려웠다. 그가 봤다. 벗는 것보다 벗고 있는 것이 어려웠다. 벗는 데는 동작이 있었다. 벗고 있는 데는 동작이 없었다. 그냥 있는 것. 열두 개의 눈이 그녀의 몸 위를 지나가는 동안 그냥 있는 것. 그녀의 손이 자기 팔을 잡았다. 놓았다. 다시 잡았다.
"손이."
그가 말했다.
"뭐."
"네 손도 갈 데를 못 찾네."
그녀는 웃었다. 그러자 어깨가 내려갔다. 그는 그것을 봤다. 웃음이 그녀를 풀어 주는 것을. 그는 그것을 기억했다.
"만져."
그가 말했다.
"지금?"
"항목에 있잖아. 자기 접촉."
그녀의 손이 자기 젖가슴으로 올라갔다. 그는 끄덕이지 않았다. 그녀는 끄덕임 없이 했다. 그것이 두 번째로 그가 기억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끄덕임이 필요한 것은 시작할 때뿐이었다. 시작하면 그녀는 혼자 갔다.
그녀는 서서 자기를 만졌다. 젖가슴을. 유두를. 그리고 손이 내려갔다. 배를 지나. 그녀는 다리를 조금 벌렸다. 서서. 그는 봤다. 그녀의 손가락이 자기 음순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서서 하는 것은 앉아서 하는 것과 달랐다. 더 드러났다. 숨을 데가 없었다.
"이거 실제로 하면."
그녀가 말했다. 손을 멈추지 않고.
"응."
"열두 명이 이걸."
"응."
"내 얼굴 보면서."
"응."
"나 못 견딜 것 같아."
그러나 그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봤다. 못 견딜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손가락은 더 깊이 들어갔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이 빛에 젖어 번들거렸다. 그녀의 무릎이 흔들렸다.
"앉아도 돼?"
"네가 원하는 대로."
그녀는 마룻바닥에 앉았다. 드레스 위에. 다리를 벌렸다. 그를 향해. 이 미터 너머의 의자를 향해. 그리고 계속했다. 서윤이 말한 것처럼.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그녀가 자기를 만지고 그가 보는 것. 그게 전부.
그녀는 리허설이라는 것을 잊었다.
그는 그것을 봤다. 어느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리허설이 사라지는 것을. 그녀는 거실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 미터 너머의 열두 개의 눈 앞에 있었다. 그중 하나가 그였다. 그녀는 그 하나를 봤다. 그 하나만.
그녀는 조용히 갔다.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마룻바닥 위에서. 허리를 들고 손가락을 자기 안에 넣은 채로 그를 보면서. 그녀의 얼굴이 열렸다. 스물세 번째 장.
그는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무릎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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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두 사람은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다. 드레스는 구겨졌다. 스탠드는 켜진 채였다.
"무서운 게 뭐야."
하은이 물었다.
"뭐가."
"그날. 네가 제일 무서운 게."
그는 천장을 봤다.
"내가 못 견디고 올라가는 거."
"올라가?"
"선을 넘는 거. 네가 저기서 그러고 있는데. 내가 참지 못하고 일어나는 거. 서윤 씨가 그러면 그날 밤 나가고 다시 못 온다고 했어. 그게 무서워."
"안 올라가."
"어떻게 알아."
"오늘 안 올라갔잖아." 그녀는 그를 봤다. "사십 분 동안. 손 무릎에 올리고. 너 그거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나 봤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그가 물었다.
"나는." 그녀는 천장을 봤다. "아무도 안 보면 어쩌지."
"열한 명이 봐."
"보는데 안 보는 거. 지루해하는 거. 딴 데 보는 거." 그녀는 팔로 눈을 가렸다. "내가 보여지고 싶은데 아무도 안 봐 주는 거. 그게 제일 무서워."
"내가 봐."
"응."
"내가 다 봐. 다른 사람이 다 딴 데 봐도. 내가 다 봐."
그녀는 팔을 내렸다. 그를 봤다. 그리고 그의 가슴 위로 올라왔다.
"약속해."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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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과의 마지막 통화는 목요일이었다. 명단. 그녀는 열한 명의 이름을 읽었다. 준호. 혜란. 소라. 미주. 그리고 여섯 명의 다른 이름. 그중 다섯은 하은이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하나는 못 만났다. 서윤은 그 사람이 팔 년 회원이라고 했고, 하은은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도현.
"도현 씨." 서윤이 말했다. "빼고 싶으면 빼요. 지금."
하은은 재민을 봤다. 두 사람은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었다. 식탁에서. 종이 옆에서.
재민의 얼굴에 무언가가 지나갔다. 그녀는 그것을 봤다. 아주 짧게. 굳는 것. 그러다 풀리는 것.
"아니요."
하은이 말했다.
"오게 해요."
서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재민 씨."
"네."
"괜찮아요?"
재민은 종이를 봤다. 번진 글자들. 하얀 칸.
"괜찮아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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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전날.
두 사람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커튼을 쳤다. 처음이었다. 창가에서 있은 뒤로 커튼을 친 것은.
"내일은 다 켜질 거니까."
하은이 말했다.
그들은 천천히 했다. 오래. 서두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지 않고. 손으로만. 그가 그녀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그녀의 등을 쓸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몸은 사진이 아니었다. 그냥 몸이었다. 그가 아는 몸. 삼 년 동안 안은.
"내일 나."
그녀가 그의 목에 말했다.
"응."
"거기 서 있으면. 네가 어디 있는지 찾을 거야."
"세 번째 자리. 왼쪽에서."
"세 번째. 왼쪽."
"거기 있을게."
"움직이지 마."
"안 움직여."
그녀는 그의 위에서 천천히 갔다. 소리 없이. 어둠 속에서. 그도 갔다. 그녀 안에서. 조용히.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래 누워 있었다. 커튼이 쳐진 방에서. 마지막으로.
새벽에 그는 잠에서 깨서 거실로 나갔다. 바닥에 테이프가 그대로 있었다. 노란 선. 그는 그것을 떼지 않았다. 의자도 그대로 두었다. 그는 그 의자에 앉아 봤다. 어둠 속에서. 이 미터 너머의 빈 자리를.
내일 저 자리에 그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 앞에 열한 개의 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기 앉아 있을 것이다. 손은 무릎에.
그는 자기 손을 봤다. 떨리지 않았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