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별
토요일 밤. 식탁. 와인 한 병. 그리고 종이.
하은은 펜을 들고 있었다. 검은 잉크의 만년필. 그녀가 원고를 볼 때 쓰는 것이었다. 재민은 그것을 보고 웃었다.
"왜."
"교정 보는 것 같아서."
"교정 보는 거 맞아." 그녀는 종이를 펴서 식탁 가운데에 놓았다. "우리 문장을."
첫 항목. 얼굴.
"마스크 쓸 거야?"
재민이 물었다. 서윤은 그것이 선택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얼굴을 가린다고. 반쪽 마스크, 눈만 가리는 것, 베일.
하은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안 써."
"확실해?"
"얼굴을 가리면 보여지는 게 아니야." 그녀는 펜을 종이에 댔다. "몸만 보여지는 거지. 나는 내가 보여지고 싶어. 내가 그때 어떤 표정인지. 그걸 사람들이 보는 게."
그녀는 썼다. 얼굴: 가리지 않음.
재민은 그 글자를 봤다. 그녀의 필체. 단정하고 조금 기울어진. 그는 그것이 종이 위에 놓이는 것을 보면서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조여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 스물세 번째 장의 얼굴을 열두 명이 본다.
두 번째 항목. 몸.
"어디까지."
"전부."
"전부."
"전부." 그녀는 그를 봤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 몸이야."
"내 몸인데 네가 보는 거잖아. 네가 못 견디겠다는 데가 있으면 말해."
그는 생각했다. 진지하게. 그녀의 몸에서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는 곳이 있는지. 그는 왼쪽 가슴 아래의 점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의 것이었다. 삼 년 동안 그만 본. 그가 가장 많이 찍은. 그는 그것을 말하려다 말았다. 그것을 말하면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 되면 그는 그녀를 다른 사람 앞에 세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없어."
그가 말했다.
"진짜?"
"점."
그녀가 눈을 떴다.
"점?"
"왼쪽 가슴 아래." 그는 종이를 봤다. "그거 남들이 보는 거 생각하면. 좀."
하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손을 뻗어 자기 셔츠 위, 그 자리를 짚었다.
"이거."
"응."
"이건 네 거야?"
"아니. 아닌데."
"네 거야." 그녀가 말했다. "네가 제일 많이 봤으니까." 그녀는 펜을 들었다. "그러면 이렇게 쓰자. 몸: 전부. 단, 점은 재민이 것."
"그게 무슨 항목이야."
"우리 항목이지." 그녀는 웃었다. "서윤 씨는 몰라도 돼."
그녀는 그렇게 썼다. 그는 그것을 보고 목이 뜨거워졌다.
세 번째 항목. 행위.
여기서 두 사람은 오래 멈췄다. 종이에는 예시가 적혀 있었다. 탈의. 자기 접촉. 절정. 도구 사용. 상대방 참여. 그 밖의 것.
"옷 벗는 건."
"당연히."
"만지는 건. 네가 너를."
"응." 하은의 뺨이 붉었다. 와인 때문이 아니었다. "그거 하고 싶어. 사람들 앞에서. 내가 나를 만지는 거."
"끝까지."
"끝까지."
"도구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손으로. 손으로만." 그녀는 자기 손을 봤다. "도구는 도구가 보여지는 거야. 나는 내가 보여지고 싶어."
재민은 그 말을 이해했다. 완전히. 그것이 그를 놀라게 했다.
"상대방 참여."
그가 읽었다. 그녀가 그를 봤다.
"그건 네 얘기야."
"알아."
"들어올 거야? 끝에?"
그는 와인을 마셨다. 오래. 잔이 비었다.
"모르겠어."
"몰라도 돼. 지금은. 비워 두자. 서윤 씨가 비워 둔 데가 중요하다고 했어."
그녀는 그 칸을 비워 두었다. 하얀 칸이 종이 위에 남았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문 같았다. 열릴지 닫힐지 모르는.
네 번째 항목. 거리.
"이 미터가 기본이라고 했지."
"응."
"더 멀리?"
"아니." 하은이 말했다. "이 미터. 얼굴이 보이는 거리. 사람들 눈이 보이는."
"눈이 보여야 해?"
"눈이 안 보이면 어둠이 보는 거야. 그건 싫어. 나를 보는 게 누군지 알고 싶어."
다섯 번째 항목. 접촉.
"아무도."
재민이 먼저 말했다. 하은이 그를 봤다.
"아무도. 아무도 너한테 손대지 않아. 그건 안 돼."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너도."
"나는 보여지고 싶은 거야. 만져지고 싶은 게 아니야." 그녀는 잠시 멈췄다. "만지는 건 너만."
"나만."
"끝나고. 끝나고 나서. 거기서든 집에서든."
그녀는 썼다. 접촉: 없음. 재민 제외. 종료 후.
