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
사진은 지우지 않았다.
그 대신 두 사람 사이에 규칙 하나가 생겼다. 말로 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됐다. 재민이 카메라를 들면 하은은 옷을 벗었고, 옷을 벗으면 그는 만지지 않았다. 찍는 동안에는. 그것이 끝나고 나서야, 그가 카메라를 내리고 나서야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닿았다. 그 순서를 바꾸면 무언가 어긋나는 것 같았다. 마치 현상 순서를 바꾸면 필름이 타 버리는 것처럼.
봄이 깊어졌다. 창밖 감나무에 잎이 났다. 하드디스크에는 폴더가 하나 늘었고, 폴더 이름은 없었다. 날짜만 있었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하은은 샤워를 하고 나왔고, 재민은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카메라는 식탁 위에 있었다. 그는 오늘 그것을 들 생각이 없었다. 그냥 평범한 밤이 되어도 좋을 것 같은 밤이었다.
하은이 창가로 갔다.
칠 층이었다. 창 너머로 도로가 있었고, 도로 건너편에 사무용 건물이 있었다. 밤 열 시가 넘으면 그 건물의 창은 대부분 어두웠지만 몇 개는 늘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그들이 사는 것과 비슷한 아파트 한 동이 있었다. 거기는 켜진 창이 많았다. 커튼이 쳐진 창과 쳐지지 않은 창.
그녀는 젖은 머리로 서서 그 창들을 봤다. 슬립 하나만 입고 있었다. 얇은 회색 새틴. 등이 깊게 파인 것. 그녀가 젖은 머리를 넘길 때 물방울 하나가 등뼈를 따라 흘러 내려가 슬립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재민은 봤다.
"커튼 쳐야지."
그가 말했다.
하은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은아."
"저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무용 건물의 오 층. 창 하나가 켜져 있었다. 그 창 안에 누군가가 있는지는 여기서 보이지 않았다. 형광등 빛. 책상 모서리. 그것뿐이었다.
"누가 있으면."
그녀가 말했다.
재민은 책을 내려놓았다.
"뭐라고."
"저기 누가 있으면. 야근하다가 창밖을 보면." 그녀는 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기가 보이겠지."
그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아주 빠르게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일어나서 커튼을 치는 방향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농담이야."
하은이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에 농담이 없었다.
"농담 아니잖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슬립의 어깨끈 하나를 손가락으로 걸어 내렸다. 끈이 팔꿈치까지 미끄러졌다. 슬립의 한쪽이 흘러내려 젖가슴 하나가 드러났다. 창 쪽으로. 재민이 아니라 창 쪽으로.
그는 일어났다.
커튼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냥 다리가 움직였고, 그는 그녀의 뒤에 섰다. 창유리에 두 사람이 비쳤다. 어두운 방 안, 스탠드 하나. 유리 속의 그녀는 반은 유리에 비친 상이고 반은 건너편 건물의 불빛이었다.
"누가 봤을 것 같아?"
그녀가 물었다.
"모르겠어."
"봤으면 어떡할 거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다른 어깨끈을 내렸다. 슬립이 허리까지 흘러내렸고 그녀는 그것을 잡지 않았다. 그것은 골반에서 잠시 걸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은은 창 앞에 벌거벗은 채로 서 있었다. 칠 층. 열 시 이십 분. 건너편에 켜진 창 여덟 개.
"재민아."
"응."
"쳐 줘. 커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창유리에 댔다. 손바닥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젖가슴이 차가운 유리에 닿자 그녀가 숨을 삼켰다. 그것은 커튼을 쳐 달라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그녀도 알았다. 그래도 그녀는 그렇게 말했고, 그 말 때문에 그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안 쳐."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자기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응."
"보게 놔둘 거야."
"응."
그는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넣었다. 그녀는 흠뻑 젖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것과는 상관없는 젖음이었다. 뜨겁고 미끄러운. 그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음순을 벌리자 그녀의 이마가 유리에 닿았다. 창밖을 보면서. 여덟 개의 창을 보면서.
"누가 보고 있으면 좋겠어?"
그가 물었다. 자기가 묻는 말에 자기가 놀라면서.
하은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 안으로 들어갔다. 두 개. 그녀의 안은 그것을 쉽게 받았다. 그녀는 허리를 뒤로 밀었다. 유리에 눌린 젖가슴이 하얗게 퍼졌다.
"몰라."
"몰라?"
"모르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아."
그는 바지를 내렸다.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그녀는 이미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창을 향해 손을 대고, 이마를 대고, 엉덩이를 그에게 내밀고. 그는 그녀의 젖은 입구에 자기를 대고, 밀어 넣었다. 한 번에. 끝까지.
하은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유리에 김이 서렸다.
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지 않았다. 아침의 부엌처럼 느릴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자기 쪽으로 당겼고, 그녀의 몸이 유리에 부딪혔다가 돌아왔고, 그때마다 그녀의 젖가슴이 유리에 눌려 퍼졌다. 그는 그것을 유리 속에서 봤다. 그들의 반사상 속에서. 그리고 그 반사상 너머, 건너편 건물의 창들을.
오 층의 창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저기."
그가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
"응."
"저기 누가 있어."
거짓말이었다. 그는 몰랐다. 그러나 그 말이 그녀의 안을 조이게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느꼈다. 그녀의 안쪽이 그를 물고, 그녀의 손가락이 유리를 긁고, 그녀의 무릎이 흔들렸다.
"보고 있어. 너를. 이렇게 되는 거."
"재민아."
"네가 창에 붙어서, 뒤에서 박히면서."
"재민아, 제발."
"다 보여. 다 보고 있어."
하은은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형태를 한 숨. 그녀는 유리에 눌린 채로 무너졌다. 그녀의 안이 경련했다. 그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으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려 그의 것을 타고 내려왔다. 그는 그녀가 다 무너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자기도 무너졌다. 그녀의 안 깊은 곳에. 창을 보면서. 여덟 개의 창을 보면서.
---
침대에 누웠을 때 창밖의 불은 다 꺼져 있었다. 오 층도. 커튼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하은은 그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오래 말이 없었다. 재민은 천장을 봤다.
"봤을까."
그녀가 말했다.
"모르겠어."
"봤으면."
"봤으면."
"봤으면 그 사람은 지금 뭘 생각할까."
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그의 가슴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이상해?"
그녀가 물었다.
"뭐가."
"내가. 이런 거 생각하는 게."
"아니."
"너는."
"나도 이상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너도."
"네가 창에 붙어 있는 거 보면서." 그는 천장을 보면서 말했다. 그녀를 보면서는 말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저기 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침묵.
"질투 안 나?"
"나."
"근데."
"나는데." 그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면 더 서. 이해가 안 돼."
하은은 다시 그의 가슴에 머리를 댔다. 그녀의 심장 소리와 그의 심장 소리가 다른 박자로 뛰었다.
"만약에."
그녀가 말했다.
"응."
"만약에 진짜 누가 보면. 모르는 사람 아니고. 우리가 허락한 사람이."
재민은 손을 눈에서 내리지 않았다.
"우리가 정한 사람이. 우리가 정한 데서. 우리가 정한 만큼만."
"하은아."
"생각만 해 보자는 거야."
그는 오래 생각했다. 그녀의 머리가 그의 가슴 위에서 무거웠다. 무거운 것이 좋았다.
"생각해 볼게."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잠들었다.
그는 잠들지 못했다. 새벽 세 시까지 천장을 봤다. 커튼이 열린 창으로 가로등 빛이 들어왔다. 그는 그 빛 속에서 그녀의 어깨선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을. 그녀가 그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그가 그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그녀를 보는 것을.
그는 자기가 다시 딱딱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또 그를 더 딱딱하게 만들었다.
새벽 네 시에 그는 일어나 커튼을 쳤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