그리고 여섯 번째. 관객.
"몇 명."
"열두 명까지라고 했어."
"열두 명." 하은은 그 숫자를 입 안에서 굴렸다. "많다."
"줄일 수 있어."
"아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열두 명. 그런데 조건이 있어. 진짜 보는 사람들. 서윤 씨가 말한 것처럼. 다른 걸 원하는 사람은 안 돼.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어야 해.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고."
"서윤 씨가 고르겠지."
"응. 그리고 내가 만나 보고." 그녀는 종이에 썼다. 관객: 12명 이내. 성별 무관. 사전 대면 후 하은 거부권.
"성별 무관?"
"여자가 보는 거랑 남자가 보는 거랑 다를 것 같아. 둘 다 알고 싶어."
일곱 번째. 소리. 관객 침묵. 하은 발화 자유.
여덟 번째. 시간. 삼십 분 이내.
아홉 번째. 조명. 여기서 하은이 말했다.
"밝게."
"밝게?"
"어둡게 하면 숨을 수 있어. 숨고 싶지 않아. 얼굴이 다 보이게. 나도, 보는 사람들도."
열 번째. 종료.
"신호를 정하자."
"뭐로."
하은은 생각했다. 그러다 손을 자기 쇄골에 올렸다. 오른손을 왼쪽 쇄골에.
"이거. 이러면 멈춰. 잠깐."
"잠깐."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완전히 끝내는 말은."
"뭐."
"필름 다 됐어."
재민은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끝나기 전에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깨달았다. 필름이 다 되면 셔터는 눌려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 밤을 끝내는 말로 그보다 맞는 것은 없었다.
"필름 다 됐어."
그가 따라 말했다.
"그러면 다 끝이야. 이유 안 물어. 서윤 씨가 그렇게 했지."
"응."
그녀는 마지막 항목까지 채웠다. 하나만 빈 채로. 상대방 참여. 하얀 칸.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종이 위에 그녀의 필체로 스무 개의 문장이 있었다. 그들의 문장. 그들이 교정한.
"다 했어."
"다 했어."
두 사람은 종이를 봤다. 오래.
그러다 하은이 일어나서 식탁을 돌아왔다. 그의 앞에 섰다.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뭐 해."
"교정 끝나면 인쇄하잖아."
셔츠가 벌어졌다. 그 아래에 아무것도 없었다. 왼쪽 가슴 아래의 점. 그의 것.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그 점 위에 올렸다.
"이건 네 거고."
"응."
"나머지는 다 보여질 거야."
그는 그녀를 식탁 위로 올렸다. 종이 위로. 그녀의 맨 등이 종이 위에 놓였다.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은 곳이 있었는지 그녀가 조금 몸을 떨었다. 그는 그녀의 바지를 벗겼다. 속옷을. 그녀는 식탁 위에서 다리를 벌렸다. 스무 개의 항목 위에서.
"봐."
그녀가 말했다.
그는 봤다. 카메라 없이. 그냥 눈으로. 식탁 스탠드의 노란 빛 아래에서 그녀는 벌어져 있었고 이미 젖어 있었다. 항목을 채우는 동안, 한 문장씩 쓰는 동안, 그녀는 이렇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알았고 그 사실이 그를 미치게 했다.
"열두 명이 이걸 봐."
그가 말했다.
"응."
"네가 이렇게 벌어진 걸."
"응."
"이렇게 젖은 걸."
"응, 재민아, 응."
그는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 위에서. 종이가 그녀의 등 아래서 구겨졌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봤다. 움직이는 동안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되는 것을 보는 것. 다 보는 것.
"네 얼굴."
그가 말했다.
"뭐."
"지금 네 얼굴. 그걸 다 봐. 열두 명이."
하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그를 똑바로 봤다.
"봐."
그녀가 말했다.
"보고 있어."
"더."
그는 더 봤다. 그녀의 입이 벌어지는 것을. 눈이 흐려지는 것을. 뺨에서 목으로 붉은 것이 내려가는 것을. 그녀의 안이 조여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 조임이 그녀의 얼굴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봤다. 그는 그것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무너질 때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녀도 감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무너졌다. 종이 위에서. 스무 개의 항목 위에서.
나중에 종이를 꺼냈을 때 잉크가 몇 군데 번져 있었다. 그녀의 땀이었는지 다른 것이었는지. 관객, 이라는 글자가 조금 흐려졌다. 접촉, 이라는 글자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하얀 칸. 상대방 참여. 그것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 위에 그녀의 등이 있었는데도.
"다시 써야겠다."
하은이 말했다.
"아니." 재민이 말했다. "이대로 가져가자."
그녀는 그를 봤다.
"서윤 씨가 비워 둔 데가 중요하다고 했잖아. 번진 데도 중요할 거야."
그녀는 웃었다. 종이를 접었다. 번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